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nstiz.net/writing?no=1165120&page=1&stype=3
↑ 00편 바로가기
도대체. 나 지금 뭐 보는거야. 지금 입 쩍 벌리고 소리 지르는 저 얼굴. 저거 나잖아.
사람은 가끔씩 평소에 생각없이 해왔던 당연한 행동을 어떻게 하는지 까먹는다. 걷는 방법이라든가, 연필을 쥐는 방법이라든가.
그리고 나는 지금 입 다무는 법을 까먹었다.
나와 오빠의 비명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집안에 울려퍼졌다.
"이것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웬 난리야!"
우리의 비명때문에 잠에서 깬건지 엄마가 굼뜬 눈을 치켜뜨며 우리에게 달려왔다.
평소의 나였다면 엄마의 저 매서운 눈초리와 손에 들린 옷걸이를 보고 줄행랑을 쳤겠지만 지금은 예외였다.
엄마... 내가 비명을 안지를 수가 없어...
내 앞에 있는 '나'도 엄마는 신경도 안쓰고 악에 받친 비명을 질렀다.
엄마가 옷걸이를 휘둘러 내 팔뚝을 때렸다. 찰진 소리는 덤이었다. 옷걸이를 정통으로 맞은 부분부터 찌르르한 통증이 서서히 느껴졌다.
나는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고 맞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맞은 부분을 문질렀다. 엄마는 이런 내 행동은 신경도 안쓰고 맞은편 '나'에게 옷걸이를 휘둘렀다.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근처에 뒹굴고 있는 야구방망이를 들었다.
"너... 너 정체가 뭐야!"
"아 미친. ㅇㅁㅁ 정신차려."
"닥쳐. 너 정체가 뭐야."
"네 오빠다."
손에 들린 야구방망이를 맞은편 '나'에게 휘두르며 물었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맞은편의 '나'는 자신을 오빠라고 소개했다.
사고회로가 정지되어있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내 입에서 나온 남자 목소리. 내가 입고 있는 오빠 옷. 맞은편에 있는 '나'.
"이건 말도 안돼.."
지금 이 상황은 아까 꾼 악몽의 연장선인가.
"얘네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이것들이 기숙사 가기 싫으니까 이젠 별 말같지도 않은 꼼수를 부리네."
꿈이라면 제발 깨길 바랐다.
"엄마. 나 한번만 더 때려줘."
"오냐, 이것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있는 힘껏 내 등을 내리쳤다.
내 바람이 애석하게도 엄마에게 맞은 등짝에서 찌르르하다 못해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아프다. 꿈이 아니다.
"정신 차리고 화장실 가서 빨리 씻어. 버스 놓치면 안되니까."
"엄마. 우리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우리 말 좀 들어줘."
맞은편의 '나', 아니 오빠가 엄마에게 매달렸다. 잔뜩 당황한 나와 달리 오빠는 꽤 침착한 모습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오빠와 엄마의 실랑이를 지켜봤다. 우리 둘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엄마가 오빠의 뒷덜미를 붙잡고 화장실에 집어넣었다.
"들을 말 없어. 씻기나 해."
화장실로 쫓겨난 오빠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에게 이 상황을 설명할 마음을 포기했나보다.
하긴 지금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사자인 나도 어안이 벙벙한데 엄마가 우리의 상황을 믿어줄리 없었다.
나는 넋을 놓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입을 다문 우리로 인해 집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쑥대밭이 된 나와 오빠의 마음만 뒤숭숭했다.
**********
"야."
"......"
"오빠."
"오빠라고 부르지마. 보기 이상해."
"평소엔 오빠라고 부르라더니."
오빠를 흘겨보며 불퉁스럽게 중얼대다가 눈을 감았다.
나와 오빠는 지금 타지역에 있는 기숙사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지 3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느정도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고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노래만 듣지 말고 얘기 좀 해."
오빠의 귀에서 뽑은 이어폰에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음악을 얌전히 듣다가 한숨을 쉬었다.
나도 나지만 오빠가 안쓰러웠다. 오죽 불안하면 평소엔 거들떠도 안보던 클래식 음악까지 들을까.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렇게 한가로이 음악이나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야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된건지 생각해봤어?"
"......"
"우리가 어제 의심스럽게 행동한건 없잖아. 그냥 나는 평소대로 집에서 빈둥댔고 오빠는 밖에서 놀다왔잖아."
"......"
"귀 먹었냐? 내 말 듣고 있어?"
