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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48l 1

하이큐 주술 도리벤 가능

캐랑 간단한 상황설정 성격 등등 써주면 옵니다


“…..야.“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눈알만 굴려 문 쪽을 바라봤다. 흐릿하게 보이는 실루엣 속에서도 단번에 누군지 파악이 된다. 멀대같은 키로 삐딱하게 뒷문을 막아선 자세에 아이들이 괜히 피해 돌아오는 게 보인다. 내가 관심 끄는 거 싫다고 했는데, 비밀연애 같은 건 자기 취향 아니라고 노빠꾸로 입술부터 박아놓은 놈한테 뭘 기대하겠냐만은. 언제나 그렇듯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 지. 켄지랑 내가 오래 사귀기는 했다만 어찌나 남 눈 따위는 까고 사는지 사귄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는 사실에 내가 포기한 지는 오래다. 


먼저 찾아왔다고 응어리진 속이 한번에 풀려버리는 그런 성격 좋은 타입은 아니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공책에 샤프나 끄적였다. 애초에 여친한테 야, 가 뭐냐고… 이름도 아닌 저런 호칭 하나에 꼬리 흔들면서 달려갈 거였다면 내가 애초에 이 싸움을 이렇게까지나 질질 끌 이유조차 없었다. 그만큼 자존심 문제였다는 소리다. 본 척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책에 고정시키고는 있지만 집중력이 실시간으로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글자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씨, 야-..“


후, 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벽에 등을 기대던 켄지가 재차 날 낮게 부른다. 저 공주같은 성격에 저 정도 성의를 보였다면 평소의 나는 눈 딱 감고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이쪽도 빈정이 상했다고. 켄지가 좋아서 일학년 내내 속을 끙끙 앓았던 주제에 그거랑 자존심 문제는 또 별개인 내가 객관적으로 봐도 웃긴 상황인 건 안다. 하지만 좋아할수록 이런 문제에서는 상대의 사랑을 받고 싶은 거다. 당연하지 않나.


대답을 여전히 않은 채 시선조차 주고 있지 않으니 손바닥으로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넘긴 켄지가 긴 다리로 걸어와 내 앞자리 의자를 드륵 빼 걸터앉는 게 보였다. 최선을 다해 아무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손은 멈춰버린 지 오래다. 험악한 인상에 옆자리 짝은 매점을 간다는 핑계로 황급히 자리를 나섰고. 이제야 점심시간이니까 올려면 한참 남았네… 같은 반도 아닌 놈이 남들 눈치 따위는 ‘까는 그 성정답게 점심시간 내내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심산인가 보다.


“자기야-,..“


의자를 빼 반대로 앉은 켄지가 그 커다란 상부를 수그려 고개를 꺾어 온다. 시선을 아래에 박고 있는 내 시야에 어떻게든 들려고 앞머리가 한쪽으로 쏠릴 정도로 고갤 꺾어 눈을 바라봤다. 잠깐 말 좀 하자니깐, 말과 함깨 커다란 손이 의미없이 샤프를 쥐고 있던 내 손과 겹쳐졌다. 자연스레 문제집을 겹친 손 위로 덮는다. 그제서야 시선이 맞닿는 틈에 짜증스레 눈을 쳐다봤지만 이내 순순히 반항을 풀었다. 장난기가 싹 빠진 갈색 눈동자가 흔들리는 건 다소 절실해 보이기는 했기 때문이다. 공부 좀만 이따 하고. 엉? 얘기 좀만 하자. 나 밥도 안 먹고 왔어.


감정의 골이 깊어진 만큼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켄지나 나나 성격이 더럽기로는 다테공에서 내로라할 정도지만 그럼에도 사귀고 난 뒤로 한 번도 심각하게 싸운 적이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로 그 까칠한 인성노답 켄지가 나한테는 무른 구석이 있기도 했고… 아무리 평소에 투닥거렸다 한들 이성문제나 연락으로는 단 한 번도 속을 썩인 적 없는, 그러니까 선에 관해서는 칼같이 내 편의를 지켜줬던 편이기 때문이다. 속 좁고 성격 나쁜 내가 켄지랑 사귄다는 걸 이야기했을 때 내 친구들은 대부분 한 달안으로 깨진다며 훈수를 뒀지만 사실상 벌써 일 년 반이 다 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생각보다 섬세 따위와는 거리감 있게 생긴 켄지의 덕이 컸다.


