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기계공고 1학년이던 김영남군은 친구들과 선유도 해변에 놀러갔고, 늦은 시간 산책을 하겠다며 홀로 걸어나갔다 사라졌어
오만걸 다해도 사람도 시신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가족들은 위령제까지 지내며 죽었다고 생각한 사건인데
19년 뒤
남한에서 생포된 간첩 김광현은 “78년도에 사라진 고교생 그거 내가 납치한거야”라며 자백하게돼 김영남 뿐 아니라
같은 시기 바닷가에서 사라져 시신도 찾지 못했던 고교생 4명 역시 죽은게 아니라 북한에 납치된거란게 확실시 됐어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우린 이 사진 속 소녀 요코타 메구미에 대해 알아야 해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많이들 알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야
납북 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이거든
13살로 가장 어린 피해자였고
북일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최초로!!! 외국인을 납치한게 맞다고 인정하는데 그 중 한명이야
김정일은 ‘같은 동양인 외모에 일본 여권은 어디든 쉽게 갈 수 있으니 일본인으로 위장해 한국에 잠입하는게 정말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고 그러려면 일본어와 문화를 알려 줄 일본인들이 필요했다’ 라는게 이유라고 밝혔어
어쨌든 북한은 납치를 인정하면서도 메구미는 자살했다며 메구미 대신 그녀의 딸 은경이를 일본측과 만나게 해주는데
당시 은경이의 아빠이자 메구미의 남편 김철준이 남한에서 왔다던데…? 라는 썰이 있었다고 함
이에 일본 대표단은 악수를 통해 딸의 dna을 얻은 후 한국의 납북 의심 고교생 5명의 부모님 dna도 얻어 대조를 하고
김영남씨의 어머니와 은경이의 dna가 98프로 일치한다는 결과를 밝혀냈어
당연 연애결혼은 아니고 북한 당국에 의한 결혼이야
메구미가 93년에 자살했단 북한의 주장은 거짓일 확률이 백프로인데 -유골 줬는데 검사 결과 신원 미상이고 화장했다는 화장터도 몇년 뒤에 생김-
김영남씨는 진실을 말해 줄 수 없어
북한은 이분의 납치도 인정하지 않고 자진월북이라 주장하고 있거든
협상을 통해 귀국한 일부 납북자들이 93년 이후에도 메구미를 봤다고 하자 “아 93년이 아니라 94년에 죽었는데 정신없어서 착각했어” 라는 뭔 사람 븅딱 만드는 기자회견 같은거나 시키고 본인 입으로도 오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게 함
그래도 이런 관심 덕에 2006년 이산가족 상봉에 성공하게 돼 어머니가 귓속말로 이렇게 살아도 괜찮냐고 하자 괜찮아요 라고 했대 ㅠㅠ
누나와 은경이
당시 김일성종합대학교에서 컴퓨터 전공하는 학생이었어
2011년
김영남씨는 평양의 외곽, 다른 4명의 피해자들은 평양에 거주하고 대부분 간첩 교육 기관에서 근무했단게 밝혀졌는데 이게 근황의 마지막인듯해
이제 다들 60대일텐데 영영 돌아올 수는 없는건지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써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