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_ peter pan - hatfelt
“으음….”
일어나 어젯밤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23분. ... ... ‘억, 뭐야!’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미친. 열한시? 미쳤다. 김삐잉. 미쳤어. 다급하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왜 나 안 깨웠어!!!!!’ 평소같았으면 내 방으로 뛰어 왔을 엄마인데, 이상하게 고요했다. 기분까지 이상해져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까지 누워있던 이 곳은, 내 방이 아니었다. 이불도. 벽지도. ... 다. 무슨 상황인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다.
납치? 몽유병? ... 뭐, 시공간 초월?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핸드폰을 다시 켜보니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진짜, 되는 게 없네. 급하게 문을 열고 나가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방 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나보다 한 뼘하고도 조금 더 키가 큰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 오고 있었다.
“뭐야.”
“아... 저, 그게.”
“...”
“그... 저는 분명히 저희 집에서 잤는데... 왜, 일어나보니까. 그 쪽 집에 있는 건지... 저도 잘.”
내 말에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오른쪽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가볍게 바닥에 던져놓은 남자가 나를 내려다 봤다. 무심한 그의 표정이 제법 위협적이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핸드폰도 신호가 안 잡히고. 그 말을 끝으로 핸드폰을 이리 저리 들어 보이며 신호가 잡히기를 기다리는 날 보던 남자가 내 손에서 그것을 빼앗아갔다. 눈썹을 찌푸린다. 뭐야, 이 고물은. 남자의 말에 발끈했다. 아이폰 식스거든요! 내 말에 남자가 중얼거렸다. ... 뭐래. 입술을 삐죽이며 남자의 손에 붙잡힌 내 아이폰을 다시 가져왔다. 남자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아... 귀찮게 됐네.”
“네,네..?”
“야. 오늘 날짜 말해봐.”
“...예?”
남자의 말에 되묻자 인상을 쓰며 말한다. 알아 먹었으면서 되묻지 말고. 오늘 날짜 말해보라고. ... 뭐래. 지가 이상한 말만 해대면서 나한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야. 저거 완전 순 정신병자 아니야?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말을 더듬었다. 다,당연히... 2014년 9월 2일이죠. 내 말에 남자가 마른 세수를 했다. 아니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유를 말해줘야 내가 알지.
“너 자꾸 속으로 궁시렁대지 마라.”
“네...? 아, 아닌데요.”
“아니긴 개뿔.”
이것때문에 다 알거든. 그 말을 끝으로 남자가 제 오른쪽 귀 뒤에 붙어 있는 살색의 패치를 보여준다. 뭐... 어쩌라고. 뭐 어쩌라고? 내가 속으로 생각한 말을 되묻는 남자의 말에 깜짝 놀라 헐. 대박. 어떻게 알았어요? 라고 묻자 남자가 말한다. 이것때문에 안다고. 그니까 너 속으로 궁시렁대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남자에게 대답도 하지 못 하고 어버버거리며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 꼬르륵. 뱃속에서 민망한 소리가 적막한 내 방, 아니. 남자의 방에서 울렸다. 아씨. 작게 말한 남자가 방 문을 열고 나가더니 곧이어 알약 세개와 물 한 컵을 들고 와 내게 건넨다.
“이... 이게 뭔데요?”
“수면제같은 거 아니니까 먹어. 너 배고프잖아.”
“...배가 고픈데 왜 알약.”
“먹으라면 먹어. 좀. 굶어 죽기 싫으면.”
그렇게 말한 남자가 문을 다시 열고 거실로 나간다. 그의 태도에 일단 의심을 버리고 알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남자를 급하게 불렀다. 아니. 저 그것보다 학교 가야 하는데요! 내 말에 잠시 조용하던 남자가 대답했다. 뭔 학교야. 좀 더 자. 너 학교 안 가도 되니까. 남자의 말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물었다. 학교를 왜 안 가요! 저 집에 가야 되는데. 빨리 보내주세요... 알약도 먹었어요. 진짜 수면제같은 거 아니죠? 내 말에 이상한 기계같은 것을 들여다 보던 남자가 인상을 쓰며 내게 다가왔다. 깜짝 놀래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말 되게 많네. 쪼그만 게.”
“... 아니, 전. 그게.”
날 내려다 보며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한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학교 안 가도 돼. 지금은 2116년이니까. 나도 너 빨리 보내 버리고 싶은데. 아쉽게도 지금 집에는 못 가. 두달은 여기서 지내야 해.”
“...네? 아니 무슨. 알아 듣게 설명을 해야...”
“최대한 알아 듣게 설명해줬는데, 나는.”
남자의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 2116년이라니. 이게 무슨 개똥같은 소리... 볼을 한 번 꼬집었다. 아 미친, 아파. 꿈이 아니었다. 꿈이 아니라면... 내가 왜 여기 있는데? 그러면 2014년의 김삐잉은? ... 엄마 아빠가 나 걱정하실텐데. 김한빈이랑 같이 등교해주는 것도 나뿐이라 그 자식 혼자 갈텐데. 우선은 이게 꿈이 아니란 것이 확실해졌다. 그 생각에 눈가가 젖기 시작했다. 시발. 김삐잉 인생이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 구나. 겨우 18년밖에 못 살았는데...
“꿈이야.”
남자가 말했다. 또 내 마음을 읽은 건가... 아,아니. 왜 벌써 넌 그걸 믿고 있어. 김삐잉. 저 정신병자 말을?
“꿈이라고 생각해. 그 날도 똑같이 잠 들었는데 여기로 오게 됐다며.”
“...”
“여기서도 똑같을 거야. 두 달만 지내면 거짓말같이 돌아가 있을 거야. 너의 현재로. 그러니까, 네 세계로.”
