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민주' 좋아하십니꺼? 제가 국민학교 3학년일 적에 홍민주라꼬 얼굴이 연탄같이 까맣고 머리 치켜 묶어가 사냥매같이 눈꼬리가 우로 쪽 찢어진 가시나 한명 있었거든예. 그 가시나가 그래 천방지축이었다 아입니꺼. 사내아들하고 쌈박질하는 건 일도 아니고, 지 맴에 안 내키면 슨생님한테도 바락바락 대들다가 맨날 벌서고 그랬어예. 그 홍민주라는 가시나는 복어 맨키로 독이 올라가꼬 저하고도 얼마나 싸웠는지 모릅니더. 돌콩만한 가시나가 또 성깔은 을마나 유별나든지 그 가시나하고 한번 싸웠다가 지도 머리채 다 뜯기고 아주 학을 뗐심더. 그날 이후로 아직도 '민주'하면 저는 치가 떨리거든예. 근데 제가 아는 행님 한 명은 입에 맨날 '민주'를 달고 삽니더. 민주, 민주. 그놈의 민주가 그래 보고 싶은가. 아예 노래를 만들어서 민주를 찾는거 아입니꺼. 통키타 퉁퉁 튕기면서 노래를 불러쌋는데. 하이고, 마. 그 목소리 처량맞기는 또 말로 못합니더. 하여간 그 행님하고 만나는 동안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민주 타령을 들었지예. 한날은 제가 하도 신물이 나서 행님한테 물었심더. 행님, 민주가 도대체 눕니꺼? 을마나 이쁜 가시나길래 행님은 자다가도 민주 소리만 나오면 벌떡 일어납니꺼? 그러니까 그 행님이 실없이 웃으면서 대답하데예.
위안아, 민주는 이 나라를 진정한 우리 나라로 만드는 주문이다.
언제는 뭐 우리나라 아니었습니꺼. 무슨 헛소린가 싶어서 고마 암말도 안하고 고개만 끄덕였심더. 민주라는 가시나가 저 읍내 꽃다방 미쓰정같이 얼굴만 반반한 가시난가 했드만 나라를 바꾸는 여장부라도 되는갑지예. 그때 행님이 한 손으로 제 볼을 꼬집었어예.
위안아, 민주는 여자 이름이 아니다. 그러니 시샘할 필요없다.
시샘은 무슨예. 내가 뭐 아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가시나한테 시샘하게 생겼습니꺼. 그래 유치한 행님이었습니더. 대학생이라꼬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고 댕기드만.......옆구리에 끼고 댕기는 책이 억수로 무겁거든예. 그게 다 글씨 무게라 안캅니꺼. 그거를 다 외워야 대학 졸업한다는데 그 행님이 책 읽는 거는 한번을 본 적이 없거든예. 옆에서 보고있으면 고마 한숨만 팍팍 났었지예. 공부하고는 담 쌓고 맨날 운동하러 댕긴다는 소문만 들었거든예. 그래 운동이 좋으면 고마 운동선수를 하지 뭐하러 대학을 갔을까예. 참 희한한 행님이었심더.
그래도 행님이 노래도 불러주고 풀피리도 불어주고 할 때는 참 멋지데예. 어데서 그런걸 배웠는지는 모르겠심더. 민주여, 오라. 민주의 불꽃이여 타올라라. 그놈의 민주 가시나 타령은. 참말로 귀에 인이 박힐 지경이었지예.
저는 그 행님이 어디에 사는지도 몰랐습니더.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왜 우리 마을에 오는지도 알지 못했심더. 행님이 진짜 학생인지, 학생 행세하는 놈팽인지도 알길이 없었고예. 마을 입구 선산 언덕배기에 앉아있으면 가끔 행님이 올라왔심더. 뒤에를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지푸라기 더미로 책도 숨기고 옷도 숨기고 하고 나서야 저를 쳐다 보더라꼬예. 처음 봤을 때는 행님이 눈물 콧물 범벅도 돼 있고 옷에도 피가 묻어 있길래 지는 대낮에 월남군 영혼이라도 본 줄 알고 어이쿠 비명을 지르면서 엉덩방아를 찧었심더. 근데 행님이
나 나쁜 사람 아니다.
하면서 다가 오데예. 오지 말라고 주머니를 뒤져서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떤졌는데 아이고, 그기 새참 먹을 때 아껴둔 주먹밥 아니었심꺼. 아까워할 정신도 없었심더. 너무 무서워갖꼬. 막 울음이 터질라 하는데 행님이 떨어진 주먹밥을 줏어다 저한테 주데예.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쉬드만 저한테 한마디 했심더.
주머니에 든 주먹밥 하나만 주면 안될까? 너무 배가 고프다.
