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겠어? 같이 가줄까?"
"아니야, 괜찮아."
종대가 잔뜩 근심어린 얼굴로 민석을 쳐다보았다. 민석이 그의 호의를 사양하며 고개를 저어냈다. 종대는 현관까지 따라나가 그를 배웅해줬다. 신발에 발을 밀어넣는 민석의 뒷모습을 보던 종대가 방으로 들어가서는 검은색 목도리를 들고와 민석의 목에 둘러주었다. 민석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종대에게 손인사를 건냈고, 종대 역시 인사를 받으며 아파트 복도로 걸어가는 민석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현관문을 닫지 않았다.
제법 추운 날씨에 입김이 절로 나왔다. 종대가 둘러준 목도리가 아니였더라면 그는 걷는 동안에 꽤나 추위를 탔을 것이다. 정류장에 다다른 민석이 코트안에 손을 집어넣어 쪽지를 펼쳐보았다. 버스를 두번타고 기차도 타야하네. 민석이 저 혼자서 궁시렁 거렸다. 지난 일년동안 일부러 발길을 끊어냈던 곳이었다. 지금쯤 먼지가 쌓여 형태가 망가졌는지, 누군가 훼손을 해놓고 간것은 아닌지 약간은 불안해진 민석의 앞에 버스가 섰고, 그가 올라탔다. 두번째 버스도, 그리고 기차도, 민석은 순조롭게 탑승했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잠이 든 새에 기차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며 사람들은 북적이며 저마다 갈길을 갔다. 민석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그런지 몸이 약간은 찌뿌둥해졌다.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지는 않았다. 민석이 걸음을 재촉하다 바로 앞의 꽃가게에서 멈췄다.
"안개꽃 한다발만 주세요."
민석이 점원에게 받은 안개꽃 한 다발을 들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더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 망가지거나 훼손되지는 않았다. 루한이 가득 담겨져있는 그 작은 공간을 민석은 오랫동안이나 바라보았다. 눈에는 유리창 너머 희미하게나마 루한의 모습이 비쳤다. 둘 다 웃고있었다. 그 미소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으나, 둘은 분명 웃고있었다. 갈수록 민석의 입꼬리는 하향세를 타며 입가가 부들부들 떨렸다. 떨리는 것은 비단 입꼬리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작은 체구마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뗐다.
"봄은 가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하잖아."
"..."
"아마 오래걸리겠지."
"..."
"내가 너를 그냥 추억으로만 생각할때까지는."
"..."
"아주, 아주 많이 오래걸리겠지."
한적한 납골당 안의 민석이 미소를 머금은 채 편안해보이는 루한의 사진을 응시했다. 민석이 두손으로 잡고있는 안개꽃이 가녀리게 흔들렸다. 그것이 문틈 새로 들어오는 바람때문인지, 민석 때문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길가의 눈들은 이제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곧 차디찼던 지난 겨울이 저만치 멀어지고 봄이 찾아올 것이다. 루한이 그렇게 좋아했던 벚꽃도 곧 활짝 만개하며 반겨줄 것이다. 따사롭고, 부드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