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정말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일어났다고 톡을 보내기가 무섭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라고.
잠도 없나, 밤 샌 건 아니겠지. 한심하게 쳐다 보는 내 시선을 역시 깡그리 무시한 놈은 생글생글 웃으며 소파에 앉더라.
완전 제 집이구만. 아직 잠이 덜 깨서 따끔거리는 눈을 비비니까 또 그게 웃기다고 큰 소리로 웃는 박지민.
진짜 문 걸쇠를 걸어놔야지. 무슨 일어났다고 보내자마자 들어와.
누가 보면 하루종일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줄.
소파에 편한 자세로 기대 앉더니, 지민이 말했어.
"역시 너네집 소파가 편하단 말이야."
우리집 소파도 편하긴 한데, 이런 느낌이 없어.
뭐라고 해야하나, 너네 집 소파가 조금 더 편하고 익숙한 느낌임.
조잘조잘, 잘도 말을 늘어놓는 지민을 보며 다시 한번 헛웃음 밖에 안 나왔어.
당연하지 멍청아. 너가 우리집에 밥 먹듯 들렸는데 안 익숙하면 그게 더 이상한거야.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니까 생각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녀석.
"너도 아침 안 먹잖아."
지금 아침이라 하기도 애매하거든. 열두시에 가까운 시간을 보면서 내가 말하자, 그거나 그거나 하면서 또 웃어 넘긴다.
저래 가지고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똑 부러지게 살아야지.
뭐 딱히 할 것도 없고, 우리 둘다 티비를 보는 편도 아니어서 그냥 지민의 옆으로 가서 앉았어.
부시시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더라.
이거 데자뷰인가. 왜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이 정적도 낯설지가 않은거지.
"야."
"아, 깜짝이야. 왜, 또."
"우리 나갈래?"
어딜 나가 갑자기.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내 행동 정지.
나 지금 세수도 안 했는데 무슨 소리야.
어쩐지 앞집 놀러오는 주제에 뜬금없이 빼입었더라. 처음부터 나갈 작정으로 온 거였구만.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날 보더니, 픽 웃더라.
"안 꾸며도 예뻐."
웃기지마. 그럼 왜 웃은 건데. 언행불일치.
뭐 어떻든 어차피 집에서는 할 게 없다 싶어서 씻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나저나 놀러 다닌 지도 좀 됐네.
오랜만에 돌아 다닌다는 생각에 괜히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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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입은 옷이 박지민이랑 커플이었어.
똑같은 옷은 아니었지만, 같은 하얀색 셔츠에 니트.
워낙 붙어 자랐기에 취향도 비슷해진건가 하면서 별 신경 안 쓰였어.
옆에서 자기랑 그렇게 커플로 맞춰 입고 싶었냐고 깐족거리는 박지민만 아니었더라면.
근데 문제는 나와서도 우리는 딱히 하는 것 없이 돌아다니고만 있었어.
영화 볼까. 아니. 배고프면 밥 먹을까. 아니, 괜찮아.
물론 일방적인 내 거절이긴 했지만. 사실 조금 더 걷고 싶은 것도 있었고.
영화는 지금 라인업이 그닥 좋지가 않아서.
계속 거절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지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가볍게 걷는 지민.
쟤는 어떻게 인생이 저리 행복할까. 새삼 머릿속이 궁금해지더라.
계속 하염없이 걸으면서 말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이 길도 십년 전이랑 많이 바뀌었다 어땠다, 비교를 하기 시작했어.
그 때야 초등학생이었으니까 엄마 손 잡고 걸어다니는 길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둘만 와서 걸으니까 좀 묘하기도 하고.
이 길이 변하는 과정을 우리가 지켜봐왔고.
저기 아줌마는 아직도 순대국밥 장사하시네, 저기 맛있는데. 조금 있다가 갈까.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에 잠겨 이것저것 말하는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지민.
