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이 편지도, 앞으로 쓸 글도 당신이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이 써볼까 해요
이 글은 온전히 내 히어로를 위한 것
우리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방법이자 당신에게 말을 거는 제 방식이니까요
듣지도 답하지도 않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5월 6일
당신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이 일기장을 찾았어요
이 일기를 제가 어쩌다가 쓰기 시작했는지 기억하세요?
이건 당신이 없을 때의 저도 궁금하다는 선배를 위해 제가 삼 년 전에 드린 서프라이즈 선물이잖아요
일기를 받고 어떤 선물보다 기뻐했던 당신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해요
손때가 잔뜩 탄 표지를 보며 한참을 울었어요
당신이 이렇게 오래 좋아하고 있는 줄 알았으면 계속 쓸 걸 그랬구나 싶어요
더 많은 걸 공유할 걸 그랬어요
더 이상 당신의 웃는 얼굴도 답도 받을 수 없다는 걸 아는데 저는 왜 이 일기장에 당신을 향한 편지를 쓰고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냥 해볼게요
장례식은 순조롭게 끝났어요
히어로는 처음 면허가 나올 때 유언장을 쓰는 전통이 있잖아요
당신이 매년 유언장을 새로 썼다는 건 몰랐지만... 아무튼 그 유언장 덕에 순식간에 진행되었어요
당신의 빈 자리는 당신이 직접 지명한 후계자에게 넘어갔고, 코스튬은 망토를 제외하고는 함께 화장했습니다
사실 이 글을 빌려 선배에게 사과하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이 적은 유언장에서 딱 한 가지 지키지 않은 게 있거든요
선배는 죽으면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지만 제가 당신을 작은 통 안에 가두었습니다
당신이 온 바다에 흩어지는 건 견딜 수 없더라고요
당신이 그리울 때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다 당신이 이미 떠내려간 해변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닐 저를 생각하면 괴로워져서 당신의 유언을 어겼어요
차가워졌던 몸이 다시 뜨거워지고 통에 담기는 순간을 전부 눈에 담았어요
무릎 위의 당신의 온도는 생전의 온도처럼 따뜻했어요
당신은 겨울에도 온몸이 따뜻했잖아요
그 온도가 참 좋았는데
아, 눈물이 나서 오늘은 더 못 쓸 것 같아요
내일 또 마저 쓰러 올게요
하고 싶은 말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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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닝이 죽은 후 그의 연인 아카아시 케이지가 쓴 일 년 간의 편지
피에르 베르제의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의 영향을 받아 오마주한 부분이 종종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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