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게, 그 어린날, 너를 사랑했던 기억은 나를 아직도 웃음에 젖게 한다.너는 내게 물었다. 내가 왜 좋아요?그 질문에, …나는 어리석게도, 그저 웃을 뿐이었다. *눈치가 빨랐던 너는, 내가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내 말투라던지, 표정 … 아주 미묘한 것을 보고도 내 기분을 알아맞췄던 너였으니까.아니ㅡ.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티를 냈던것같기도 하다.숫기가 없어 여름방학을 지내고도, 변변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던 내가 너를 만난 뒤부터는 웃음이 부쩍 늘었다.그렇게 너는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하루는 네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고, 사전에 공지아닌 공지를 했음에도 늘 내 곁에 있던 네가 곁에 없으니 많이 쓸쓸했다.평소 같았으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내게로 와 방긋방긋 웃으며 조잘거렸을텐데… 나중에 오면 더 잘 해줘야겠다.오늘 급식 맛있었는데…. 분명 네가 있었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몇번이고 급식을 더 타러 들락날락 했을 터였다.네 생각이 많이 나는 하루였다. 그가 돌아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로 다가가 그가 없었던 3일의 시간을 늘어놓았다. "…네가 없는데 너무 외로운거야." "제가 오니까 좋죠?" "응, 진짜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타쿠야, 너 이제 어디 가고 그러지 마. "…왜요?" "너 없으면, 허전하단 말이야…. " "알았어요ㅡ 알았어, 옆에 있을게요." 내가 풀 죽은 소리로 중얼거리자, 타쿠야가 못이기는 척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알았어요 ㅡ. 이 단어 하나가, 참 안심이 되었다. "이상하게 나는, 너랑 있으면 말이 많아진다?" "…그래요?" "응, 왜 그러지? 편해서 그런가?" "그건…." "응?" "비밀이에요." 타쿠야가 하얗고 긴 엄지손가락을 내 입술 위에 손을 살포시 얹었다. ……. 그의 부드러운 손가락의 감촉이 나쁘지 않아,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얼굴이," "…." "붉어요, 형 ㅡ." ***"타쿠, 오늘 어디 가?" "음, 아니? 왜?" "나, 오늘 공짜 표가 두장 생겨서 그런데 ㅡ. 나랑 영화보러 안갈래?" 타쿠야는 나와는 달리, 이성에게도 인기가 많았다.쉬는 시간마다 제게로 찾아드는 그의 목소리가 반가워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복도에 나왔을 때였다.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타쿠…! 그의 이름이 목구멍 앞까지 차올랐다가 꿀꺽 삼켜졌다. 그에게 관심이 있다고 ㅡ. 자신에게 당돌하게 이야기하던 여학생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위안 ㅡ." "어?" "나, 타쿠야한테 관심 있어." "…." "도와줄거지?" 선전포고하듯 너무도 당연하게 제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에, 왠지 모를 위축감이 들었다. …미안한데 그건 못하겠어, 왜냐면 나도 타쿠야가 좋거든 …. 이 말이, 입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타쿠야는 내 사람이야ㅡ. 타쿠야는 날 좋아해. 그러니까 건들지마. 제 안의 또 다른 나는 사나운 맹수처럼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음에도, 현실의 위안은 힘없고 순한 토끼가 되어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내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 타쿠야는 나를 말 없이 쳐다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좋아. 마음이 쿠웅 ㅡ. 하고 내려앉았다. "그래, 난 타쿠야의 무엇도 아니니까." 나는 그냥 그의 친구일 뿐이니까 …. 위안은 애써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마음이 쓰라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워서. 그가, 그녀와 손을 잡고 가지 않길 바라ㅡ멀어지는 것을 가만가만 쳐다보았다. 타쿠야가 웃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안녕, 나중에 또 올게요!" 늘상 해주던 따뜻한 인사말도 생략한 채로. **** 그와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지 3개월이 넘었다. 서로 장난치고, 인사를 나눈 지난 날들이 애석하게 느껴질만큼 타쿠야는 변했다. 더 이상 내가 있는 교실에 찾아오지 않았고 혹여 복도에서 마주친다 하더라도, 짧은 목례 외에 다정한 인사는 없었다. 나와 타쿠야의 관계를 알던 주변사람들은 무슨일 있었냐고ㅡ. 걱정어린 투로 물었지만 타쿠야는 물론이고 나 또한 말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너와 네가 멀어진 것이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어서 였고, 타쿠야는 …. ***** "형은,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나 원래, 말 많은 사람 아닌데." 그것도 모르죠 ㅡ. 