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이정하
길 위에서면 나는 서러웠다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길이었으므로
돌아가자니 너무 많이 걸어왔고
계속 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아
너무 막막했다.
그대여,
너는 왜 저만치 멀리 서 있는가
왜 손 한번 따스하게 잡아주지 않는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 이정하
새를 사랑한다는 말은
새장을 마련해
그 새를 붙들어 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 높이 훨훨 날려보내겠다는 뜻이다.
저녁별 / 이정하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너를 바라보는 기쁨만으로도
나는 혼자 설레였다.
다음에 또 너를 보았을 때
가까워 질 수 없는 거리를 깨닫고
한숨지었다.
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엔
자꾸만 욕심이 생겨나고 있었던거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게 있으랴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당장 숨을 거둔다 해도
너는 그자리 그대로
냉랭하게 나를 내려다 볼 밖에
내 어두운 마음에 뜬 별하나
너는 내게 가장 큰 희망이지만
큰 아픔이기도 했다.
바람 속을 걷는 법2 / 이정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으르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 지.
기원 / 이정하
이 한세상 살아가면서
슬픔은 모두 내가 가질테니
당신은 기쁨만 가지십시오
고통과 힘겨움은 내가 가질테니
당신은 즐거움만 가지십시오
줄 것만 있으면 나는 행복하겠습니다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헤어짐을 준비하며 / 이정하
울지마라 그대여,
네 눈물 몇 방울에도 나는 익사한다.
울지마라, 그대여
겨우 보낼 수 있다 생각한 나였는데
울지마라, 그대여
내 너에게 할 말이 없다.
차마 너를 쳐다볼 수가 없다.
사랑의 우화 / 이정하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 비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숲 / 이정하
네 안에서 너를 찾았다
네 안에 갇혀있는 것도 모른 채
밤새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헤매 다녔다
벗어날 수 없는 숲
가도 가도 빠져나갈 길은 없다
묘한 일이다
그토록 너를 찾고 다녔는데
너를 벗어나야 너를 볼 수 있다니
네 안에 갇혀있는 것도 모른 채
나는 한평생
너를 찾아 헤매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