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60년대, 장소는 깡촌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그런 시골. 이 동네에는 전교생이 채 40명도안되는 작은 초둥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 다니는 17살 늦깎이 초등학생인 탁구는 반 아이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 말뚝박기등을 하며 나름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특히 탁구는 말뚝박기를 제일 잘했답니다. 그런 탁구에게 딱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이 학교에 새로 부임해온 장한울 이라는 선생님때문이었습니다. 장한울 선생님은 서울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처음으로 이 시골학교에 오셨는데, 특유의 서울 분위기 때문인걸까요, 아니면 선생님의 훤칠한 이목구비때문일까요, 어쩐지 동네에서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선생님에게 크나큰 관심을 보이는게 아니겠어요. 탁구 역시 지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참 멋있다 생각했답니다. 아무튼 선생님은 당시 4학년이던 탁구네 반 담임을 하게 되셨습니다. 탁구는 첫날부터 왠지 수업내내 선생님이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국어시간에도 발표를 두번이나 시키고, 수학 시간에도 줄곧 자신을 쳐다보며 설명했다고 생각했지요.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를일이지만 탁구는 그 날 이후 점점 선생님을 신경쓰게 되었고, 무엇이든 열심히 가르치려 노력하고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모습에 크나큰 감명을 받은 탁구는 선생님께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탁구는 수업시간에도 더 잘 듣고,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의 눈에 띄어 보려는 셈으로 놀기도 더 열심히 놀았습니다. 또 꼬질꼬질한 옷이나마 옷매무새 한번 더 다듬고 이 빠진 나무빗으로 엉킨머리 한번 더 다듬으며 멋도 부려 보았지요.시간이 갈 수록 탁구의 일기장은 매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습니다. 물론 장한울 선생님은 일기장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렇게 노력한 덕분일까요? 어느날 탁구가 쉬는시간에 반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려고 창문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창문을 넘어 뛰어가려 하는데, 갑자기 어떤 묵직한 손이 교실 안 창문에서 나와 뛰어가려는 탁구의 팔을 붙잡는 것이 아니겠어요? "요놈! 선생님이 여기 서있는건 몰랐지?" "어? 선생님." "어이쿠, 탁구구나." 선생님은 놀란 표정을 하더니 탁구의 팔을 놓았습니다. 탁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기도 하고 떨리기도 해서 선생님이 팔을 놓은 즉시 운동장 한가운데로 뛰어갔습니다. '선생님이 왜 내 팔을 잡으신걸까?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걸까?' 탁구는 선생님이 잡았던 팔의 가운데 부분을 다른 손으로 꼭 잡으며 왠지 등 뒤가 뜨겁고 싸르르 한 느낌에 더 열심히 뛰었습니다. 탁구는 하루종일 떠오르는 그 생각에 부끄러워져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지요.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잡았던 왼쪽 팔만 쳐다보며 그 묵직한 손의 감촉을 되새기다 문득 앞을 보아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책으로 내리고 쿵쿵거리는 심장소리를 잠재우려 했습니다. 또 집에 가서 저녁을 기다리면서는 방에 누워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 목소리를 되새기며 선생님이 왜 그러셨을까 생각하며 한참을 애썼답니다. 결국 그날 밤, 탁구는 이부자리에앉아 일기에 그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 아이들과 쉬는시간에 뛰기놀이를 하려 창문을 넘어갔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내 팔을 잡으셨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왜 많은 우리반 아이들 중에 굳이 내 팔을 잡으신 걸까? 왜? 왜일까? 나는 선생님의 손이 닿았던 부분이 열이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선생님, 왜 그러신 건가요? 대답해주세요. 왜 제 팔을 잡으신거죠? ] 탁구는 다음날 그 일기장이 자신의 손을 벗어나고 일기반장의 손으로 건너가 한발짝 한발짝 교탁으로 다가갈 때 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습니다. '답을 해주시겠지..' 그날 밤, 장 선생님은 스탠드가 켜진 약간은 주황빛이 도는 방 안 책상앞에 앉아있었습니다 .턱을 괴고 검지를 까닥이며 턱을 두드리던 선생님은 눈 앞에 있는 LP 레코드판을 바라봤습니다. '이선생님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셨었나.' 사실 선생님은 자기와 비슷한 나이인 여선생님인 이 지혜 선생님에게 호감이 있었습니다. 이 선생님과 얘기하던 중 음악을 즐겨 들으신다고 말하신 것을 떠올린 장 선생님은 지금 이 LP판을 선물로 드릴까 고민하던 중이었지요. 한참을 생각하던 선생님은 복잡하다는듯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쥐어뜯으며 한숨을 내뱉었고, 벌떡 일어나려 팔을 짚었던 것이 엇나가 책상 한옆에 있던 공책 무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쿠당탕. 그 공책들이 반 아이들의 일기장들임을 확인한 선생님은 이참에 검사나 하자 생각하고 흩어져있는 일기장들을 주워 모으는데, 그 사이에 펼쳐진 한 일기장이 눈에 띄어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지요.