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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6/5/16) 게시물이에요

 1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6:58:32 ID:tvoH10RHeaw

  •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건 기적은 아닐까, 하는.

    그래서 이 글을 써보려 한다.

  • 3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02:22 ID:tvoH10RHeaw

    그 때는 지금과 같은 어느 여름이었다.
    나는 여덟살짜리 꼬맹이었고 이렇든 저렇든 그저 낙천적으로 웃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내가 유괴를 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 4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02:50 ID:tvoH10RHeaw

    그러니까 그건 그저 운이 나빴던 거였다.

  • 6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05:59 ID:tvoH10RHeaw

    우리 초등학교 담장 너머에는 긴 도로가 있었다. 그 도로의 위쪽에는 아파트단지였고 그 도로 아래쪽에는 허름한 주택 단지였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 곳으로 빈부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대낮에 태연히 그곳에서 범죄가 발생하리라는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람이 없는 곳도 아니었다.

  • 8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07:40 ID:tvoH10RHeaw

    도로의 옆에는 학교가 있었고 그 뒤로 보건소도 있었다. 건너편에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도 있었고.

    난 그저 운이 너무 나빴고 순진한 여자애였던 죄밖에 없다.

  • 9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10:24 ID:tvoH10RHeaw

    나는 도로 위쪽에 살았지만 언니 심부름 겸 도로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언니가 심부름으로 건넨 만화책 위로 슬러시를 쏟는 바람에 책도 내 손도 끈적끈적했다.

    그렇다고 언니를 원망하진 않는다. 언닌 내가 사라진 동안 많이 울었다.

  • 12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13:48 ID:tvoH10RHeaw

    검은 색 밴이었다. 그리고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그 사람의 생김새까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선글라스를 썼기 때문에 맨 얼굴을 본 적은 없다.

    다만 그 두 조각으로 갈라진 턱과
    까만 입술과
    담배 냄새가 지독하게 배인 손가락은

    아마 평생가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13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16:20 ID:tvoH10RHeaw

    그 사람은 말했다.
    이리로 와보라고.

    나는 저요? 하고 되물었다.
    그래. 하고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그 사람 앞으로 가자 그는 입을 벌리고 웃었다. 누런 이였다.

    어디에 살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길 위쪽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게 잘못이었다.

  • 14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18:55 ID:tvoH10RHeaw

    남자는 우악스럽게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내 딸 하자.


    고 했다.
    어리고 만사가 긍정적인 나였지만 눈 앞의 어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았다.

    싫다고 했다. 그러자 남자가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버둥거리며


    살려주세요! 싫어요!

    라고 외쳤다.

  • 15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23:02 ID:tvoH10RHeaw

    앞에서 말했다시피 그 도로에 사람이 아주 다니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람은 있었다.
    한 아줌마였다.
    까만 머리였는데 길었는지 길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그 아줌마는 내가 지르는 소리에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아줌마가 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나는 그 밴에 탔다.


    밴은 곧 출발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 말고 한 명이 더 있는 듯 했지만 볼 수는 없었다.

  • 17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37:44 ID:tvoH10RHeaw

    밴은 운전석과 좌석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니 내가 운전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좌석 쪽 창문들은 신문지로 다 막혀있었다.

    남자가 나를 보고 자라고 했다.
    나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눈이라도 감고 있으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노래를 틀었다. 동요 메들리.

    파란마음인가 하얀마음인가 하는 노랫가사는 이상하리만큼 친절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소리내어 울지도 못할만큼 무서웠다.

  • 19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17:40:57 ID:tvoH10RHeaw

    밴은 한참을 달렸다.
    거의 다섯시간은 달렸을 거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동요 메들리를 들어야만 했다. 문득 두 사람은 지겹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돌릴 엄두는 못냈다.

  • 24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27:20 ID:tvoH10RHeaw

    그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 온 건 깊은 산기슭도 아니었고 으스스한 폐공장도 아니었다.

    그곳은 낯선 고층 아파트였다.

    어쩐 일인지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게 다 끝난뒤였다. 내가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를 이미 옮긴 뒤라는 말이다.

  • 26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30:19 ID:tvoH10RHeaw

    그때서야 운전석에 앉아 있었을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몹시 어려보였다.
    운전면허를 따려면 족히 대학생은 되어야겠지만 겉모습은 고작 고등학생 정도였다.

