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tality |
도련님,어서 일어나셔야죠.벌써 해가 중천에 떴다구요! 유모의 목소리에 눈을 게슴츠레 떴다.커튼을 젖히는 소리가 거칠게 나더니 캄캄했던 방 안이 조금은 밝아졌다.분명히 찝찝하고 기분 좋지 않은 꿈을 꿨던 것 같은데,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손으로 얼굴이며 목을 더듬어 보니 축축한 땀이 손에 묻어나왔다.유모,목욕물을 준비해 줘요.유모가 고개를 주억거렸다.크게 난 창에 칙칙한 회색빛 먹구름이 잔뜩 보였다.곧 비가 내릴 듯한 모양새였다.유모가 말한 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먹구름 밑 항구의 사람들은 배를 정비하며 출항할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한참동안 그 모습을 쳐다보는데 유모가 나에게 목욕물이 준비가 되었다고 하며 욕실로 등을 떠밀었다.얼른 씻으세요,도련님.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요?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욕실로 가며 봤던 창문의 끝자락에는 그들의 배가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간단히 씻고 나오자 유모는 내게 답답해 보이는 정장을 건내었다.이거 입기 싫어요,유모.내 투정에 유모는 아버지의 명이라며 쓰게 웃었다.누군가의 생일이라거나 할 때만 입던 것을.아버지는 나에게 '오늘'을 좋은 날이라고 칭했었다.내가 김종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아버지는 조금 악한 구석이 있었다.어쩌면 아버지는 그런 성격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던 걸지도 모른다. 도련님,몸 조심히 다녀오세요.유모는 내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주며 말했다.나는 응,하고 대답하고는 마차의 위로 올랐다.이랴!마부가 말을 채찍질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다녀 올게ㅡ!점점 멀어지는 유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얼마나 달렸을까,그러고 보니 마차에 오른 사람은 나 혼자였다.말이 달리는 소리와 바퀴가 끌리는 시끄러운 소리 사이로 마부에게 아버지는요?하고 묻자 먼저 가셨다고 했다.아마 김종인을 감시하러 먼저 간 것일테지. 도착했습니다.마부가 말했다.조금 멀리 떠나온 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마부가 문을 열어주는데 주변에 흙먼지가 가득 일고 있었다.불쾌한 기분에 정장 소매로 입가를 막고 내리는 데도 기침이 나왔다.그의 죽음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정말 많았다.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마차의 등장에 잠시 조용해졌다 다시 시끄럽게 떠들었다.나를 곁눈질 하는 사람도 있었다.영지에서 내가 '왕자님'쯤으로 통한다는 것은 유모가 언젠가 귀띔해 주어 알고 있었다.저 멀리 고개를 숙이고 있는 종인이가 보였다.군데군데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 흰 옷을 입은 그가 두 손을 결박당한 채로 서 있었다.마지막으로 봤을 때 보다 야윈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당장이라도 종인아,하고 크게 부르고 싶었다. 나는 네 죽음에 꽤 덤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그게 아니었나 보다.막상 곧 죽어버릴 종인이를 마주하게 되자 가슴이 세차게 뛰고,눈은 곧 눈물을 떨어트려 버릴 것 같이 축축해졌다.나는 급한 몸짓으로 장총을 들고 규칙적으로 서 있는 병사들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맨 앞에 자리잡았다.병사들은 내 무례한 행동에 뭐라 운운하지 않고 몇번 힐끗거리다 시선을 돌려버렸다. 나의 아버지가 단두대의 옆으로 걸어 나온다.김종인,죄목 살인.그리 크지 않은 아버지의 위엄있는 목소리는 모두가 숨죽인 이 공간에선 크게 들려왔다.아버지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병사들의 손에 붙들린 종인이가 단두대로 끌려갔다.아아,나의 아버지는 같은 민족에게 어쩜 저리 잔인해질 수 있을까.종인이가 비로소 단두대의 앞에 섰다.병사들의 손에 종인이의 고개가 들렸다.칙칙한 회색빛 세상 속에서 반짝 빛나는 눈이 이리저리 구르다가 나와 마주치니 웃는다.그 웃음이 나는 괜찮아,하고 내개 말을 건내는 것 같았다. 끼익대는 소리와 함께 사선의 칼날이 높이 들렸다.종인이는 생채기가 가득한 맨 발로 흙장난을 쳤다.꾸물대는 종인이에게 병사가 시끄럽게 욕을 했다.종인이는 빈정대는 표정을 한 채 단두대의 위로 올라갔다.와아,숨죽이고 있던 관중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것 같아 질끈 감아버렸다.저기서 어느 여인의 가느다란 비명이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천천히 눈을 떴을때, 너는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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