아니,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려나…


취업계인 켄지와 달리 나는 다테공에서 진학계를 희망하는 소수 인원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대학을 가더라도 최종 진로는 비슷한 공돌이일 테지만 공부에 재능이 없지 않은 머리와 한번 시작한 건 오기로라도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지긋지긋한 독기에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길이었다. 물론 내가 실무에 있어서는 한참은 뒤떨어졌던 사실도 있다. 켄지나 아오네 같은 애들만 보면 웬만한 기계는 죄다 분해하고 조립해서 자기 것마냥 뚝딱뚝닥 개조하던데 난 이론에는 빠삭해도 막상 실전에서는 우왕좌왕하다가 전부 망쳐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더 교과서에 집착했던 것도 있고…

아무튼 진로가 달라 전혀 접점이 없던 켄지와 나였음에도 배구부 에이스라던 후타쿠치 켄지의 존재 정도는 입학 때부터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신입생으로 가봤던 첫 등굣길에,


“저기. 야.“

“…어?“

“뒤에, 너.“

“…저 아세요?“

“..하, 아 진짜, 아오-,“


추워 보이니까 이것 좀 제발 걸치고 가리는 이름모를 신입생의 말에 나는 잔뜩 당황한 채 억지로 품이 커 흘러내릴 정도인 져지 집업을 걸치고 등교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마 뒤에 얼룩이 묻어 있었으며, 그 신입생이 그걸 생리혈로 착각했다는 건 집에 가서 교복을 갈아입으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냥 덜렁대는 성격에 정말 얼룩이 묻은 거였는데… 모르는 사이에 여자애를 걱정해 그런 세심한 배려를 해 줄 정도의 성격인 점이 양아치 같은 외견에 순간 쫄았던 겉모습과 대비되어 꽤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날티나는 분위기와는 별개로 남자치고도 꽤 예쁘장한 외형이기도 했고… 사실 처음 불려서 돌아세워졌을땐 꼼짝없이 돈을 뜯기겠거니 생각했단 말이야.


“…아, 너-”

“그땐 고마웠어. 옷은 세탁했으니 깨끗해.”


남자가 대부분인 학교에서도 꽤 입소문을 탈 만한 얼굴이라 켄지를 다시 찾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계반인 그 애는 며칠 뒤 세탁한 옷을 든 채 제 반을 찾아온 나를 단번에 알아차렸고, 옷을 돌려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듯이 꽤 놀란 눈치였다.


“젤리는… 그냥 고맙다고 사긴 했는데. 부담갖지는 말아줘.”


좋은 의도로 호의를 베푼 상대에게 너 그거 오해였다고 굳이굳이 말할 정도의 복잡한 성격은 아니라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하지만 켄지 쪽에서는 그 뒤로 내게 일방적인 친근감이 생겼는지 가끔 복도를 지나다닐 때라던지 마주칠 때마다 가끔 장난스럽게 인사를 걸어왔고, 선택과목이 겹쳐 몇 번 가끔 같은 수업에서 볼 때는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는,


“..너 부활동은 생각 없냐?”


얘가. 굳이. 나한테 이런 걸 물어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우리 사이가 어느 정도 진전된 후였다. 귀찮음 많고 호불호 확실한 켄지가 어울리지 않게 섬세한 구석이 있는 건 맞지만 그래도 호감조차 없는 상대한테 단순한 친절을 핑계로 자주 말 걸만한 위인은 아니다. 오히려 좋고 싫음이 명백하기에 더 헷갈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배구부를 함께하며 나와 켄지는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 정신을 차려보니 휘감겨 있았다. 같이 매니저 일을 하는 마이나, 아니면 반대로 내가 남자인 배구부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봤을 때 우리가 서로를 예외적으로 대하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눈치챌 수 있었고… 따라서 사귀게 된 건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켄지가 그렇게 선택적으로 섬세함을 발휘하게 되는 계기가 나여서였다는 건 조금만 미루어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깐 일반적으로 복잡한 성격과 까칠한 태도와는 다르게 꽤 좋은 남자친구였다는 거다, 켄지는.


