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시인 시 모음
간격
별과 별 사이는
얼마나 먼 것이랴
그대와 나 사이,
붙잡을 수 없는 그 거리는
또 얼마나 아득한 것이랴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할 수는 없다
그 간격 속에 빠져죽고 싶다
황혼의 나라
내 사랑은
탄식의 아름다움으로 수놓인
황혼의 나라였지
항상 그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가도가도 닿을 수 없는 서녘하늘
그 곳엔 당신 마음이 있었지
내 영혼의 새를 띄워보내네
당신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물어오라고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것이다.
잠겨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별
너에게 가지 못하고
나는 서성인다.
내 목소리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이름이여
차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다만, 보고싶었다고만 말하는 그대여
그대는 정녕
한발짝도 내게
내려오지 않을건가요
사랑의 이율배반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 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그대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 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 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 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문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 해도
그대여, 그대에게 닿을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시빗오.
그대는 내내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아아 어찌합니까, 나는 이미 담을 넘어 버린 것을.
바람 속을 걷는 법1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밤새 내린 비간밤에 비가 내렸다 봅니다.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 보니그대여, 멀리서 으르렁대는 구름이 되지 말고가까이서 나를 적시는 비가 되십시오.
밤새 내린 비
간밤에 비가 내렸다 봅니다.
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 보니
그대여, 멀리서 으르렁대는 구름이 되지 말고
가까이서 나를 적시는 비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