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사는 도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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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의 커플
주말 방에 가만히 틀어박혀있으니 침대가 나인지 내가 침대인지... 이렇게 여유로우면 좀 좋아, 지날 5일동안 카페에서의 고역을 이겨낸 보상인 것 같아 마음껏 휴일을 즐겨보려했는데
이런 순간에도 우리 엄마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 기지배가 맨날 방에 틀어박혀가지고! 너 나중에 늙으면 못 돌아다녀, 그니까 이럴 때 좀 돌아다니라고!! "
" 아 좀!! 오늘 휴일이란 말이야!! 냅둬!! "
" 도서방이랑 같이 옷도 사러 돌아다니고 해!! "
도서방!!!!!!!!!!그 놈의 도서방!!!!!!!!!!!!!!!
" 도경수 씨가 엄마 아들이야? 왜 이렇게 좋아해? 내가 며느리인가? 왜 이렇게 구박이야!! "
" 좀 집에서 기어 나가라고!! 오늘 동네 아줌마들 오기로 했는데 너 만신창이 상태로 또 방구석에서 기어나오려고? 내가 아주 쪽팔려 죽겠어! "
이럴려고 나보고 맨날 나가라고 하는 거구만? 어? 아주 그냥 속이 시꺼매!!!? 그 아줌마들한테 또 내 뒷담까려고!!
강제로 내 이불을 걷어낸 엄마에 물에서 튀어오른 물고기마냥 몸부림을 쳤다.
흐으으앟아아아아!!!!!!! 시져시져시져시로시러시러시져!!!! 나가려면 씻어야 하잖아!! 실타쿠우!!!! 눈물즙을 짜내며 강려크하게 집에 뿌리박겠다는 의지를 표출했지만 엄마는 칼같이 나를 침대 밖으로 끌어냈다.
" 카드 줄테니까 나가서 놀다들어와 "
...
솔깃..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던 얼굴을 피고 침대 시트를 꼭 잡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 거 참.. 내가 돈까지 버는데 엄마 카드까지 긁고 돌아다니는 건 참.. 양심에 찔리지만...그래도 봄 옷을 미리 준비하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 나갈거야 말거야!! "
" ..일단 준비할게.. "
내 말에 엄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래야 내 딸이지 하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근데 같이 나갈 사람이 없는데... 안나는 유럽 여행가고 박찬열은 카페 알바 한 번 빠진거 채우고있고 오세훈은 오늘도 연습이다 뭐다하면서 음악에 몸을 맡겨 오징어처럼 리듬을 타고있겠지 그러면 같이 나갈만한 사람은 도경수 씨밖에 없다. 김종인 씨하고 놀 수는 없지 않은가.
후후 이러라고 남친이 있는 거 겠지
나는 눈가에 있는 눈꼽을 떼며 도경수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고 단순한 연결음이 몇번 끝에 달칵 전화가 받는 소리가 들렸다.
" 도ㄱ "
「 지금 바쁩니다. 전화 좀 하지마세요 」
뚝
?
뚝 끊어진 전화만 멍하니 바라보는데 난생 처음 듣는 도경수 씨의 단호박이 내 쿠크다스를 두드려 깨부셨다. 와장창!!
이럴 수가... 명색에 여자친구한테 이렇게 딱딱하게 바쁘다고 전화 좀 하지 말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어쩜... 흑.. 어떻게.. 나한테 전화를 하지 말라고.... 다른 말도 안하고... 전화 하지 말라고...흡 입을 가리며 코를 훌쩍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도경수 씨가... 나한테... 거기다 전화 하지 마세요 도 아니고 전화 좀! 하지 마세요 라서 더 충격이다.
너무해!!!!!!!!!!!
흐아아아 어떻게... 도경수 씨가!!!!!!!!!!!! 나한테!!!!!!!!!!! 이래!!!!!!!!!!!!!!!!!!!! 분노를 가득 담아 핸드폰을 침대 끄트머리로 던져버렸다. 벌써 사랑이 식은 거야.. 흐규.. 나 좋다고 먼저 따라다니더니.. 사람이 한순간에 변했어... 다신 사랑 안 해...☆
이런 말들으면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여리게 펑펑 눈물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1도 안나오는 눈물에 억지로 즙을 짜냈다. 도경수 씨는 모를거야..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을 거라는 거... ㄴr는 ol런 LHㄱr 참... 싫ㄷr...
색다른 충격에 주먹만 꼭 쥐고 핸드폰만 노려보니 도경수 씨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안받을 거야.. 안받을 ㄱ..
안..
안받을 ㄱ...
" ... "
「 ○○씨!! 미안해요 김종인 씨인 줄 알고.. 」
" ... 도경수 씨.. "
「 정말 미안해요. 정ㅁ 」
" 저 지금 바쁩니다. 전화 좀!! 하지 마세요 "
됐거든요. 오늘 그냥 침대에 뿌리를 내리렵니다. 도경수 씨는 아웃이야 아웃. 마지막으로 흥! 하며 내 성난 콧바람을 불어주고 전화를 끊었다.
근데 생각보다 통쾌하진 않다.
*
... 일 났다.
본의아닌 실수로 누구보다 소중한 그녀의 쿠크를 박살낸 경수는 끊어진 전화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게 다 김종인 씨 때문이다. 주말만 되면 놀자고 아침부터 폰에 불이 나도록 전화하는 종인에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있던 경수는 굉장히 예민한 상태였다. 그리고 하필 그 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올 게 뭐람...
열심히 보던 노트북을 밀어놓고 핸드폰에 시선을 집중한 채 다리를 미세하게 떨던 경수는 아 어떡하지.. 하며 머리를 긁었다.
다시 전화를 해서 빌까, 아니면 그냥 바로 집에 찾아가야하나... 아니야 다시 전화를 하자 하고 결심한 경수가 엄지로 통화 버튼을 터치하려고 할 때,
종인에게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 ..ㄱ...김....종...인.... 씨!!!!!!!!!!!
경수는 이제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종인의 전화를 받았다.