그렇지만… 문제는 다테공이 전국대회 진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끽해봐야 주변 학교들과의 친선경기나 주변 대학과의 연습시합이 전부였지만, 봄고에서 기적적으로 미야기현 대표로 나가면서 주장인 켄지를 필두로 우리는 굉장히 바빠졌다. 합숙과 대절한 버스까지 타고 가면서 도착한 도쿄에는 정말 수많은 선수들이 있었고, 스포츠계 특성상… 관중을 제외한 대부분은 남자였다.


“어디 학교 매니저에요? 우리랑은 안 만나려나?”


그러니까 이런 반 농담식 추파를 받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완전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다테공 때처럼 모두가 내 남자친구의 유무를 아는 상황도 아니었고 혈기왕성한 그 나잇대 애들한테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괜히 분란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으로 적당히 웃으며 매번 상황을 흐렸다. 그치만 켄지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 쟤한테 관심있냐?”


어이없는 물음에 허, 하고 놀라 위를 쳐다보니 무심한 표정으로 고갯짓을 까닥이는 켄지 녀석이 보였다. 분명히 상대도 반 장난식으로 나에게 건넨, 의미없는 일회성의 쪽지였다. 남자애들은 우정을 다지기 위해 여자애들을 놀이처럼 낚으려고 하기도 한다… 쭈뼛거리며 나에게 다가온 단정한 얼굴의 학생과 그 뒤에서 무리지어 킬킬거리는 똑같은 유니폼의 남자애들을 보는 건 그래서 그냥 귀엽게 넘어갈 만한 일이었다. 마음에 들면 연락을 달라고 했으니 구태여 자존심 상하게 그 앞에서 딱 잘라 거절할 필요도 없었고. 다소 앳된 얼굴에 귀여움을 느끼며 뒤돌아서는데 잔뜩 빡친 얼굴의 켄지가 내 앞을 막고 서 있게되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인기 많다 여친님-?”

“그럼. 내가 누구랑 사귀는데-”

“그걸 아시는 분이 지금 이러고 다니는 거고?”


그때까지만 해도 켄지가 얼마나 빈정이 상해 있었는지는 전혀 가늠하지도 못했다. 다테공은 처음 맞이하는 전국에 잔뜩 긴장해 있었고, 우리의 1회전과 2회전 상대는 모두 까다로운 팀이었다. 거기에 주장인 켄지의 압박감이나 부담도 꽤 심했을 것으로 보이고. 그 상황에서 여자친구인 내가 수도 없이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헌팅당하는 것을 보는 입장에서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걔네한테 가서 달라고 했니? 아니면 내가 좋다고 먼저 들이대길 했어?”

“그게 아니어도 너,”

“그게 아니면. 내가 뭐 잘못했어?”

“하, 아니 난 걱정되서- ”


누가 걱정을 그런식으로 하는데. 너 여유 없는 거랑 내가 처신하는 건 별개야. 그런 식으로 격해진 감정과 다소간의 억울함에 말이 조금씩 세게 나오게 되었다. 결국 경기 직전까지도 켄지와 나 사이의 분위기는 냉랭했고, 그 뒤에도 정신없이 이어진 경기들에 제대로 화해하거나 오해를 풀 시간이 없었다. 준준결승을 아쉽게 패배하고 돌아오고 나서도 긴 휴식과 피드백으로 켄지와 따로 얼굴을 볼 시간을 내기엔 시간이 바빴고… 그러다 보니 어째서인지 일주일간의 냉전이 이어진 것이다.


켄지를 안 순간부터 그와는 단 한번도 제대로 싸운 적이 없었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도대체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켄지는 늘 성격 까탈스러운 나에게 숙이고 맞춰주기를 잘했다. 그 자존심과 성격에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토라진 나를 툭툭거리며 푸는 것도 대부분 그였어서 나는 도무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하는 것인지 알 수 가 없었다.


그렇게 냉랭하게 부활동을 이어가기를 일주일. 코가네와가 후배의 켄지 강서브 스파이크 사태로 빨갛게 부어오른 아픈 볼을 붙잡고 질질 짜면서 나한테 애걸복걸하면서 눈물을 질질 짜냈다.


“아 진짜 주장선배 너무 무서워요…

”걔야 원래 성격 더럽긴 하지.“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진짜 요즘 부활동 무서워 죽겠어요.“


결국 나는 울며 징징대는 후배의 말에 선배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미루던 협상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 후타쿠치 여, 아니, 어, 오랜만이다~”

“응 안녕? 혹시 켄지 좀 불러줄 수 있을까.”


