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손흥민은 별 탈 없이 하교까지 마쳤다. 녀석은 다시 그 메이커 가방을 싸며 어깨에 들쳐매곤 뒷문을 열고선 나왔다. 구린 신발장에 나홀로 놓여진 손흥민의 운동화는 구리지 않았다. 신상 뉴발란스. 재수없으면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문득 열등감을 제쳐버릴 궁금증이 찾아왔다. 손흥민은 왜, 굳이, 하필이면 이 동네로 전학을 온 것일까.
올라가는 물가에 대응할 방도가 없듯 부잣집 아들 녀석은 상종할 가치가 없었다.
창근은 학교 뒤에 나와 담배 몇 개피를 물고 빨길 반복했다. 고등학생의 담배연기는 늙은이의 주름살만큼 깊이 있는 연기였다. 웬만한 어른들보단 심오한, 날이 가면 갈수록 깊어지는 가난의 깊이 같은 것이었다. 창근은 담배를 거칠게 발로 비벼 껐다.
* * *
“엄마, 다녀왔습니다.”
대답없는 인사. 헤진 가방을 던져 놓고선 굶주린 배에 차가운 냉장고 문을 여니 냉장고 안은 냉랭한 공기로 가득찼다.
"엄마도 참. 장 좀 보라니까. 아드님 굶어 죽이려고."
죄송해요. 아직 제가 철이 없어서.
휴대폰을 꺼내들어 창근은 제민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심하게 갈라진 액정은 고사하고 키패드 위 숫자는 닳아 헤진 지 오래였다. 몇년 전에야 쓰던 휴대폰, 그것도 폐기물 처리장에서 주워 온 것이었지만 주변 친구들도 다 창근과 비슷비슷한 처지라 부러움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부러움을 느끼는 게 이 동네 또래에선 되려 참 웃긴 거였다. 고만고만한 것들끼리 뭘 샘낼 것이 있다고.
* * *
창근이 이어폰을 귓속에 처박고선 어울리지도 않은 벚꽃들이 떨어진 길을 걸을 때 이 동네에선 구경할 수 없는 고급 외제차 한 대가 학교 앞에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으면서 섰다. 뒷문에서 내린 녀석은 손흥민. 마냥 있는 척이 아니란 건가. 재수 없는 새끼. 이유는 없었다. 있었다면 돈에 대한 창근의 질투심, 그리고 열등감. 창근은 아는 체도 모르는 체도 하고 싶지 않았다. 봄바람 지나가듯 손흥민 옆을 무심히 지나갔다. 그러한 창근을 모르는지 흥민은 창근 옆으로 붙으며 살갑게 말했다.
“너, 창근이지? 안녕?”
별 반가워 하는 거 같지도 않은 인산데. 받아줄 리 만무했다.
“너 왜 이쪽으로 전학왔냐?“
손흥민은 아무 표정, 미동도 없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더 샘이 나서였는지 창근은 흥민을 위 아래로 훑곤 무심히 뱉었다.
“딱 봐도 돈 처바른 옷에, 신발에. 달동네 체험기라도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있어.“
흥민은 창근에게 흥미를 잃은 듯 혼자 뚜벅뚜벅 교문을 향해 들어갔다. 그런 게 아니야? 창근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들었던 얘기가 있었다.
'우리 동네 다 갈아엎고 존나 좋은 아파트 만든다며.'
'40층인가, 그 정도 하는 아파트 세운다고.'
'여기 주변에는 벌써 완공했다던데. 우린 어떻게 사냐. 아, 씨발.”
정의가 섰다. 손흥민, 부잣집 아들. 거지자식 쫓아내러 온 부잣집 아드님. 하, 비웃음이 샜다.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잃을 집과 조만간 다가올 썩은 판잣집을 무너뜨린 포크레인. 모든게 그려졌다. 우려가 아닌 걱정이 됐고 창근은 옆에 앉은 흥민의 얼굴 조차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1교시만 대충 듣고 학교를 나와 버린 창근이었다. 혼낼 사람도 없었고 뭣보다 흥민에게서 구린 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게 맡기 싫었다.
* * *
밤 중에 녹은 문이 마찰음을 내며 들어오는 어머니를 반기었고 잠귀가 무겁지 않은 창근은 눈꺼풀만 살며시 열었다. 살이 숭숭 보이는 옷, 짙은 화장과 색조의 눈 쉐도우. 그리고 그런 어머니에게 풍기는 술 냄새. 어머니는 돌아올 수 없는 직업 아닌 직업을 택하셨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어머니의 흐느낌을 창근은 달래줄 자신이 없었다. 왜 이제야 들어오세요. 헝크러진 머리카락과 번진 눈화장과 부운 볼. 항상 강한 줄로만 알았던 창근의 어머니는 요근래 벼락같이, 지옥의 나락으로 계속 추락하고 계셨다. 터덜한 발걸음이 창근에게로 다가왔고 창근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창근아, 창근아.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게, 흐으, 없어서.. 엄마가..”
창근은 꿋꿋하게 살 자신이 있었다.
“엄마랑 어? 같이, 흐읍, 죽어버릴까? 창근아, 엄마가 너무 힘들어.”
창근은 꿋꿋하게 살 자신이,
“미안하다, 엄마가, 용서해 줘.”
자신 따위는,
“창근아, 아흐, 윽, 창근아.”
없었다.
어머니의 체념 섞인 푸념을 듣곤 어머니와 함께 창근도 울었다. 창근의 울음 소리는 어머니의 울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한참을 울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창근의 어머니는 없었다. 또 그 빌어먹을 직장에 출근 하신 게 틀림 없다. 창근이 이를 악물고 물이나 한컵 따라마시려 냉장고 문을 열 때면,
어느샌가 냉장고는 장을 보고 넣어둔 음식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창근은 허기가 지지 않았다.
창근은 학교에서 마주할 흥민의 얼굴이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가던 길을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창근은 무심코 지나칠 뻔한 집 앞 편지함에 하나의 봉투가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일종의 예감일까 창근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투툭 끊어지는 편지 봉투 입구를 뜯으며 접혀져 있는 종이를 폈다. 종이소리는 창근의 팔뚝의 소름을 끼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끔은 예감이 무서울 정도로 들이 맞아서 이번만은 빗겨 갔으면 좋겠다 창근은 생각했다.
<철거 계고장>
주택: 444,1- 2013.5.○
수신: 서울 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 귀하
제목: 재개발 사업 구역 및 고지대 철거 지시
귀하 소유 아래 표시 건물은 주택 개량 촉진에 관한 임시 조치법 따라 행복 3구역 재개발 지구로 지정되어 서울 특별시 주택 개량 재발 사업 시행 조례 제 15조, 건축법 제 5조 및 동법 제 42조의 규정에 의하여 2013.6.30까지 자진 철거할 것을 명합니다. 만일 위의 기일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을 경우에는 행정 대집행법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강제 철거하고 그 비용은 귀하로부터 징수하겠습니다.
철거 대상 건물 표시
서울 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xx구조 xx건평 xx평
끝
낙원 구청장
턱, 하고 창근의 숨이 막혔다. 창근은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가방 속으로 쑤셔 넣었다. 어머니에게 들켜선 안 됐다. 눈물이 창근의 앞을 가렸다. 오늘이야말로 현실을 직시하는구나. 사실은 어머니와 같이 추락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창근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