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는 것처럼 굴어본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될 것만 같아서
봄은 왔는데 여전히 춥기만 하다.
나를 무언가에 빗대라 하면 줄타기에 빗대고 싶다.
줄타기는 위태롭고 불안하고 무섭고 혼자 건너는 것이 쓸쓸하다는 점과
주위에 기댈 곳 하나 없는 점이 나와 매우 닮았다.
함께 라는 즐거움을 몰랐더라면
혼자 남겨져도 외로움에 몸부림 치지 않았을 텐데
살아있는게 괴롭다면서 왜 죽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은 할 수 없다.
나 자신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건 죽음에 대한 무서움이 아닌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아직은 살아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자살은 나약한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어떤 사람은 말한다
자살은 나약한 사람을 구해준다고
아 나는 살아있구나
그래서 이렇게 슬픈 거구나
어느 날 문뜩 외로움이 몰려 올 때
핸드폰을 열고 전화목록을 살펴본다.
아래로 내려갈 수 록 마음은 더 울적해져 핸드폰을 닫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록 돼있는데 단 한명에게도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늘 그래왔듯이 혼자 외로움을 삭힌다.
내가 바라는 건 격려의 말이 아니라
그저 내 곁에 있어주는 거야.
외로움에 익숙해졌는데도 여전히
외로움은 온몸 구석구석까지 느껴진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였다가 또 다시 몰려온다.
나를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섭다.
날 감당하지 못해 떠날까봐 그게 너무 무섭다.
그러니까 난 내 자신을 아무에게 보이지 않도록 저 끝으로 숨겨버린다.
어릴 적엔 잘하는 게 많았다.
그림도 잘 그렸고 글도 잘 썼고 공부도 잘했다.
잘하는 게 많아서 주위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 불렀고
난 내가 제일 최고인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천재는 보통 사람이 되었다.
내가 그림을 제일 잘 그렸는데 내 옆에 아이가 칭찬을 받고
내가 글을 제일 잘 썼는데 내 옆에 아이가 상을 받고
내가 공부도 제일 잘했는데 내 옆에 아이가 전교1등을 했다.
어릴 적엔 몰랐다.
천재였던 꼬마아이는 커가면서 쓸모없는 보통사람이 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