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을 든 시위단이 점점 수를 불려가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횃불들이 춤을 추며 가로등 대신 밤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각종 일제 차들이 각목에 의해 두들겨 맞았고, 나중엔 그 주인들마저 시위대에 붙잡혀 얻어맞았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일본인 죽어라. 누군가가 외치면 여러 명이 따라서 외쳤다. 일본인 죽어라. 구호는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소리가 높아져만 갔다.
탁은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평온하고 느긋하게. 야경이라도 감상하듯이.
붉은 빛이 드리운 그 얼굴이 기묘할 정도로 평화로워서,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저 아래에서 사람 하나가 죽어도 탁은 눈썹 하나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어때? 무섭지 않아?"
내가 그에게 묻자 탁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잠시동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가, 까만 눈에서부터 점차 놀라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입가까지 미소가 번졌다.
"저는 제가 한 일 외에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선 무섭거나 화가 나지 않아요. 조상들이든, 정치인들이든,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나까지 감당할 필욘 없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은 무섭도록 뻔뻔해서, 나는 표정을 굳혔다. 그는 내가 순간적으로 품은 감정을 읽은 듯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렇지만 당신이 저한테 미안해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 일이 무엇이든 사과할 거고 반성할 거예요. 당신한테만은 미움받기 싫으니까."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동시에 지독하게 헌신적이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내 자신은 알 길이 없었지만 탁은 내 얼굴을 보며 재밌다는 듯 깔깔 웃었다.
"왜요? 쓰레기 같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일본인 죽으라고 외치는 시위대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탁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당황스러워했다. 그가 내게 품은 감정이 손 끝으로 저릿하게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탁에게 눈을 맞추려고 애쓰며 말했다.
"아니. 나도 너한테만은, 죄를 묻기 싫어서."
그러자 탁이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는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우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
사랑에 한해선 한없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두 사람을 그리려고 했는데 똥망.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