    선글라스 낀 남자가 왜 하필 여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어린 남자는 사각지대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남자의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 27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34:03 ID:tvoH10RHeaw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 집은 좁은 복합층이었는데 낡았다.
    그 정도였다면 방음도 잘 되지 않았겠지만 나는 소리를 지를 생각일랑 하지 못했다.

    나를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실어증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 29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35:27 ID:tvoH10RHeaw

    물론 내가 그 당시 실어증에 걸렸었다는 말이 아니고 그 일련의 사건들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잊어버릴만큼 충격적이었다는 뜻이다.

  • 30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38:27 ID:tvoH10RHeaw

    그 사람들은 나를 윗층에 올렸다. 그 잠깐의 움직임만으로도 머리가 깨질듯 아파 눈물이 났다.
    멀미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난 말도 잃고 대신 찌르는 듯한 두통만 얻은 채로 남자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복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없앴다. 말이야 이층이지, 나는 꼼짝없이 다락방에 갇힌 셈이었다.

  • 31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41:14 ID:tvoH10RHeaw

    어린 내 눈에는 이층과 일층의 간격은 까마득히 멀었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소리내어 울진 않았다.

    어린 남자였던가, 아님 선글라스를 낀 남자였던가.

  • 32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43:47 ID:tvoH10RHeaw

    아무튼 둘 중 한사람이 조용히 말했다.


    시끄럽게 굴면 죽일지도 몰라.
    아마 뒷일을 따져봤을 때 그 사람은 어린 남자였을 것이다.

    그의 말은 어딘가 묘했다. 그 당시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거다.

  • 33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47:05 ID:tvoH10RHeaw

    그리고 누군가가(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통화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폭우처럼 쏟아지는 엄마의 흐느낌 소리가 얼핏 들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구천을 준비하라고 한 것만이 내가 기억

  • 34 이름 : 이름없음: 2014/08/06 22:47:19 ID:tvoH10RHeaw

    하는 일부이다.

  • 37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08:09:11 ID:ahBzZ1sx1LU

    엄마에게서 말을 들어보면 그 때는 이미 여덟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대충 다섯시간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셈이다.)

    언니는 여덟시부터 무너지듯 울었다.
    아빠는 미친 사람처럼 언니가 말한 만화방과 그 근방을 샅샅히 다.
    엄마만이 침착했다고 한다.

    문득 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전화가 액정 위로 떴을 때,
    엄마는 예감했다고 한다.

    내 딸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있구나.

    그런 생각에 이르자 여태껏 참고 있던 흐느낌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 사람들을, 특히 선글라스 낀 남자를 상당히 고무시킨 이리자,

    방심하게 한 일이기도 했다.

  • 38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08:09:50 ID:ahBzZ1sx1LU

    이리자-> 일이자

  • 39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08:12:27 ID:ahBzZ1sx1LU

    그 때,
    엄마의 수화기 너머에는 경찰이 있었다.

  • 40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08:17:11 ID:ahBzZ1sx1LU

    경찰은 엄마에게 아이의 목소리를 확인하라고 했다.
    엄마는 흐느낌을 삼키며 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 딸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그 사람들은 의외로 순순히 내 목소리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 과정이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갑자기 복층으로 올라와 내게 전화기를 들이민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하면서 전화기를 내밀었는지, 그리고 내가 복층으로 올라와서 받았는지 아니면 일 층으로 내려가서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조용히 하라고.
    아저씨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되도록 말 잘 듣고 있으라고.
    울지 말고 침착하게 있으면 엄마가 찾아가겠다고.


    대충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 41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08:19:32 ID:ahBzZ1sx1LU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나서 경찰은 핸드폰 추적에 나섰다고 한다.
    어느 위치에 있는지, 누구의 명의인지.

    안타깝게도,
    그 때에는 어느 아파트 단지의 몇 층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지까지 세세하게 알 수 있는 기술이 없었으며

    그 핸드폰 자체는 훔친 물건이었다.

    언젠가 그 핸드폰이 뚱딴지같이 산기슭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었다.

    나는 왜 핸드폰이 거기까지 가게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짐작이 가지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 44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5:50:11 ID:ahBzZ1sx1LU

    모진 고문은 없었고, 성적 괴롭힘도 없었다.

    그 두 사람은 나를 그저 위층에 가둬놓았을 뿐이었다.

    아니다. 어린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면 페트병을(여자의 신체구조를 아는지 모르는지) 던져주었고, 가끔씩 위층에 올라와 내 머리를 잡아뜯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어린 남자보다 선글라스 낀 남자를 더 싫어했고, 두려워했다.
    그는 어딘가 이상했다.

