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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척 했지만 이모께 들은게 있다.
전정국이 아저씨랑 싸워서 새벽에 집을 뛰쳐나갔는데,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거다.
카드를 하나 가지고 다니는 그 녀석은 용돈을 따로 받지 않고 그 카드로 충당하고는 하는데 카드값 절반은 아마 내 밥값으로 나가지 싶다.
아침 못 먹었다 하면 나 우유 사먹이고, 야자 끝나고 배고프다 하면 빵 사먹이고. 애가 원체 돈 쓰는데가 없어서 나 먹이는데만 한도의 9할을 쓰는 것 같은데, 이모는 이번 달에 카드값이 두배나 나왔다고 했다.
" 그래서 정국이 아빠가 막 혼내니까 입만 꾹 다물고 있더라. "
" 왜 그랬대요..? "
" 정국이 아빠도 원래 그런 애가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고 이유는 묻지도 않는데 나한테 와서 너 생일 선물 사준다고 썼다면서, 이때까지 안 쓴거 몰아썼다고 생각하라고. 미안하다고 얼마나 그러던지. 근데 너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그러더라, 얘. 모르는 척 하고 있어. 또 속상해할라. 좋겠다, 여주야. 이모는 생전 선물 하나 못 받아봤는데. "
" 에이, 이모 뭘요. 제가 해드리면 되지. 무튼 제가 찾아볼게요. "
이모의 말을 듣고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있었다.
왜?
왜 내 선물을 사려고 그렇게 많은 돈을 쓴거야?
얼른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했는데 답이 한참 뒤에나 왔다.
둘이 함께 잘 아는 김태형네 집이라고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이유를 선뜻 말하지 않길래 진짜 숨기고 있는구나 했다.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당일날 확인해보기로 하고 더 이상 말은 안했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려고.
내 생일을 매번 장문의 편지로 때우던 놈이라 이번 행동이 더 이해가 가지 않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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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또래답지 않게 점잖았고 생각이 깊었다.
제 친구들이랑 우르르 몰려 다니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언행이 거칠지도, 탈선과 비슷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나에게 맞춰주고, 낮춰주는 것 같았다.
밤잠이 많아서 야자를 하기 싫어했음에도 날 데려준다고 야자를 신청하는 것도, 아침에 바빠서 허겁지겁 하는 나를 위해 넥타이와 명찰을 챙기는 것도, 맘에 드는 코트를 사려고 돈을 모으는 날 위해 함께 있을 때 자기 돈만 쓰는 것도.
다 나에게 맞추려고 하는 행동이니까 말이다.
내가 전정국을 좋아한다고 깨달은 이후로 전정국의 저런 행동은 나를 충분히 오해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에서 어느때와 같이 그 녀석을 모델로 불렀던 날에도. 어릴 때 부터 지겹도록 봐오던 몸인데 그 날은 처음본 것 처럼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 다음날부터 티나게 정국이를 피해 다니긴 했지만 그 녀석의 눈빛에는 의문이 가득해보였다. 미안,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내 마음 숨기기 어려울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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