한참 뒤에야 지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걸 알게 된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말하다말고 입을 꾹 다물었어.
그러니까 왜 잘 얘기하다가 그만 두냐고 입을 툭툭 치더라.
야 너가 얘기해봐…… 말하고 있는데 뻔히 쳐다보면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데.
다시 그냥 말 없이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남녀커플 하나가 손을 흔들면서 우리 쪽으로 오더라고.
"박지민!"
누군가 싶어서 쳐다봤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었어. 방학한지 하루만에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어색하게 웃으면서 쳐다보니까 자랑스럽게 맞잡을 손을 우리 앞으로 보여주더라.
우리 데이트 중인데, 너네도 데이트 중인가 보네. 딱 좋다, 더블데이트나 할까.
아, 둘이 사귀는구나. 대충 흘려 듣고 있는데, 뭔가 잘못 들은 기분인데.
상황파악을 위해 박지민을 쳐다보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하는 지민.
"데이트는 무슨, 우리 짱친인 거 알잖아."
맞아, 우리 소꿉친구, 완전 동성이야. 내가 이때다 싶어서 맞장구를 치는데 계속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거야.
사람이 아니라는데 좀 믿어주지. 내가 만날 남자가 없다고 박지민을 만나겠어 설마.
아니 옷은 어쩌다보니까 비슷하게 입은건데, 얘는 왜 이렇게 입어서 괜히 오해를 사게 만들어.
정말 당황스러웠어. 좀 많이. 소꿉친구랑 연인 사이란 얘기 들으니까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뭔가 어색한 느낌.
진짜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막 괜히 말도 안 나오고. 응, 그런 느낌이었어.
박지민도 그런 것 같았고. 머쓱하게 웃는 우리를 계속 보더니, 또 말을 계속 하더라.
"소꿉친구가 뭐야. 너네, 원래 남자랑 여자 사이엔 친구가 없는거야."
쟤가 지금 뭐라는거지. 나도 모르겠어. 너 나 여자로 보임? 아니 전혀. 나도 너 남자로 안 보이거든. 아, 그러구나.
만약에 네가 여자면, 나랑 만날거냐. 야, 나 여자거든. 워, 죄송해.
또 투닥투닥. 너무한거 아니냐. 진짜 여자 취급을 안 하고 있었던거구만.
얼마나 그런 개념을 잊고 살았으면 저런 말을 하는거지. 한 대 맞으면 정신 차릴려나.
어쨌튼, 우리는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라면서. 밥만 먹고 들어갈거니 더 이상 헛소리 하지말고 썩 꺼지란 뉘앙스로 말을 하니까 그럼 다음에 보자면서 갔어.
그래, 그래야지. 얼른 가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날 보며 빠르게 시야에서 살아지는 세륜 커플.
"너 아까 되게 당황하더라."
그럼 당황하지 누가 안 해. 내가 뚱한 표정으로 얘기하니까 자기는 당황 안 했다면서 또 능글거리는 웃음을 짓더라.
너 혹시 내일이 없니. 하루만 산다거나, 그런 애구나. 뺨 맞는 수가 있어, 그러다가.
내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하자 너무 살벌하다면서 또 웃어 제끼는 지민.
"넌 내가 그렇게 싫어?"
어, 짱 싫음. 완전 싫어. 그러니까 좀 떨어져, 어디서 또 수작이야.
섭섭하다면서 오히려 팔짱까지 껴오는 지민의 행동에 내 얼굴만 확 달아올랐어.
아니 무슨 남자애가 이렇게 거침이 없어. 남자애라 거침 없는 건가.
아니 님아, 그래도 우리 남녀 사이인데. 네가 아무리 날 여자로 안 봐도 이러는 건 좀.
으, 뭔가 간질간질하고 부끄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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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이 너무 먹고싶은 오늘 밤입니다.
치킨이 보고 싶어요, 치킨 안녕하세요 8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