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0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눈깜짝할새 지나간 세월은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의 소년과 소녀처럼 풋풋했으며, 누군가는 짝사랑을 해보기도하고, 또 그 누군가는 가슴아픈 이별을 겪어보기도 했었던 철없고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철없는 아들 둘을 키우고있는 애엄마다. 첫째는 남편, 둘째는 아들.
나이를 먹어도 철이들지 않는 철부지 내 남편. 철이 들때면 아마 이미 내가 이세상을 뜬 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일찌감치 남편이 철드는것을 포기했다.
내나이 서른. 이제 나도 건강관리를 해야할 나이.
하지만 간혹 어린시절 그때의 우리가 떠오르곤 한다.
이제는 지나간, 한 폭의 그림처럼 추억으로 남겨진 우리들의 어릴적 그 이야기들이.
뜨거운 청춘, 다시 이야기하다. 01
2014년 7월.
"여보! 내 양말어딨어?"
"거기 두번째 서랍에 있잖아!"
"엄마! 나 밥줘!"
"어 그래, 조금만 기다려."
우리의 일상적인 아침 대화이다. 철부지 아들둘을 키우고있는
엄마로서 매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여보, 없는데?"
"아 잘찾아봐!"
"엄마 나 배고파!"
"응 그래, 엄마가 금방해줄게, 아빠 먼저 출근하시고."
남편은 아직도 못찾았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놈은 배가 고프다며 투덜대고 있었다.
양쪽에서 나를 부르니 머리가 윙윙 울려댔다.
아-,나의 결혼 생활의 로망은 이게 아니였는데.
내가 저놈의 말을 믿는게 아니었다. 결혼하면 아침마다 밥도 차려주고 재워주고 설거지하고 다해준다더니.
"여보!빨리!"
내가 다음생에 너랑 다시 결혼하나보자.
"내가 찾을게, 뭐야 제대로 찾은거 맞아? 여기있잖아."
나는 두번째 서랍에서 당당히 나온 검은색 발목양말 한쌍을 들어보였다.
"어라? 내가 찾을땐 분명히없었는데."
"으이구, 웬수 빨리 회사나가."
"알겠어, 알겠어 나 오늘 야근이라 좀 늦어 아들이랑 먼저 저녁먹어."
"알겠어. 빨리 가기나 해."
"그럼 다녀올게! 아들도 유치원 잘 디녀오고."
"네!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곧이어 도어락이 해제되며 문이열렸고, 남편이 출근한 뒤에야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아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유치원 보낼 준비를 끝마쳤다.
"엄마 나 갔다올게!"
드디어 아들을 유치원차에 태워보내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드디어 길고도 짧았던 전쟁이 막을 내린것이다. 그제서야 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남편을 만난건 고등학교 때였다. 학교에서 알아주는 얼굴이었고, 같은 동아리를 하며 친해졌다.
나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옛날생각이 나 옅은 미소를 띄었다.
"오랫만에 앨범이나 볼까."
나는 급하게 밥을 다 먹고 고등학교 앨범이있는 서재로 향했다. 오랫만에 추억도 회상할겸,
친구들 얼굴이나 볼 생각이었다.
구석에 있어 조금은 먼지가 끼인 앨범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깃든 앨범이었다
앨범을 꺼내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책상에 올려놓고 앨범을 한장,한장 넘기며 그때 그시절을 떠올렸다.
체육대회, 축제, 소풍 등의 사진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얘는 잘지내나?', '아,얘 정말 웃겼었는데.' 하며 친구들이 보고싶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었던것은 단연 남편이었다. 여자애들한테 엄청 인기많았다.
한때는 축제에서 노래를 불러 모든 여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지. 나는 그렇게 앨범을 보다가 피곤했는지 갑자기 쏟아지는 피로에 책상에 엎드렸다.
2002년 5월.
"으..음..."
잠이 든건가. 엎드려서 자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했다. 기지개를 쭉펴고 일어났을때,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칠판, 교복, 책상, 의자.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교실이었다. 순간 내가 꿈을 꾸고있는 것이 아닌지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내가 놀라서
두리번 두리번 대자 누군가 날 툭툭 건드리며 말을 걸었다.
"야, 왜 갑자기 자다 일어나서 두리번대? 꿈꿨어?"
나의 고교시절 단짝친구 지은이었다.
"어?...어.. 이게 꿈아니야?.."
"얘가,얘가, 너 잠 덜깼지? 그냥 푹, 더자."
지은이는 혀를 끌끌 차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건
뭔가 잘못됬다. 한참을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 느낌에 화장실에 달려가 거울을 봤다.
"말도안돼..."
거울을 보자마자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고교시절의 나. 풋풋하고 수줍었던 그 때 그시절의 내가 거울앞에 떡하니 서있었기 때문이다.
"이게..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폈고,
살짝 꼬집어 보기도 하며 꿈이 아닌지 확인했다. 그러나 생생히 느껴지는 고통에 꿈이 아닌것을 확인했고, 나는 믿을수가 없었다.
"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학창시절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것도 그때 그시절의 모습으로.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터덜터덜 반으로 향했다.
2학년7반 이라는 팻말이 눈에 보였고 곧 그곳으로 들어갔다.
"ㅇㅇㅇ! 너 어디갔다왔어?"
아, 내소개가 좀 늦었지만 내 이름은 ㅇㅇㅇ이다. 가족은 부모님 다 살아계시고 오빠 두명에 남동생 하나를 가지고있어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큰오빠는 나를 잘 챙겨주었지만 동생놈과 둘째오빠라는 사람과는 늘 싸우는게 일상이었다.
"어..? 나 화..화장실!"
"나도 같이가지! 에이씨..치사하게 혼자가냐."
"미안해 지은아 너무 급해서.."
"아냐,아냐 다음 체육이다 체육복 갈아입자!"
"응!"
나는 그 어떤이에게도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만약내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면?
여기있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해가며 비웃을게 불보듯 뻔하다.
내가 살고있던, 2014 년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아직모르지만 돌아 갈 수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
일단 평범하게 지내는수 밖에.
내가 불과 10여년전으로 올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체육복을 갈아입고 우리는 드넓은, 우리의 추억이 깃든 운동장으로 향했다.
체육복을 갈아입지 않아 체육선생님께 혼나는 친구들도 있었고, 활동을 하기 싫어 꾀병을 부리는 친구들도 파다했다.
체육선생님은 귀찮으셨는지 우리에게 자율체육을 주셨다.
"빨리와 빨리! 이러다 자리 못잡겠어!"
"응? 무슨자리?"
"아 너도 참! 애들 축구하는거 응원해야지! 빨리!"
아, 내가 잊고있었던것이 한가지 있다면 자율체육이 있는 날이면 남자애들이 축구하는 날이랑 꼭 겹쳤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애들은 그들을 응원하기에 바빴다.
지은이가 내 팔목을 잡고 잽싸게 뛴 덕분에 우리는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헐, 오늘도 민석선배 너무 잘생긴거 아니냐?.."
김민석. 그는 우리학교 3학년
축구부였다. 여학생들이 좋아할만한 얼굴과,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어 인기가 많았다.
"어?...으..응"
딱히 내스타일은 아니여서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다.
"헐, 야 민석선배 골 넣었어!!"
경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 골을 넣어 그런지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나를 미친듯이 흔드는 지은이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어? 우와! 아..하하.. "
대충 이런 반응을 보이면 되겠지? 하고 생각한 나는 지은이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야야, 뭐야 민석 선배 이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내 주변에 민석선배의 친구가 있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다 여자애들 뿐이었고, 민석선배는 나와 지은이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내 눈앞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