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다지 사랑했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평생 못 올 사람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어여쁘신 그대는 내내 어여쁘소서
이런 시/이상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속에다 놓아줄까
붉고 찬란한 당신을/이병률
미안해손바닥에서 반짝이는 당신당신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시간을당신이 아니라내가 잊을 수 없었어
한없이 낮은 옥상/신해욱
너의 표정은 차갑고
너의 음성은 싸늘하지만
너를 볼 때마다 화상을 입는다
섭씨 100도의 얼음/박건호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
너는 이미 숨져 있었고
네가 나를 사랑했을 때
나는 이미 숨져있었다
너의 일생이 단 한번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라면
나는 언제나 네 푸른 목숨의 하늘이 되고 싶었고
너의 삶이 촛불이라면
나는 너의 붉은 초가 되고 싶었다
어떤 사랑/정호승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짠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과 어스름으로 수놓은
파랗고 희뿌옇고 검은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하늘의 천/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난다
시작은 대체로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되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정말 끝이었구나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때가 가장 슬프다
그때가 가장 슬프다/황경신
마음이 약해지게 되면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것을
자세히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진다면
이것저것 더 슬퍼할 일들이 많아진다
이것저것 찾아내서까지 슬퍼진다
미련한 결과/원태연
참 어이가 없네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 뚝 떼시면 나는 어찌합니까. 그토록 강렬하게 흩뿌려 놓고 지금 와서 슬쩍 다른 데 가 계시면 나는 뭡니까.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랍니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폭싹 다 젖었는데.
소나기가 끝나고 난 뒤/이정하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가족/진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