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 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가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한다.
처음 타보는 좋은 차. 누군가에게 운전을 맡기고 뒷자석에서 꼭 붙어 앉아갔던 우리.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역시 생전 처음보는것. 너무나 생소한 모든 것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불안감은 들었으나 나의 옆엔 아버지가 있었다. 나의 가족. 나의 아버지.
나의 새로운 세상이.
- 아버지가 사는 곳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를 떠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였지만 미움같은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어색함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아버지라는 존재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우물쭈물거리며 무슨 말을 걸어야 할지 망설였는데,
아버지는 그런 나를 웃으며 이리저리 바라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집에 가면... 지호한테 새로운 가족들이 생길거야."
"...가족?"
"응. 엄마도 있고..."
"..엄마요? 거기 가면 엄마 있어요?"
눈이 댕그랗게 커져서 묻는 나를 조금 난처하게 바라보던 그가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 노력했다.
"지호랑.. 같이살던 그 엄마 말고, 새엄마. 그사람이 이제부터 지호 엄마야."
"아..."
순식간에 풀이 죽어 어두워지는 내 표정을 씁쓸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형도 있어."
"... 형이 뭐에요?"
소통이 제대로 안되는 환경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나에겐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도 그것을 걱정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가족이야. 음... 지호처럼 아빠 아들인데,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자.. 태운이가 지호보다, 두살 형이구나."
형? 형...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신기해 중얼대고 있으려니 간질간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형은..."
불안감에든 기대감에든, 심장이 뛰고... "형은 착한 사람이에요?"
내 말에 아버지는 또 마냥 웃었다. 그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 마음이 놓였다.
"응. 착해. 지호한테 잘해줄거야."
그 때의 나에게, 착한 사람이라면 그걸로 되었다.
- 얼마 후 차가 도착한 곳은 커다랗고 깔끔한 주택 앞이었다.
아버지가 먼저 그리로 걸음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그 곳이 앞으로 내가 살 집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왜냐하면.. 일단 너무 컸고, 밝았다. 내게 있어 집이란 개념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낯선 그 곳에 어물어물, 아버지를 따라 다가가면서도 도저히 안정되지가 않았다.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겐 그야말로 모든것이 새로웠다.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초인종을 눌러 돌아왔음을 알렸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아버지의 등 뒤로 몸을 숨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스런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나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어린 내 머릿속에 또렷이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여자는 아주... 아름다웠다. 그러니까, 내 어머니의 아름다움과는 조금 달랐다. 이 여자는 우아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절제적인. 그런 것은 처음 보았다.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는데, 아버지가 그녀에게 몇마디를 하고 돌아섰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당황해 어쩔줄을 몰라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조용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 들어와라."
그 한마디를 툭 내뱉자마자, 그녀가 돌아섰다.
찬바람이 내 볼을 때린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복도를 소리없이 걸어가버리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고, 오히려 당황한 것은 아버지였다.
"어..음, 지호야.. 저 사람이 새엄마야. 원래 좀.. 사람이 무뚝뚝해서."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내 표정을 살피는 그의 마음이 짐작은 되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엄마라고? 엄마는.. 엄마는 저러지 않았는데. "일단 들어가자. 아빠가..."
나를 달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 온 것 자체가 조금쯤 불안한 일이었는데, 갑자기 더럭 무서워진 것이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어린 나도 눈치챌 수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때,
"아버지?"
문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버지를 쳐다보는 한 소년.
"언제 오셨어요?"
"아... 태운아."
또 낯선 이였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응시하는 그 시선에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이번엔 그냥 그 눈을 마주보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말했던 그 동생이야."
옆에서 나를 소개하는 듯 한 낮은 음성이 들려왔음에도
그 소년과 나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엄청...."
한참 뒤 그의 입이 먼저 열려 움직일 때 까지도 나는 멍했던 것 같다.
"엄청... 하얗다."
그의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남들보다 훨씬, 이상할 정도로 하얀 내 피부가 눈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내 몸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었던 나는 문득, 옷 밖으로 드러난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왜인지 몰라도.. 그냥 어디든 숨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데 그걸 본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늘 집 안에만 있으니까 그런가봐. 지호야, 아빠가 말 했었지? 태운이 형이야."
태운이 형...
나에게 형이 생긴다고 했었다. 이 소년과 나는 이제부터 가족이다.
그런데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이리저리 뜯어보는 그 시선이 창피했다.
이상해.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눈을 피해버렸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어서 들어가자며 발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따라가야 하는데. 들어가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가득 채웠다. 무서워서 돌아가고 싶었다. 어두컴컴한 그 곳으로 돌아가면 어머니가 와있을 것 같았다. "...왜 울어?"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던 소년이 조용히 물었다.
"......."
"이리와, 울지 말고."
나보다 두뼘은 더 커보이는 그 소년이 나에게 살짝 손짓했다.
나도 모르게 훌쩍거리고 있었나보다.
볼 위로 툭툭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머뭇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뚝. 왜 울어."
"........"
간질간질 눈가에 매달린 물방울을 옷소매로 쓱쓱 문질러 닦는 그의 행동이 꼭 엄마같았다.
"가자."
눈 언저리와 콧망울이 벌개져서 자신을 꿈뻑꿈뻑 쳐다보는 나에게 말하고는, 그가 돌아서서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발끝만 주춤댈 뿐이었다.
쏙, 문 밖으로 소년의 얼굴이 빼꼼 나왔다.
"지호야, 안올거야?"
"........"
난 조금 놀라서 딸꾹, 하고 우스운 소리를 내버렸다.
그의 행동도 행동이었지만, 그가 나의 이름을 그렇게 부를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건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친숙한 어조였다.
여전히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소리를 내어, 어린아이 답게.
"형이.. 잘해줄게."
"......."
"얼른 들어와, 응?"
정말 빛이 나는 것 처럼 환하게 웃으며, 소년이 말했다.
그때서야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정말로 우리 형이구나 싶었던 목소리. 불안한 마음은 두번째가 되었다.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선 내 손을 꼭 들어 잡고 티없이 웃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 긴 복도를 걸어가는 내내, 그 손은 나를 놓지 않았다.
-------------------------------------- 1. 과거편 진도 겁나 안나가네요;;;;;;;;;;;;;;; 처음엔 과거 걍 한편에 몰아쓸라고 그랬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런 병⊙▽⊙신ㅋ 처음 생각했던 스토리랑 약간 다르게 가서 그래여;; 걍 포기하는 맘으로 읽어주세여 2. 우태운 어릴때는 좋은 형이었구나...... 근데 지금은 왜그러니 개객기야 3. 제가 일요일 연재를 하는데요.. 걍 자유 연재로 바꿀까요?? 짬짬이 쓰는거라 필력gg에 늦게 올릴때마다 좀 죄송하고ㅠㅠ 4. 대체 누가 헛소문을 퍼뜨린건가요 내가 수학과라고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마워요 ^_ㅠ 수학고자 고3인데 5. 오메 인포 초록글에 내 게시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싸 고마워여 고마워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