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작 재수생이다
공부 잘한다고 자만하다
긴장해 OMR카드를 밀려 써버린.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하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 6시, 학원을 끝내고 터덜터덜 도서실로 향했다
이러다 히키코모리가 되지는 않을까 잠시 생각하며 SNS에 접속했다가,
친구들의 행복해보이는 일상과 누군가와 사귀고 있다는 배너에 가슴 한켠이 시려와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언제쯤 이런 악순환이 끝날까.
힘든 몸을 이끌고 내 삶의 유일한 원동력인 아이돌 오빠들이 붙혀진 필통을 책상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의자를 조심히 끌어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의 행복한 일상을 봐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 집중이 되지않는 것도 같아
잠시 기지개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한 외국인이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외국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신경쓰지 않으려 해도 신경쓰여 계속 펜을 돌리다 그만
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펜을 주우려 고개를 숙이다
'퍽!'
그와 머리가 부딪혔다
'아!'
창피하고 미안한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서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숨 가쁘게 뛰어와 도서실 뒤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내옆에 앉았다
'어후, 여기있었네요? 한참 찾았네. 여기 펜이요.'
나를 보며 수줍게 펜을 건네주는 그에 괜히 미안해져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안해 하지마요, 그럴 수도 있지. '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음..제 이름은 블레어 윌리엄스예요. 기냥 블레어라고 불러줘여!'
그의 이름은 블레어라고 했다
-어..내 이름은 정상이예요....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저 그만 들어가 볼게요!
어색해져 그만 그를 두고 도서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자리에 앉은 후 곧바로 그도 내 옆에 앉았다
공부하는 내내 옆자리에서 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재수생이니까
5시간 내내 공부만 하다 집에 갈 계획이었는데. 저 외국인 때문에 마음만 뒤숭숭해져 버렸다.
도서실이 문을 닫는 11시. 늘 보는 익숙한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고 문 밖을 나서자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때 아까와 같은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나를 불렀다
'정상!'
-네?
'정상 우산 업쬬? 기냥 내 우산 같이 써여! 저~기 버스 정류장 까지만 가면 되는 거잖아요? 정상 몇번 버스 타요?'
몇번 말한적도 없는데 쉽게 말을 거는 그를 보며 역시 외국인들은 붙임성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 정류장 까지 가는 길에,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느라 축축히 젖고 있는 그의 왼팔을 보았다
오늘 처음만난 사람이고, 자신에게 살갑게 굴어주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까지 잘 해주는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그는 나에게 잘가라고 작별인사를 한 후,
내 가방문이 열렸다며 가방을 다시 닫아 주었다
버스에 올라 타서, 그에게 가볍게 목 인사를 하고
책들이 젖지 않았을까 가방을 열어 보는데
그 위에는 그가 쓴 편지가 놓여있었다
'정상, 내가 오늘 좀 부담 스럽게 군거는 미안해요. 정상이 그래도 앞으로는 항상 웃었으면 좋겠네요.
제 번호예요! 010-xxxx-xxxx 앞으로 힘든 일있으면 자주 연락 해요!'
물론 나는 이 날 이후 이 편지를 내 보물 상자에 넣어 놓고 한번도 열지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 도서실에 가지않았다
나는 사랑 따위 할 시간도 여유도 없으니
그래도 나중에 내가 사랑을 할 여유가 생기면, 내 첫사랑은 너 였으면 좋겠어. 블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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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는 정들 아벨라! 내일 다시 오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