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다. 낯설게 오랜만이었지만 이 느낌만은 익숙했다. 또래 친구들보다도 약간 왜소했던 나를 업고 가기를 좋아했던 기성용의 등이,
지금은 비록 값비싼 쇼파와 침대에 익숙해지려 애쓰고 있지만 내게는 어떤 쇼파와 침대보다도 이 남자의 등이 제일 편하고 익숙했다.
그래서 지금, 네가 날 업고 가고 있는 몇 년만에 찾아온 이 순간이 내게는 최고의 안식이다.
"너 그거 아냐.."
뭐..?
"너 그렇게 가고 나서 죽도록 축구만 했다. 진짜 죽도록 인대가 다 나가도록 축구만 했어_ 왜 그랬는 줄도 모르지?"
..왜 그랬는데?
"너 찾으려고 그랬는데, 할 줄 아는게 축구뿐이라서.. 그것 밖에 없어서, 어떻게 해서든 축구하면 기성용나와버리게...그래서 너 찾아보려고 했는데 찾았네 결국..근데 이게 뭐냐...
다른 남자 옆에 가서 울고나 있고..차라리 웃던가...그냥 내가 못 본척하고 지나가게...... 관중석에서 우연히 봤는데 왜 이렇게 슬퍼보이냐 진짜....나랑 있을 땐 그런표정 지을 줄도 몰랐던게,
왜 그렇게 된거야... 미치겠다.... 너 보내야될지 말아야될지... 옆에 두고 싶다...그러면..안되겠지 근데..?"
"......."
"그래...다 내 욕심이지...."
".........아니..."
술김이어서 그렇게 대답한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어차피 지금 난 미영이 등에 업혀있는 거고 지금 꿈꾸고 있는 거니까 그래도 된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버렸다.
어떻게 되던 기성용 너 하나 있으면 행복했던, 웃을 수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으니까..그래서 이기적이게도
날 네 곁에 두라고 말했다.
-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따갑기 보다는 따사롭다는 말이 어울리는 햇빛이 내 아침을 열었다.
차마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깨달았다 부엌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_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하려는데 허리께 언혀진 팔 하나가 나를 막았다. 온 몸으로 그리워했던, 여전히 떨리고 시리게 아픈 기성용이 나를 안고 있었다.
"....어디 가려고..."
"..어?...아니..그..아침 차려야 되는데.."
"더 자...어제 늦게 들어왔잖아..."
"......어떻게 된거..야?"
"..너 때문이야..내 잘못 아니야...그냥...더 자자"
아니, 어떻게 더 자_ 얼마만에 가까이서 느껴보는 넌 데, 파도처럼 물밀듯 넘쳐버리는, 슬프다고 할 수도 기쁘다고 할 수도 없는 묘하게 벅찬 감정이 날 울컥이게 하는데.
눈 감아버리면 다시 숨막히는 그 메마른 곳으로 돌아가버릴까봐 그럴 수가 없어_
지금도 눈 앞에 있는 니가 꿈같아서, 사실은 조금 두렵기까지 해
"성용아...."
"....응...?"
"꿈 아니지...? 이거 진짜지?"
"..응"
"보고 싶었는데...지금도 보고싶어...계속..평생.."
"안 믿겨?"
"사실은...조금...무서워..꿈일까...!"
예전에도 그랬었던 것 같다. 말을 채 잇기도 전에 항상 내게 먼저 다가와 있는 너의 입술이_ 그런데 지금은 마치 너와의 키스가 처음이라는 것처럼
어느때보다 설레고 온 가슴이 다 터져나갈 것만 같다. 벅차게 차오르는 숨마저 삼켜버리는 듯이 애절하게 이어지는 너의 입술이
나를 아찔하게 만들어버린다.
"....하...너..."
"뭐 어때 꿈인데 안 그래?"
능글맞게도 웃으면서 내게 농담을 건네는 니 모습에 더 차오르는 마음이 부끄러워질까 고개를 숙였다.
그래봤자 어차피 네 품안에 있는 난데 뭐가 달라지긴 하겠냐마는_
"꿈인데 한 번 더 할까? 더 찐- 하게"
"미..미쳤어!!!"
"..이제 좀 진짜 너 같네"
"..뭐..원래는..원래도 나였어.."
"난 5년만에...진짜 기성용이야.."
그냥..웃음이 났다. 진짜 내 자리에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의 고백을 듣자니 얼핏 어려오는 기쁨을 달리 표출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기성용은 자기고백이 우습냐면서 장난스레 화를 냈지만 그렇게 너와 내가 입에 달고 살던 5년, 딱 5년만 이었다. 이렇게 행복하고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진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