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치 히터 clutch hitter
타쿠야 장위안
야구모를 푹 눌러썼다. 푹푹 찌는듯한 날씨였다. 찜통 속 만두처럼 가만히 익어가는 오후다. 이토록 생산적인 시간에 나는 벤치 신세다. 내 손에는 수건으로 싸여진 얼음물통이 들려있다. 조금만 흔들어도 얼음끼리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물통을 열어 한 모금의 물로 목을 축이고 싶지만,
- 안타! 안타야, 달려!
게임도 뛰지 않는 후보 선수에게 물은 너무 과분한 처사다. 게임따윈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안타라는 두 글자에 반응해 퍼뜩 고개를 드는 내 반사신경이 얄미웠다. 3루에 있던 선배 한 명이 홈으로 들어오면서 점수 차는 더 벌어졌다. 오늘 게임 결과도 보나마나였다. 완승이다. 홈으로 뛰어들어오는 선배와 전광판에 추가되는 1점을 멀건히 바라보다가, 문득 1루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안타를 치고도 의무적인 일을 한 것마냥 감정없는 얼굴이 보인다. 짝다리를 짚고 경기 상황을 지켜보는 눈이 평소 반으로 잘도 접어지던 그 선한 눈매와 사뭇 달라서 낯설다고 느꼈다.
- 타쿠야 쟤는 진짜 물건이야.
광분해서 일어섰던 코치님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중얼거린 말을 난 정확히 들었다. 얼음물통을 쥔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치없는 각얼음들은 이 순간마저 달그락거리며 소음을 일으킨다. 나는 어쩐지 코 끝이 시큰해진다. 이래서 게임은 보지 않으려 했다. 내가 뛰지 않는 게임따위, 갓 들어온 신입생에게 주전 자리나 빼앗기는 한심한 상황 따위, 차라리 회피해버리고 안 보는 쪽이 낫다. 보면 볼수록 절감하게 된다.
- ......
뙤약볕 아래에 있는 너는 빛나고, 시원한 그늘 밑에 있는 나는 끝도 없이 작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 *
샤워장에 딸린 라커룸의 공기는 공기라기보단 열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나는 딱히 운동한 것도 없으면서 게임을 뛴 후배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먼저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땀이 다 마른 보송보송한 상태에서 다시 물을 뒤집어 쓰는 기분은, 조금 수치스럽고, 많이 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샤워를 빨리 하는 편이다. 밖에선 웃통을 까고 덥다고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이 한가득이었다. 나를 향한 원성처럼 들려 대충 샴푸 칠만 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때마침 들어가려고 대기 중이던, 정말 마주치기 싫은 얼굴과 맞닥뜨려야 했다. 온통 젖은 머리가 나와는 달리 땀때문일 것이다. 넌 열심히 경기를 뛰었으니.
- 선배,
- 왜.
- 기다려요. 같이 가게.
젖은 수건과 유니폼을 한데 뭉쳐 세탁기에 넣으면서 자연스럽게 너를 무시하려 했던 내 행동은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같이 가자는 네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기 싫으니까. 같이 안 갈 거니까. 통보같은 말만 남겨두고 샤워장 안으로 사라지고 없는 너는 언제나 그런 식이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도 선배한테 저렇게 막역하게 대했나 싶어 기억을 되짚어보길 여러번,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선배 앞에만 서면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던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 야, 나 지금 갈테니까 타쿠야가 나와서 나 찾으면, 먼저 갔다구 해.
- 지금 가시게요?
- 응.
- 안녕히가십셔.
- 그으래.