    자꾸만 나를 딸, 이라고 불렀다.

  • 45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5:55:53 ID:ahBzZ1sx1LU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다.
    아침 일찍 떠나 점심 쯤에 돌아와서는 나에게 밥을 먹였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 자정 저녁 쯤에 돌아와 다시 내 끼니를 챙겨줬다.

    피자도 사줬고, 치킨도 사줬고, 짜장면도 사줬다.

    어떻게 보면 그 남자는 엄마에게 돈을 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엄마가 말하기로는,
    그 전화가 걸린 직후 사흘 뒤에서야 어디서 만날 것인지를 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괴범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항상 핸드폰을 꺼놓았기에, 엄마는 그 사흘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 46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6:00:55 ID:ahBzZ1sx1LU

    그 남자는 내 끼니를 챙겨주려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나를 위층에서 아래로 내려주었다.
    가끔은 나를 다시 올려주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대략 일주일이니,
    그 기묘한 식사를 열네번이라고 치자.

    그럼 다섯 번에 한 번 꼴로 그 사람은 나를 위층에 올려놓는 것을 잊었다.
    물론 그들의 작은 아량으로 나는 꽁꽁 묶여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때 도망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집의 도어락은 두개였고, 하나는 바깥에서 잠그는 식이었다.
    그리고 항상 내 옆에는 어린 남자가 있었다.

  • 48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6:02:29 ID:ahBzZ1sx1LU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어린 남자와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관계였다.

    어린 남자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 아버지, 라고 불렀다.


    어린 내 눈에도 그들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맨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을 염두해두고라도, 그들은 어딘가 많이 달랐다.
    이질적이었다.

    그건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나를 보고
    딸,
    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 49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6:05:03 ID:ahBzZ1sx1LU

    하지만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는 건 있다.
    그 어린 남자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 아버지, 라고 불렀지만, 아버지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둘만 남을 때, 선글라스 낀 남자의 욕을 해댔다.
    , 하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여덟 살이 이해하기에는 심하고 오묘한 욕들이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와 나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 남자는 나를 딸이라고 부르며,
    귀엽다는 듯이 자신의 무릎 위에 나를 앉힌 채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그의 손가락은 간혹 내 목덜미를 스쳤고, 실수인 것처럼 내 쇄골을 문지를 때도 있었다.

    그건 딸에게 하는 애정 표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 51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6:07:21 ID:ahBzZ1sx1LU

    나도 그 쯤은 알았다.

    우리 아빠는 내게 그런 신체 접촉은 일체 하지 않았다.


    그럼 어린 남자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와 나를 노려보았다.
    선글라스 낀 남자를 노려보는 것인지, 나를 노려보는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 둘 다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눈빛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손이 어깨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



    그 생각만 하면, 난 머리가 아찔해져온다.

  • 57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8:07:49 ID:ahBzZ1sx1LU

    그 동안 엄마는 아파트 계약 전세를 해제한 것에다 적금까지 더해서, 겨우 구천만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흘 동안 두려움에 떨었던 엄마는 제발 전화가 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전화가 왔을 때는 손이 떨려 수화기를 자꾸만 아래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엄마는 남자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줄 것을 다시 요구했다. (그 당시 집에는 경찰이 없었다고 한다. 그건 아주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남자는 저번처럼 흔쾌히 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뜬금 없이 수화기에다 엄마, 라고 말해보라고 한 단편적인 기억이 그 일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그제야 남자는 엄마에게 만날 장소를 제안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남자가 제안한 장소에 의아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곳은 파출소가 마주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아파트 단지 맞은편이었다.

    확신하건대, 나는 남자에게 우리 집 주소를 알려준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내게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우리 집을 대략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 58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8:10:15 ID:ahBzZ1sx1LU

    시간조차 대낮이었기에 엄마는 남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러면 당신이 들키지 않겠느냐고.


    엄마는 그 후에 돌아온 대답을,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억양과 흐려지는 발음과 갈라지는 지점까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디서 만나든 경찰을 데리고 오실 것 아닙니까?

    그는 그렇게 말했다.

  • 59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8:13:24 ID:ahBzZ1sx1LU

    그 때 말에 엄마는 이미 내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죽어가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상 나는 낯선 환경과 묘한 이질감으로 인한 공포를 느꼈지만, 버젓이 살아있었음에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남자의 행동은 다 자란 내가 들었을 때도 무언가 모순적이었다.

