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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기타 변우석 이동욱 세븐틴 빅뱅
신이시여 전체글ll조회 409l
섬에 가까워져 올 즈음엔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어. 비구름 밑으로 들어가니 굵은 장대비가 계속해서 바람과 함께 대기 속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지. 

나 역시 그만 홀딱 젖고 말았지만, 탄약들은 애초부터 택티컬 베스트 속 방수팩에 들어있는 상황인데다가, 전자기기 같은 걸 따로 챙길 것도 없었으니 비야 맞아도 큰 상관은 없었어. 

다만, 수영이가 좀 힘들었을 뿐이지. 

바람과 비가 워낙에 드센 통에 나까지 태우고 날아야 하니 혼자 산책 삼아서 날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지라, 가끔씩 강풍에 날개가 흔들려버리는 것도 있었고. 

하여간 섬 근처에 왔을 때는 완전히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했어. 일단은 하늘에서 날아오면 눈에 많이 띄니까, 이 비를 이용해서 천천히 해안으로 잠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 

해안으로 올라오자마자,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나무숲 속으로 몸을 급히 숨겼어. 수영이가 광채를 잠시 내면서 인간형태로 변했고, 난 그 광채가 새나오지 않도록 가지고 있던 판쵸우의 같은 것들로 수영이를 최대한 가려주었어. 수영이가 전투복장을 한 형태로 변신을 끝내자, 나는 내 무기들을 다시 점검하고는, 먼저 놈들의 아지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 

그 때 뒤에서 부스럭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반사적으로 총구를 들어 그림자를 조준했어. 수영이도 긴장된 표정으로 공격을 하려는 듯한 포즈를 취했고. 

“누구냐.”

나지막한 소리로 내가 물었을 때, 그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왔어. 그 그림자는 한 사람만이 아니었어. 빗줄기 사이로 수많은 레이저 사이트들의 빛줄기가 사위를 훑고 있었고, 그것들은 서서히 내게로 집중되었어. 내가 조준한 건 그런 무리들 가운데서도 유독 총을 들지 않은 한 사람일 뿐이었어. 

“여기서 뵙게 되다니!”

그런 말을 하면서 다가온 것은 판쵸우의 차림의 국정원장이었어. 나로서도 적잖이 놀랐지. 

“아니, 보통은 본부에서 지휘하시거나 하지 않나요.”

“허허허. 그렇습니다만, 워낙에 급한 일이니만치 대통령님의 긴급 명령을 받자마자 아예 현장으로 와서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본부에서 영상 보면서 명령내릴 체질이 안 돼 놔서요. 직접 현장을 보고 판단하는 편이 편하기도 하구요. 그보다도, 두 분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불같이 화를 냈어. 

“뭐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몸조심들을 하시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에요! 안 그래도 저희들이 처리하려고 여기까지 이렇게 달려온 것인데, 대통령님의 염려가 이런 식이면 전부 헛수고가 되지 않습니까!”

“면목 없습니다만, 어쨌든 저희도 여기까지 온 이상 도와드리겠습니다.”

국정원장은 내 단호한 대답을 듣더니,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어. 

“그렇다면, 여러분은 일단 저희의 호위를 받아서 안전거점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쪽에 저희가 아지트를 먼저 파악해놓고 작전을 짜놓은 것이 있으니, 그 쪽으로 가서 같이 이야기하시죠.”

난 조금은 감명 받았어. 사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나이 좀 먹고 그런 고위급까지 올라가면 거들먹거리면서 중요한 일 한다고 뻐기기나 하다가 뇌물이나 쳐받아먹던 거 들통나는 이미지 밖에는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없는데, 이 사람은 이런 궂은 때와 장소에 직접 여기까지 나와서 작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거야. 마치 2차대전 때의 롬멜처럼. 

멀리서 무전이나 영상을 받아서 편하게 건물 안에서 지휘해도 되었을텐데. 거기다 중년 정도의 나이도 있고 한데 아무리 대통령 명령이라고 해도 여기까지 온다는 게 쉬운 일이야? 정말 모두의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이라 생각했어.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난 손을 뻗으면서 말했어.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정원장이 잠시 그 손을 바라보더니, 판쵸우의 밑에서 양복 차림의 팔을 뻗어 굳세게 맞잡았어.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그 손을 보면서, 웃음을 지어보였어.
 

수영이와 나를 국정원 요원들이 다 둘러싸다시피 하고, 국정원장이 앞장을 선 채로 우리는 국정원에서 마련한 안전한 거점으로 이동하고 있었어. 비는 여전히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지. 그런데 점점 수영이가 뭔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어. 

“왜 그래? 수영아.”

