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쿠안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였다. 모범생의 정석이라는 까만 떡볶이 코트를 입고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사나운 바람에 목을 움츠리고 빠른 걸음으로 걷자 금세 정문이 보였다. 주임 선생님도 계시지 않은 시간이었다. 교실문을 열자 텅 빈 교실이 보였다. 2분단 맨 앞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교실을 나섰다. 4층에 자리한 학생부실로 가서 선도부 완장을 차고 일지를 집어들었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선도부장 장위안의 일상이었다. "위안선배, 이제 문 닫을까요?" "그래. 벌써 8시네." 육중한 정문을 1학년 선도부원들이 닫으려하자 저멀리서 단골 지각생들이 있는 힘껏 달리는 것이 보였다. 빨리 닫자. 위안의 목소리에 천천히 닫히던 정문이 쾅-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던 학생들 중 문이 닫히기 전 들어온 학생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정문 밖에 서있던 위안은 지각생들을 줄세워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남자는 100번, 여자는 70번. 지각을 한 벌이었다. 아아-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튀어나왔지만 위안은 아랑곳하지않고 시작! 하고 외쳤다. "선배님. 저희 먼저 들어갈게요." "응. 가-" 위안은 언제나 선도부 중에서 가장 늦게 들어갔다. 모든 부원들이 들어가고 나서야 위안은 완장을 빼고 일지를 덮었다. 8시 25분. 위안의 아침 선도부 일과가 끝나는 시각이었다. 이제는 교실로 들어가 1교시 수업 준비를 하면 됐다. 그러나 위안은 다시 일지를 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너무나 태연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딱 맞게 줄인 바지에 위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위안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쫄바지처럼 줄인 바지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양아치들은 딱 질색이었다. 게다가 싸.가.지까지 없다면 더더욱. 남학생은 마치 위안이 없는 사람인양 위안을 스쳐지나갔다. 너무나 당당한 모습에 위안은 지금 제가 투명인간이라도 됐나하는 바보같은 생각도 했다. "잠깐만, 저기!" 위안은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남학생의 소매깃을 잡았다. 바로 앞에서 보니 키가 커 목이 아팠다. 이어폰을 빼고 내려다보는 시선은 꽤 불량스러웠다. 지각...인데...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는지 위안은 시선을 내리깐 채 작게 말했다. 풉- 웃음 소리에 위안은 고개를 쳐들었다. 미간을 잔뜩 좁히며 쳐다보자 남학생은 큰 손으로 위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게 무슨 상황? 어안이 벙벙해 위안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1학년? 고생하네." "ㅇ...일학년?" "이름은 적지 말고, 수고해." 위안의 머리를 헝크러트린 남학생은 유유히 위안을 지나쳤다. 멍하니 눈만 꿈뻑이던 위안은 일지를 펴 명찰에서 본 이름을 꾹꾹 눌러썼다. 타쿠야 - 지각, 복장불량. * 수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제 머리를 쓰다듬던 남학생, 타쿠야때문이었다. 떡하니 파란 명찰을 달고 있는 제게 1학년? 이라고 물으며 머리를 쓰다듬던 버릇없는 행동. 위안은 책상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 위안은 2학년이었지만 실제로는 스무살이었다. 중국에서 살다와서 1년, 교통사고때문에 1년. 총 2년 늦게 고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3학년도 위안보다는 나이가 어려 학생중에서 위안에게 반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위안을 모르는 사람 또한 없었고. 아, 화나. 위안은 애먼 공책에 화풀이를 했다. 이미 연습장은 위안의 분노에 까맣게 칠해지다 못해 찢어지고 있었다. "위안! 필기 좀 빌려줘. 조느라 못 적었어." "...수업 끝났어?" "설마... 수업 안들었어? 장위안이?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책상에 놓인 위안의 연습장을 뒤적이던 줄리안이 흐어억! 하며 오버섞인 소리를 질렀다.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위안은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한 적은 없었고, 언제나 연습장에는 그 날의 수업 내용이 빽빽히 적혀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낙서만 가득하다니. 줄리안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애박. 장위안이 수업 시간에 낙서라니." "시끄러워. 내놔. 그리고 내가 너보다 2살이나 많거든?" "에이, 나는 외국인이라 그런 거 잘 몰라. 다음 수업 준비나 하러 가야겠다-" 나이 얘기가 나오자 외국인 핑계를 대며 줄리안은 위안에게서 벗어났다. 줄리안은 처음부터 위안, 위안. 하며 반말을 썼다. 유럽인은 그런거 신경 안쓴다나 뭐라나. 이제는 위안도 익숙해졌지만 가끔 위안은 대답하기 싫거나 곤란할 때는 나이를 언급하곤 했다. 방금도 그랬고. 후우- 밑에 두어장까지 찢어진 연습장을 부욱 뜯어낸 위안은 책상 속에 그것을 구겨 넣었다. * "그래서 내가.." "시끄러워어. 침 튀어!여기, 여기, 여기. 식탁에 다 니 침이잖아-" "아하하. 그래도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급식실 식탁에 튄 침을 가리키자 줄리안은 어색하게 웃다가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오리가 진짜.. 손에 쥔 숟가락으로 머리를 때려버릴까 하다가 위안을 밥을 한가득 퍼 입에 집어넣었다. 빨리 먹고 가는 게 줄리안의 말을 끊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어? 일학년-" 입이 터져라 밥을 우겨넣던 위안은 익숙한, 건방진 목소리와 머리에 닿는 손에 숟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목이 빠져라 고개를 들자 아침에 본 재수없는 낯짝이 보였다. 테라다 타쿠야. 학생회실에서 명단을 뒤져 알아낸 이름이었다. 아직도 일학년이라 생각하는 지, 타쿠야는 일학년- 하며 건방지게 위안을 불렀다. 나는 일학년이 아니고 이학년이다. 그리고 스무살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안 가득 우겨넣은 밥때문에 위안은 고개를 가로로 저을 수 밖에 없었다. "밥 맛있게 먹어라." 아침처럼 위안의 머리를 쓰다듬은 타쿠야는 빈자리로 걸음을 옮겼고, 뒤따라오던 남학생이 대신 위안에게 사과했다. "형, 죄송해요. 쟤가 오늘 전학와서 뭘 몰라서 그런거에요. 죄송합니다." 남학생을 타쿠야를 따라갔고 숟가락을 쥔 위안의 손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또, 또, 또! 일학년이래! 나 이학년인데, 스무살인데!! 억울함에 위안은 제 가슴만 쿵쿵쳐댔다. 테라다 타쿠야, 狗养的!!! ------_------- 망....ㅋㅋㅋ 저 중국어는 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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