    그는 엄마에게 어쩐지 내가 죽었다는 듯이 말했으며, 그 흉내는 아주 은밀해서, 오히려 듣는 사람이 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 60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8:15:49 ID:ahBzZ1sx1LU

    그 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반백이 되어버린 우리 엄마에게도,
    약을 먹으며 기억에서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언니에게도,
    그 후로 웃는 일이 없어진 아빠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한 추측이 있다.


    어쩌면 그 때 내가 그 집에서 도망쳐나오지 않았다면,
    그는 나를 감금시켜놓고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끔찍하지만 또 설득력 있는 추측을 말이다.

  • 61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8:20:33 ID:ahBzZ1sx1LU

    이야기의 초점에서 조금 어긋난 말이지만,
    사실 그 날 이후로 그리 심한 후유증을 얻진 않았다.

    차라리 이 사건은 우리 가족들에게 심한 트라우마를 주었을 지라도,
    나에게는 그저 한 찰나의 악몽같은 인상밖에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비록 악몽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그 때문에 나는 위로 받을 필요성이 있어서이다.

    하지만
    나의 가족들은 내게 위로를 해주기에는 몹시 지쳐있고,
    나는 이 일을 내 주변인들에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악몽이라 할 지라도 이것은 무게가 있는 악몽이기 때문이다.

    성폭행 피해자가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자신의 일을 모험담처럼 흥미진진하게 늘어놓을 수 없듯이,
    나의 이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 62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8:23:03 ID:ahBzZ1sx1LU

    그러니 내가 유괴를 당한 장소를 보고, 그리고 앞으로 묘사될 공간들을 보고 어딘가 기시감을 느낀 사람은 그저 그 기시감을 가슴 속에 품어주길 바란다.

    여기는 나에게 있어서 대나무숲이지, 청중들에게 둘러싸인 무대 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 63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8:26:51 ID:ahBzZ1sx1LU

    상처가 수많은 사람들의 것에 비교했을 때는 아주 큰 것도 아니라,
    사실 가볍게 말한다고 해서 무리될 것은 없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이 대나무 숲 사이에 있을 지도 모르며, 그 사람이 상처 입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 한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그러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는 할 수 없는 사라져버린 일주일이기 때문에, 그저 익명이라는 말에 들어온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렇게 완벽하고 사람 수가 징그럽게 많지 않은 익명 사이트도 흔치 않다.)

    즉, 나는 당신들을 즐겁게 만들길 바라지는 않는다.

    만일 이 이야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좀 더 우회적으로 말해주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재미를 위해서 더 극적으로 말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어쩌면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 중에서 이 글을 그저 누군가의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 64 이름 : 이름없음: 2014/08/07 18:29:32 ID:ahBzZ1sx1LU

    하지만 개인들이 원하는 것은 그 개인들의 바람일 뿐, 나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러니 내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말아줬음 한다.
    더불어 나는 누군가의 궁금증을 해소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도 밝혀둔다.

    몹시 불쾌해서 몇 마디를 쏘아붙이고 싶을 사람도 없잖아 있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또한 반응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나는 지금 여기를 그저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기장으로 쓰려고 한다.
    그러니 원치 않은 사람은 나가주어도 좋을 듯하다.

  • 68 이름 : 이름없음: 2014/08/08 20:11:53 ID:yq4B8ihEE5M

    엄마는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는 남자의 말을 따를만큼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남자가 그런 말을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파출소 근처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 엄마의 마음에 걸렸다.

    엄마는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렇지만 경찰을 대동하지 않은 채였고, 더군다나 현금으로 들고 나오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서 단박에 전화가 왔다. 가방은 커녕 봉지 하나 손에 들고 오지 않은 엄마를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는지,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때 엄마는 요구했다.
    나의 생사를 알아보고 싶으니 긴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엄마, 라는 그 짧은 단어는 엄마를 안심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죽음을 확신하게 하는 일이었으니까.

  • 69 이름 : 이름없음: 2014/08/08 20:16:31 ID:yq4B8ihEE5M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엄마는 심장이 쾅쾅 뛰었다고 했다. 고작 주부인 내가 그런 일을 겪어봤어야지, 하고 언젠가 엄마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엄마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면 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그런 돈은 당신이나 씹어먹으라며 욕을 지껄였다고 한다. 그 딴 돈 따위 원래부터 필요 없었다면서. 그리고 엄마는 똑똑히 들었다고 한다.

    '나의 딸'을 이제 찾지 말라고.


