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발새끼야,"
갑작스레 제 연구실에 들이닥치고는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구는 용국이 꽤나 불쾌할만도 하건만, 힘찬은 그런 용국은 초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생각보다 일찍이네. 힘찬은 어차피 예상된 시나리오라도 되는 듯 제 멱살을 잡은 용국의 손을 풀었고, 용국은 흥분한 것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제 입에서 막무가내로 욕이 튀어나와도 제어하지 못했다.
"말로 해, 말로."
"미친새끼, 너 뭐야."
용국이 힘찬에게 건낸 것은 영재의 팔에 박혀있던 정맥주사가 주입했던 약물이었다. 약물이 든 팩에는 힘찬이 미리 적어 놓았던 약물들의 이름이 있었고, 힘찬도 그것은 예상 못했던 것인지 제가 그 팩을 뺏어들었다.
"……어, 이 팩 아닌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힘찬이 더 역겨웠다. 제 딴에는 그래도 친구라서 사이가 틀어졌더라도 생일은 챙겨주고 화해도 아주 조금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상태에 이상이 온 영재를 보니 제 이성을 제어하질 못했다. 더군다나 힘찬은 그런 용국에게 아무런 코멘트도 해주지 않았다. 용국은 힘찬의 손에 든 팩을 뺏어 집어던졌고, 힘찬은 이 정도까지 흥분한 용국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신기했다. 유영재가 사람을 다 바꿔놓네. 용국이 듣는다면 자신은 백 퍼센트의 확률로 맞은 곳을 더 맞았을 게 분명하므로, 아주 조용히 말했다. 힘찬은 그 팩을 집어들었고, 용국은 천천히 몸을 숙이는 힘찬을 끌어 일으키고는 벽에 밀어붙였다.
"……뭐야, 너 이제 나한테도 꼴렸냐?"
"영재 왜저래."
"아, 걱정하지 마. 사람은 혼수 이상으론 잘 안가."
"뭐?"
"내가 내 애완쥐한테 실험해봤는데, 걘 죽어도 유영재는 잘 모르겠네."
"개새끼가!!"
용국은 힘찬의 멱살을 끌어 눕히고는 그 상태로 미친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힘찬은 그걸 일일히 막아내느라 애를 썼다. 물론 십중팔구는 다 맞았지만. 잠시 후 약간은 진정이 된 용국을 밀쳐내며 일어났던 힘찬이 쐐기를 박듯, '애새끼때문에 정신이 나갔냐.' 라는 충분히 힘찬다운 말을 했다. 용국은 이젠 상대할 가치도 못 느끼는 듯 그를 두고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종업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힘찬의 볼에 난 벌건 상처에 종업은 자신이 더 놀라 연고를 찾았다. 힘찬은 그런 종업에게 그럴 필요 없다며 말렸고, 제 손에 든 팩을 멍하지만 유심하게 쳐다보았다.
"……종업아."
"네, 말씀하세요."
"과제는 다 했어?"
"아, 네."
종업은 힘찬의 연구실 책상에 올려두었던 제 파일을 힘찬에게 주었다. 사실 힘찬에게 이딴 과제물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치사량이 얼마고, 몇 시간 이내에 죽는지는 이미 약물을 제조할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종업을 굳이 시험해 보려던것도 아니었지만, 왜 굳이 종업에게 그런 일을 시킨걸까. 힘찬은 종업이 완벽하게 해낸 과제물을 보면서 실소를 터뜨렸다.
"……그래서, 인간한테 투여하면 어떻게 되지?"
"네?"
"말 그대로."
"어…… 그 약물이라면 충분히…… 사람도 죽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제 결과에 난 오류를 종업이 짚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왠만하면 오류가 안 날 텐데도, 힘찬의 결과에는 최대 혼수, 종업의 결과는 사망이니 이건 명백한 제 실수가 맞았다. 그건 누가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도 그 결과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오류는 고의적인 거였으니까. 종업의 대답에 힘찬은 됐다면서 종업을 내보냈다. 힘찬은 선 상태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들리는 종업의 발소리를 듣고서야 힘찬은 몸을 옮겨 제 의자로 가 앉았다.
*
용국은 그래도 힘찬의 말을 믿었다. 영재는 살아있다. 다만, 깊은 잠에 빠져있을 뿐이다. 며칠 후면 다시 일어나서 제게 웃음을 보일거고, 어쩌면 틀어진 힘찬의 마음을 유일하게나마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걘 죽어도 유영재는 잘 모르겠네. 하지만 힘찬이 그 말 전에 했던 말이 제게 영향력이 더 컸다. 씨발놈. 저런 개새끼도 없다. 용국은 영재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중환자실로 데려갔었다. 용국은 다른 의사들의 관심 밖으로 영재를 두기 위해서였는지 대현이 누워있었던 침대로 그를 옮겼다. 그래도 불안했던 것인지 용국은 영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윤간에게 영재를 맡기고는 힘찬에게 갔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영재를 보러 갔었을 때 영재의 심장 박동 수는 놀라울만치 느렸다. 힘찬이 투여한 약물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원래 자신이라면 분명히 기억할 것인데, 용국은 각성제였는지 진정제였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았다. 옆에서 조심스레 바라보고 있던 윤 간호사가 이만 나갈게요, 하고 조용히 잇고는 그곳을 나섰다. 끄트머리에 있는데다가 용국의 통제로 아무도 오지 않는 침대에서 영재는 고요하게 숨을 내쉬고, 마시고를 반복했다. 삶의 목적은 없는 듯 싶었다.
