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떠보니 학연이가 널 뒤에서 껴안고 있는데, 너랑 학연이 모두 벗고있는거야. 밤에 있었던 일 생각에 얼굴이 빨개져서 넌 얼굴을 손으로 가렸어. 가리는 손에서 바디오일향기가 은은하게 퍼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넌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어. 예민해서 잠을 깊게 못자던 학연이도 피곤했는지 기절하듯 잠들었고, 넌 옷을 입고 학연이에게 다가와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어. 마사지를 하려니까 잠에서 살짝 깬건지 일부러 편한 자세를 취하는 학연에 넌 살풋 웃었어. 학연이랑만 있으면 넌 웃음이 끊이질 않아. 엎드려 있는 학연의 어깨, 등, 허리를 주무르다가 장난으로 허리에 입을 대고 엄마가 아기한테 하듯이 바람을 불었어. 그 바람에 방귀소리같은게 났고, 학연이 자기가 방귀를 뀐지 알고 연신 호들갑을 떨며 일어났어. "자기야, 방귀보다 일단 옷 좀 입자." 넌 옷을 건네며 안방을 나섰어. 학연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켰어. 신년특집 씨름, 다큐, 시상식 재방송 등 볼게 많았지만 구미가 당기는 채널은 딱히 없었기에 티비를 껐어. 학연이가 티비를 보는동안 넌 아침을 차리고 학연을 불렀어. 오순도순 식사를 끝내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었어. 학연이가 사과를 오물오물 씹으며 너에게 택운이 얘길 꺼냈어.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 "응." "언제 만날까? 아무래도 연락은 내가 하는게 좋겠지?" "그냥...이렇게 잊으면 안되려나? 연락도 안하고, 만나지도 말고." "그렇게 오래 좋아했고, 오래 친했는데 참 쉽게 잊겠다. 너는 쉬울지 몰라, 근데 택운이는 아닐거야. 이 참에 가서 잘살고있는거 보여주면 미련없이 포기하겠지." "난 그게 더 잔인한것같아." 학연이는 모르겠다는듯 어깨를 올렸다 내렸어. 씻고 챙기면서 학연이 택운에게 전화를 걸었어. 자기도 긴장되는건지 신호음가는 내내 어떡해하며 방정을 떨다가 신호음이 끊기자 목을 가다듬고 인사를 했어. "택운아...? 나, 학연이." "......응." "오늘 새해고, 우리 셋 다 서른인데 오랜만에 놀자." "......" "에이, 고민하는거야? 우리 사이에?" 택운은 학연이 자기가 널 사랑하는걸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학연의 말에 혹해서 거절하진 않았어. 학연이는 일부러 너의 신혼집으로 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어. 그러고는 결혼 사진, 액자를 눈에 띄는 곳마다 세워두기 시작했어. "잔인해, 학연아. 이건 좀 아니잖아." "그럼, 걔 흔들리게만 놔둘거야? 걔 서른이야. 결혼해야지." "그래도..." "착한거랑 착한척은 다른거야. 너가 착한척하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너가 정택운 질질 끌고 헛된 희망고문시키는건 착한게 아니라고." 학연이는 특유의 솔직한 일침으로 널 꾸짖었어. 넌 그걸 아는애가 도박을 한거냐라는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그 날 니가 잊기로 한 약속때문에 꾹 참아. 약속한대로, 택운이가 왔어. 현관입구서 부터 보이는 신혼집 분위기에 택운은 너무 괴로웠어. 학연이 택운을 격하게 안으며 반기고, 지금은 이런 사이래도 친구는 친구니까, 택운도 학연의 등에 손을 올리고 안아줬어. 셋은 거실에 모여 앉았어. 택운이 쇼핑백을 건네며 집들이 선물이라고 했어. "맞다! 우리 신혼여행갔다오느라 집들이를 안했어." 학연이가 이마를 탁 치며 이제 생각난 집들이에 대해 아쉬워해. "다음에 제대로 해서 우리 셋 부모님 전부 부르자." 너의 제안은 단순히 부모님과의 만남이 아니라, 너와 학연의 관계를 확실하게 해둘수있는거였어. 부모님끼리 아는데, 어떻게 택운이가 널 더 이상 좋아하겠어. 마음아프고 미안하지만 넌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 "빚쟁아." 너를 부르는 택운이야. "응?" "좋냐?" "...뭐가." "이렇게 사람 바보만들면 좋아?" 단단히 화가난건지 택운이 널 바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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