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다리엔 헌병대가 다리엔의 사진관을 덮쳤긔
체포된 사람들은 7명 항일운동가들과 그들의 가족이였고
그중엔 한국인 심득룡씨가 있었어요.
그들에겐 치사율 높은 세균은 어떤것이고
그 효과적인 감염 방법은 무엇인지
또 여러가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죽어가는지가 실험 되었다.
마루타들은 산채로 해부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인간의 저항능력을 정확히 잴 수 없다는 이유였다.
마취제를 쓰는일은 거의 없었다.
생체실험에는 도쿄대등 여러 대학과
일본의 권위 있는 의사 1000명이 참여했다.
동상실험은 일본군의 동상치료를 위함이였다
당시 소련군의 전쟁을 대비하던 일본군은 동상을 가장 두려워했다.
수많은 마루타를 말려죽이며 마침내 731은 섭씨 37도 온수에서
동상회복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것을 알아냈다
심득룡은 중국의 항일무장 조직인
동북 인민혁명군의 소대장 겸 청년단장으로 싸웠다
어머니와 동생을 일본군에게 잃은 뒤였다
이후 그는 소련유학생으로 선발돼 항일조직 활동을 위해 우선정신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만주에 돌아와 체포되기까지 다리엔의 항일 정부조직을 지도했다.
줄곧 공산주의 계열에서 활동했지만, 활동 내용은 항일투쟁이 전부였다
친구한테 배신 당했을때의 심정이 어떠셨을지 ㅠㅠ
당시 조선인들은 경작하기 어려운 땅을 개척하며
독립군들을 키워냈고 양식을 제공했다.
그런 조선인의 항일투쟁에
일본군은 잔인한게 보복했다.
그들은 단지 독립투사들뿐 아니라
무고한 조선인 마음들을 불태우고 학살하며 친일을 강요했다.
만주를 누비며 조국의 독립을 되찾고자했던 한국인들
우리의 독립전쟁이 가장 어려움을 겪을때도
그들은 가장 늦게까지 만주일대를 지켜낸 이들이였다.
그런 그들을 집밟은 일본
731부대장이시 이 시로가 도쿄전범재판에서 밝힌 한국인 숫자는 254명.
그러나 전체 희생된 숫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을 것이란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패전과 함께 731부대는
최우선적으로 기차와 선박을 제공 받았다.
731부대는 불태워졌다
그러나 대량의 생체실험 표본과 백신 핵심자료는 일본으로 향했다.
대기하고있던 생체실험 대상자 400여명은 독가스로 살해된 후 불태워졌다.
그러나 731부대원들은 누구도 처벌죄지 않았다.
전범 재판이 한참 진행되던 47년 맥아더 사령관은
모든 731부대의 죄를 면책했다.
미국이 731부대로부터
모든 자료들은 넘겨 받은것이다.
일본과 미국 그들은 살아 있는 수천 명을 대상으로 했던
범죄를 두고 가장 추악한 거래를 한 것이다.
이후 핵심 간부들은
모두 일본의학계와 학계의 주요직책을 차지했다.
그것은 731부대의 정신 또한 그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이분들을 기억하고
역사를 바르게 바라보는거겠죠.
절대 잊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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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료계에 핵심세력으로 남아서
성공가도를 달리고있는 인물들 명단입니다.
이 이름들을 잊지마세요
고바야시 로쿠조(일본 국립 방역연구소 소장)
나카구로 히데토시(국방 의학대학 총장)
나이토 료이치(녹십자 회장)
기타노 마사지(녹십자 대표이사)
가수가 추이치(트리오-켄우드 회장)
요시무라 히사토(교토 의학대학 총장)
야마나카 모토키(오사카대 의과대학 총장)
오카마토 코조(교토대 의과대학 학장)
다나카 히데오(오사카대 의과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