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요괴 04
점심시간, 급식실을 가는 도중에야 깨달았다.
집에있는 동동은 꼼짝없이 굶고 있어야 된다는 걸.
하필 오늘 맛있는 급식이 나올 게 뭐람.
사람 미안해지게.
나는 별로 입맛이 돌지 않아
새우튀김을 깨작거렸다.
그러자 앞자리의 김한빈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내 새우튀김을 납치해가신다.
"야, 되게 자연스럽다?"
"너 안 먹을 것 같아서. 아니야?"
하긴.....
나는 결국 배식의 절반을 남기고
김한빈이 몽땅 잔반처리를 하였다.
내 머릿속은 온통 동동 생각 뿐이었다.
아, 이것이 양육의 고통, 사육의 어려움이란 건가.
나는 생각을 하다가, 김한빈에게 물었다.
"야, 너네 집 햄스터 키운다고 했나?"
"토끼라고 몇번을 말해요 병신아?"
"혹시 토끼도 옷 입고 다니냐?"
내 거지같은 질문을 들은 김한빈은
이런 희대의 병신새끼는 처음 본다는 얼굴을 하고는
이런 명대사를 뱉었다.
"토끼가 개냐? 옷 입고 다니게?
왜, 토끼는 개껌 안 먹냐고도 물어보지?"
"토끼는 쳇바퀴 같은 거 안 타냐? 놀이기구 같은 거."
"토끼는 캣타워 없냐고도 물어봐라."
캣타워는, 시발, 고양이는 주제 자체가 다른데 지금.
나는 김한빈에게 조언을 구하는 걸 그만 두었다.
그리고, 김한빈에게 '내가 사람을 키운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는가.
교실에 돌아와서 김한빈이 대뜸 물었다.
"너 햄스터 키우려고?"
"아니....그냥."
나는 하루종일 동동이 내 방에서 어떻게 지낼지를 생각했다.
나는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듯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학교가 끝나고 야자를 간단히 스킵한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동네 문구점으로 향했다.
좁아 터진 곳에서 우글거리는 초딩 남자애들을 뚫고 두리번댔다.
나는 재료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김한빈에게 물었다.
"야, 그거 뭐지? 새우깡?"
"새우깡? 과자 사달라고?"
"아냐, 그거 있잖아, 새우깡. 초딩때 졸라 열심히 갖고 만들던 거."
"......수수깡 말하는 건가?"
"아 맞아!!!! 똑똑한 놈!!"
역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김한빈은 나에게 수수깡을 갖다주었다.
약간 한심하단 표정 같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김한빈과 헤어지고 룰루랄라 어깨춤 추면서 집에 왔다.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음소거로 소리쳤다.
"야...! 내가 뭘 사왔는지 봐봐...!"
나는 즐겁게 방으로 들어섰지만
그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내 침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인지, 침대 이불이 죄다 점점이 구멍이 나고
실밥이 튿어져 주렁주렁 갈기를 뽐내고 있었다.
미친.... 너무 화려해서 사자 갈기인 줄 알았다.
"이런... 씨...ㅂ...ㅏ..."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욕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데코레이션이 너무 화려하고 눈부셔서 눈물날 것 같다.
천천히 방문을 닫고, 침대를 자세히 살폈다.
뻔뻔하게 내 베개에 몸을 기대고서
새우 자세로 웅크려 자는 인물이 포착됐다.
"이 미친 난쟁이 새끼가...."
나는 짐을 모두 내려놓고
책상 위의 보틀 뚜껑을 다시 집어들었다.
아마 앞으로 많이 집어들게 될 것 같다.
"안 일어나,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