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 년 전에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한국에 혼자 온 이후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화는, '불금'이었다.
단지 금요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활기가 넘친다.
마치 크리스마스 같이. 하지만 크리스마스 보다는 확실히 더 뜨겁고 생기있는 분위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그런 아름다운 문화를 경험하지 않는건 너무 바보같은 짓이 아닌가.
그리고 사실 몇 개월 후면 성인이기도 하고..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당당히 금요일마다 클럽에 출석도장을 찍으며 불금을 즐겨왔다.
어제도 늘 그렇듯 금요일 밤을 미친듯이 불태우고 집에 들어왔고.
집에 멀쩡히 들어왔다는건 다행인 일이지만, 집에 들어온건 불과 몇 시간 전이라서 나는 지금 피로가 쌓일 대로 쌓여있었다. 그런데....
딩동- 딩동-
내 단잠을 깨우는 저 초인종소리는 누가 내는 것이란 말인가.
택배시킨 것도 없는데...종교단체인가.
뭐..안나가면 그냥 가겠지.
정신이 몽롱한게, 아직 완전히 잠이 깨지는 않아서 쉽게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딩동- 딩동-
문밖에 있는 사람은, 나에게 잠을 허락하지 않을 건가보다.
딩동딩동-딩동딩동-
"네..나가요 나가!"
바닥에 널부러져있던 바지를 주섬주섬 주워입는 와중에도, 초인종 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문밖의 불청객도 점점 기다리기가 짜증이 나는지 초인종 소리의 템포가 빨라져서 덩달아 나도 다급하게 현관문을 향해 달려가다가,
지금 내가 반라(半裸)상태라는걸 깨닫고 혹시 떨어진 티셔츠 없나 하고 주위를 살폈다.
딩동딩딩동-
그러나 무서울정도로 빨라진 초인종 소리에, 그냥 그 상태 그대로 문을 열기로 했다.
현관문 손잡이로 손을 뻗는 몇초동안 너무 예의없는 차림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토요일 아침부터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것 자체가 실례인 일인데 그런 사람에게 무슨 예의를 차려야겠나 싶어서 그대로 손잡이를 돌렸다.
그렇게 드디어 마주하게 된 문밖의 불청객은.
"안녕하세요. 장위안이라고 합니다."
불청객이라기 보다는, 반가운 손님같았다.
첫눈에 반한다는게 이런 걸까.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무언가를 말하다 말고 나를 마주봤다.
"..왜 그러시죠?"
"ㅇ,아니요. 아직 잠이 덜 깨서..하하.."
"..네, 그러신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해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아 맞다. 지금 내 차림이..
"ㅇ..으어억!!"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닫았다. 그것도 엄청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저기..이건 문앞에 두고갈게요. 다음에 잠깼을때 다시 봐요."
"네...."
그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을 하자 현관문 너머로 멀어져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완벽히 인기척이 사라지자, 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실을 향해 갔다.
그리고 침대로 다이빙.
"아..진짜...으아아아!!!!"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동시에 그 누군가에게 가장 추한 모습을 보였다.
옷 하나 입는게 뭐 그리 힘들다고 그런 모습으로 나갈 생각을 했던건지..
몇 분 전의 나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이불차기나 해야겠다..
하지만 이불차기도 하다보니 힘이 빠져 포기.
좀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로 했다.
...아 맞다. 아까 문앞에 뭘 두고간다고..
아직도 안심이 되질 않아서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어봤더니, 문 앞에 웬 떡이담긴 접시가 있었다.
문사이로 손만 내밀어 잽싸게 접시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떡이라..갑자기 웬 떡이지?
..아. 이사떡인가?"
요즘에도 이사떡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니..
그렇게 떡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 문득 내가 아침을 안먹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일단은 먹는 것부터 하는 걸로.
"..맛은 있네."
그렇게 떡 한 접시를 다 먹어치우고 나자, 다시 멍한 상태로 돌아왔다.
..뭐하지 이제?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그렇게 몇 십분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아까 잠깐 동안 마주했던, 그의 얼굴.
"보고 싶다."
별생각없이 내 입에서 툭하고 나간 한마디에 내가 놀라버렸다.
보고 싶다니....아까 그렇게 창피해했으면서 지금은 신경도 안 쓰는 건가.
이렇게까지 회복력이 빠른 건 비정상인 것 같은데...몇 시간 동안 나에게서 새로운 면을 많이 발견한 것 같다.
음.. 그래, 보고 싶다면 봐야지!
여태껏 마음가는 대로 살아왔던 19년 인생인데, 굳이 체면 차릴 필요 있나.
좋았어, 앞으로는 무작정 대쉬다!
그렇게 갑자기 불타오르는 투지에 벌떡 일어났다가, 힘빠지는 생각에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근데..뭐라고 하고 가지?
고민을 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본지 얼마나 됐다고 용건이 있겠어..아는것도 얼굴이랑 이름뿐인데.
아..나 왜 이렇게 바보같지?
다시 무기력모드.
그 한사람 때문에 아침부터 조울증이라도 걸린 마냥 감정의 기복이 장난이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난 꽤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안에 온갖 바보같은 짓은 다 하고 있다.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더니..
나 지금 진짜로 사랑을 하고 있는건가?
사실 별로 확신이 안선다.
한번 더 보면..알 수 있을지도.
그리고 드디어 운이 따라주는지, 일어나자 접시가 눈에 띄었다.
이사떡 접시를 가져다주면서 자연스럽게 한번 더 보게 되는 거지.
내가 생각해도 참 기발한것 같다.
딩동-
사실 그의 집이 몇호인지를 몰라서 또다시 바보짓을 할 뻔했지만 다행히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 지금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딩동-
한번 더 초인종을 누르자 열리는 문.
그리고 드디어 그가 보였다.
"누구세..어, 아까 그..?"
"안녕하세요..아까는 제가 실례되는 행동을 했네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주말 아침부터 찾아간 제가 실례였죠."
걱정했던 것과 달리 화기애애했다. 잘하고 있는 건가?
"그런데, 어쩐 일로..?"
"아, 저, 그.."
그의 질문에 말이 더듬더듬 나왔다.
긴장하지 말자..나는 확실한 명분으로 찾아온 거잖아?
"접시 돌려드리려고 왔는데요!"
긴장을 해서 그런지 좀 큰소리로 말을 하자, 그가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 왜 그러지..?
"그 접시...일회용 접시인데요."
"에..?"
그의 말에 내 손에 들려진 접시를 보자..정말로, 가볍고 연약한 플라스틱 일회용접시가 있었다.
급속도로 빨개지는 얼굴. 침착하자..이 위기를 잘 넘겨야 해!
"그..러니까! 왜 일회용 접시를 쓰세요! 플라스틱이 얼마나 분해가 안되는지 아세요?!
태우면 또 다이옥신이라는 발암물질이 나와서! 얼마나 환경에 해로운······"
망했다. 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도 모른채 아무말이나 막 내뱉고 있었다.
임기응변은 개뿔, 졸지에 환경보호운동가가 되어버렸고, 그의 표정을 보니...
오늘 하루는 정말 뭔가가 잘되는 일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제목에서처럼 이건 불&물이 쓰는거고 이번화는 물이 썼다!
근데 옮겨놓고 보니 꽤 기네..ㅋㅋㅋㅋㅋ전에 물어봤을때 괜찮다는 반응이어서 독방에 올리기는 했는데 문제생기면 글잡으로 옮기도록 하겠음..
*이 글의 소재는 이 세분에게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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