“...”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여기서 의지할 거는 이제 나뿐인데, 정신병자새끼 말 좀 믿어 봐라. 나쁠 거 없을테니까. 그렇게 말한 남자가 자신의 귀 뒤에 붙어 있던 패치라는 것을 떼어 내 귀 뒤에 붙인다.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온 남자의 손이 목 부근에 닿자 몸이 움찔했다. 남자를 바라봤다. ‘됐지? 이제 좀 믿어라. 안 믿겨도 믿어. 여기는 너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 천지니까. 그리고 내 이름은 남자가 아니라 구준회거든.’ ... 대박. 남자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남자의 마음이 들렸다. 그러니까 남자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그게 육성으로 내 귀에 들렸다. 깜짝 놀라 어버버 거리는 나를 바라보고 피식 웃더니 내 귀 뒤에 붙어있던 패치를 다시 뗀다.
“이제 좀 믿겨지나, 정신병자 말이?”
“돌아갈 수 있다고... 하셨죠. 두달만 있으면.”
“어.”
“..왜, 제가 이 곳에 오게 됐는지... 혹시, 아세요?”
... 그야. 나도 모르지. 남자가 말했다. 시발, 잘 나가나 싶었더니. 다행히 패치를 이제서야 제 귀 뒤에 붙인 남자는 내 마음을 읽지 못 한 듯 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것인지 그가 물었다. 너 내 욕했지. 추궁하듯 묻는 남자에게 속으로 대답했다. 아뇨. 안 했는데요.
“입 달고 속으로 말하지마.”
“...네.”
* * *
김동혁은 쓸 데 없는 것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물론 녀석과 내가 인류학과에 재학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나는 딱히 그것을 파고 드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저 교육과정에 따랐고 수업에 제대로 임하여 학점을 따기에 바빴다. 하지만 김동혁은 달랐다. 인류학에 관심이 피곤할 정도로 많은 녀석이었다. 그것까진 좋다. 자신이 새로 알아낸 사실이 생길 때 마다 나에게 보고했다. ‘있잖아, 준회야...’ 녀석의 이야기를 흥미로워 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알게 된다고 해서 좋을 건 없었다. 민주적이고 윤리적이었던 역사는 끝났다. 현재의 우리는 철저한 개인주의에 찌들어 살았고, 그러한 사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나와 김동혁같은, 소수의 무리에 불과했다.
“아니. 과거의 사람들을 데려와서 실험을 한다는 게. 진짜 쩔지 않냐?”
“어. 존나 쩔어.”
“아, 새끼야. 무성의하게 대답하지 좀 말고.”
“바라는 것도 많아. 우리 동혁이는.”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말하는 나를 한 번 째려 봐주고는 제 말을 다시 이어가는 김동혁이다. 그러니까 불과 백년 전의 사람들도 과학 기술이 이렇게 발달한지 모르잖아. 그래서 가능하다고. 녀석의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 그러냐.
“어. 한 달은 적응기간. 무작위로 맡겨지는 거지. 그리고 한 달을 돌봐주고 나면 정부에게 넘어가는 거야. 실험시설로.”
“누가 돌봐줘. 갖다 버리지 않으면 다행이네.”
“그니까 들어봐. 그래서 포상금이 주어지는 거지. 한달을 돌봐주고 정부에게 그 사람을 넘기면 포상금을 받는 거야.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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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는 내가 더 무서워 해야 할 상황에서 자신이 날 무서워 했으며, 나를 경계하는 눈빛은 흡사 납치범을 바라보는 인질의 눈빛이었다. 혹은 정신병자를 바라보는 눈빛같기도 했고. 잠시 상황 파악이 필요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인지,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의 퍼즐은 ‘저 여자아이는 실험 대상자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실험... 실험이라. 상황 파악 후에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달을 맡아주고 보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차라리 나보다는 김동혁에게….
아니면…
여자아이는 상당히 입이 거칠었다. 겉으로는 아무말도 못 하는 게 속으로는 시발, 시발 잘도 욕을 했다. 시발? 패치를 괜히 산 듯 싶었다. 별 게 다 들려. 좆같게.
패치를 제 귀 뒤에 붙이고 난 뒤에야 내 말을 믿는 듯 했다. 잠시 그것을 붙였다 뗀 후에, 내게 물었다. 자신이 왜 이 곳에 오게 된 것이냐고. 잠시, 아까 고민하던 것이 떠올랐다. 한 달을 맡아주고 보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귀찮으니 김동혁에게 보낼 것인지. 아니면... ... 녀석에게 말했다. 그야, 나도 모르지.
결정이 난 것이었다. 나는 여자 아이를 실험시설에 넘길 생각이 없었다.
내 말에 여자아이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너 내 욕했지. 내 말에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아뇨. 안 했는데요. 그런 녀석의 이마를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밀며 말했다.
“입 달고 속으로 말하지마.”
“... 네.”
한 달을 함께 있으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이에 나에게 정을 붙일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을 실험 시설에 보내기에 내가 죄책감이 생길 것 같았고, ... 사실을 알게 된 녀석이 세상이 떠나가라 울면서,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이 곳을 떠나는 것을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단지 그 뿐이었다. 귀찮더라도 두 달은 거짓말처럼 훌쩍 지나갈 것이다. 김동혁에게만 잘 숨기면 되는 것이다.
두 달이 지나면 녀석에겐 꿈이 될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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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물어봐주세요!
과거보다는 현재의 콘들과 미래의 준회 이야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보시다시피 준회가 겁나 츤데레...
사실 창피해서 언제 삭제할지 모를 글인데... 올려볼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