분명히 내가 온 걸 봤음에도 고개만 흘끗 돌리고는 무심하게 폰질이나 해대는 녀석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어제 니 드링크에 맛소금 넣은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그래도 니 교실까지 찾아온 여친 모른 척하는 태도는 어디서 배웠냐고.


“…뭔데,”

“바빠?”

“바쁜 건 너 아니냐? 인기도 많으신 분이 귀한 시간은 어떻게 내셨대~“

”…야,“


켄지는 평소처럼 틱틱거리면서도 교실 문에 몰리는 인파에 내가 치이지 않게 그 큰 몸으로 문을 자연스레 막아서고 있었다. 여름이라 빵빵하게 틀어놓은 에어컨에 추위를 잘 타는 내가 몸을 웅크리자 지 배구부 져지를 벗어서 어깨에 둘러주기도 했고. 말로는 험악하게 다투고 빈정대면서 행동은 한없이 다정했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 해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웃긴 점은 걔는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인상은 더럽게 구긴 채로 나를 보지 못한 채 부딪혀 들어오는 애들을 한쪽 팔로 가리는 건 그 상황에서도 좀 웃기긴 했다.


”나 너랑 싸우려고 온 거 아냐. 그날은 너네 대회가 우선이었고, 괜히 분란 만들면 민폐니까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던 거야.“

”무슨 분란은,“

”내가 번호 준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애들 다 재미로 하는 거잖아. 진지한 상황 아니었고 나도 받아준 적 없어.“

”누가 받아줬다 그래? 나는 걱정-“

”너 그날 예민했어. 대회 날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것까진 이해하는데 그걸로 나한테 화풀이하지 마.“

”너한테 화낸 적 없어.“


사실 딱 잘라 거절하려면 할 수 있었다. 남자친구 있어요, 하고 더 냉랭하게 돌아설 수 있는 상황이었고. 내가 그렇게 인기가 폭발하는 타입의 여자애는 아니지만 스포츠의 특성상 남자애 투성이었으니까 켄지가 그런 상황에서 내가 조금 더 단호하게 끊어내길 바랐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평소에도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성격과는 다르게 꽤나 지 것에 대한 독점욕이 있다고도 생각했고. 하지만 내가 차갑게 끊어내지 않았다고 생각없이 받아준 적도 결코 없다. 그냥 호의를 표한 상대에 대한 적당한 예의와 감사였다고 생각하고. 아니 그래도,


“선배… 초콜릿 좋아한다고 들어서요~.. 이번 경기도 화이팅 하세요!”

“..그래? 고맙다. 잘 받을ㄱ,”


귀엽네. 응원 와줘. 그런 소리를 그렇게 대화하고 고작 몇 시간 후 하굣길에, 여학생에게 응원받다 나랑 눈 마주친 후에 일부러 입꼬리 얄밉게 올려가며 할 건 뭔데.


다테공의 배구부는 별다른 소문 없던 예전과는 다르게 아오네나 켄지가 들어간 이후부터 점차 성장하며 요즘은 나름 강호로 선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자애들이 극도로 희귀한 공고라고 하더라도 켄지의 팬들이 가끔 가다 그에게 선물을 건네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얘가 여자친구가 있는 건 워낙 공공연한 일이었기에 상대가 선 넘는 짓은 하질 않았고… 오이카와의 팬클럽 무리를 본 이후에는 진심으로 질려서 웬만한 팬 관련된 일에는 무난하게 넘어가는 편이었다. 진짜 오이카와 같은 사람이 남자친구였으면 진심으로 피곤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켄지는 나름 지 선에서 잘 끊는 편이었다. 애가 원래부터 성정이 유별나게 다정한 것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고.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나랑 눈을 마주친 직후에, 일부러 내 성질을 돋구려고 저런 멘트를 뱉는 건 유치하지만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이번 지역 예선 응원을 위해서 새로 산 켄지의 보호대를 준비해서 화해의 선물을 건네볼 겸 찾아가던 중이었고. 이 눈치 제로인 망할 남자친구는 그걸 시원하게 날려버렸단 거다.


그래서 지금. 그 일이 있고 딱 이틀 후에 라인 몇십 개와 부재중 열세 통을 장렬하게 씹힌 후타쿠치 켄지 씨는 풀 개같이 죽음 모드로 제 발로 꼬리 내리고 찾아와 반성의 자세를 보이는 상태였다. 안 그렇게 생겨서 애교라고는 학을 떼던 놈이 살살 눈치보며 기껏 찾아와놓고는 말도 못 꺼낸 채 입술만 씹어대는 모습은 희귀하긴 했다.


