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읽고 가라는 내 어필 사실 가볍게 읽기엔 좀 길긴 해...! 1. 테라다 타쿠야는 23살의 일본인이야. 중학생 때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생 때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일 년 살기도 했었어.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서 성인이 되고 바로 한국으로 오게 되었지. 지금은 연세대 어학당을 다니고 있고, 여기저기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지만 그것도 즐거워해. 타쿠야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작은 원룸이야. 한 층에 총 네 가구가 거주하는 곳이야. 1층에는 우편함과 경비실이 있고, 2층부터 7층까지 있어. 연세대 근처에 살고 싶었지만 어마어마한 집 값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고, 어쨌든 서울권에 있어. 그래도 지하철 덕에 나름 편하게 학교에 다니는 중이야. 요즘 타쿠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 자신이 살고 있는 원룸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편의점이야. 아는 형이 타쿠야에게 여기서 아르바이트 한 번 해 보지 않겠냐고 해서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어. 시작한 지는 한 달이 조금 지났고, 나름 잘 맞아서 열심히 하고 있지. 그런데 요즘 계속 타쿠야 눈에 띄는 손님이 있단 말이야. 일주일에 서너 번, 저녁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매일 같은 남자가 편의점에 오는 거야. 그 시간이 딱 타쿠야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라 항상 마주치는 거지. 사실 타쿠야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이 위치한 곳은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서 자주 오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기억하게 되었어. 그 남자도 마찬가지야. 타쿠야는 어느새 그 남자를 기억하게 되었고, 가끔은 기다리게도 되었어. 멀끔히 차려 입은 그 남자의 인상이 괜찮아서 더 그랬나 봐. 2.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날이었어. 타쿠야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중이었고. 손님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마당에 점점 무료해지기 시작했지. 그때,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어. 타쿠야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어. 역시 그 남자였어.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음료가 있는 쪽에서 서성거리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칭다오 맥주를 골랐어. 그는 항상 그랬어. 아무리 앞에서 오래 서성거려도 결국 고르는 것은 변하지 않았어.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타쿠야는 웃음을 지었어. 그 남자가 타쿠야의 앞으로 가져온 건 칭다오 맥주 한 캔과 이런저런 잡다한 먹을거리들이었어. 안주로 먹기 딱 좋은 주전부리들. 타쿠야는 물건을 집어 바코드를 찍었어. 남지가 자신의 손 끝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어. 정확하게는 물건들을 바라보는 것이었겠지만, 괜히 느낌이 이상했어. “6100원입니다.” 그 남자는 아무런 말 없이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어. “만 원 받았습니다. 거스름돈 3900원입니다.” 타쿠야가 기계적으로 말하며 거스름돈을 내밀었어.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지만 그 남자는 왠지 어물쩡거리머 눈치를 보는 것 같았어. 타쿠야는 계산대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남자를 바라보았어.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그 남자는 그제야 입을 열었어. “저, 저기…….” “네?” “거스름돈, 천 원 더 있어요.” 그 남자는 어눌하게 말을 하며 타쿠야에게 돈을 내밀었어. 타쿠야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웃으며 돈을 받았어. 그리고 타쿠야는 그 남자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어. “혹시 어디서 오셨어요?” “네?” 그 남자가 당황해서 타쿠야를 보며 물었어. 평소에 얼굴만 봤을 때에는 잘 몰랐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까 누가 들어도 한국인은 아니었어. 서툰 말투가 반가워서 타쿠야는 그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어. 우물쭈물하던 그는 뒷머리를 긁적였어. “저……, 중국이요.” “정말요? 전 일본에서 왔거든요.” “아, 그러구나…….” 서툰 한국말을 들으며 타쿠야는 속으로 웃었어. 서로 반가운 마음에 대충 얘기를 더 나눴어. 그의 이름은 장옥안이었어. 31살의 중국인. 중국에서는 나름 알아 주는 아나운서였다는 것과, 지금은 한국의 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어. 타쿠야는 왠지 기분이 좋았어. 괜히 두근거리는 마음에 타쿠야는 옥안이 대화를 마치고 편의점을 나설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어. 3. 주말이 다 지난 후의 월요일, 타쿠야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어. 오늘 오전 수업은 없지만 대신 친구를 만나기로 했거든. 여덟 시쯤 집 문을 열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익숙한 형체가 앞에 보여. 타쿠야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그의 이름을 불렀어. “옥안 씨?” 그가 뒤를 돌아 보았어. 