    그건 엄마를 분노에 들끓게 하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시켜주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 70 이름 : 이름없음: 2014/08/08 20:19:03 ID:yq4B8ihEE5M

    전화가 끊기고 엄마는 주저앉아 울었다고 한다.
    너무 크게 흐느끼며 울자, 건너편 파출소에서 엄마가 술에 취한 사람인 줄 알고 출동할 정도였다.

    아무튼 그 때까진 난 잘 있었다. 이것저것 먹으며.

    그러나 어린 남자와 선글라스를 낀 남자 사이의 기묘함과, 선글라스를 낀 남자와 나의 관게에 대한 의문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린 남자가 나에 대해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정심을 느끼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 74 이름 : 이름없음: 2014/08/09 17:15:34 ID:hju+ZdKmf+U

    난 어린 남자와 선글라스를 낀 남자 사이의 기묘한 기류는 알았지만, 끝내 그들이 어떤 사이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네이버에 '후레자식'이라는 웹툰이 있더라.
    어쩌면 그들은 그런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얼굴만 아는 공범이든가,
    어린 남자 또한 유괴당했을 던 피해자일 지도.

    하지만 모든 것은 내 추측에 지나지 않고 나는 진짜 사실은 알지 못한다.

    왜냐면 경찰은 그들을 끝내 잡지 못했다.

  • 75 이름 : 이름없음: 2014/08/09 17:18:29 ID:hju+ZdKmf+U

    일주일의 반이 흘러간 후, 어린 남자는 나에게 적대감도 보였고 동정심도 보였다.

    사실 그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저 그랬더라는 희미한 단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여덟살, 거의 이십년은 된 이야기니까.

  • 76 이름 : 이름없음: 2014/08/09 17:20:51 ID:hju+ZdKmf+U

    그래도 뚜렷한 기억이 두 가지가 있다.

    그는 항상 내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 날도 그랬다. 내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복 받은 년이라고 경멸하듯이 말했다. 나는 복 받다, 라는 말을 알 정도의 나이였지만,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린 남자도 내게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해봤자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잊어버린 것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 욕에 대한 자세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 77 이름 : 이름없음: 2014/08/09 17:25:18 ID:hju+ZdKmf+U

    그나마 그에게서 동정심이라고 찾아볼 만한 기억도 하나 있다.

    어쩌면 나는 어린 남자가 곁에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나를 딸이라고 부르면서도 나를 딸처럼 대하지 않았다.
    애완동물처럼 대했고, 나아가 성적 노리개로 썼을 지도 몰랐다.

    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다.
    이 일이 내가 유괴당하고 난 직후에 생긴 일인지, 아니면 한참 후에 생긴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같이 목욕하자고 했다. 아니, 씻겨주겠다고 했던 것도 같다. 그 남자는 여전히 선글라스를 낀 채(그가 왜 선글라스를 계속 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셔츠를 벗었다.
    나는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싫었다.
    그가 징그러웠다.
    내게 다가오는 담배 냄새 나는 손이 역겨웠다.

    그 때 어린 남자가 내 앞을 막았다.

  • 78 이름 : 이름없음: 2014/08/09 17:29:16 ID:hju+ZdKmf+U

    아버지, 라며 뭐라뭐라 한 것 같다.
    아마 이 애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 뭐 그런 것이었을 거다.

    선글라스 낀 남자는 어린 남자의 어깨를 밀었다.
    그렇지만 어린 남자는 계속 내 앞을 막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계속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삼십분은 그러고 있었을 거다.

    그 때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는 욕을 하면서 어린 남자의 뺨을 때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린남자는 나를 복층 위에다 올려주었다.
    그 때 그가 한 말은 아직까지 선명하다.

    걱정하지 마.

    누구에게 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 83 이름 : 이름없음: 2014/08/10 16:33:40 ID:xlVEAbzZ8TQ

    지금까지 써 왔던 글들을 보니 오타가 많아 괜히 마음이 그렇다.
    아무튼 이야기는 계속 이어나갈게.

  • 84 이름 : 이름없음: 2014/08/10 16:39:17 ID:xlVEAbzZ8TQ

    엄마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돈 따위 필요 없다며 욕을 퍼부어댔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다시 돈을 요구해왔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죽였느냐고 물었다.
    만약 나를 죽였다면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남자는 죽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믿을 수 없으니 나와 통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남자는 몇 번이나 말해도 그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엄마가 말했다.

    그럼 내 딸을 죽인 거겠네요?
    당신이 내 딸 목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는 걸 보니.

    남자는 잠깐 말이 없더니 당신 딸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전화를 해줄테니 특정 장소에서 돈을 전달하라고 했다.