「 도경수 씨!! 이제 전화 받네 방금 전은 누구랑 통화하더니 나랑은 안하고 」
" 김종인 씨... "
「 왜? 놀자고? 놀까 좋은친구? 하루종일 병원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 」
다다다 말을 쏘아 붙이려던 경수는 흡 하고 숨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병원... 그래 김종인 씨도 어머님 간호하려 병원에 있느라 많이 심심하고 힘들었겠지 그래도..!
" 그래요, 놉시다. 대신, 오늘은 안됩니다 "
「 뭐?왜? 왜 오늘 안돼 나는 오늘 되는데 」
" 저도 제 스케쥴이란게 있는데 이렇게 연락을 하시면.. "
그리고 전화 너머로 종인의 대답이 사라졌다. 아.. 이럴 수가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걸까.. 경수의 머리가 아득해졌다.
「 아 뭐야, 바쁜 거면 미리미리 말하지 그럼 나중에 놀자, 신나게! 우리 여행이라도 갈까? 훈이랑 열이랑 ○○씨 다데리고!! 」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다시금 밝은 목소리로 말도 안되는 여행 약속을 소리치는 종인에 경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요. 하고 대답한 뒤 시끄러운 종인과 전화를 끊고 보니 화면에 떠있는 그녀의 이름에 또다시 한탄에 빠진 경수
먼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뚜르르- 연결음이 들리는 사이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 네~ 바쁜 도경수 씨가 전화는 웬일로 또 하셨어요~ 」
...
" 오늘 하루종일 김종인 씨한테서 전화가 와서 김종인 씨 전화인 줄 알고 그랬어요. 정말 ○○씨 하려던 말 아니에요 "
「 아 네 그렇습니까 」
아, 네, 그렇습니까, 연인은 닮는다더니 자신이 종인과 전봇대들에게 하는 사무적인 말투를 따라하는 그녀에 경수는 마른 세수를 했다.
" 정말 아닌데... "
「 그럼 밖입니까. 」
대화 내용만 들어보면 대체 누가 여자고 누가 남자인지 모를 정도다. 당황한 경수가 말을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데 이내 크크큭 하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장난이에요. 오늘 많이 바쁜거 알았으니까 그만 할게요, 일 열심히 하고 카페에서 봐용 」
" ㅈ..잠깐! 오늘 왜 전화 한 거에요? "
경수는 전화를 끊으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 그냥 옷 사러 나가려고 했는데 혼자는 심심하잖아요. 그래도 혼자 옷 못 사는거 아니니까 」
이럴 수가, 같이 옷을 사러가? 엄마가 맨날 보던 드라마에서 주인공 커플들이 같이 즐겁게 옷도 사러다니던데.. 그런 좋은 기회를 차버리려고 했다니. 경수는 벌떡 의자에서 일어났다.
" 아뇨, 지금 제가 ○○씨 집 쪽으로 가면 되는 건가요? "
「 바쁘다면서요 」
... 경수는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트북을 고이 닫아버렸다. 이건 그녀와 옷을 사러나가는 것보다는 덜 중요한 일이니까...
" 아니에요 시간 많아요. 주말인데 바쁠리가 없잖아요 "
「 괜히 저 때문에 일 미루는 거면 그러지 마요 」
괜히라뇨! 같이 옷 사러 간다는게 얼마나 큰 의미인데, 경수는 놀고 있는 다른 쪽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정말 시간 많아요. 제가 지금 당장 집 앞으로 가면 되는 거죠? "
그렇게 말하는 경수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
「 정말 시간 많아요. 제가 지금 당장 집 앞으로 가면 되는 거죠? 」
도경수 씨가 정말 의욕이 넘친다. 아까 일이 많이 미안했나보다. 이제 오해도 풀렸고 너무 안미안해 해도 되는데...
" ..아.. 네 뭐... "
「 네 그럼, 한 시간.. 아니! 40분 그래 40분만 기다려주세요 」
40분이요??? 혹시 벤츠가 제트기로 변신 할 수도 있나요? 날아오나?? 그리고 또 멋대로 도경수 씨가 끊어버린 전화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왠지 도경수 씨와의 약속 준비는 항상 다급한 것 같다.
" 갔다올게 "
새로운 옷들을 입어보려면 너무 두꺼운 화장은 민폐일 것 같아 가볍게 사람 행색만 내고 도경수 씨가 오겠다는 시간에 임박하자 엄마 앞으로 가서 눈을 꿈뻑였다.
" 그래 갔다와, 결국 도서방이랑 가는 거니? "
" 응 "
" 그래 가 "
하지만 나는 원하는 게 있다.
" 가라니까? 도서방 기다리게 하지말고 "
" ...
나는 엄마를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틀어 눈매를 매섭게 했다. 나는 원하는게 있드그 흤쓸튼드....
엄마는 한참 멀뚱멀뚱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하이고- 내 참 하면서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다시 나와서 내게 네모나고... 한 손에 들어오는...그래... 카드를 던져주었다.
" 오예, 엄마 내가 꼭 지금 알바해서 번 건 학원비로 내고 나중에 돈 벌면 옷 잔뜩 사줄게 "
" 말로만 들어도 좋다 얘, 빨리 가 "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양심이 있으니 카드로는 티셔츠 몇장만 사야겠다. 흑 이런 걸 보면 나도 양심이 있구나..!! 그래 나도 양심이 있는 닝겐이었어..!!
엄마에게 신나게 갔다온다며 인사를 하고 허둥지둥 집을 나오는데
나를 본 듯 못 본 듯 바쁘게 지나쳐 가는 민석 오빠를 볼 수 있었다.
" 오빠!! "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도는 오빠는 방정맞게 손을 흔들고 있는 나를 보곤 화색을 띄웠다.
" 어, 안녕! 요즘 자주보네 "
" 그니깐요. 어디 약속 있어요? "
" 나비 만나러 가 "
..나비?
내 머릿 속에서 민석 오빠가 나비를 좋아한다거나... 곤충을 좋아한다는 그런.. 기억은 없는데.. 나비... 아 혹시 고양이?