제빨리 옷을 구겨넣고, 눈에 보이는 후배 한 명을 짚어 그렇게 일러두었다. 라커룸을 빠져나오니 뺨에 달라붙어있던 더운 공기가 허공으로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고 없다. 비로소 개운함이 몰려왔다. 손에 쥔거라곤 야구화가 든 신발주머니밖에 없어서 심심한대로 그것을 빙빙 돌렸다. 학교에서 집 가는 버스도 있지만, 걸어가는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운동을 마치면 종종 걸어가곤 한다. 더욱이나 오늘처럼 연습 게임이 있어서 벤치에 엉덩이만 지지고 있었던 날이면 꼭 걸어갔다. 생각도 정리할겸. 복잡한 마음을 짊어진채, 놀이터 근처를 막 지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타닥타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 마음에 먼저 선수를 쳐 뒤돌아보았지만 야자를 마친듯 보이는 학생이었다. 가방엔 수저통밖에 든 게 없는지, 수저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타쿠야일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달려오는 발소리가 타쿠야가 아니라서 실망한건 절대, 절대 아니다. 이 기분은 오히려 안도감이었다. 그래. 제아무리 의지와 집념으로 똘똘 뭉친 그 자식이라지만, 내가 집에 먼저 갔다는데 별 수 있을까.
- 선배!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아채 반대 편으로 홱 돌렸다. 땅을 보고 있던 내 시선이 꽂힌 곳은 나와 같은 운동화를 신었지만 사이즈는 한참 커 보이는 그 애의 발이었다. 운동화는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프로팀에 주전 선수로 있는 선배가 보내준 단체화였다. 내일부턴 다른 운동화를 신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 큰 남자 둘이 같은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은 좀 많이 이상할 것이다. 셋도 아닌, 둘이니까.
- 기다려달라고 했잖아요.
- 네 말 들을 의무는 없잖아. 난 네 선배니까.
- 바쁜 일 있어요?
- 그런거 없어. 집 가서 잘 거야.
- 그럼 같이 가요.
난 원래도 타쿠야한테만 무뚝뚝한 면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오늘같은 날이면 그 정도는 더했다. 나도 알고 있다. 내 행동이 얼마나 치졸하고 속 좁은 짓인지. 집에 가면 늘 타쿠야라고 뜬 문자 창에 들어가 키패드를 두드린다. 악의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라는 내용의 문자를 썼다가, 보내지 않고 지운다. 어차피 내일이 되서 타쿠야를 다시 대면하면 또 걔를 싫어하게 될테니까. 마치 야구를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듯한 타쿠야를 보고 있으면, 내 노력과 열정은 물거품밖에 안 되는 꼴이 너무 분해서 삭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타쿠야한테 화풀이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그는 저절로 타고난 재능을 잘 발휘하고 있을뿐이고, 난 뭣도 없는 주제에 스스로 좋아서 야구부에 붙어있는 꼴이니까. 하지만 내가 침을 뱉어도 화낼 것 같지 않은 그 다정한 웃음을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난 차라리 널 무시하고 싶은데, 왜 두 걸음 세 걸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서로가 무관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너는 아니었다.
- 안 좋은 일 있었어요?
- ......
- 아, 묻는건 예의가 아닌가.
- ......
내 옆에 바짝 붙은 타쿠야의 머리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것쯤은 보지 않아도 꿰고 있다. 샤워장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없는걸 보고선 후배한테 물었겠지. 먼저 갔다는 소릴 듣고 머리 말릴 시간도 없이 옷만 꿰어 입고 급하게 나온 것이다. 버스 정류장 찍고 다시 되돌아서 여기까지 뛰어왔으면 꽤 거리가 된다.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왔던 길을 거슬러 집까지 가려면 한참이었다.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모두들 에이스라고, 국대라고 추켜세워주는데 나만 그 찬양에 동조하지 않아서 어떻게든 내 맘을 돌려놓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 선배.
- 말 하기 싫어.
- 나 좀 봐요.
- 싫어.