그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지. 여기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타쿠야가 다정하게 웃으며 옥안에게 다가갔어. 옥안은 헛기침을 했어. 이 상황이 너무도 어색해서 그랬을 거야. 엘리베이터는 평소보다 더 느리게 느껴졌어. 둘 사이의 침묵은 마치 1초를 10년과 같이 만들어 주고 있었어. 결국 침묵을 깬 건 타쿠야였어. “여기 살아요?” “네. 타쿠야 씨도……?” “저는 여기 302호요. 옥안 씨는요?” “저 301호요.” 알고 보니 바로 옆 집에 사는 사람이었어. 타쿠야는 괜히 화색이 돌았어.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안에는 타쿠야와 옥안 둘 뿐이었어. 엘리베이터는 1층을 향해 움직였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옥안이 먼저 밖으로 나갔어. 뒤따르던 타쿠야가 다시 옥안을 불렀어. “옥안 씨, 오늘도 편의점 올 거예요?” “야근 안 하면요.” 옥안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이렇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어. 그의 미소가 굉장히 아름답다고, 타쿠야는 생각했어. 4. 그날부터 왠지 타쿠야는 옥안을 기다리게 되었어. 괜히 가만히 있다가 생각도 나고, 보고 싶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라고 생각했어. 이런 곳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건 흔치 않기도 하고, 게다가 옆 집 사람이라니. 우연의 일치가 이렇게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타쿠야의 바람대로, 타쿠야와 옥안은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어. 평일 아침에는 타쿠야와 옥안이 가는 방향이 같았어.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옥안이 내리고, 몇 정거장 뒤에 타쿠야가 내리는. 말 그대로 지옥철이라 둘 다 서서 가야 하지만 그 나름대로 즐거웠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옥안은 퇴근을 하고 편의점으로 왔어. 물건을 사고, 대화를 나누고. 주말에는 둘 중 누군가의 집에서 밥을 함께 먹기도 했어. 타쿠야는 자신의 얘기를 들으며 웃어 주는 옥안이 좋았어. 한국에 자신보다 오래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럼에도 한국말이 더 서툰 옥안이 좋았어. 그래, 그냥 그가 좋았어. 5. 평소와 다르게 9시가 지나도록 옥안은 보이지 않았어.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서 타쿠야는 애꿎은 핸드폰만 들여다 봤어. 핸드폰 액정에는 메신저 채팅창이 켜져 있었어. 괜히 옥안과의 채팅창에 들어갔다가 나갔다가를 반복했어. 전에 했던 대화들을 보며 타쿠야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맞아, 솔직히 말하면 그가 보고 싶었어. [ 오늘 야근해요? ] 타쿠야는 고민 끝에 메세지를 보냈어.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에게 계산을 해 주면서도 핸드폰을 향한 시선을 멈출 수 없었어. 그리고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옥안에게 짧은 답이 왔어. [ 회식이에요 ] 타쿠야는 채팅창을 확인했어.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어. ‘늦지 않게 와요’ 그렇게 적어 놓고는 다시 뒤로 가기를 눌렀어. 이렇게 보내도 될까 고민이 됐어. 혹시 참견하는 건 아닐까. 지금 내가 적정선을 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상한 기분에 타쿠야는 핸드폰을 뒤집었어. 왜 자신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 조차도 알 수가 없었어. 그가 신경 쓰였어. 그것도 많이. 5-1. 옥안은 자신의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 했어. 분명 자신이 보낸 메세지 옆 숫자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그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어. 혹시 화 났나? 무슨 일 있나?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그렇게 전전긍긍. 옥안이 다시 메세지를 보내려다 핸드폰을 내려 놓고 대신 술잔을 들었어. 오늘따라 술이 썼어. 6. 새벽 타임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을 넘기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어. 타쿠야가 길을 건너려 편의점 옆 쪽에 있는 횡단보도를 향해 걸었어.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는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았어. 예상대로 옥안이었어.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지만 얼굴만 조금 붉어져 있었어. 회식이라고 하더니, 술을 꽤 마신 것 같았어. 헤실헤실 웃고 있는 모습은 타쿠야도 웃음 짓게 만들었어. “술 많이 마셨어요? 얼굴이 붉어요.” “조금요.” 옥안은 타쿠야의 옆에 섰어. 타쿠야는 옥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어. 그러나 머릿속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어.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뭐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기분이었어. 간지럽기도 했고, 떨리기도 했어. 평소에도 둘이 있었던 적은 많았지만 오늘은 다른 기분이었어. 분명히 별 일 아닌데, 별 거 아닌데, 별 일이 된 것 같았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술에 달뜬 숨이 타쿠야에게까지 느껴졌어. 술을 깨려 하는 건지, 옥안은 가끔 볼에 손을 대고 숨을 깊이 내쉴 뿐, 다른 건 없었어. “잘 가요, 옥안 씨.” 문 앞에서 타쿠야가 손을 흔들었어. 그런데 옥안은 이상하게 문 앞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등을 지고 있던 옥안은 뒤를 돌아 타쿠야를 보았어. “장위안.” “네?” “장위안이에요. 