“연습은 잘 끝났고?”

“ㅇ, 어-“


와놓고는 우물쭈물거리며 눈치만 보는 모습을 즐겨주다가 입을 뗐다. 한 손은 샤프를 쥔 채 켄지에게 덮여 교과서로 가려진 상태가 우스웠는데 그것조차 눈치 못 챌 정도로 여유 없는 모습이 신기하긴 했다. 와중에 말에 숨겨진 뼈를 그 눈치 빠른 놈이 이제야 알아차렸는지 한 박자 늦게 답이 돌아온다.


”아 미친, 야-, 아니… 그거 진짜, 하-“

“…”


잘못했어. 내가 질투나서 유치하게 굴었다. 뒷머리를 헤집어대더니 그렇게 실토하는 모습에 말없이 숙여진 머리곡지만 바라봤다. 나랑 머리 하나도 더 큰 놈이 지 죄를 아는지 눈도 못 맞추는 모습에 그렇게 단단히 묶였던 마음이 단숨에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눈 녹듯 스르르 풀어가기에는 내가 너무 괘씸하다는 거다.


“잘못했어?”


얼굴도 못 들고 있길래 옛다, 선심 쓰는 듯 반대쪽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려 시선을 잡아냈다. 재빨리 올라온 눈이 생각외로 붉어져 있어서 순간적으로 놀랐다.


“너,”


그 정도라도, 내가 묻는 말에 숨겨지지 않은 약간의 장난기로도 켄지는 내가 저를 용서해줄 용의가 있음을 알아차릴 정도로 우리 관계는 오래됐다. 그렇지만 그 오랜 연애 기간 동안 한 번도 걔가 우는 걸 본 적,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은 없었기에… 다테공 대표 싹바가지 양아치 후타쿠치 켄지가 여친 앞에서 잘못했다고 눈가를 붉히는 꼴이라니.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입이 벌어졌다. 동시에 깨달았다.


얘, 생각보다 나한테 진심이구나…


웬만한 일에는 뒤끝 없고 쿨하던 켄지가 그렇게 집착적으로 공개 연애니 커플링이니 갖가지 스킨십도 스스럼없이 해댔다는 것에서부터 의심했어야 한다. 켄지가 시원시원한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제 것에 대한 욕심이 없거나 집착이 없다는 걸 의미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무심한 척에 능숙했다. 섬세하지만 투박한 척. 별 관심 없다고 생각되는 부활동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을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어쩌면 내 생각 이상으로 날 좋아했던 걸까.


“와, 하-.. 너, 반 찾아가도 없고. 연락도… 부활동도 빠지고. 찾아갔다고 하면 싫어할 거였지.”

“찾아왔었어?”

“그럼 미쳤다고 집에서 발뻗고 있겠냐, 고…”


성질내는 와중에도 날카로운 말투를 일부러 죽이는 게 내 눈치를 여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켄지가 이런 귀여운 면도 있었구나… 마치 남자친구를 머리 꼭대기에서 쥐락펴락하는 극성의 여자친구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버린다. 늘 우리는 친구같은… 진득한 연애보다는 친구같은 사이를 추구하는 가벼운 사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기본적으로 내가 누구와의 관계 속에서 진지함을 따져가며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켄지와 사귀게 된 이유도 그냥, 어쩌다… 연이 닿았고. 그 자리에 마침 걔가 있었으며, 성격이 재밌었고 적당히 내 취향이었기,


“헤어지자, 고 하면 나 진짜 야….”


때문이지만. 교과서에 웃기게 파묻힌 내 손을 바들바들 떨며 잡은 채로 고개를 숙인 켄지의 얼굴에서 뚝, 뚝 하고 떨어지는 물기를 발견하자 하릴없이 이어가던 생각이 끊겨버렸다. 운, 다고? 운다고? 니가? 화들짝 놀라서 얼굴을 붙잡으려 양손을 빼니 반사적으로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다시 꾹 조여온다.