또 내 어깨를 잡아챈다. 남자애, 것도 운동하는 남자애라고 손아귀 힘이 제법 세다. 아프다는 소릴 하면 여기서 더 나를 얕잡아 볼까 싶어서 그저 싫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사실 붙잡힌 어깨가 아프다. 나는 또 타쿠야 운동화 코만 쳐다봤다.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지 예상이 가니까 그 눈빛과 마주하기 싫어서다. 타쿠야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 공기가 내 정수리에 내려앉은 것 같아서 머리가 아프다. 낮과의 일교차가 커져 제법 쌀쌀해진 바람에 코를 한 번 훌쩍하기가 무섭게 타쿠야가 내 입술에 제 입술을 갖다댔다. 나는 이제 피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할 때마다 발 끝이 꽃게한테 물린 것처럼 오므려지는건 어쩔 수 없는 버릇같다. 지나가는 사람이 우릴 볼까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 아까 하려던 말을 마저 해야겠다. 그렇다면,
- 걱정되잖아요.
단지 내가 그 찬양에 동조해주길 바라서 얘는 나한테 키스를 하는 걸까? 이 입맞춤의 의미가 뭐든, 나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입맞춤의 의미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만은 분명하다. 나는 타쿠야가 싫다. 밉다. 재수 없다. 이건 사실이다. 명백한 사실이다.
- 걱정해달라고 한 적 없어.
- 어제부터 전화도 안 받고, 같이 가자고 분명 말했는데 먼저 쌩 하니 가버리고, 표정도 안 좋잖아요.
- 신경 꺼.
아주 싫어하는 후배가 키스하는걸 고분고분 받아주는 선배가 이상할까, 눈에 띄게 자신을 싫어하는대도 불구하고 키스를 해오는 후배가 이상할까. 아마 이 사연을 마녀사냥에 신청하면, 의견이 갈라지고 양 쪽간의 대립이 팽팽할 것이다. 나는 우리의 관계를 두고 이리저리 토론할, 언젠간 티비에서 본 적 있는 장면을 떠올리고는 헛웃음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이 상황도 그런 우스운 상황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낯간지러운 것을, 운동하면서 별 꼴 다 보는 선후배 간의 대화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나는 이제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에너지를 투자할만큼 기력이 남아돌지 않는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 네 집 가.
- ......
- 나 네 선배야. 말 들어.
허공에 그 말을 뱉어두고 미련없이 뒤돌아섰다. 의외로 타쿠야는 내가 조금만 강경하게 대하면 꼬리를 내린다. 사실 대들고 싶은데도 선배니까 말을 듣는 것이다. 운동부에선 아직까지 유효한 선후배 간의 엄격한 규율이 존재했다. 나는 천천히 집 쪽으로 다시 발걸음 했다. 아까보다 훨씬 느려진 걸음이다. 아까 돌아서기 전, 슬쩍 타쿠야를 봤다. 잔뜩 구겨진 옆 모습이 보였다. 아마 속으론 나를 엄청 욕할거다. 선배면 다냐, 야구도 못 하는게, 뭐 그런 류의. 내 짜증에 나름 면역된 타쿠야도 이러한 이유 없는 돌발적인 행동에는 답답해했다. 내 귀에 또렷하게 박히는 빈 깡통 걷어차이는 소리가 그 반증이었다. 괜한데 화풀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돌아봐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타쿠야가 싫다. 싫어서 이런다.
그 날 집에 와서는 엄마한테까지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디서 어른한테 인사도 안 하고 방으로 들어가냐고.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나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벽에다 소리치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난데없는 소란이겠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열었을 때, 아무런 문자도, 부재중 전화도 없어서, 결국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어버렸다.
* *
예상대로 눈이 퉁퉁 부었다.
- 야, 울었냐? 눈이 왜 그래?
- 아주 대성통곡을 하셨구만?