" 고양이 카페라도 가요? 아니면 유기 동물 보호센터? "
" 응? "
ㅇ...아닌가..? 민석 오빠는 음.. 하고 한참 생각하더니 푸핫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 아.. 너는 나비 처음 들었나, 내 여자친구 "
" 여자친구 이름이 나비? "
" 아니 별명이야. 팔랑거리면서 걸어다니는게 꼭 나비같아서, 나비가 가르치는 애들도 죄다 나비선생님이라고 부른대 "
...뭐야 별명 완전 귀여워..!! 나비선생님..!! 나도 불러보고 싶다!! 나비선생님!!!!!!!! 거기다가 초등학교 애기들이 나비선생님~ 나비선생님~ 하고 부르는 걸 상상하니 심장이 멎을 것 같다. 꼭 자기 닮은 사람만 만나... 여자친구가 나비면 오빠는 꽃인가..!!
한참 몽롱히 망상에 젖어 콧구멍만 벌름거리는데 민석 오빠가 말했다.
" 그럼 너는 경수 씨 만나러 가? "
" 네, 아마 지금 앞에 와있을 걸요. 백화점에서 옷이나 살까해서 "
" 여기 근처가는 거야? 그럼 만날 수도 있겠다 "
옼 우리 나비선생님을 볼 수 있는 건가? 만난다는 말에 슬며시 입을 가리며 좋아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니 내 반응에 씨익 미소를 짓던 오빠가 핸드폰 시계를 보곤 아차 한다.
" 아, 내 정신 좀 봐, 빨리 가봐야겠다 "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귀여울 것 같은 우리 나비언니를 나레기 때문에 기다리게하면 안되지. 나는 민석 오빠에게 친절히 잘 다녀오라며 인사를 하는데 왠지 나도 무언가 빼먹고있는 느낌ㅇ..
맞아 나도 도경수 씨랑 약속 있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오빠의 뒤를 따라 부랴부랴 골목길 밖으로 달려나가니 흥겨운 발걸음으로 저 멀리 걸어가고있는 민석오빠의 뒷통수를 보며 차에 기대 서있는 도경수 씨
여친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런다. 살금살금 인기척도 못느낄 정도로 조용히 다가가 옆에서 소근소근 속삭였다.
" 우리 바쁜 도경수 씨, 많이 바쁠텐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
아마 바쁜 도경수 씨는 곧 고유 명사로 남을 것이다.
" 바쁜 도경수 씨라뇨.. 아까 그 일은 다 풀린 거 아니었나요.. "
흠칫 놀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바쁜 도경수 씨.
사실 아까 전화로는 풀린 척했지만 또 얼굴을 마주하니까 괜히 괘씸해진다.
" 풀렸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고통을 받아야해요. 바쁜 도경수 씨, 민석 오빠랑 인사했어요? "
" 바쁜이란 말은 빼주면.. "
그리곤 후.. 하고 숨을 내뱉고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 네 인사했어요. 기분 좋아보이시더라구요 "
" 민석 오빠 오늘 나비 언니 만나러 가서 그럴 걸요 "
도경수 씨는 새로 듣는 나비 언니라는 말에 나비 언니요? 하고 크게 되물으며 쪼르르 운전석에 탔다.
" 여자친구 별명이 나비래요. 진짜 귀엽지않아요? "
" ..음.. 네 귀엽네요 "
..반응이 왜 이렇게 싱거워... 나는 처음 딱 들었을 때 나비라닛..!! ㅋ..카와이!!! 라고 생각했는데.. 뻘쭘해진 나머지 핸드폰을 들어 초록창에 [애칭]을 검색하기 시작하니 안전 벨트를 하던 도경수 씨는 내게 호기심의 눈빛을 보내왔다.
" 안전 벨트도 안하고 뭘 그렇게 열심히 검색해요? 제가 안전 벨트 해줄까요? "
아이고 내 생명줄을 놓칠 뻔 했네. 핸드폰을 잠깐 무릎 위에 내려놓고 안전 벨트를 매며 말했다.
" 우리도 조금 특별한 별명이나 애칭같은 거 만들까요? "
" 이미 있..지 않아요? 많이 안쓰긴 하지만 "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이에 애칭이 있었다니..! 혹시 도경수 씨 이런게 애칭이라면 정말 때릴 거에요.
" 뭔데요? "
" ... 자기..? "
그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도경수 씨
" 뭐가 특별해요!!! 미용실 언니도 저보고 자기라고 해요! "
정말 어이가 없다. 자기가 애칭이면 미용실 언니와 나는 특별한 사이다!!!
" 굳이 애칭이 필요하나요? 저는 서로 이름 불러주는 걸로도 좋은데, 다른 것도 좋고 "
" 다른 거요? 자기? "
자기? 하는 물음에 도경수 씨는 가만히 있다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 자기는 당연히 좋고 "
" ... "
" ... 오빠? "
나즈막히 오빠..? 하고 말꼬리를 올리는 그에 웃음이 호탕하다고 느낄 정도로 빵 터져버렸다. 그렇게 오빠 소리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한 번 해줬더니 완전 맛들렸어
" 아.. 웃겨.. "
한참을 웃다가 훌쩍 눈을 비집고 나온 내 눈물에 도경수 씨는 시무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일단 근처 백화점으로 갑시다!
아무렇지도 않게 택시기사님한테 말하는 것처럼 백화점으로 가자는 내 말에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를 한 번 보다가 어깨를 한 번 툭 쳐주며 다시 말했다.
" 경수 오빠. 얼른 근처 백화점으로 갈까요? "
그제야 도경수 씨는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못참고 네, 가요. 하며 액셀을 밟았다.
" 이거 하고, 이거 중에 어떤게 더 좋을까요 "
백화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아직 젊으니까 영캐쥬얼 매장으로 뛰어들어가 열심히 옷을 보던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하얀색 맨투맨과 검정색 맨투맨, 이제 시간 좀만 더 지나면 봄이라 하얀색도 괜찮겠지만 내가 칠칠치 못하게 뭐라도 잔뜩 묻히고 돌아다니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에다 관리도 힘들도.. 검정색은 너무 무난하고 집에 몇장 더 있고...