    엄마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경찰들은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다.

  • 85 이름 : 이름없음: 2014/08/10 16:43:29 ID:xlVEAbzZ8TQ

    경찰들은 엄마에게 아줌마 겁도 참 없어요. 라고 말했다.

    엄마는 엄마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고 아빠가 손만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빠는 회사에 휴직을 하고 -회사도 받아줄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사라진 부근-만화방으로 가는 곳-에서 전단지를 날랐다.
    잠도 자지 않았다고 했다.

    날 위해서 돌린 전단지가 오백 장은 넘는다고 말했다.

    목격한 사람에게 사례금 천 만원을 준다는 말 때문인지,
    시시껄렁한 장난전화로 마음을 다치는 것도 아빠의 몫이었다.

    그리고
    잡혀가는 나를 피해 도망갔던
    아줌마가 전화를 걸었다.

  • 86 이름 : 이름없음: 2014/08/10 16:45:30 ID:xlVEAbzZ8TQ

    아줌마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겁이 너무 많았고 다소 멍청한 감이 없잖아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사람은 아빠에게 어린 여자애가 선글라스 낀 남자에게 잡혀가는 걸 봤다고 했다.
    검은 밴이었다고, 차량 번호는 맨 앞 글자가 '4'로 시작하는 것만 봤다고 했다.

    아빠는 화를 냈다.
    어째서 바로 신고하지 않으신 겁니까, 하고.

    아줌마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례금은 필요 없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 87 이름 : 이름없음: 2014/08/10 16:50:55 ID:xlVEAbzZ8TQ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손길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음험해지면 음험해질 수록,

    내 가족들과 어린 남자도 점점 그의 숨통을 죄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다.

  • 95 이름 : 이름없음: 2014/08/13 10:45:46 ID:mv5hICarYNY

    내 흐릿한 유괴 사건 중에 가장 뚜렷한 기억은 엄마와 한 통화다.

    그 통화는 꽤 길어서 대략 십 분 쯤 이어졌던 것 같은데,
    그 때 내 곁에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없었고 어린 남자만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자라 엄마와의 이야기를 조합해볼 때, 그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전화를 준다던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어디가고 어린 남자의 감시 하에서 엄마와 통화를 했던 걸까.
    그건 나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96 이름 : 이름없음: 2014/08/13 10:54:30 ID:mv5hICarYNY

    엄마는 자꾸만 내 이름을 불렀다.
    나도 응, 엄마. 응, 괜찮아. 하고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대답했다.

    신을 믿느냐고 누가 물으면 차라리 내가 신 노릇을 하겠다는 무신론자인 엄마가 자꾸만 누군가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 뒤 엄마는 내가 위험하지 않게 우회적으로 돌려 묻기 시작했다.
    (참고로 스피커 폰으로 대화는 진행되고 있었다.)

    차가 커서 무섭지 않았니? 우리 집 차보다 훨씬 넓었을 텐데.
    (벤을 탄 애가 내가 맞는지)
    아니 괜찮았어.

    거기까지 가는 데 너무 오래 걸렸지? 힘들었지?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말대로 내가 멀리 떨어져 있는지)
    힘들긴 했는데 괜찮아.

    다른 아저씨가 잘 해주니?
    (공범이 있는지)
    그냥......

    거기 있음 안 무서워? 어둡지 않아?
    (내가 있는 장소를 대략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
    아니. 안 어두운데. 그냥 좀 높아서.

    요새 뭐 먹고 있어?
    (취사가 가능한 곳인지)
    아저씨들이 이것저것 사다도 주고, 저번에는 고기도 구워줬어. 빵도 구워줬고.

  • 97 이름 : 이름없음: 2014/08/13 10:55:48 ID:mv5hICarYNY

    (위의 이야기는 엄마가 녹음한 것을 바탕으로 적음.)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되니 어린 남자는 통화 종료 합니다, 하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엄마는 안도했다.
    엄마는 이 짧은 대화와 스피커 폰이기 때문에 나는 주변의 소음들에 의해서 내가 아파트(혹은 주택)에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도 그렇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자식 잃은 엄마는 어느 누구보다도 절박하고 강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98 이름 : 이름없음: 2014/08/13 10:59:20 ID:mv5hICarYNY

    아빠는 아빠대로 검은 벤과 4라는 숫자 하나를 가지고 경찰들에게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것만으로는 힘들다는 경찰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그 차가 동쪽 부근으로 달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서서히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내가 도망쳐 나올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진 않았지만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압박하여 그가 결국에는 폭발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린 남자가 그런 그에게 극심한 반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 99 이름 : 이름없음: 2014/08/13 11:04:49 ID:mv5hICarYNY