그리고 사람들은 라면 먹고 자서 부은 얼굴과 울어서 부은 얼굴을 의외로 잘 구분해낸다. 먼저 와 있던 선배들의 몇 마디에 온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공 정리를 하고 있던 놈도, 빨래를 개키고 있던 놈도, 숙소 바닥을 닦고 있던 놈도, 그리고 손목에 테이핑을 하고 있던 타쿠야도, 모두 나를 쳐다본다. 여러 개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따라붙는게 민망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거 아니라고 해봤자 믿지 않을걸 아니까 변명도 않는다. 선배들은 곧 있을 드래프트나 대학때문에 연습에 자주 참여하진 않지만 아침마다 꼬박꼬박 숙소에 들러서 감독님과 코치님께 인사를 하고 가야했다. 어서 그들의 존재가 사라졌으면 했다. 신발주머니를 한 구석에 두고, 유니폼을 갈아입으려고 바지를 벗었다.
- 선배.
- ......
- 유니폼 갈아입고 화장실로 와요. 저 등에 테이핑 좀 해주세요.
막 유니폼 바지를 한 쪽 다리에 끼워넣고 있는데, 타쿠야였다. 나는 코를 훌쩍였다. 아, 감기인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타쿠야는 그게 대답이라고 생각했던지, 테이핑과 가위를 들고 숙소를 나서는 것이었다. 나가는 뒷모습과 유니폼에 달린 등번호 6번을 한참 쳐다보다 나머지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선배들은 예전부터 타쿠야에게 왜 유별나게 화장실에서 테이핑을 하냐, 선배가 만만하냐 왜 자꾸 테이핑할때 선배 시켜먹냐, 하며 장난 식으로나마 그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 할 놈이 아니었다. 어김없이 나를 화장실로 불러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는 신발장에 있는 슬리퍼를 아무거나 꺼내 신고 화장실로 갔다. 벽에 기대 앉아 테이핑한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있는 타쿠야가 보였다.
- 이리루 와요.
- 네가 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앉아있던 타쿠야가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왔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리고 타쿠야가 나를 끌어안았다. 순식간이었다. 으스러진다는 표현이 뭔지 깨닫게 해주는듯한 포옹이었다. 제 어깨쯤에 턱 걸리는 내 모자가 거슬렸는지, 잠깐 떨어져 나를 내려다보더니 모자를 벗겨내고 다시 끌어안는다. 내 목에 얼굴을 파묻으며 살짝 웃는 것도 같다. 문득 어제 생각이 났다. 그렇게 나와 헤어진 녀석이 잠이나 제대로 잤을런지. 잠시 본 얼굴에 피곤이 내려앉은 것 같아보여서,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 ...숨 막혀.
- 어제 선배 가는거 다시 붙잡을걸, 붙잡을걸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데.
- 그래서.
- 보고 싶었어요.
그런 말은 너 좋다고 편지 건네는 여자애들한테나 해줘, 적어도 나보단 좋아해주겠다. 라고 말해볼까 하다가 구차해보여서 생략했다. 계속 안고 있었다간 정말 누가 들어와도 들어올 것 같아서 타쿠야를 떼어 놓았다. 어제의 심각함은 어디 버렸는지 다시 샐샐 웃는 평소의 모습이었다. 내 모자는 억지로 뺏어갔으면서 정작 자기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그래서 호선을 그린 입술이 더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 뽀뽀.
- 사람 들어오면 책임질래?
가끔 보면 한 살 어릴뿐인데도 나와는 달리 패기가 넘친다. 실력이 있어서 무서울게 없나. 들킬까봐 노심초사 하는 한 살 먹은 늙은 누구와는 상반되는 태도였다. 내 말을 들은 타쿠야가 모자를 한 번 더 구겨쓰며 웃었다.
- 그럼, 사람 안 들어오면 상관 없다는 얘기네.