도경수 씨 앞에서 재롱 떨듯이 번갈아가며 두 옷을 대보이니 그저 흐뭇한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다. 옷 좀 골라달라구요!!!
" 저는 둘 다 좋은 거 같ㅇ "
" 하나만!! "
" ... 저는 검정색을 좋아하긴하는데... "
도경수 씨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행거에서 뒤적뒤적 옷 한 벌을 꺼내 들었다.
" 이건 어때요? "
드디어 황희정승같던 도경수 씨가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 기대에 찬 눈으로 그가 든 옷을 보니
샛노랑 원피스
머스타드색도 아니고 완전 샛노랑, 병아리같은, 하늘하늘하니 금방이라도 아이유가 입고나와 춤 출 것만 같은
덕분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쩍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경수 씨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쁘지 않아요? 하며 물었고 나는 슬며시 양 손에 든 맨투맨을 품에 꼭 안았다.
" 그냥 이거 두 벌 살게요 "
" 이거 이쁜데.. 귀엽고 "
" 그건 옷으로만 봤을 때 이쁜 거구요 "
" 입으면 더 이쁠걸요 "
옴마..이 사람 좀 보게.. 염장돋는 말을 누가 들었을까 주변을 살피니 점원 언니가 웃는게 웃는게 아닌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커플이신가봐요. 너무 잘 어울리세요 "
어금니 물고 그런 말하지 마세요.. 점원 언니는 내 품에 있는 맨투맨 두 벌을 힐끗 보곤 말했다.
" 커플 맨투맨 찾으세요? "
.. 이거 둘 다 제가 입을건데..? ㅇ.아아뇨 하고 대답하려는 찰나
" 네 "
하고 대답을 가로채가는 도경수 씨에 점원 언니는 매출이 올라가는 소리에 더 활짝 웃으며 우리를 한쪽으로 이끌었다.
" 여기 이 패턴 스웻셔츠가 가장 잘나가구요. 그 다음은 이 그레이색 .. "
열심히 옷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점원 언니와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도경수 씨 뒤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뒤적뒤적 다른 맨투맨을 찾았다. 저거 너무 구린데... 저딴게 잘나가다니 사람들이 어지간히도 보는 눈이 없나보다.
촥촥촥 소리를 내며 옷걸이를 미는데 이쁜 파스텔 핑크색 로고 맨투맨 하나가 눈에 띈다.
아까까지만해도 노란색 원피스를 고른 도경수 씨에게 옷으로만 봤을 때 이쁜 거라며 나무란 내가 무색하게 홀린듯이 핑크색 맨투맨을 꺼냈다.
" 어머 그건 이번 새로 나온 신상인데 굉장히 색감이 좋아서 여성분들이 많이들 찾으시더라구요 "
역시, 내가 또 보는 눈은... 크
어느 새 내 옆으로와 이 맨투맨은 하며 종알거리는 점원 언니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다가 말했다.
" 이거 검정색은 없어요? "
' ... 저는 검정색을 좋아하긴하는데... '
도경수 씨는 검정색을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 네~ 아쉽게도 검정색은 안나왔어요~ 대신 하늘색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아니.. 뭐 굳이..이걸 꼭 살 이유는 없는데.... 망설임이 가득 담긴 손으로 다시 옷을 행거에 걸려하니 가만히 날 보던 도경수 씨가 입을 열었다.
" 하늘색 괜찮아요. 하늘색 보여주세요 "
도경수 씨의 말에 점원 언니는 네~ 하늘색이요~ 하며 영업용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하늘하늘 맑은 하늘색의 맨투맨을 꺼내보여주었다.
그렇게 커다란 거울 앞에 도경수 씨와 나는 나란히 서서 각자 분홍색 맨투맨, 하늘색 맨투맨을 들고 몸에 대보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했지만 ... 동시에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입어보셔도 돼요~ 바로 뒤 쪽에 탈의실 있으니까 한 번 입어보세요 "
우리 둘 다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나와 도경수 씨를 보는 친절한 점원 언니의 목소리 속에는 답답함이 가득 서려있었다.
아무 말 없이 도경수 씨와 눈을 한 번 마주치고 약속이라도 한 듯 곧바로 우리처럼 나란히 문 두 개가 붙어있는 탈의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화장을 두껍지 않게 하고 나온 건 나의 나이스 초이스.
꾸역꾸역 좁은 탈의실 안에서 힘들게 옷을 갈아입고 빼꼼 문을 여니 이미 탈의실 밖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있는 도경수 씨와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 어때요? "
나를 보자마자 팔을 쫙 벌리며 어떠냐고 묻는 그
생각해보면 맨날 정장에, 어두운 체크셔츠, 무채색 옷만 고집하던 도경수 씨였는데 이렇게 화사한 옷을 입으니 사람도 밝아보이는게 역시 옷의 날개라는 말이 맞긴 한가보다.
" 대박 진짜 잘어울려요 저는요? 저는? "
후다닥 탈의실에서 신발을 신고 나와 다시 나란히 서서 거울을 보니 핑크색, 하늘색 분명 다른 색임에도 불구하고 커플이라는 티가 팍팍 난다.
" ○○씨도 대박 진짜 잘어울려요 "
도경수 씨 지금 내 말투 따라한거야? 앙탈부리듯 도경수 씨의 팔뚝을 아프지 않게 치며 웃는데 거울 너머로 우리를 향해 쓴웃음을 짓고 있는 점원 언니의 얼굴이 보였다. 그를 보자마자 우리는 웃음기를 지우고 정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 .. 이걸로 할까요? "
" 도경수 씨 하늘색 괜찮아요?
