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금방 갈 것 같지는 않아서 라면을 끓여다 줬더니 밥까지 말아서 잘만 먹더라.
다 먹더니 내가 치우는 동안 도와주기는 커녕 소파에 다시 기대 앉는 지민. 아 기분이 뭔가 되게 나쁜데.
진짜 죽일까. 우리 아빠도 저러진 않아.
너 집에 좀 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정말 못 들은건지, 못 들은 척 하는건지.
뻔뻔함의 대명사 박지민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예.
"야, 너 진짜 양심 없어."
사람이 말이야, 양심이 있으면 고맙단 말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라면도 끓여줬겠다, 따뜻한 집도 제공하겠다, 이 얼마나 좋은 대접이야.
주절주절, 또 불평을 늘어놓는 나를 키득거리면서 보더니 대답하더라고.
"그럼 뭐, 뽀뽀라도 해줄까?"
입 다물래, 싸울래. 둘 중에 하나 골라라.
씻던 가위를 들고 얘기하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고개를 돌리는 놈.
아 미친 진짜 그래도 꼴에 남자라고 설레고 난리야.
보나마나 빨개졌을 볼을 손등으로 대충 식히며 설거지를 마저 했어.
오늘 나 완전 신데렐라. 는 내 망상.
다시 옆에 와서 앉는 날 보고는 박지민이 휙 돌아 앉더라.
난 정면을 보고 앉아 있고, 박지민은 날 보고 옆으로 앉은 자세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하려나.
그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꺼내는거야.
박지민 인생 중에 저런 진지한 표정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없는데.
"있잖아, 너 그거 기억 나냐?"
일곱살 때인가, 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서 다리 부러진 날.
그 때 너 겁나 울었잖아. 나 부여잡고는 다리야 죽지마, 하면서.
조용히 못하니. 입 다물어 얼른.
넌 다 좋은데 그 주둥이가 문제야. 내가 입을 찰싹 가볍게 때리자 표정을 찌푸리더라.
너무 방정맞아 넌. 남자애가 말이야, 말이 많아가지고.
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다시 옛날 얘기를 주섬주섬 꺼내 푸는거야.
내 말 죽어도 안 듣지. 그냥 추억팔이나 같이 할 겸 가만히 들었어.
너 나랑 결혼한다고 계속 붙어 다녔던 건 기억, 아 왜 때려!
그것도 있잖아, 내가 어떤 여자애한테 고백 받았을 때 난 너꺼라면서 끌고 가기도 했는데. 보기 드문 박력 여성이었지.
근데 왜 요즘은 고백 받아도 그냥 가만히 있음? 솔직히 조금 실망이다, 너.
그러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날 쳐다보는거야.
뭔가 되게 그윽하면서도, 굉장히 어색한 그런 눈빛.
"너,"
"나, 나 뭐. 내가 왜. 뭘 봐."
"그 때는 참 착했는데 지금은 왜 이러는지……."
아 괜히 당황했잖아. 얘는 왜 또 뜬금없이 분위기 잡아가지고.
그래 기대도 안 했어. 내가 어깨를 또 찰싹치자 나는 손이 맵다면서 징징.
좀 착해져 봐. 소리를 지르는 놈에게 나도 소리를 지르면서.
야, 나처럼 착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라면도 끓여다주잖아. 뭐가 불만이야.
티격태격. 소꿉친구의 단점이 있다면 너무 친해서 자주 싸운다는 점.
싸우는 것도 아니지마는, 뭐 그런 것 빼곤 얘도 괜찮은 새끼인데.
아 정정할게, 외모만 조금 괜찮은 애. 정신은 아직 안녕하시지가 못해서.
"넌 그 성격 좀 고쳐야 해."
웃기지마, 너 성격이 더 이상하거든. 쉴 새도 없이 투닥거리는 우리.
뭔 남자애가 이렇게 눈치가 없어!
분위기를 잡았으면, 끝까지 끌고 가던가. 괜히 기대 하게나 만들고.
아니지 나 왜 기대하는 거야. 뭘 기대하는거야.
아 당황스럽네. 얘랑 계속 있었더니 나도 정신이 이상해지는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니까 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장난을 치는 지민.
기분 되게 이상하네. 야 너 얼른 집에 가.
괜히 좀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물론 혼자 그런거지만.
지민의 팔을 잡고 일으키니까 일단 일어나긴 하는데 나갈 생각은 전혀 없어보이더라고.
억지로 등을 떠미니까 그제야 장난을 그만 두면서 물어보더라.
"아니 이제 막 재밌는데 왜 갑자기 나가래."
너만 재밌는거거든요. 당해보고 얘기하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밀어내는 날 보면서 계속 쫑알쫑알.
그러더니 다리에 힘을 주고 안 나가는거야. 어쭈, 비겁하게 힘 쓰기가 어딨어.
나 내일도 놀러올거니까 일찍 일어나 있어라.
누가 누구보고 지금 명령질. 밀던 행동을 멈추고 왜, 라고 물어보니까 들려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너 자고 있으면 내가 또 사진 찍을거야."
두달 전에 찍은 사진 아직도 있음, 웃겨서 우울할 때마다 꺼내본다. 잘했지.
너님이 우울할 때도 있냐. 안 나가?
우리 엄마가 쟤한테 비밀번호를 알려준 건 인생 최대의 실수인 듯.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내가 예전에는 착했는데 지금은 아니란 소리인거지 지금.
문 다 잠궈버릴거야. 잠금장치 있는 건 죄다 걸어놓을테다.
"아 근데,"
또 뭐. 무슨 헛소리를 내뱉으려고 또.
시큰둥한 내가 안 보이는지 활짝 웃으면서 말하더라.
"너 라면집 차려도 될 듯, 엄청 잘 끓여."
우리 엄마보다 라면은 잘 끓이네. 다음엔 밥 종류로 요리 한번 해봐. 내가 평가해줌.
웃기지마, 초대도 안 할거야. 얼른 집이나 가시지.
제 집 비밀번호를 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곤 들어가는 뒷통수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
아무리 소꿉친구라고 해도 나도 아까처럼 설렐 때가 종종 있는데.
쟤도 그럴려나. 아 생각해보니 그럴 일 없겠구나.
쟤한테 나는 그냥 동성인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네 내가.
그리고 누가 소꿉친구를 좋아해.
세상에 반이 남자랬다. 얼른 남자친구나 만들어야지. 외롭다,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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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님, 지렁이님, 봄날님, 청춘님, 보름달님, 이킴님, 꾸탄님, 중전님, 꽃잎님, 짱구님, 취향저격님, 솔님, 정국아누나가미안해님,
권지용님, 민슈가님, 슈가파파론리파파님, 듀드롭님 ♡
이거 참 소꿉친구가 있긴 했는데 연락 안 된지 꽤 돼서 느낌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네요.
그러면 연애라도 해봤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눈물을 닦는다)
여러분 연애 다 부질없습니다 한번을 해도 열번을 해도 제대로 해야 그게 연애인거에요
좋은 사람 많아야합니다 그게 진리에여 얼굴 잘생기면 좋고 돈 많으면
무조건 만나야합니다 예 뭘 따져요 무릎꿇고 제발 나랑 사귀어주겠니 하고 빌어야합니다 그게 맞아여
장난이구요 님들 좋아해주는 사람 만나세요 갑자기 감성 터지네요 (눈물을 다시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