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타쿠안] 가끔씩 소나기 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e/3/b/e3b977b670274accb5f04f8e03cfc9e2.jpg)
내 가 서른 둘이 되기 전까지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있다. 화자가 다르고 상황이 달랐지만 내용은 항상 같았다. 따분하다. 지루하다.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처럼 연봉이 얼마인가를 따져야하는 따분한 삶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꿈이 있다. 자그마치 15년은 꾼 꿈이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했다. 하늘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잿빛 구름이 피어오르듯 알 수 없는 반항심이 일어났다.
오늘은 월요일이었고 위안은 출근을 위해 5시에 일어났다. 이게 현실이라면 현실이기는 했다. 위안은 와이셔츠를 끝까지 채우고 넥타이를 맸다. 자연스럽지 못한 미소를 연습한 후 현관을 나섰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해가 쨍쨍하면 소나기가 왔다가야하는 것처럼, 일하는 날이 있다면 쉬는 날도 있어야 한다는 거다. 위안은 쑤시는 다리를 이끌고 다시 한 번 지하철 전쟁에 뛰어 들었다. 숨이 차 헉헉 거리면서도 자리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위안은 중심을 잡기 위해 천장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또 만났네요.
폴라니트에 코트 차림, 유난히 눈에 띄던 턱의 점 까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벼워 보이는 가방 외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던 손에 특이한 모양의 가방이 들려 있었다. 위안은 그 가방이 기타 케이스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틈에 위안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멀끔해보였지만 지쳐 보이고, 피곤해보였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동요 되어 자리를 비켜주었다.
서 있는게 편해요.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 쓰며 타쿠야가 비켜난 자리를 노려보는 느낌에 별 수 없이 그 자리에 앉은 위안은 고맙다는 말 대신 고개를 꾸벅 했다. 타쿠야는 진짜 괜찮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타 가볍지 않을 텐데... 키는 제법 컸지만 너무 마른 것 처럼 보여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있었지만 걱정과는 달리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타쿠야는 이따금 위안의 눈을 보며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위안의 회사는 아주 멀었기 때문에 장거리를 달려야 했다. 긴 시간 동안 지하철의 자리는 조금씩 남기 시작했다. 그 빈 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위안과는 달리 타쿠야는 위안의 앞을 지켰다. 자꾸 신경이 쓰였다. 이걸 물어 볼 수도 없고..
이번 역은 삼성, 삼성역입니다.
때마침 안내 방송이 흐르고 위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에서 틀어져 나오는 히터로 인해 돌고도는 갑갑한 공기를 덮는 차가운 겨울 바람이 들이닥쳤다. 이게 웬걸, 내린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타쿠야는 기타 케이스를 매고 주위를 살피는 척을 하며 위안의 걸음에 맞추어 걸어왔다. 타쿠야는 걸으며 기타의 상태를 체크했다.
시간 괜찮아요?
가끔씩 소나기
왜 괜찮지 않다고 대답하지 못하는지는 모르겠다. 서른 둘이 되어 일고 있는 뒤늦은 반항심 때문인건지, 오랫만에 본 기타 때문인건지. 정해져 있는 것을 하기를 좋아했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낯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시간, 많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가 걷는 길을 따라 바쁘게 걸었다. 조금 빠르게 걷는가 싶다가도 내 걸음을 곁눈질하며 속도를 낮추었다. 나이가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앳된 얼굴에 더해진 패기는 젊음, 그 자체였다.
5분인가를 더 걸어 도착한 곳은 그 도시의 중심이었다. 그는 기타를 꺼내 목에 걸고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으로 줄을 튕겼다. 얇은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그 옆에서 뻣뻣하게 굳어있는 내가 바보같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는 노래를 부르는 도중 줄곧 나와 눈을 맞추었다. 노래를 들을 때는 한없이 진지해지고 집중하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그 시간이 좋았다.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에 섞여 박수를 쳤다. 그는 다섯곡인가를 부르고 기타를 다시 케이스에 넣었다. 아쉬움에 앵콜을 연호해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는 아주 다정히 내게로 걸어왔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헛기침이 나왔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며 신경쓰지마라며 나를 가리고 성큼성큼 걸었다.
어땠어요?
잘 들었어요.
멋있지는 않고?
..멋있었어요.
내가 웃자 더 활짝 웃는 모습이 또 한번 인상에 남았다.
휴대폰 있죠?
테라다 타쿠야.
그의 이름은 타쿠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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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쿠야가 휴대폰에 본인 번호 찍은 거야...ㅋㅋ
읽어주는 정상들 너무 고마워!
Cat Power - In this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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