" 안괜찮을게 뭐가있겠어요. 그럼 바로 계산하고 입고다닐까요? "
이게 얼마죠. 하고 계산대 옆 의자에 둔 가방을 찾으려는데 도경수 씨가 굳은 의지가 가득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 이번에는 제가 계산할게요 "
... 언제는 자기가 안계산한 것처럼 말하네
" 저 밥 많이 얻어 먹었잖아요.. "
" 밥이랑 옷은 다르죠. 제가 계산할 거에요 "
제가 계산할 거에요...! 도경수 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결단력있고 박력 터지는 사람이었나..! 자신의 재력을 뽐내겠다는데... 나쁠 건 없는 내가 조용히 아 네.. 하고 대답하니 원하는 대답을 들은 도경수 씨는 만족한 표정을 하며 지갑을 꺼냈다.
계산 후 택까지 떼고 핑크핑크 하늘하늘한 차림으로 매장을 나온 우리는 더 돈독해진 애정으로 손을 잡고 신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상하고 깜찍한 모자가 눈에 띄면 바로 달려가 한 번 써보기도 하고
" 도경수 씨 이거봐요. 미키마우스 모자! "
" 귀여워요, 사주면 쓰고다닐 수 있겠어요? "
" 아뇨 이건 공짜로 줘도 못쓰고 다녀요... "
뒤늦은 생일 선물이라며 도경수 씨 넥타이도 이쁜 걸로 골라서 사주고
" 선물 안 받아도 괜찮은데.. 이미 받았잖아요 "
" 그 때 도경수 씨 생일인 거 생일 당일날 알았는데 생일 선물 준비 할 시간이 어디있었겠어요. 풍선이랑 막 꾸며놓은거 그거 다 급하게 준비한거 거든요 "
" 왜요, 기억 안나요? "
" 전 아무것도 준 적이 없는데.. 혹시 다른 사람한테 뭐 받았어요? "
" 아뇨, 그랬잖아요."
" 선물은 저에요! "
" 조용히 해요 "
또 도경수 씨에게 열 개가 넘는 머리띠를 선물 받기도 했다.
" 지금까지 썼던 머리띠 다 계산할게요 "
" 미쳤어요? 제 머리가 5개도 아니고 아니 5개라도 다 못쓰겠다 "
" 요일별로 쓰고 기분에 따라서도 쓰고하면 되죠 "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을 돌아다니다보니 어느 덧 배가 출출해져온다. 모든 짐은 자기가 들겠다며 짐꾼을 자청한 도경수 씨는 양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힘들지도 않은지 또 어디갈까요? 하며 눈을 반짝인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밥 먹으러 갈까요...라고 하려는데 옆에 지나가는 다른 커플의 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도경수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운동화는 안 필요해요? "
그렇게 밥을 달라며 아우성 치는 배는 무시하고 운동화를 보러간 나는 멍하니 앉아 신나게 운동화를 고르는 도경수 씨만 바라보았다. 맨투맨 고를 때와 다르게 역전된 상황에 뭔가 싶었지만 내 체력이 저질인 걸 탓해야겠다.
" 이 운동화 어때요? "
그러면서 골라온 운동화는 하얀 바탕에 드디어 도경수 씨의 본래 취향인 검정색이 적절히 섞여들어가있는 동글동글한, 꼭 자기를 닮은 운동화였다.
" 괜찮은데요, 점원한테 사이즈 달라고해서 한 번 신어봐요 "
" ○○씨는요? "
저는....힐끗 내 발 쪽을 내려다보니 항상 신던 운동화는 언제 이렇게 낡았는지 해지고 헐거워진게 눈에 보일 정도다.
" ... 지금 도경수 씨가 들고있는 신발 사이즈면 맞을 것 같아요 "
그래 나도 발에 사치 좀 오랜만에 부려보자 싶어 도경수 씨에게 신발을 달라고 손을 내미니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내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어앉는 그
" 뭐해요? "
" 신겨줄게요 "
ㅇ...안돼!!!!!!!!! 오늘 오래 걸어다녀서 발냄새 날 지도 모르는데 코 앞에서 신발을 벗으라는 말 아녀.. 당황한 나머지 발에 있던 땀구멍이 더 크게 확장되는 기분이다.
" 도경수 씨는 빨리 가서 맞는 사이즈 달라고 하세요.. "
" 신겨준 후에요 "
왜 이렇게 고집이야 이 사람아!!! 화생방 훈련 한 번 더 하고 싶어서 이래!!!!!!?
안돼요!! 하며 본래 신고있던 운동화를 열심히 사수했지만 결국 티격태격하던 끝에 낡은 운동화는 저 멀리 날아가버리고 번쩍번쩍 새 운동화가 내 발을 소중히 감쌌다.
" 역시 이쁘네요 "
내 발에 신겨져있는 신발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도경수 씨는 다행히 정신없는 사이에 신겨준 터라 내 발냄새를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 사이즈 괜찮아요? "
" .. 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맞네요 "
" 발은 편해요? "
.. 도경수 씨 엄청 세심하네, 나는 일단 이쁘면 한 눈에 홀랑 넘어가는데.. 그의 말에 의자에서 일어나 몇발자국 걸어보다가 네하고 다시 앉았다.
" 좋아요. 그럼 이걸로 해요 "
발을 이리저리 틀며 신발을 구경하는데 이거 봐요. 하며 나를 부르는 도경수 씨의 발에도 똑같은 운동화가 신겨져있다.
" 조금 있으면 그 사이즈로 새 운동화 올 거에요 "
그러며 한 발짝 다가와 자신의 운동화 앞코로 내 발을 콩 하고 찧는 도경수 씨
" 이제 신발도 커플이네요 "
" 이 정도면 동네방네 우리 커플이라고 소문내는 수준인데요 "
" 이참에 모자도, 바지도 다 맞출까요 "
으엑 그게 뭐람
" 됐어요, 커플룩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너무 욕심 부리지 맙시다 "
" 알았어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면 다음에는 뭐 더 하겠다는 건가? 혹시 커플 잠오..ㅅ...... 아무래도 김칫국 장인이 아직 살아있나보다.