    지금 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으면,
    나와 달리 가족들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분명히 돈을 놀렸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윗동네에 사는지, 아랫동네에 사는지를 묻지 않았을 것이고, 구천 만원도 요구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조건들이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길 위쪽에 살고 있는 나를 굳이 데려온 건,
    넉넉한 이들(하지만 갑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아파트촌 사람들을 그렇게 여긴 이유가 뭘까)은 자식 새끼 하나 없어져도 가난한 이들보다는 덜 아플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만약 그 사실이 맞다면 그는 확실히 틀린 것이지만.
    부모는 돈과 차이 없이 똑같다.
    그게 내가 그 사건을 회상할 때마다 느끼는 바다.

  • 102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7:58:52 ID:2r4jPp2+c2U

    놀렸다고ㅡ>노렸다고

  • 103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8:04:28 ID:2r4jPp2+c2U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내 이름 하나만으로 우리 가족을 알아낸 다음 그 주변을 감시했다고 했다.

    cctv에서 우연히 그 남자의 모습이 스치듯이 발견되었고 목격자들도 몇 나왔다.
    그런데 그게 모두 우리집 부근이었다.
    즉 그가 복층 아파트에서 자리를 비웠던 건 감시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104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8:09:40 ID:2r4jPp2+c2U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는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여유롭던 마음이 엉켜버렸을 것이다.

    어린 남자의 시선 때문에 주춤거렸던 손이 내 배를 만졌던 것이 그 증거다.
    기억에 그는 끝무렵부터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일이 없어졌다.
    내게도, 어린 남자에게도.

  • 105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8:11:16 ID:2r4jPp2+c2U

    그리고 드디어 사건이 터졌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도 이제 끝을 달려가는 것이다.

  • 107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8:16:19 ID:2r4jPp2+c2U

    그건 내게 가장 확신할 수 없는 일이자 확신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어린 남자와 나는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 라면이 굉장히 짰던 것과 어린 남자가 내 머리카락을 노란 고무줄로 묶어줘서 따가웠다.
    어린 남자는 그 즈음 내게 잘 대해줬다.
    그렇지만 그게 익숙하지 않아, 그 배려는 거의 쓸모없었다.

    아무튼 그 순간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집으로 들어왔다.

  • 108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8:20:06 ID:2r4jPp2+c2U

    어째서 그 순간까지 그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던 걸까.
    나를 보내줄 마음따윈 없었을 텐데도 그는 그 순간까지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어린 남자와 난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욕을 하며 내 머리를 잡아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그건 정말 순간이었다.

    그 때 그의 얼굴은 몹시 붉었다.

  • 109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8:21:21 ID:2r4jPp2+c2U

    따가웠다ㅡ> 따가운 게 기억난다

  • 110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8:26:19 ID:2r4jPp2+c2U

    정말 그건 순간이었다.
    그는 자기 티셔츠와 바지를 벗어 뒤로 던지더니 내 옷도 벗기려고 달려들었다.

    반항할 틈도 없이 사건은 매우 빨리 전개되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남자가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어깨를 잡아 뒤로 끌어냈다.
    어린 남자의 얼굴도 벌겠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린 남자가 내 허벅지를 발
    로 차며 빨리 뒤로 빠지라고 했다.
    눈 앞이 빙빙 돌았다.

  • 111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18:33:25 ID:2r4jPp2+c2U

    그 때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식칼을 뽑아 어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서 두 사람은 한참을 엎치락 뒤치락을 했다.
    몇 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 되는 지 나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냥 어느 순간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배에 칼이 꽂혀있었다.
    배와 칼의 틈새 사이로 피가 흘렀다.

  • 113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24:09 ID:2r4jPp2+c2U

    어린 남자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물끄러미 내려보더니 손을 씻었다.
    그 때까지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살아있었다.

    그는 자기 배를 망연히 내려다봤다.

    어린 남자는 위로 끌어올라간 옷자락을 내려주고 바지도 끝단이 찢어져 새것으로 갈아 입혀줬다.
    그러고 보면 그 집에는 어린애 옷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 114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27:10 ID:2r4jPp2+c2U

    생각해보면 어린 남자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내가 하려는 건 그를 두둔하려는 말이 아니라, 어쩌면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항상 현관문을 밖에서 꼭 잠그곤 했다.
    나를 다락방에 올리는 것은 잊어도 그것만은 잊지 않았다.