"윤간!"
"어, 네! 교수님!"
"최 조교한테 영재좀 맡으라고 해 줄래?"
"……최 조교님 안계시던데."
용국은 그 때에, 제 연구실 옷걸이에 걸려있던 준홍의 가운이 기억났다. 용국은 그 말을 얼버무리고는 네가 영재를 맡으라며 윤 간호사를 다시 중환자실로 보냈다. 준홍이 제 가운을 처음 받아입고 제게 와서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며 애티를 보이고 하던 말이 기억났다. 용국은 제 연구실로 돌아와서는 그의 가운을 포함한 대현이 남기고 간 것들을 찾아 영재가 있었던 침대 위로 올려두었다. 영재원은 자꾸 커 가는데 제 주변에 있는 천재들은 점점 사라져가더라. 용국은 허탈하게 웃더니 마지막으로 영재가 썼었던 일기장을 서랍에서 찾아 들었다. 안에 적힌 일기를 대강 훑어보았다. 영재가 예전에 한창 날릴 때 쓰던 거라서 내용은 그의 나이대다웠지만 글씨체는 어째 지금만큼 괴발개발이었다. 예전에 영재의 가방에서 발견했던 것을 몰래 숨겨 둔 것이기 때문인건지 용국은 이 일기장을 볼 때 마다 찔렸었다. 내용은 영재원에서 인성교육용으로 나눠준 일기장에 쓴 것이라서인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김힘찬."
용국이 일기장을 들고 방문한 곳은 다름아닌 힘찬의 연구실이었다. 몇 개피 째 담배를 피고 있던 힘찬은 자꾸만 자신에게 찾아오는 용국이 희한했다. 힘찬은 종업이 나간 후 잠궈 두었던 문을 열고 문 밖에서 일기장만 주는 용국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그것을 뺏어들어 문을 닫았다. 용국은 순간적으로 욱하는 심정에 욕이 나올 뻔 했지만 참아냈다.
"뭐냐."
안에서 힘찬의 목소리가 울려 문 밖에 들렸다. 용국은 저가 먼저 문 닫아놓고 물어보는 힘찬이 우스웠지만 질문이라고 '일기장', 이라며 대답해주었다.
"일기장은 왜. 교환일기 쓰자고?"
"영재거다."
"……걔 걸 나한테 왜 줘."
힘찬이 그 질문을 미처 다 말하기도 전에 용국은 이미 자리를 떴었다. 힘찬은 쓰레기통으로 바로 직행하려던 일기장을 그래도 펼쳐보았다. 글씨체가 아주 제대로 못났다. 글씨 하나는 예쁘게 쓴다고 자부하는 힘찬은 일기를 읽는 데에 꽤 고생스러웠다. 날짜를 보니 이미 이 년 전이다. 내용에서는 그닥 중요한 걸 보이지 않았다. 형식적인 일기장이라 그런것인지 약속이 있었다, 강의를 들었다, 내용은 이랬다. 이딴 것들밖에 없었다. 힘찬은 일기장을 더 넘기다가 자신과 영재가 처음 만났던 날을 되새겨 그 페이지로 넘겼고, 힘찬의 아주 조금의 기대에도 못 미치게 내용 중 힘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그저 강의를 들었다, 그 정도가 끝이었다. 이 쯤 되면 용국이 왜 제게 이런 것을 준 것인지에 대한 의문부터 들었다. 힘찬은 일기장을 쓰레기통으로 바로 던져버렸고, 기분이 더러워지기라도 한 것인지 다시 담배를 한 개피 꺼냈다. 라이터에서 제대로 불이 붙지 않아 더 짜증이 난 듯 싶었다.
"……여보세요? 종업아, 여기로 와봐."
힘찬은 오늘 받은 라이터를 바로 또 쓰레기통으로 버렸고, 역시 또 이유없이 종업을 불렀다. 종업은 이제 제 연구실도 힘찬의 연구실 옆에 만들까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
-또 무슨일이신데요.
"아, 그냥 와."
아까와는 또 달랐다. 종업은 제 교수에게 불만의 말 하나 품기도 전에 전화가 끊겨 바로 그의 연구실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어떡하면 저렇게 성격이 이상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힘찬이니 그냥 순순히 받아들였다. 종업이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 힘찬은 일 같지도 않은 잡일거리들을 시켰다.
"교수님, 근데 이거요."
"뭐."
"민 간호사님이 생일이시라고 하시길래……."
"민간이?"
종업이 준 책을 힘찬은 한번 훑어보고는 책상 위로 올려두었다. '다중인격의 심리학' 이라고 크게 쓰여있는 책 제목에 아주 잠깐 화가 났지만 참았다. 종업은 하얀 봉투도 힘찬에게 주었다. 카드 고지서 날아올때나 담을법한 무색지에다가 주소란과 우표 붙이는 란만 있는 편지봉투에 힘찬은 이상한 인상을 썼다.
"생일카드요."
"생일카드? 이게?"
"왜요?"
"넌 생일카드의 정의가 뭔지는 아냐?"
그렇게 말해도 힘찬은 봉투를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저럴 줄 알았어. 종업은 그래도 아주 조금은 풀린 듯한 힘찬에 다행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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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건 중요한데 막상 읽어보면 그냥 넘어갈 편이네요... 그래도 수면 올려서 마음 편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쓸지가 조금 걱정.. 얼마 안 남았는데도 게으름 피우는 절 용서하지 마요...흡.. 요즘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으며! 사랑하는 독자분들 다음에 봐요 ㅎㅎ 언제나 고맙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