운동화 역시 커플 아이템이라며 자신이 계산하겠다는 도경수 씨를 꺾지 못하고 시원하게 뚫려있는 매장 밖만 주구장창 보고있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실루엣이 지나간다. 눈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니 각자 옆구리에 커다란 하드보드지와 색지를 끼고 걸어가는 민석 오빠와 .. 그 옆엔... 나비 언니, 로 추정되는 여자다.
나는 계산하고 있는 도경수 씨를 잠시 두고 재빨리 매장 밖으로 달려나가 민석 오빠를 불러세웠다.
" 오빠!!! 민석 오빠!!! "
그리고 동시에 돌아보는 민석 오빠와 나비 언니. 얼굴을 보자마자 점심 때도 봤으면서 또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며 나풀거리는 나비 언니와 함께 내게 다가온다.
" 경수 씨는? "
나를 보자마자 도경수 씨부터 찾는 오빠에 슬쩍 뒤를 돌아보자 우리 하늘하늘한 도경수 씨가 운동화 매장에서 뛰쳐나온다. 그와 함께 우리의 운동화를 스캔한 민석 오빠는 오, 하며 짧은 감탄사를 날려주었다.
" 커플 운동화 샀어? 거기다 아까 낮이랑 옷이 또 다른데. "
" 맨투맨도 그렇고 운동화도 그렇고 진짜 이쁘죠, 다 도경수 씨가 사줬어요 "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방 내 옆자리를 꿰찬 도경수 씨는 어색하게 ㅇ..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 옆에는 혹시.. 나비 언니? "
나비 언니임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며 물어보니 역시나 풋 웃음을 터뜨리는 언니
" 맞아, 아까 말했지 나비, 여자친구 "
" 그렇게 말하면 내 이름이 나비인 줄 알잖아~ "
...
이 커플...
우리도 그렇지만 사귄지 얼마 안돼서 깨가 쏟아지는 구만, 하하
" 근데 웬 하드보드지에 색지에 다 뭐에요? "
" 초등학교 개학은 이르잖아요, 또 곧 반이 바뀔텐데 새교실 좀 꾸며야죠 "
내 오지랖 넓은 물음에도 나비 언니는 사근사근 대답을 해주었다. 왜 어린 애들도 나비 선생님이라도 부르는 지 알 것 같다. 언니가 담임 맡은 반으로 들어가면 안되나요? 발표 잘 할 자신 있는데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라며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민석 오빠가 물어왔다.
" 진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밥은 먹었어? "
" 이제 먹어야죠 "
오빠의 물음에 대신 대답을 한 도경수 씨의 표정이 싸하다.
민석 오빠 여자친구까지 본 마당에 대체 왜 이러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다 만나게 된 상황도. 이렇게 밥을 같이 먹게 된 상황도.
오랜만에 그녀와 단둘이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나했더니 이렇게 방해꾼들이 난입 할 줄이야...
김민석 씨 커플이 맛있다며 데리고 온 원플레이트 레스토랑은 사람이 복작복작하니 체하기 딱 좋은 장소인 것 같다. 음식 주문은 모두 전적으로 그녀에게 맡긴 뒤 묵묵히 물만 마시는데 김민석 씨 옆에 앉은 ... 나비..? 씨가 말했다.
" 민석 오빠가 맨날 옆집 동생 커플 이쁘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말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보니까 정말 그렇네요~ "
..? 우리를 왜..
" 둘이 꼭 하늘색 분홍색 맞춰입으니까 솜사탕 같고 몽실몽실한게 되게 이뻐요~ "
솜사탕이라는 말에 옆에서 정말요? 하며 좋아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그녀에 작게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려 억지로 물을 들이켰다.
" 민석 오빠는 그런 거 없거든요, 어쩔 때보면 다정하다가도 어쩔 때는 너무 매정하다니까 "
" 매정하다니, 커플티 때문에 매정하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해? "
가만히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뜩 김민석 씨를 민석 오빠라고 불러주는구나 싶어 애칭에 따라 친밀도의 차이가 남을 깨달았다. 더이상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어서 익숙하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내 시선을 느낀 그녀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추었다.
" 민석 오빠네 커플 진짜 귀엽지 않아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초등학생 커플같아 "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이는데 ...
..솔직히 나는 우리 커플이 제일 이쁘게 만나는 줄 알았다. 근데 이렇게 다른 커플을 가까이서 보고 그 커플 우리 못지않게 이쁘게 만나는 걸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내가 나빠서 그런가..
" .. 네..뭐.. 귀엽네요.. "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하나도 안귀여워요. 우리 커플이 제일 이쁘고 귀여워요.
김민석 씨는 예나 지금이나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여전하다. 좋게 봐주려고해도 자꾸만 형성되는 라이벌 구도에 내 승부욕이 불타오른다.
절대 질 수 없다.
절대
*
" 왜 안 먹어? 배불러? "
열심히 푸짐하게 나온 음식들을 이것저것 입에 넣는데 한참 잘 먹다가 포크를 놓아버리는 나비 언니에 민석 오빠가 놀라며 말했다.
" 아니 느끼해서.. "
느끼해서 그만 먹는다구요..? 느끼해도 먹는 저는 뭔가요... 물론 음식들이 죄다 크림 스파게티에 목살 스테이크, 기름 쩌는 새우 필라프이긴 하지만... 나는 호로록 먹던 스파게티 면까지 빨아들이고 남은 음식들을 나비 언니 몫까지 어떻게 더 흡입할 것인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 그럼 피클 먹을래? 여기 피클 맛있더라. 입도 좀 가시고 괜찮아질 거야 "
민석 오빠는 흘릴까 손으로 포크로 찍은 피클을 고이 받쳐서 나비 언니의 입가에 가져다주고 또 나비 언니는 그래? 하며 피클을 받아 먹었다. 되게 이 커플을 보니까 느껴지는게... 딱 연애의 정석..?
그래 연애의 정석이다. 나하고 도경수 씨는 순서란 순서는 모조리 씹어먹은 채로 사귄 다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견례까지 했는데...아니 뭐 그렇다고 우리가 나쁜 건 아니고..