“뭔가 이상한 느낌이야.”

“뭐가 이상한데?”

“잘 설명할 수가 없어. 하여간, 뭔가 이상해. 느낌이....좋지 않아.”

그러더니, 수영이가 갑자기 내 팔을 붙잡으며 맥없이 쓰러지려고 하고 있었어. 무리가 갑자기 수영이 때문에 멈춰섰고. 

“수영아! 수영아!”

수영이를 붙잡고 당황하고 있는 내 뒤통수로 뭔가가 스윽 와닿았어. 차가운 총구의 느낌이 목 언저리로 화악하고 번져나갔지. 

“그 년을 업어.”

국정원장이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총을 겨누고 있었어. 나는 천천히 돌아보면서 말했어. 

“이게 무슨 짓이죠?”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군. 내가 진짜로 여기 와있어야 할 사람처럼 보였나?”

“그럼.....”

“그래. 내가 여기 와있는 건 멍청한 대통령 그 * 때문이 아니야.”

국정원장은 빗물에 물방울이 아롱진 안경을 추켜올리면서 말했어. 

“어차피 들어가면 다 알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빨리 업어. 아참, 그 전에 무기류들은 다 우리한테 넘기셔야 되겠구만. 그렇게 무거운 것들을 어떻게 매고 올라왔나 모르겠군. 약골 청년. 하지만 뭐 좀 더 힘을 써보라고. 그 정도 매고 왔으면 그년 업고 오는 것도 일도 아니겠지.”

올게 왔구나 싶어서, 나는 이를 악물었어. 
침착, 또 침착을 유지해야 할 시간이, 온 거야. 



수영이를 업고 섬의 동굴 입구로 들어가고 있었어. 내 무기들은 주변 부하 중의 한 놈에게 모두 압수당한 채로. 

물론 힘든 척을 하느라고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연기도 했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쯤은 수십 개라도 탈 수 있을 정도의 내 연기력에 아직까지는 속아 넘어가고 있는 듯 했어. 

(못 믿는 눈치다? 응?)

무엇보다도 모두들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고, 내 힘을 사용해서 움직일 때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어. 신중에, 또 신중해야만 할 시간이었지. 

급조해서 뭔가 굴착기 같은 것으로 파낸 것 같은 느낌의 입구를 지나치자, 안쪽으로 넓은 공간이 나오기 시작했어. 어두운 공간을 몇십 개의 강한 할로겐 등이 켜져서 밝혀놓은 광경도 눈에 들어왔고. 의외로 안쪽은 그리 습기가 들어차 있지는 않았어. 

그도 그럴 것이 저쪽에 무슨 기계장치들이 즐비하더라고. 전자장치들은 습기차면 못쓰잖아. 그 정도면 사람도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 놨다는 말. 꽤나 전부터 준비해놓은 듯 했어. 

그리고 그 안에 모두가 있었어. 

동굴 벽을 파내고 철창을 설치한 감옥 한 쪽으로 회사 사람들이 보였고, 한 쪽으로는 부장이 영상에서 본 꼴로 묶여져 있었어. 그리고, 다른 한 쪽으로는, 

이모님과 수영이의 부모님이 계셨어. 

눈을 감은채로 사지가 완전히 묶여 계셨지. 엄청나게 두꺼운 족쇄 같은 것들이 사지를 둘러싸고 있는 데도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어. 마치 잠이라도 주무시는 것처럼. 

그리고 그 공간의 중앙으로, 전투복 차림의 드라켄 야거 놈들과 프란데르트, 그 놈이 떡 버티고 서 있었어. 차가운 느낌의 올백 금발머리와, 긴 코트 차림의 정장으로.
  
협박하던 놈들 무리가 나와 함께 멈추는 눈치를 봐서, 나는 수영이가 혹여라도 상처를 입을까봐, 살며시 내려놓았어. 겉으로는 진짜 힘들어서 내팽개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고. 

“데려왔습니다.”

국정원장의 말에 프란데르트가 답했어. 

“수고하셨습니다.”

벌써 회사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나를 보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어. 부장은 아예 정신을 잃고 있는 듯 했고. 제길. 저 사람들까지 전부 다 데리고 나갈 수 있을까 싶었어. 
어쨌든 좋은 연기는 유리가면을 쓴 것처럼 섬세하게,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 법. 나는 숨을 헐떡여대면서 말했어. 

“저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람? 흥.”

프란데르트가 날 보며 콧방귀를 꼈어. 

“정확하게 말해주게. 용 세 마리라는 말도 붙여서.”

“정확하게 말하면 네 마리겠지.”