  • 116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29:07 ID:2r4jPp2+c2U

    어린 남자가 나를 보고 가라고 했다. 아니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내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닐거라고 본다.

    어쨌든 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길고 긴 일주일이었다.

  • 117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30:59 ID:2r4jPp2+c2U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한참을 걸었다.
    어른을, 남자를 믿을 수가 없어서 피하며 한 발자국씩 내딛었다.
    어른들도 나를 물끄러미 볼 뿐

  • 118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31:22 ID:2r4jPp2+c2U

    그냥 자기 갈 길을 갔다.

  • 119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36:47 ID:2r4jPp2+c2U

    그런 내게 처음으로 신경을 쓴 사람은 의외겠지만 불량배 무리였다.
    지금이야 일진이라 불리지만 그 때는 불량배라고 부르는 남자 무리들이 나를 에워쌌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서 맡았던 담배 냄새가 나서 나는 얼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헤칠 마음이 없었다.

    너 엄마아빠 잃어버렸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도 못하고 그냥 울어버리자 한 남자가 괜찮다고 쪼그려앉아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다른 남자가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다행히 나는 우리 집 번호를 외우고 있었고 그들은 뜻하지 않게 우리 집에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 120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37:35 ID:2r4jPp2+c2U

    헤칠ㅡ>해칠

  • 121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40:16 ID:2r4jPp2+c2U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아빠가 준다는 보상금마저 거절하고 그냥 멋쩍게 웃으며 돌아섰다고 한다.

    그건 내 충격을 누그러뜨려준 큰 요인이었다.
    나는 그들 덕분에 남자도, 손가락 사이의 담배 냄새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 123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44:32 ID:2r4jPp2+c2U

    집으로 돌아간 뒤로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기억이 다시 연결되는 지점은 5일이 흐른 후다.
    나는 그 후부터 경찰 앞에서 같은 말을 수십번 반복해야 했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그 일을 꽤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 어린 남자와 선글라스 낀 남자의 마지막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둘이 몸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밖으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 124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45:20 ID:2r4jPp2+c2U

    기억하는 것이다ㅡ>것인 듯하다

  • 125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48:04 ID:2r4jPp2+c2U

    이렇게 성장한 내가 다시 그 날로 돌아간다면 난 남김없이 털어놓을 게 분명하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것이 능숙하다는 이야기나 다름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치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건 내가 어린 남자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호의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 때는.

  • 126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0:57:12 ID:2r4jPp2+c2U

    결국 경찰들은 그들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앞만 보고 정처 없이 걸은 내 책임도 있었다.
    나는 그 곳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우리 가족들은 분개하고 또 불안해했지만 딱히 도리는 없었다.
    그 사건은 그저 미제로 남았고 우리 가족은 너덜너덜해진 채로 급히 이사를 갔다.

  • 127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1:00:05 ID:2r4jPp2+c2U

    그렇기 때문에 산에서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핸드폰을 찾았다는 소식을 거의 일 년이 흐른 뒤에 들을 수 있었다.
    등산객들이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략 몇개월이 지난 뒤에는 중고로 나온 검은 밴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판 사람을 끝끝내 만나지 못했다.

  • 129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1:04:42 ID:2r4jPp2+c2U

    시간은 화살처럼 흘렀고 나는 자라 성인이 되었고 평범하게 대학을 나와 광고회사에 취직해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가끔씩 내 가슴을 때리는 답답한 이야기들을 여기에다 풀어놓고 싶었다.
    난 더이상 괴롭지 않다.
    그저 한없이 답답할 뿐.

    그래.
    그래서 나는 익명이 보장되는 이곳으로 왔다.
    나의 악몽을 나라는 사람을 밝히고 말할 용기와 멍청함이 내게는 없어서다.

  • 130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1:06:58 ID:2r4jPp2+c2U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또한 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다.
    의문이 있다면 대답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의문이 아니면 나는 대답을 해주지 않겠지.

    누누히 말했듯이 나에게 이곳은 그저 대나무 숲에 불과하니까.

  • 131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1:09:16 ID:2r4jPp2+c2U

    나에겐 그 일은 귀신을 봤다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자 악몽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동안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해 본다.
    다소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를 지켜봐줘서.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 132 이름 : 이름없음: 2014/08/14 21:09:43 ID:2r4jPp2+c2U

    그럼 나의 유괴 이야기는 여기서 끝.


  • 과거, 나의 유괴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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