" ○○씨도 느끼해서 그래요? "
허공에 포크를 두고 멍하니 있는 날 눈치 챈 도경수 씨가 말했다.
" 아뇨, 저 더 먹을 수 있어요. 그 쪽에 있는 목살 스테이크 좀 더 담아주세요 "
물론 손을 쭉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이지만 그래도 음식을 옮겨 담으려면 일어나야 하는 거리라 당차게 앞접시를 내미니 알았어요.하며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도경수 씨
다시 가득 채워진 접시에서 미친듯이 고기만 골라먹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던 그가 갑자기 자신의 포크 위에 고기와 채소를 얹어 내게 내밀었다.
" 아- "
난데없는 친절에 오히려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살살 포크를 흔들며 아- 하고 재촉한다.
" 고기만 먹으면 체해요 "
아.. 네 그렇습니까.. 경수 씨 팔 떨어진다고 거드는 민석 오빠의 말에 얌전히 입을 벌려 받아먹으니 도경수 씨는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 번 받아먹으니 갑자기 이것 저것 떠먹여주기 시작하는 그, 졸지에 신생아가 된 느낌...^^!
다른 사람 보는 눈도 있고 이렇게 좋아하는데 차마 저도 손이 있다구요!!! 라고 말 할 수가 없어 도경수 씨가 음식을 내미는 족족 다 받아먹고는 있다만.. 고기 먹어서 체하는 것보다 이렇게 먹어서 체할 것 같네요..
급하게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새우를 씹어 넘기다가 켁켁 하고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니 도경수 씨는 미리 나를 먹여주려 준비해놓고 있던 포크를 던져놓고 내 등을 쳐주었다.
" 괜찮아요? "
아니욬 어헠 새우갘 안빠져욬 컥컥 계속 기침을 하자 한 손으로는 계속 등을 두드려주며 내 입가에 물을 가져다 주는 그. 벌컥벌컥 옆으로 물이 줄줄 흐르는 지도 모르고 받아 마시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야 밥을 먹다말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민석 오빠 커플을 의식할 수 있었다.
헛기침을 하며 손등으로 턱에 묻은 물을 닦아 내는데 도경수 씨는 옆에서 소듕히 냅킨을 이용해서 내 입가를 톡톡 쳐주다가 지금은 굳이 부탁하지도 않은 옷을 닦아주고 있다.
" ㄱ.. 괜찮아요 우리 밥 마저 먹을까요? "
" 오늘 새로 산 옷인데.. "
나는 괜찮지만 도경수 씨는 안 괜찮은 모양이다. 하긴.. 도경수 씨가 사준 옷인데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 경수 씨가 너 다 챙겨주네, 남자인 내가 봐도 진짜 다정하다 "
" 그러게요~ 진짜 보기좋아요~ "
도경수 씨는 갑자기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쭈뼛쭈뼛 안면 근육이 올라갔다. 듣고 싶었던 말이었으면서 또 들으니까 쑥스러워하고있어...
" 아뇨.. 뭘.. 자주 듣습니다 "
?
뭘 자주 들어요?
" 다른 분들도 다 저희 잘 어울린다고 하시더라구요 "
?????? 왜 이래요? 묵묵히 자뻑을 하는 도경수 씨에 당황한 내가 크게 아하하하고 웃으니 긍정의 반응으로 알아들은 그가 냅킨을 꼭 쥐고있는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 두 분도, 정말, 잘, 어울리세요 "
하나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칭찬 아닌 칭찬을 한 후 도경수 씨는 남은 음식 그릇을 살짝 만져보며 말했다.
" 음식이 식은 것 같은데, 아직 배고프면 다른 거 먹을까요? 김민석 씨는 어떠세요 "
" ㅇ..아뇨, 저하고 나비는 어느정도 배 찬 것 같아요 "
그리고 세명의 시선은 내게로 집중되었다. 여기서 좋아요!! 다른 거 먹읍시다!! 이러면 분명 난 돼지 보스가 되겠지...
" 저도.. 배불러요, "
도경수 씨가 주는거 다받아먹었는데 배가 안 부를 순 없겠죠.. 사실 아이스크림 먹고싶은데.. 집에 가서 몰래 먹어야지
정신없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민석 오빠와 나비 언니는 영화 시간이 다됐다며 곧바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벌써 어두컴컴해진 하늘에 자나깨나 어머님 사랑, 어머님 걱정하시겠다며 집에 데려다 준다는 도경수 씨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을 가득 메운 쇼핑백들, 생각보다 오늘 지출이 꽤 많다.
" 도경수 씨 오늘 돈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에요? 오늘 저녁까지 사고, 저거봐요. 쇼핑백 부자야 완전 "
쇼핑백들로 포화 상태인 뒷좌석을 비춰주고 있는 룸미러를 톡톡 건드리니 운전을 하던 도경수 씨는 푸스스 웃었다.
" 괜찮아요 , 이제 좀 돈 벌려고 일하는 의미가 생긴 것 같아서 좋은 걸요 "
..흥.. ㅁ..말은 또 이쁘게 하고 난리..
" 진짜 오늘 머리띠하고 옷하고 운동화 너무 고마워요. 맨날 쓰고 입고 신고 다닐게요 "
살다가 머리띠 이렇게 많이 받아본 적 처음이에요. 맨날 사놓고도 안썼는데
" 정말요? "
" 알바 할 때도, 개강해도 맨날 쓰고 다닐게요 "
" 약속 "
도경수 씨는 핸들을 잡던 두 손 중 오른손 새끼 손가락을 내게 내밀었다. 우리는 약속는 것도 뭐 이리 많은지 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약속이라면야
" 오늘 어머님 놀라시겠어요 "
차에서 내려 아무 말없이 왼발, 오른발 맞춰 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속 그가 말했다.
" 왜요? 지금 해가 빨리 져서 그렇지 그렇게 안늦었어요 "
" 아뇨, 집에서 나올 때랑 옷이 다르잖아요 "
...
