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이후 처음으로 간 서울대입구역은 금요일 저녁답게 모든 술집이 인산인해였다. 술기운과 새내기들의 설렘으로 상기된 분위기 속에서 은호만이 황망한 얼굴로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명문대 마크가 큼직하게 박혀있는 야구잠바를 입은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비틀거리며 2차를 외쳐댔다. 2019년의 봄은 난데없는 봄비를 이기지 못한 벚꽃의 사체들이 길거리를 즐비해 있었다. 설렘, 아쉬움, 사랑, 우정, 긴장감. 은호는 봄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의 부피에 숨이 막혔다. 비틀거리는 학생들의 운동화 밑창에 벚꽃이 불쾌한 색깔을 띠며 아스팔트에 짓이겨진다. 은호는 그게 마치 자신과 연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작은 발걸음에도 쉽게 짓이겨지지만 아무도 동정도, 관심도 주지 않는 벚꽃 하나. 아아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연희를 찾자. 은호는 힘겹게 굽혔던 다리를 펴고 설렘들의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전진한다.
.
.
.
.
그니까 7년 전 알바생을 갑자기 와서 찾으면 어떻게 알겠어요 학생. 그리고 그때는 근로계약서며 뭐며 없던 때라니까? 지금처럼 최저시급 안 챙기면 신고하던 때가 아니라구요. 안 그래도 금요일이라 바빠죽겠는데, 아 거기 시원아 이 자식아 그 안주 거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여기서 2년이나 일했었어요. 2012년 2월 27일이 마지막 근무일이었구요. 혹시 2012년도에 일했던 바텐더나 매니저라도 아시는 분 없으세요? 정말 급한 일이라서 그래요.
와 씨... 왜 바쁠 때 와서 이러는 거야 진짜. 야! 시원아 주방가서 정태 좀 불러와 봐!
.
.
.
.
박연희요? 처음들어보는데, 아 저는, 그러니까 그당시에 일했던 사람이 아니고..음 그러니까 2012년 여기 매니저했던 형이랑 아는 사이긴 한데. 그 형 지금 대전에서 일하고 있을텐데. 번호요? 번호.. 아 잠시만요...
.
.
.
.
박연희?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어디 학교 학생이었는데? XX대? 사진도 없어? 학생 미안한데, 그 학교에서 워낙 알바를 많이 해서 나도 잘 모르겠다.
은호는 그의 목소리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가끔 연희와 가게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히스테릭하게 가게 창문을 열고 연희를 부르던, 팔목에 괴상한 해골 타투가 새겨져 있던 남자. 은호는 문득 그 당시의 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밝게 염색한 머리칼을 밀어내고 있던 제 새까만 머리칼. 사람들은 그걸 초코송이라고 많이들 불렀었는데. 은호의 긴장된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상대방의 귀로 들어간다.
.
.
.
그럼 혹시 전 기억하세요? XX중학교 교복 입고 입었었는데 초코송이 머리하고.
.
.
.
.
자세한.....기억 안나는데,,,, 어렴풋이.....같다... 맨날 초코송이랑.... 두유로 작업건다고......우리직원....많이....웃...기억이 있어. ... 실종? 그 애가.. 근데 왜.....7년이나 지나서........당시에...........수상.....아니...그런 건......자주.....던....곳?.
질문하나에 대답하나. 치직거리는 낡은 스마트폰의 통화 소리. 답답해진 은호가 대전으로 가는 막차가 아직 있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아 근데 말야. 흘러가던 은호의 생각을 단숨에 틀어막는 그때 그 시절 매니저의 목소리.
‘야 박연희! 안 들어와!?’
‘아 오빠 저 이제 막 들어가려고 했어요!’
.
.
‘너 중딩이랑 사귀면 쇠고랑 찬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그리고 저 썸 타는 사람 있거든요?’
‘힉 초코송이 우는 소리 들리네’
.
.
‘뭐야 박연희 웬일로 꾸미고 왔냐?’
‘친구랑 XX미술관 갔다왔지롱’
‘....’
‘왜..왜 그렇게 봐요!’
.
.
‘너 오늘도 XX미술관 갔다 왔냐?’
‘....’
‘얘 웃는 것 좀 봐. 남친이 그렇게 좋아?’
‘.....그냥 친...친구거든요.’
“남자친구요?”
- 그래, 남자친구가 있었던 거 같아.
“알바 그만두기 직전까지요?”
- 그랬던 거 같아. 말도 없이 알바 그만뒀을 때, 우리끼리 XX미술관 알바로 갈아탄 거 아니냐고 그랬으니까.
“,,,XX미술관”
- 그래 지금은 이름 바뀌어서 ‘반달리즘미술관’이지
아마 우리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미술관 가서 당시 사진 자료나 방명록...그런 거 찾아보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연인들이면 방명록 같은 거 한 번 정도는 썼을 테니까. 이상하리만큼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에 은호는 가만히 손바닥으로 제 가슴팍을 눌러본다. 배신감? 은호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이건 그런 게 아니야. 이건..이건.. 그 순간 배터리가 다 된 핸드폰이 짧은 진동을 끝으로 꺼져버린다. 마친 토해낼 건 다 토해냈다는 듯 깨끗하게 암전된 휴대폰 디스플레이는 이제 은호의 불안한 얼굴을 비친다. 반달리즘미술관. 위치는 검색하지 않아도 된다. 은호 또한 그곳을 매우 잘 알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로 지금까지, 은호는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그 미술관을 방문했다. 마치 2012년의 연희처럼. 이건 직감이다. 미술관이 은호를 부르고 있다. 어두컴컴한 아가리를 벌리고 말이다.
----
반달리즘 : 문화유산이나 예술, 공공시설, 자연경관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