내 손을 잡아끌고 들어간 곳은 청소도구함이었다. 나를 작은 턱 위에 앉혀놓고 문을 잠구는 뒷모습이 익숙하다. 왜냐면 우리의 처음도 이랬으니까. 그 땐 춥다는 핑계로 여길 들어왔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도 안 되는 헛논리에 툴툴대면서도 여길 들어왔던 내 잘못이 크다. 그땐 턱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날 밀어붙이다가 내 꼬리뼈가 나갈 뻔 했었다. 아악! 하는 내 소리에, 그 다음부턴 먼저 날 그 위에 앉혀놓고 시작한다. 나는 엄지손톱만 쪼갤듯이 틱틱 부딪치고 있다. 당연히 돌진이라도 할 줄 예상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액션이 없다. 고개를 드니 생긋거리며 웃을뿐이다.
- 오늘은 뽀뽀만 해요.
- 누구 맘대로.
- 내 맘. 어제 나 까였잖아요. 그니까.
- 싫어.
- 볼에 한 번만.
무릎을 반쯤 구부리고 내 시선에 맞추고 있다. 나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서 이와중에 타쿠야에게 화가 난다. 무릎 연골이 안 좋으면서도 고작 나때문에 이런 자세를 하고 있는 꼴을 보니까 부아가 치미는거다. 나는 꼬일대로 꼬인 놈이라서, 이럴때면 얘가 날 무시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넌 뭐 몸을 함부로 다뤄도 잘한다 이거야? 나랑 다르다는 거야?
- 싫어.
- 한 번만요.
- 싫어.
싫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그 이상의 범위에 속한 네가, 난 정말 싫다. 싫어죽겠다. 그래서, 난 그래서 지금 또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거다. 아, 씨...
- 선배, 울어요?
- 안 울어.
- 왜요. 왜 울어요.
뒤늦게 놀라 눈에 힘을 줘봤지만 그칠 턱이 없다. 표정은 분명 화난 표정일텐데 눈물이 줄줄 흐르는 내 모습이 얼마나 웃길까. 거기다 난 눈도 잔뜩 부어있는데. 왜 자기 좋다는 여자애들 다 팽개치고, 아마 너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할 나에게 이러는지 모르겠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다정한지 모르겠다. 나를 품에 끌어당겨 쓰다듬는 손길이 두터운 유니폼을 파고 들어와 온기를 가져다준다. 나도 날 모르겠다. 이쯤되면 정말 모르겠다. 줏대도 없는 놈.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후배가 하자는대로 끌려다니는 한심한 놈. 눈물이 타쿠야의 유니폼을 적시고 있다. 그래도 누가 화장실에 들어와서 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기에 더더욱 파고들어 숨죽이며 울었다.
- 어젯밤에도 그렇게 울어서 이렇게 못생겨졌으면서, 오늘 또 우네.
- 그만해.
- 아, 근데 진짜 이상한게,
- ......
- 왜 내 눈엔 다 예뻐보이지.
아닌데. 진짜 못생겼을텐데. 나도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봤으니까 안다. 진짜 못볼 꼴이라는걸. 근데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내뱉고 있다, 저 자식이. 뒷춤에 쑤셔두었던 내 모자를 도로 씌워주고는 눈물진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쪽, 쪽, 쪽. 민망한 소리가 마치 외국인들 하는 인사마냥 짧은 간격으로 닿았다 떨어진다. 눈물이 매달린 속눈썹까지 올라와 쪽, 쪽 거리는 짓을 하더니 이내 떨어진다.
- 이제 들어가요.
- ......
- 왜요. 연습도 하기 싫어요?
- ......
- 아프다고 대신 말해드려요?
- 그, 너, 테이핑.
조리있게 한 문장으로 말해도 쪽팔린데, 하필이면 말이 엉켜서 나와버렸다. 타쿠야가 주어도 서술어도 흐릿한 문장을 못 알아먹은건 당연하다.
- 너, 너어, 너, 그, 등, 테이핑은, 안 할거냐고.
내 말에 그제서야 세면대에 올려두었던 테이핑을 생각해낸듯 아, 하며 타쿠야가 웃는다.
- 까짓거, 뽀뽀로 테이핑 했다쳐요.
* *
야구는 쥐뿔도 몬하면서 야구천재 앞에서 공주님인 장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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