초면부터 황당한 행님이었심더. 정신없이 주먹밥을 먹고나서 씨익 웃는데 지는 그거를 보고 월남군인줄 알았을 때처럼 심장이 쿵 했었지예. 왜 그런가는 잘 모르겠심더. 하여튼 그 날 이후로 지는 생각나면 가끔 언덕배기에 올라서 동네 입구도 내려다 보다가, 짚더미도 뒤져보다가 했심더. 그라다 운때 맞으면 행님하고 한 번 보는기고, 아니면 고마 지 혼자 내려오고 그랬어예. 행님은 다쳐서 올때가 많았심더. 멀쩡히 오는 날에는 미끈하게 차려입고 키타를 메고도 왔는데, 열에 아홉번은 찢어진 걸레 꼴을 하고 허겁지겁 올라왔어예. 똥 매려운 강아지 마냥 하도 안절부절을 몬 하길래 언덕배기 너머에 버려진 광 하나를 가르쳐줬심더. 그 담부터는 거기로 오데예. 지도 거기서 행님을 기다렸심더. 맨날 주먹밥을 두개씩 남겨 갔는데 안 오는 날이 더 많아서 혼자 저녁 삼아 먹기도 했어예. 그런 날에는 괜히 민주라는 가시나가 미워지고 그라데예. 근데 그거는 절대로 시샘은 아닙니더. 지가 아도 아니고......
한날은 행님이 심각한 얼굴로 입만 다물고 말이 없길래 제가 물었심더. 행님은 어디서 그래 맞고 옵니꺼? 말이 없데예. 입에다가 뽄드칠을 해놨는가. 이장님한테 통사정해서 겨우 얻어온 약을 얼굴에다 쓱쓱 발라줬심더. 맨날 맞고 오는데 우째 약을 안 구해놜 수 있겠심꺼.
......끄나풀이 있는 모양이야.
지가 17년을 농사 지으면서 끄나풀이라는 풀 이름은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어예. 대학서 배우는 풀 이름인갑지예. 입술도 터졌길래 약을 마저 발라줬심더.
내부 고발자가 있는 모양이다. 그럼 여기 못 올지도 몰라.
이게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립니꺼. 고발이예? 고발이면 행님이 무슨 범죄라도 저질르고 다녔다는 말인거 아입니꺼. 행님은 진짜 학생이 아니었는갑다 생각했지예. 근데 이리 번듯하게 잘 생긴 행님이 뭐가 아쉬워서 불법을 저지르고 다녔을까예. 행님 눈이 시뻘겋게 달아 오르는데 지도 덩달아 억장이 무너지는거 아입니꺼. 혹시 민주 그 가시나가 행님을 꼬인거 아닐까예. 만약에 그런거면 그 요망한 백여시같은 가시나 제가 콱 머리 끄댕이를 잡아 뜯어 놨어야 속이 시원했을 겁니더. 우째 행님은 그래도 고민이 많았을까예. 소 콧김 뿜듯이 한숨을 푹푹 몰아 쉬는데, 지도 왈칵 울음이 넘어 오데예. 근데 지가 울면 행님이 더 울적해질까봐 꾹 참았심더.
내게는 너 말고도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행님이 갑자기 저를 확 끌어 안았심더. 그러면서 귀에다 대고 얘기 하데예.
물론 그들은 너와는 다르다. 그들은 나와 뜻을 함께하는 동지지.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심더. 그래도 목울대가 일렁일렁하데예. 울음을 꾹 참았심더. 밤이 깊어서 언덕배기에 호롱불 말고 암것도 안 보였심더. 깊은 산중은 아니라 짐승 소리는 안 났었어예. 희미하게 행님 이목구비가 보이는가 싶다가 밑으로 쑥 내려갔심더. 그때에도 심장이 쿵 하데예. 쉬이쉬이하고 바람 스치는 소리가 몇 번 지나갔어예. 목덜미가 시원하다가 금방 뜨끈해 지는거 아입니꺼. 행님이 지 목덜미에다 입을 갔다 댄거 였심더! 너무 놀라서 말리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심더. 안 그래도 연한 살을 자꾸 물어 쌋는데 소름이 돋드라고예. 와 이리 남사스런 짓을 하는가 물을라 카다가 떠들 기운도 빠져서 가만 있었심더. 그라니 제 풀에 지쳤는가 행님이 먼저 슬쩍 손을 놓데예.
미안하다, 위안아. 내가 이러면 안되는 건데.
해놓고 안된다 하는건 어느 나라 어법이랍니꺼. 그 행님이 참 사람 할말없게 만드는 데는 재주가 좋았심더. 행님이 대역죄인같은 표정을 해갖고 갑자기 무릎을 꿇었심더. 하도 송구스러워서 저도 같이 무릎을 꿇어삣어예. 그제서야 픽 웃데예. 그래 금방 웃을거 사과는 와하노. 얄밉고 황당하면서도 웃는거 보니까 마음이 놓였어예. 행님이 다시 저를 와락 끌어 안았심더. 우째야 되나 망설이고 있자니까 이번에는 제 입에다 입을 갖다 대대예. 그 때 기분은 말로 표현 못 하겠심더. 제 웃도리에 손을 집어 넣고 온데를 다 비비는거 아입니꺼. 아랫도리가 막 뜨끈해 지데예. 아야, 아야. 제가 엄살을 좀 피우니 손을 뺐심더. 이제 끝인가 했드만 이제는 아랫도리로 손을 집어 넣데예. 우짜면 좋노, 우짜면 좋노. 속으로는 발을 동동 굴렀는데 희한하게도 사지가 팍 풀리는 깁니다.
(는 똥싸고 도망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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