순간 엄청난 음란마귀가 들릴 뻔했다. 엄마는 뭐.. 내가 옷 사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으니..
" 근데 오늘 우리 진짜 커플티 팍팍 내고 다닌 것 같아요,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
" 지금이라도 찍을까요? "
지금 하늘이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찍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도경수 씨는 바지 주머니에서 빠르게 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사진이 아예 안나올까 하던 걱정은 할 필요도 없이 화면에 비치는 붉은 가로등 밑 아른아른 거리는 분위기가 생각보다 보기 좋다. 도경수 씨는 북촌에 갔을 때 내가 사진을 찍던 모습을 어느새 배워서는 셀카모드로 전환하고 팔을 멀리 쭉 뻗었다. 군말없이 옆에 착 달라붙으니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따뜻히 감싸오는 그
하나 둘 셋 할 필요도 없이 절로 미소가 퍼지는 순간 찰칵 소리가 들리고 그대로 딱 붙어서서 사진을 확인하는데 역시 초보티 제대로 내는 듯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들려 찍혀있었다.
" 이게 뭐에요! 제가 찍을래요 "
이번엔 내가 짧은 팔을 쭉 뻗어 최대한 이쁜 각도를 찾기 시작했다.
" 자자 이번에는 제대로, 하나, 둘, 셋! "
그리고 찰칵
온통 나와 도경수 씨 사진밖에 없는 갤러리에 들어가보니 내가 찍은 사진도 조금 흔들려 있지만 그래도 이쁘게 웃는 모습은 그대로 담겨져있었다. 붉은 불빛에 원래의 파스텔톤을 잃었지만 그래도 언뜻 비슷해진 색깔이 커플티임을 알려주었다.
" 아무래도 안되겠네요 그냥 나중에 또 입고 다니다가 찍어요 "
" 이 사진도 이쁜데요 "
그러며 열심히 그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놓는 도경수 씨
" 일하다가 힘들면 이 사진 봐야겠어요, 처음 커플티 맞춘 날 "
" 처음 커플링 맞춘 날은요? "
도경수 씨는 음.. 하고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 사진이... 하며 대답을 질질 끌었다.
" 이 사진이? "
" 이 사진이.. 우리가 제일 가까이 붙어있는 사진이잖아요.. "
생각보다 이유는 단순했다. 제일 가까이 붙어있는 사진이라서,
나는 소리 없이 웃으며 문뜩 고개를 돌리니 곧바로 코 앞에서 마주친 그의 눈동자에 흠칫 어깨를 들썩였다. 내 어깨를 감싸고있는 도경수 씨의 팔에 살짝 힘이 들어가더니 더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 역시 우리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
도경수 씨는 한 번 눈을 깜빡일 때마다 조금씩 시선을 내리며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해주니 그의 이쁜 입술 입꼬리가 한 번 씨익 올라가더니 성큼 아슬아슬하게 다가왔다.
" 그렇죠? "
그리고 살짝 턱을 기울이더니 조용히 입을 맞춰오는 도경수 씨에 나는 눈을 꼭 감았다.
부드럽게, 첫뽀뽀는 쪽, 어린 아이와 같았다면 이번에는 좀더 진하고 과감하게 부딪혀오는 입술, 어깨를 감싼 그는 당황하지 말라며 나를 달래주듯이 소중하게 내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생각보다 긴 입맞춤에 어깨가 서서히 움츠러들 때,
입술 위에 감돌던 온기가 사라지고 나를 꼭 안아주는 느낌에 번쩍 눈을 떴다. 도경수 씨의 어깨에 턱을 묻은 나도 팔을 올려 그를 안아주니 기분이 좋은지 흔들흔들 몸을 양옆으로 흔들며 조용히 귓가에 속삭인다.
" 이런 연인 또 없을 거에요 "
그럼요. 우리가 세계 최강의 커플이죠.
결국 김민석 씨를 이겼다고 생각하는 도경수 ♥ 집에 들어가자마자 거울 앞에서서 머리띠를 써보며 엄마한테 자랑하는 카페 노예
*
< 다음 화를 위한 >
오밤 중이되서야 내일 회사가야 한다며 엄마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병원에서 나온 종인은 버스를 기다리다가 앞으로 쌩하니 지나가는 벤츠를 보고 일순간 드는 섭섭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손을 꺼내 찬바람을 견디며 톡, 메세지,통화기록 전부 다 살펴봤지만 어떤 연락도 없었다. 더욱 섭섭한 마음이 드는 종인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일 도경수 씨 인사이동이라 부서 바뀌고 나면 더 바빠질 것 같아서 미리 놀려고했는데, 벌써부터 바쁘면 얼마나 더 바쁘려고
너구리걸님/면하트님/우비님/망고님/카페알바생님/아메리카노님/정수정수연님/바닐라라떼님/굔듀님/뽑뽀님
됴됴륵님/종순이님/몽구님/복숭아님/핫초코님/첸스님/모나리자님/쀼님/2평님/맴매맹님
꽯뚧쐛뢟님/이웃집여자님/제인님/베이비파우더님/데후니님/안녕님/안열님/랭거스님/6002님/사랑둥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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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렁님/똥잠님/하트입술님/개구리님/슈웹스님/퐁당스님/그린티프랍님/포카칩님/빠밤빠밤님/초코에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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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님/눈누님/가락님/시우버섯님/스노우윙님/에베베님/결혼할과님/헤이호옹님/슈슈님/밤밤이님
이엘님/오궁이님/제이크님/자이스토리님/시동님/쿠몬쿠몬님/핫뚜님/밤이죠아님/라엘님/겟또겟또님 ( 제가 정신머리가 없네요... 러브러브... )
수능특강님/아탕님/미니미니님/빨강큥님/별빛님/민트초코님/브릴리언트님/현복님/하트굥수님/퐁당스님
밀크티님/똥백현님/우리니니님/꽃순이님/아카님/라즈베리님/기린뿡뿡이님/얍얍님/무민님/세젤냬님
땅콩빵님/허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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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눈물을 흘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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