중국에서는 다 그렇게 불러요. 그러니까, 위안이 형이라고 불러요.” 그리고는 쌩, 문을 열고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어. 타쿠야는 벙 찐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어. 그의 얼굴은 어쩌면 위안의 취한 얼굴보다 더 붉어져 있었을지도 몰랐어. 손 끝이 간지러웠고 따끔거렸어. 마음 속에서는 아주 환한 빛이 나고 있었어. 그가 지나간 길에서는 보름달의 향기가 났어. 타쿠야는 그의 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말했어. 정작 듣는 이는 이곳에 없었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 “위안이 형, 잘 자요.” 7. “사탕은 무슨 맛이 제일 맛있어요?” 갑작스런 위안의 질문에 타쿠야는 잠깐 머뭇거렸어. 평소에 사탕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무슨 맛이 제일 맛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거든. 위안의 손 끝은 계산대에 있는 사탕 통 안에 있었어. 타쿠야는 고민하다가 사탕 통 안에서 딸기맛 사탕을 하나 꺼냈어. “이거요.” 사실 타쿠야가 그것을 집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위안과 비슷한 이미지였거든. 타쿠야에게 위안은 달았어. 단순히 설탕을 부은 듯 단 느낌과는 달랐어. 그냥, 그 본연의 느낌. 위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탕을 하나 사 갔어. 그가 사탕을 산 목적은 알 수 없었어. 그러나 타쿠야는 아무래도 괜찮았어. 생각할수록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어. 위안은 타쿠야의 마음에 박힌 하나의 별이 되었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빛처럼, 위안은 타쿠야의 마음 속에서 밝게 빛났어. 위안은 천천히 타쿠야를 적시고 있었어. 아니, 이미 타쿠야는 위안에게 꽤 젖은 뒤였어. 늦여름 밤의 열기는 타쿠야의 손을 잡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어. 타쿠야는 위안이 좋았어. 8. 연락하는 횟수가 늘었고, 얼굴을 마주하는 횟수가 늘었어. 원래는 혼자 갔던 마트도 괜히 서로를 불러 같이 가고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를 찾았어. 서로는 서로에게 익숙해져가고 있었어. 위안을 향한 타쿠야의 마음은 점점 풍선껌처럼 부풀었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에는 바람이 불고, 꽃잎이 흩날리고, 기쁨이 흘렀어. 그들은 서툴었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원했어. 순식간이었어. 서로가 있는 지금이 그 언제보다 행복하다는 걸 깨달은 것은. 9. 함께 걸을 때면 손이 스치곤 했어. 더운 열기가 훅 훅 지나가면서 무너질 것 같았어. 손 끝이 닿는 순간마다 길목에는, 마음에는, 머리에는 하나 둘 씩 꽃이 피었어. 서로에게 서로는 바람이 되어 흔들고 동시에 흔들리고 있었어. 괜히 들뜨는 기분을 진정시키기는 힘들었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어.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끌어안고 싶었어. 함께 눈 뜨고, 함께 꿈 꾸고 싶었어. 괜한 사치라도 괜찮았어. 서로에 대해 이미 충분하게 알고 있었어. 더 궁금한 것들은 서로 맞춰갈 수 있다면 몰라도 상관 없었어.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 그것이 그들의 생각만큼 행복하든, 생각보다 써서 몸부림치게 만들든, 일단 시작하고 싶었어. 이제는 관계의 정의가 필요할 때였어. 10. [ 우편함 볼래요? ] 갑작스럽게 위안에게서 온 메세지는 간결했어.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라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만 붙잡고 있던 타쿠야는, 그의 연락을 받자마자 모자를 눌러 쓰고 문 밖으로 나왔어. 걸어가는 계단을 따라 위안의 모습이 그려졌어. 우편함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면서 괜히 떨리고 긴장이 됐어. 1층에 도착해 302호, 자신의 집 우편함을 열었어.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보며 타쿠야는 큰 소리로 웃을 수밖에 없었어. 밋밋한 노란색 메모지 하나와 딸기 맛 사탕. 타쿠야는 사탕보다 메모지를 먼저 집어들었어. 메모지에는 검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자가 제멋대로 삐뚤빼뚤 적혀 있었어. 사실 글자라고 하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웠지. [ 好きだよ ] 타쿠야는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가 없었어. 그 몇 글자 외에는 내용도, 발신인도 없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어. 이미 타쿠야는 자신의 머릿속으로 그의 모습을 다 생각하고 있었거든. 일본어를 배운 적도 없으면서 순전히 자신을 위해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글자를 쓰고 있었을 그의 모습이, 자신의 우편함 앞에서 서성이며 메모지를 놓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을 그의 모습이, 타쿠야의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어. 타쿠야는 우편함에서 사탕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어. 워 아이 니를 어떻게 쓰더라? 타쿠야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어. 괜히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이야. 그래, 관계를 정의할 필요도 없이, 바야흐로 연애의 시작이었어. 10-1. “형.” “응.” “형은 언제부터 저 좋아했어요?” “……네가 날 몰랐을 때부터.” 굉장히 급전개지만 읽어 줘서 고마워 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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