이청준-눈길
그런디 그 서두를 것도 없는 길이라 그렁저렁 시름없이 걸어온 발걸음이 그래도
어느 참에 동네 뒷산을 당도해 있었구나. 하지만 나는 그 길로는 차마 동네를 바로 들어설
수가 없어 잿등 위에 눈을 쓸고 아직도 한참이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더니라.....
이해의 선물 (위그든씨의 사탕가게)
"모자라나요...?"
"아니 조금 남는걸"
옥상위의 민들레꽃 - 박완서 그 때 나는 민들레꽃을 보았습니다. 옥상은 시멘트로 빤빤하게 발라 놓아 흙이라곤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송이의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야외로 소풍 가서 본 민들레꽃이었습니다. 기억속의 들꽃 - 윤홍길 그 날도 나는 명선이와 함께 부서진 다리에 가서 놀고 있었다. (중략) 다른 것은 도무지 무서워할 줄 모르면서도 유독 비행기만은 병적으로 겁을 내는 서울 아이한테 얼핏 생각이 미쳐, 눈길을 하늘에서 허리가 동강이 난 다리로 끌어내렸을 때, 내가 본 것은 강심을 겨냥하고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는 한 송이 쥐바라숭꽃이었다. 원미동 사람들 - 양귀자 "이번에는 김포, 다음에는 형제,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아이구, 난 이제 늙어서 기억력도 모자르는디 헷갈려서 그짓 못혀. 소나기 - 황순원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라빛이 좋아! .... 그런데, 이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엄마는 연희를 흔들어 깨우려다 연희의 머리맡에서 여기저기가 깎여 나간 비누 조각을 발견했다. 조그만 칼로 무엇인가를 솜씨 없이 깎아 놓은 것이 연희가 한 게 분명했다. 팔과 다리 모양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인형을 만들려 했던 모양이었다. 순간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운수좋은날 - 현진건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젖먹이 개똥이가 빈 젖을 빨다가 떨어지며 울음소리도 못 내고 탈진해버린다. 소음공해 - 오정희 여자의 텅 빈, 허전한 하반신을 덮은 화사한 빛깔의 담요와 휠 체어에서 황급히 시선을 떼며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부끄러움으로 얼굴만 붉히며 슬리퍼든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64번지 새댁이 공평한 결론을 내리는가 했더니 고흥댁이
“그럼 계란이니 두부니 라면도 일일이 나눠 가지고 사러 다닐꺼여?
아무런 대꾸가 없어 아내의 다리를 걷어찼다. 나무 등걸이 차이는 느낌이었다.
김 첨지는 죽은 아내의 얼굴에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푸념을 쏟는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