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에 백현이 채워주었던 실로 된 팔찌가 헐렁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흐뭇하게 웃는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경수의 손목을 가지고 꼬물꼬물 만지작거리던 백현의 손이. 그리고 어울리지는 않지만 귀여운 팔찌가 잊히고, 헐렁해지기 시작했다.
경수는 울고 있는 백현을 달래기도 이제는 벅찼다. 모든 연인들에게 있어서는 고비가 한 번쯤 있는 법이었다.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다. 이제는 모든 게 귀찮아질 만큼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경수는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자꾸 변명을 하게 되고 하는 모든 말들이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 내일은 끝나고 데리러 갈게 "
" 저 약속 있어요 "
" 무슨 약속 "
" …… "
" 그래 네 마음대로 해 "
경수는 돌아섰다. 그리고 백현이 경수를 안았다. 아저씨. 저한테 화난 거 있어요? 경수는 고개를 숙이고 좌우로 머릴 흔들었다. 화난 게 없어서 큰일이야. 매일 반복되는 일이 지쳤다. 제가 잘못했어요. 방금 전 울었던 백현의 목소리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수는 백현이 안고 있는 손을 풀어 돌아 백현을 바라보았다.
백현아. 이제 그만. 경수의 마른 손으로 백현이 눈물을 닦아내었다.
-
경수와 백현은 연인 관계였다. 다른 연인들과 구분하자면, 둘은 남자였다. 그리고 고등학생과 성인. 만날 시간조차 짧았고, 연락도 자주 못 했다. 처음 만났던 감정과 그 마음들이 어느새 없어졌다. 그리고 둘은 지쳤다. 시간이 약이 될 줄 알았던 게 지나면 지날수록 독이 되어갔고 어느새 둘의 사이는 금이 갔다.
그리고 둘은 헤어졌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이 이별에 모두 수긍했다. 둘은 끝내 눈물을 흘렸고 다음 인연의 행복을 기원했다. 헤어짐의 첫 느낌은 홀가분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다.
바로 옆집 살고있는 백현을. 마음 편히 만날 수 없는 게 이렇게 힘들었던가.
1.
귀여운 팔찌는 어느새 헐렁해져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팔찌를 버릴까 하다 백현과 주고받았던 편지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손목이 허전해 시계를 찼다. 팔찌를 만지는 버릇이 생긴 경수는 팔찌 대신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집 앞 골목길에서 서 있는 경수는 좁은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이 길을 어떻게 두 명이 서서 걸었지. 백현이를 안고 걸었나. 웃음이 터진 경수는 한참을 골목길에서 서 있었다. 골목길 주택에서 백현이 나왔다. 깜짝 놀란 백현은 쭈뼛쭈뼛 경수에게 인사를 했다. 서먹서먹해진 둘 사이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백현이는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 백현아 "
" 네? "
" 지각이면 "
" …… "
" 내가 데려다 줄까? "
이게 아닌데. 어느새 백현과 경수는 경수의 차에 올라탔다. 근처의 학교지만 시간을 봐선 지각이 확실했다. 경수는 빠르게 차를 몰았다.
백현이 자꾸 경수의 손목을 응시했다. 기분이 묘해진 경수는 팔찌 대신 차고 나온 시계가 신경이 쓰였다. 백현과 헤어져서 홧김에 끊어 버렸다고 오해하면 어쩌지. 경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팔찌가 끊어진건데.
" 팔찌… "
" 네? "
" 끊어졌어 "
경수와 백현은 눈을 마주쳤다. 그냥 그렇다고. 황급히 경수는 고갤 돌렸다.
" 그리고 지각 또 하네 "
" 늦잠자서.. "
" 백현아 "
" …… "
" 백현아 "
대답이 없는 백현을 경수는 볼 수가 없었다. 왠지 울고 있을 것만 같은 백현이를 볼 수가 없었다.
헤어지면 괜찮을 줄 알았던게.
헤어지고 나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