아무 말도 없는 오빠의 모습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잠에서 막 깨고 오빠의 침착한 모습에 어느정도 믿음이 갔는데 오빠는 화장실에서 나온 이후 벙어리가 되었다.
말한게 있다면 아까 나보고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고한게 다였다.
내가 이런 놈을 믿다니. 이 놈은 그냥 침착한게 아니라 정신을 놓아버린거다.
이 놈이랑 이야기를 할 바엔 차라리 심심이랑 대화를 하고말지. 한심함에 혀를 차고 어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아까 말했던대로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빈둥댔다. 조금 다른게 있다면 노트북이 고장난 정도?
하지만 우리의 몸이 바뀐 이유가 노트북일리는 절대 없었다. 그렇다면...?
어제 있었던 일을 조용히 곱씹다가 불현듯 어제 본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의 내용은 지금 우리의 상황과 딱 일치했다.
"어제 본 영화 DVD 선물받은거라고했지?"
"......"
"누구한테 받은거야?"
"....."
대답이 없는 오빠때문에 진심으로 살인충동을 느꼈다.
그냥 화를 내버리려다 유리멘탈인 오빠를 이해하며 참을인 3개를 되내었다.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짓고 오빠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내 행동에 그제서야 정신이 든건지 그나마 뚜렷해진 눈으로 날 쳐다봤다.
"미안하다."
"뭐?"
"다 내 잘못이야."
"뭔 소리야. 알아듣게 설명해."
"어제 우리가 본 DVD 말이야. 사실.."
"....."
"길에서 주운거야."
........
엄마. 내가 저 놈 죽이고 천국갈게요.
와.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는 살인충동이 느껴졌다.
속에서부터 뭔가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이 모든 원흉이 바로 저 놈이었어. 우리 집 똘이보다 못한 놈은 저 놈이라고.
"ㅁㅁ야.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다."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오빠의 목소리에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딴 사과따위 내가 받아줄리 없었다. 한 한달정도는 맘껏 부린 다음에 받아줄 것이다. 아니. 한 달도 부족해. 일년은 부려먹어야겠어.
"그래서. 그 잘난 DVD 어쨌어."
"...씻고나서 찾아봤는데 안보이더라."
"......"
"미안."
그 이후로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 사이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
우리가 들어갈 기숙사에서는 핸드폰을 내는게 원칙이었으나 나는 그 원칙을 가볍게 무시하기로했다.
핸드폰으로 해야할 일이 많았다. 엄마한테 전화해 사라진 DVD를 찾아달라고 매일같이 닦달해야했다.
무엇보다 핸드폰은 잊고싶은 현실을 외면하게 해주는 내 유일한 도피처였다.
"우리 이제 어떡해?"
"그러게. 어떡하냐."
앞날이 캄캄했다. 기숙사에 들어가면 나는 시커먼 남자애들과 함께 살아야했다.
여중 3년을 다니며 내 또래 남자애들은 오빠밖에 만난 적 없는 내게 이 상황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물론 좋다. 남자애들 좋지. 잘생긴 남자애라면 더더욱 환영.
하지만 같이 방을 쓰는건 안환영.
더구나 이 몸으로 남자애들을 만나는건 정말..
끔찍하다.
"양심있으면 기숙사 들어가서 여자애들 몸 훔쳐보지마."
"너나 훔쳐보지마라."
"어쩔. 내가 너같은 줄 아냐."
"이응."
시간은 어느새 5시에 가까워져있었다. 기숙사까지 적어도 5시 30분까지 들어가야하니 슬슬 들어갈 채비를 해야했다.
앉아있던 편의점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빠도 나를 따라 엉거주춤 일어섰다.
********
오빠와는 기숙사 정문 앞에서 헤어졌다. 오빠가 가야할 기숙사, 그러니까 여자 기숙사는 왼쪽이고 내가 가야할 남자 기숙사는 오른쪽이었다.
경비실에서 받아온 짐들을 들고 내가 지내야할 방으로 향했다.
내 방은 4인실이었는데 두 침대 빼고 나머지 두 침대 위에 짐이 올려져있었다.
남은 침대 중 하나는 내 침대고 나머지 침대의 주인은 아직 안온 것 같다.
방 안에 아무도 없는걸 보니 짐만 두고 어디로 간 것 같은데..
나는 걔네들이 오기 전에 빠르게 옷을 갈아입기로했다.
