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눈이 내렸다. 살캉한 진눈깨비였다. 너는 고개를 떨궜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 먹은 눈송이가 보도 블럭 위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목도리 위로 올라오는 뿌연 입김만 하늘에 흩어졌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2.
- 좋아해요.
손이 시리다고 투정하는 내 말을 듣자마자, 별안간 네가 어색하게 맞부딪히던 내 손을 확 휘어잡았다. 남자끼리 무슨 짓이야, 하고 나무라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가 내 앞에 섰다. 눈송이만 머리 위로 쉴새없이 흩날렸다. 남잔데, 나도 남잔데, 녀석은 나보다 키가 한참이나 컸기에
나는 소설 속 여주인공이 된 듯 녀석의 붉은 목도리만 한참을 올려다 봤었다.
- 항상 내 곁에 있어줄래요?
그 날도 첫눈이 내렸었다. 잘 영근 함박눈이었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들을 잘 다져 꾹꾹 밟으며 난 너와 길을 걸었더랬다.
빨간 목도리가, 검은 코트가, 자꾸만 눈 앞에 흐려졌다.
- 그럴게.
네 눈이 커졌다. 너는 지금도 모를테다, 이 대답을 해주기 위해 내가 우리 집을 지나쳐 똑같은 곳을 세번이나 빙빙 돌았던걸.
3.
- 형 예뻐요.
우리는 첫 꽃잎을 함께 맞았다.
우리는 항상 걸었다. 예쁜 거리를 걷고, 강을 따라 걷고, 호젓한 시골길을 걸었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걸으며 이야기 하다가 문득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좋았더랬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네 눈은 웃을때마다 반달이 됐다.
- 난 잘생긴거야.
- 아니에요 예뻐요.
나는 발 뒤꿈치를 들어 네 눈을 마주봤다. 남자가 되어서, 발돋움을 해야 연인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는건 참 애석한 일이지만
녀석은 나보다 키가 한참 컸기에 어쩔 수 없었다.
- 예쁘다는 말 싫어.
- 아, 진짜 귀엽다.
- 내가 너보다 나이도 많아.
- 알아요.
네가 웃었다. 남자에게 예쁘다는 말을 쓴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째서 네가 그러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평일의 애매한 시간대라 그런지, 아니면 이 거리가 워낙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지 거리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반달처럼 곱게 휘어진 눈을 한참 보다가
나는 네 입술을 찾는다.
꽃잎이 눈처럼 사뿐사뿐 내려와 네 콧잔등에 얹혔다.
4.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 왔다.
가로수 은행잎이 거리를 노랗게 물들였다. 타는 듯한 단풍잎은 바람을 타고 한들한들 날아다녔다.
- 지쳐요, 나.
한 편의 글로 쓴다면 절정을 이미 지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일시적인 타는 듯한 감정은 이미 사라졌다.
좋다고 붙어온 것도, 먼저 사랑을 이야기한 것도 너였지만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건 알고 있었다.
나는 서른이었고, 너는 앞길이 창창한 스물이었는걸.
더 아름답게 필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언젠가는 떠나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게 일년이 채 되지 못해 찾아왔다는게 애석했을 뿐.
나는 서른, 너는 스물. 너는 일본인, 나는 중국인. 너는 남자, 나도 남자.
- 좋아해.
나는 말 재주가 없다.
- 항상 내 곁에 있어줘.
딱 한번만, 이기적으로 구는건 이번이 마지막일거라고 생각했다.
- ……그럴게요.
5.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너도 나도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짙푸르던 하늘이 검은 빛에 먹혀들었다. 눈은 여전히 어설프게 얼어 추적추적 비처럼 드리웠다.
나는 네가 처음 고백하던 날 그랬던 것처럼 너의 손을 잡았다. 너는 피하지 않았다.
- 손 많이 시렵지.
- …….
- 이거, 내 장갑. 집까지 하고 가.
너는 내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발돋움을 하지 않았다.
눈 때문이다.
눈을 보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랬다.
- 고마웠어.
- 네.
이렇게 나는 너에게,
- 장갑은 돌려주지 않아도 돼.
이별을 고하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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