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예요? 임자 있으면서 왜 나 그렇게 봤어요?"
"...."
나는 할 말이 없었지.
그렇게 둘이 꽤 오래 침묵했던걸로 기억해.
"근데요..."
"...."
"난 선배가 좋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난 나한테 욕을 할 줄 알았어.
"저기요..."
"왜요?"
"알잖아요. 지금 봤잖아요. 전 그쪽 아시는 형인 김태형씨 약혼자입니다. 내가 미리 말 안하고 괜히 쳐다보고 그랬던 건 사과할게요"
"나는 그런거 안따져요. 골대 세워져있으니까 골키퍼 영입해와야죠. 내 마음에 들면 그 사람이 어느팀 골키퍼인지는 상관 없어요"
하....물론 나의 이상형, 나의 스타일은 김태형씨보단 전정국이야.
그런데 나의 상황은 집안끼리의 신뢰문제고, 미리 약속된 인생의 일부야.
그리고 김태형씨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핵심이고.
결론은, 난 김태형씨를 선택하기 위해 전정국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거지.
"전정국씨..여기까지 온 이쪽 사람이면 더 잘 알겠네요? 약혼이라는 의미가 이 세계에서 무슨 의미인지"
"어차피 아직 태형이형의 약혼자따위 중요하지 않아요. 언론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고."
"...."
"나한테 와요. 선배가 나한테 오면 내가 책임지고 집안문제 막아줄게요"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요.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줘요..."
"그럼 왜 내 눈에 띄었어요."
"미안해요..."
"난 말할거예요. 태형이형한테"
내가 붙잡기도 전에 전정국이 우리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가버렸어.
안에서 김태형씨랑 얘기하고 있겠지?
나는 아직 쌀쌀한 날씨에 겉옷하나 없어서 오들오들 떨면서 문 밖에서 기다렸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데 너무 불쌍하고 처량하게 보길래 더 슬펐어.....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김태형씨가 비속어를 쓰면서 문을 박차고 나왔고, 전정국이 그 뒤를 이어서 나왔어.
나는 김태형씨가 문을 너무 벌컥 열어서 문에 밀쳐져 넘어졌고, 남자 둘은 그것도 발견 못하고 나갔어.
방에 들어갈까? 말까? 너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들어가면 왠지 안 될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밖에 그냥 서있었어.
그렇게 또 한시간 쯤 지났을 걸.
김태형씨가 복도를 걸어오더라고.
"김태형씨..."
"들어와요"
나는 진짜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들어갔지.
감기에 걸린 건 확실해졌어.
몸살까지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외간남자 탐냈던 건 내 잘못이지만 김태형씨가 좋게 넘어갔으면 좋겠어..
"핸드폰 내놔요"
난 찍소리도 못하고 내 핸드폰을 반납했지.
김태형씨가 의자에 앉아서 내 핸드폰 잠금화면을 풀 때 난 뒤에서 머리가 지끈거리는걸 느끼면서 뭘 찾나 힐끔거렸어,.
전화부에 들어가서 어떤 번호를 치니까 전정국 번호가 뜨더라구.
그 번호를 지웠어.
"전정국이랑 다시는. 연락하지마요. 이런 일도 없게 하고"
"알겠어요...죄송합니다..."
"전정국 독한 놈이예요. 앞으로도 계속 달라붙을거라구요. 혹시 그 쪽이 넘어가는 순간, 가만있지 않을거예요. 난 날 배신한 사람 안봐줘요"
그렇게 김태형씨가 방에 들어갔어.
다행히 부모님들껜 말하지 않을건가봐.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생각이 들어서 나는 김태형씨가 방에 벗어놓은 파티복 정리하고 가운이랑 수건 샤워실 밖에 걸어놓은 다음에 침대에 걸터앉았어.
그리고나서 알았지. 아까 넘어질 때 그 까끌까끌한 바닥에 쓸려서 손바닥이 까지고 오른쪽 무릎에 멍이들었다는 사실을.
또 몸살이 제대로 났다는 것을.
하늘이 내린 벌인지 나는 김태형씨 씻고 나온 다음 나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씻고 나왔어.
그리고 김태형씨가 무슨 말을 하긴하는데 알아듣지 못한 채 네...네...이러기만 하고 그 다음 기억이 없어.
"정신이 들어요??"
온 몸이 나른할 때 김태형씨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보니 호텔방인데 창문 밖은 환해.
"지..지금 아침이예요?"
"예. 내가 먹을거 뭐 있냐고 물어보니까 네 해놓고서 또 뭐 있냐고 하니까 또 네... 어디 아파요? 하니까 네... 감기예요? 해도 네...뭐 구체적인 답을 안줘서 저 여자 뭔가 했는데 그대로 쿵-"
"죄송해요...어제 피곤했나봐요...아침 드셨어요?"
"왜요 안 먹었다고 하면 그 몸으로 뭐라도 사오려고요?"
"그래야죠..."
"호텔엔 룸서비스가 있잖아요"
"아..."
"아직도 정신이 덜 돌아왔네. 어서 자요 다시"
겨우 일어나던 나를 다시 눕혀서 이불까지 폭 덮어주고 김태형씨가 옆자리에 누웠어.
내가 진짜 다시 일어나려고 했는데 정말 못일어나겠는거야. 그래서 힘 안빼고 누워있었지.
"비행기 시간 놓쳤는데, 특별히 봐주는거예요"
"아...미..미안해요...어제부터...나는...흑....계속...흐흑...미안한 짓,,만 하고..."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약해졌는지 눈물이 나는거야 글쎄.
"다 괜찮으니까. 아프지만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