걔네들 눈엔 남자 몸이지만 그래도 나는 남자애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거니까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는 생각보다 푹신했다.
침대에 누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기숙사에는 층마다 공동샤워실이 있었다. 그러니까 샤워를 하려면...
끄아아아ㅏㅏㅏㅇ아알라앙랑라앙랑랄오ㅓㅇㄴ머로이ㅓ마로이너ㅗㄻㄴㅇ
어떻게! 씻어! 진짜! 겁나! 앞날이! 캄캄하네!
침대 위에서 이불킥을 날리며 발광을 하는 그 때.
"뭐하냐?"
낯선 남자애 목소리가 들렸다.
난희골혜? 남자 목소리?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목소리가 들리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씻고 왔는지 물끼가 뚝뚝 흐르는 머리칼을 터는 남자애가 한심하단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망했다. 나의, 아니 오빠의 이미지 ㅂㅂ
나중에 몸이 돌아왔을 때 오빠는 졸업할 3년간 호구 이미지를 달고 살아야할 것이다.
오빠에게 진심으로 애통한 마음을 표하고 있는데.
"김지원. 네가 내 옷 입었냐?"
또다른 남자애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
!
!!!!!!!!!!!
"엉. 옷 갖고가는거 깜빡해서 네 옷 입었다."
"죽을래? 너때문에 이러고 걸어왔잖아."
김지원이라는 남자애가 실실 웃으며 아까 막 들어온 남자애에게 말했다.
........
나는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진 이 모든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기숙사 입성한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입을 떠억 벌린채 몸을 굳혔다.
그나마 다행인건 남자애가 수건으로 몸을 가렸다는 것이다.
수건으로 몸을 가린 남자애가 자신의 가방을 뒤져 편해보이는 티와 바지를 꺼냈다.
그리고..
그 남자애가 수건을 벗었다...?
"아아아악!"
나는 육성으로 소리질렀다.
김지원과 남자애가 이상하단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야. 쟤 왜 저러냐?"
"몰라. 쟤 아까부터 좀 이상했어. 무시해."
"야! 너 가려! 가리라고!"
"뭐라고?"
"아 몰라! 묻지마! 닥치고 가리라고!"
나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크게 외쳤다.
바바리맨을 만난 소녀의 반응이 이러할까.
나는 본능적으로 그 남자애를 보려고 움직이는 눈을 가리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동하기위해 노력했다.
심호흡을 하며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지켜주자. 지켜주자. 지켜주자.
이쯤이면 옷을 다 입었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리고 눈을 떴다. 다행히도 그 남자애는 옷을 다 갈아입고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얼굴에서부터 열이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빠르게 손을 가리긴 했다만 그 사이에 본 장면이 내 눈 앞에서 재생됬다.
이젠 얼굴이 아니라 온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아.. 엄마... 난 정말.... 순수하게 살고싶었는데...
나의 없어져버린 순결을 애도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내게 닿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몸이 찌뿌둥하네. 좀 걸어야겠다. 하하."
어색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문 앞까지 걸어갔다. 내게 닿은 시선들이 떨어질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그만 쳐다보라고 소리치고싶은걸 애써 자제하고 빠르게 방을 벗어났다.
방을 벗어난 후 나는 그냥 미친듯이 뛰었다. 목적지따위 없다. 그냥 저 방에서 멀어지고 싶다. 아까 있었던 일을 다 잊고싶다. 되돌리고싶다. 시간을.
맘빈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정말 좋아한다. 악의따위 없어.
어제 올린 글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이제부터 슬슬 진도가 나갈 것 같아요.
요즘 고민하고있는게 있는데 학교를 남녀분반으로 할지 합반으로 할지 고민이에요.
독자분들께서 댓글에 써주시면 참고할게요.
그럼 오늘도 제 글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하트)
---------------
글잡에 등장인물 치한 기능이 생겼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수정했는데 문제점이 하나 있어요ㅠㅠ
이때까지 여주 이름을 000으로 했는데 등장인물 이름을 000으로 하니까 등장인물 치한이 제대로 안되고 오류가 나서 급하게 ㅇㅁㅁ으로 대처했습니다.
치한 기능을 안하시면 이름 대신 ㅇㅁㅁ가 나오니 그 점 유의해주세요!
제가 독자님들 의견을 안묻고 너무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 같아 걱정되네요. 이 기능 은근히 호불호 갈리던데ㅠㅠ
이 기능이 불편하신 분은 댓글로 문의해주세요. 문의가 많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