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 일기장을 보다 펜을 들어 남은 공간에 답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탁구는 자신의 일기장이 제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무슨 답이 쓰여 있을까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운 답이 쓰여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어떠한 답이 있을지 집에가서 꼭 확인해보겠다는 다짐을 한 탁구는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책가방 안에 넣고 수업을 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 날 오후, 학교 수업이 끝나고 탁구는 기쁜 마음으로 책가방을 들고 아이들과 음악실을 지나치려는데 그곳에서 풍금소리가 흘러나오는것이 아니겠어요? 탁구와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안에 누가 있나 확인해보았습니다. 풍금을 치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장 선생님과 이 선생님이었습니다. 둘은 나란히 앉아풍금을 치며 즐겁게 웃고 있었지요. 그것을 본 아이들은 놀림거리를 찾았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었지만 탁구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이 선생님을 좋아하시는걸까?' 탁구의 눈에 비친 이 선생님은 장 선생님과 걸맞게 아주 지적이고 외모또한 누구나 좋아할 만한 단아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탁구는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자신은 이 선생님과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며 무척이나 슬펐고 자신의 팔을 잡은 선생님의 행동이 원망스러워졌습니다.집에 도착한 탁구는 일기장을 열어보고 싶지 않았으나 그래도 혹시 모르는 마음에 조심스레 일기장을 펼쳐보았고, 자신이 쓴 일기의 내용 밑 남은 공간에 적힌 선생님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 탁구가 많이 놀랐나보구나. 하지만 선생님이 그날 한 행동은 정말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단다. 단지 아이들과 놀다가 놀래켜줄 심산으로 숨어있었는데 그 순간 지나가던 사람이 탁구 너였던 것이고. 일기 잘 썼어요. 검사 끝. 오늘 이 선생님과 풍금을 치는 모습을 본 후 이런 답이 쓰여있을 것이라고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실망한 탁구였습니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선생님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단연 이 선생님이겠지.' 한숨을 쉰 탁구는 장 선생님과 이 선생님이 풍금을 차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애써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려 노력했습니다. 그 날은 탁구의 17년 인생 중 가장 슬픈 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날, 학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탁구는 벽면에 있는 한 낙서를 발견했습니다. 얼레리 꼴레리 장 선생님이랑 이 선생님이 같이 풍금친대요~ 에잇. 불쑥 화가 오르는 탁구는 지워지지 않는 낙서를 계속 손으로 비벼대었습니다. '흥, 그까짓 풍금이 뭔 대수라고.' 기어코 그 낙서를 지우고 반으로 돌아온 탁구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들며 무엇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이것을 뒤집어보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쓱싹쓱싹 털어보기도 하였는데, 탁구가 보니 그것은LP판이었습니다.아이들은 판의 가운데 구멍에 손가락을 끼워 돌리고 주고 받으며 놀다가 탁구가 채 다가가기도 전에 LP판을 날려버렸고, 교실 벽면으로 날아간 LP판은 끝이 깨져 망가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아이들과 선생님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다며 아이들에게 웃어보이셨지만 사실 그 LP판은 음악을 좋아하신다던 이 선생님께 빌려드리려 가져온 것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화가 나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장 선생님이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습니다. 한숨을 쉰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자 아이들은 본래 제 모습으로 돌아와 활기차게 수업을 들었지요. 그런데 그날 오후 탁구의 귀에 이러한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생님이 이제 곧 학교를 그만두신다나봐!" "왜?" "듣기로는 어디 다른나라로 가신대!" 이 선생님께서는 사실 서울에 약혼자가 있었는데 이번에 그 약혼자를 따라 미국으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종례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어쩐지 너무나도 슬퍼보였습니다. 종례가 끝나고 집으로 갈 때도 선생님의 발걸음은 모래주머니가 달린 듯 무거워보였지요. 하지만 탁구는 내심 기뻤습니다. "선생님!" 뒤돌아보는 선생님을 향해 뛰어가며 탁구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생긴 것 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희망을 품었습니다. 10년 뒤. 탁구는 27살이 되고 장 선생님은 31살이 되었습니다. 그 둘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참 재밌고 즐거운 시절이었다며 그렇게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앞으로 더 시간이 흘러도 그들은 함께 하겠지요. 그들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작은 풍금소리가 환한 행복의 웃음소리로 피어나와 온 세상에 울려퍼지는 순간까지. ㅋㅋㅋ공부하다가 내마음의풍금갑자기 생각나서 타쿠안 대입해봤엉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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