“야…. 손 좀 잠깐,”

“내가 진짜 이니까-“


무언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애초에 그렇게 자주 연락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고 켄지 쪽이 휴대폰 중독자인 편에 더 가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연락이 몇 시간씩 안된다고 해도 재촉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고작 이틀 연락 끊겼다고 이렇게 땅 파고 들어갈 일이라면… 


”고개 좀 들어봐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얼굴을 못 드는 모습이 참 귀엽고 웃기다. 웃음을 숨긴 채로 잡혀있는 손에 반대로 힘을 주니 고개를 약하게 휘젓는다.


”너 얼굴 좋아하잖아…“

”근데?“

”지금 엉망ㅇ, 아-“


헛소리에 반댓손으로 턱을 잡아 올렸다. 시선을 맞추니 그 말대로 붉어진 눈가와 때맞춰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였다. 좀… 내가 이런 나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역시 얼굴이 최고다. 레어한 켄지의 얼굴을 마주한 결과로 무장해제된 결과 가늘게 접히는 눈가를 제어하지 못하고 이때까지 숨기고 있던 웃음기를 드러냈다. 쿡, 하고 터지는 웃음과 동시에 이마를 맞붙여 코를 닿았다. 급격하게 가까워진 눈동자가 떨리는 게 느껴진다. 이런 취향일 줄은 몰랐는데… 질투 많은 남자친구, 좀 귀여울지도.


”바보야아.“

”…….“

”헤어질 줄 알았어?“


다시 큭큭 웃으며 아랫입술에 잠깐 입술을 닿았다 뗐다. 전부 급식을 먹으러 나간 고요한 교실이라도 학교는 학교였고… 타인이 있는 곳에서의 스킨십이라면 치를 떠는 내가 밖에서 뽀뽀를 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크게 뜨인 눈에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일어나니 다소 우당탕 소리와 함께 상부를 펴 급하게 따라 일어나는 켄지가 보였다.


”화, 화 안 났어?“

”…매점 사면.:


멍하니 벙쩌있다가 급하게 따라 뛰어오는 소리에 웃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나, 나 지갑 반에- 아 잠깐만, 


“빨리 와라~”


귀엽다. 오늘은 젤리가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닝겐1
후타쿠치 켄지 / 연애 이후 처음으로 크게 싸우고 냉전 중 캐가 먼저 찾아가서 사과하고 화해하는 상황! 이 정도 쓰면 될까요...? 아! 닝은 겉모습은 되게 세보이고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린 그런 사람...! 근데 또 속이 여린 게 들키기 싫어서 강한 척하는!
11일 전
글쓴닝겐
본문에 써놨어요
11일 전
닝겐1
센세 미쳤다 이런 보물 같은 글을 공짜로 받아도 되는 거예요?ㅠㅠ 제가 줄 수 있는 게 추천밖에 없다는 현실이 참 속상해요... 센세 정말 하... 사랑해 감사해요 증말 글 삭제하지 말아줘용...
11일 전
글쓴닝겐
ㅎㅎ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에요 기뻐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쓰면서 즐거웠어요
11일 전
닝겐1
하... 센세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마냥 자꾸 오게 되네요 갓글입니다 정말... 읽을 때마다 행복해요... 센세 사랑해 늦은 시간에 알람 가게 해서 죄송해요... 좋은 밤 되시길...💚
1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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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들아 굿즈 플미 심하면 참아야겠지..? 8 06.23 00:06 100 0
드림 본인표출노빠꾸 매니저 시뮬 달릴 닝?!?! 06.22 23:49 43 0
우리동네 메박 33.5권도 같이 주셨다 🥹1 06.22 23:29 85 0
팝업 꼭 예약해야 하나?2 06.22 23:21 109 0
드림 자기 전까지 가볍게 라인 댓망할 사람 구해요✉️ 91 06.22 23:16 43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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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대구도 빡셀려나...... 3 06.22 22:38 58 0
첫날 4시 30분인데 룩업 가능할까? 06.22 22:36 31 0
후루야 성우 바뀌는듯1 06.22 22:21 71 0
하이큐ㅜㅜㅜ예약할때 방문자에 내 이름 적었어도 입장 안될까..1 06.22 22:16 1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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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봐?7 06.22 22:05 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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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팝업 2일차 오후면 재고 많이 없나??? 06.22 21:54 51 0
와 하이큐 팝업 취소된 거 잡았다3 06.22 21:51 1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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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아 하인호 정주행 (2번째) 끝났다4 06.22 21:50 9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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