형은. "타쿠야…." "왜요." "미안해 ….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ㅡ." "형, 난 형한테 사과를 바란게 아니에요. 나는 그냥 …." "너한테 받은게 너무 많아서, 소중한지 몰랐었어." "…." "받기만 해서, 너무 미안해." 앞으로는 내가 타쿠야에게 줄게. 타쿠야가 나에게 해줬던 인사, 웃음 …나를 행복하게 했던 모든 것들을. ***** "형 ㅡ." "응?" "형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응." 들려오는 위안의 대답에, 타쿠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위안은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죠?" 타쿠야가 뜸을 들이다가 귓가에 가까이 속삭였다. …. 위안은 말이 없었다. 그가 던진 말은 시한폭탄처럼 제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아니." "그럼 누구요." "있어, 연예인 ㅡ." "연예인 누구." "유덕화 …." 위안의 두 귓볼이 붉었다. 집요하게 위안을 취조(?)하던 타쿠야도, 표정을 펴고선 우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더 잘생겼네." ****** 나는 타쿠야에게 할 말이 있으면 주로 편지를 쓰곤 했다.문자 열풍이 불었던 그 때에, 내가 편지만을 고집했던 것은 메신저 특유의 딱딱한 느낌이 싫어서였기도 했고, 종이의 빳빳한 질감이 좋아서 이기도 했다.또, 종이와 만나면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흑연이 닳는 소리도 좋았었다.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것은, 만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실제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타쿠야ㅡ. 여기." "이게 뭐에요?" "…집에 가서 읽어봐." "여기서 읽으면 안돼?" "응." "알았어요 ㅡ. 집에 가서 아껴 읽을게요." "아냐, 그냥 ㅡ. 보고 나서 갈기갈기 찢어버려." "싫어요, 형이 준건데 …." "마지막이잖아." "…." "그러니까, 간직하지마." "형, 나 …." "응?" "형 머리 한번만 만져봐도 되요?" 위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이에요, 형 머리 만져보는거 ㅡ. 형이 싫다고 못 만지게 했었잖아요. 타쿠야가 손을 뻗어 위안의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었다. "형, 있잖아요." "…." "나는 형을 알게 되서, 정말 기뻤어요." 아 쑥스럽다 ㅡ. 흠! 흠! 타쿠야가 헛기침을 했다. "부끄럽지만 ㅡ. 내 추억이 되줘서 고마워요. 형 -." 앞으로 앞머리 정리할때마다 내 생각 해요! 타쿠야가 장난스레 웃으며 위안의 눈을 바라보았다. 위안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울지마요, 형." 또 보면 되잖아요 ㅡ. 나보다 어린 타쿠야는, 분명 나보다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아직 여물지 못한 소년이, 또 다른 소년을 품어 어른이 되었다. *******(번외) "우리, 나중에 꼭 만나요." "그래 ㅡ. 그러자." "그때 만나서 지금 있었던 일 얘기하고 그러면 재미있겠다. 그죠?" -어디야. -맞춰봐요. -장난치지 말고. -학교 다닐 때 자주 가던 음식집 앞이요. 기억 나요?" -어, 찾았다. 딸랑 ㅡ. 문에 달린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일찍 왔네요?" "네가 더 일찍 왔네. 뭘 ㅡ." "하하, 기다렸어요." 타쿠야가 서글하게 웃으며 의자를 뒤로 빼주었다. 추억의 시선 끝엔 항상 네가 있었다. "얼른 먹어요, 음식 식어요." 추억의 장소에도, 지금 네가 있다. "형." "응?" "형이 준 편지 기억 나요?" "…버리라니까." 말은 진짜 안듣지, 너. 위안이 너의 그런점이 단점이라며, 볼에 음식을 가득 넣고 미간을 찌푸렸다. 워워 -. 인상 쓰지마요. 못생겼어요. 뭐 임마? "에이~ 형이 준건데 왜 버려요. 예전부터 차곡차곡 모아놓고 있었는데." "…." "어, 또 귀 빨개졌다." "…아니거든!" "아니기는, 똑ㅡ같구만." "…." "형은, 사귀는 사람 있어요?" "없어." "하긴 ㅡ. 나 좋아했담서 그럴리가 없지. " "…." "아직도 나 좋아해요?" 나는 말없이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타쿠야에게.안녕, 타쿠야. 난 장위안이야.오늘은 너에게 좀 특별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부끄럽지만, 나는 그동안 너를 많이 좋아했어.친구로써도, 후배로써도, 그리고 … 너를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사람으로써도.순간 '이성적으로'라는 말밖에 생각이 안난 내가 미웠어.너와 나는 같은 성을 가졌잖아.하루에도 수천번 너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싶었어.그런데, 우리가 같은 성이라는 장벽이 자꾸 나를 물러서게했어.나를 용서해줘, 타쿠야.내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너에게 내 마음을 전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이기적이지만 한번 해보려고 해.나를 좋아해달라는 건 아냐. 나는 너로 인해 내가 즐거웠고, 기뻤고, 행복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나를 웃게 해줘서 고마워.네가 내게, 큰 행운이었어.19살의 여름, 장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