내 말에 프란데르트의 눈썹이 잠시 꿈틀했어. 

그 반응이 뭔가 이상하더군. 녀석은 분명히 용에게 뭔가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몸이 변했을 거 아니야. 그럼 좋든 싫든 받아들이고 가야 할텐데. 그런데 지금의 반응은 마치 아주 싫은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지은 표정이거든. 

잠깐 스쳐지나가는 표정. 그러나 내 눈치야 처음부터 봤으니까 알겠지만 이미 100단이잖냐. 

“용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용은 아니지.”

프란데르트가 음울함이 짙게 깔린 목소리로 뇌까렸어. 

“용의 피를 마시고 저주받은 육체라고 해서, 내 정신까지 용에게 홀린 건 아니란 말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난 이 자리에 서있어. 네놈 같은 인간쓰레기처럼 내가 용의 힘에 홀렸을까봐?”

헐. 누가 누구보고 인간쓰레기라는 거야. 내가 인간쓰레기면 프란데르트 넌 인간도 못되는 쓰레기일텐데. 어쨌든 그  대사로 난 확실하게 깨달았어. 프란데르트의 감정적 약점이 어떤 것인지. 

“그 증거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이 순간이 뭐가 어쨌는데?”

프란데르트가 비웃음을 흘리면서 말했어. 

“용의 파장에 대해선 들어본 바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계속 말했어. 

“우리 역시 그 용의 파장에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를 했지. 파장이란 건 주파수, 결과적으로 주파수 형태를 파악하기만 하면 그 주파수의 파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역주파수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터. 그래서 기계를 만들었고 시험해 본 게 지금의 상황. 즉, 용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고유의 파장을 이 주파수 기계가 무력화시키고 있는 게 지금 이 순간, 이 공간 안이란 말이다.”

그제야 나는 수영이를 비롯해 용들이 왜 정신을 놓고 있는지를 깨달았어. 그렇다면 프란데르트도 정신을 놓고 있어야 할텐데, 그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지. 역시 그놈은 용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괴물이라는 게 입증된 거야. 

그래서, 좀 더 이 지점을 파고들어보기로 했지. 

왜냐면, 저 자식이 인간도 용도 아닌 존재든 뭐든 간에,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이성과 감성이란 놈을 가진 존재라면, 분노는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는 법칙 또한 지배를 받을 것이 상식이거든. 

놈에게 상식이란 게 통하냐고? 이때까지 해온 짓들을 보면 그렇거든. 그 녀석도 용들이나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잖아. 나는 그 판단을 믿어보기로 했어.

그런 계산을 내가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프란데르트놈은 신이 나서 떠들어대더군. 

“이제는 더 강한 조직이 될 순간이 온 것 같군. 거기 있는 그 년은 우리에게 귀중한 존재다. 위에서 아주 제대로 모셔오라더군. 이 용들이 죽는 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나도, 그 말을 듣는 순간 확 열이 받치는데, 조금만 더 참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오냐 이 십장생아 제대로 약올라봐라 하는 심보로 입을 열었어. 

“* 거니? 인간도 아니고 용도 아닌 괴물아.”

“뭐라고?”

“괴물이라고 했다.”

프란데르트의 눈이 파르르 떨리고 그가 있는 공간의 대기가 일그러지는 모습이 보였어. 드라켄 야거의 대원들 조차도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무릎을 꿇거나 벽에 쳐박히는 모습도 보였고. 자, 떨거지들은 대강 이 정도면 바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니까 나이스. 

“괴물이라고? 용의 피가 주는 그 고통을 이겨내고 이 힘을 손에 넣은 긍지 높은 나를?”

“네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너도 모르고 있는 게 있거든? 이 괴물아?”

와방 격분한 상태로 프란데르트의 옷이 찢어지고 눈이 완전히 변하고 있는 것이 딱 변신 직전의 상황. 

때는 무르익은 듯 싶었어. 

“첫째는.”

나는 팔을 쭉 뻗어 손가락을 하나 펴면서 말했어.

“난 국정원장에게 끌려온 게 아니라 국정원장의 안내를 받아 여기 왔다는 것. 어차피 이 *이 배신을 때렸다는 건 소매 단추를 보고 알았다. 니들이 보낸 영상에 그게 찍혀있더라고.”

국정원장놈이 눈깔이 동그래져서 자기 소매를 확인하는 꼴을 보는 것도 너무너무 고소했지만, 더 고소한 건 프란데르트 놈도 살짝 주춤주춤 당황하는 모습이었어. 그 바람에 변신의 타이밍이 늦어도 한참 늦어졌지. 땡쓰!

“그리고, 두 번째로.”

나는 손가락을 네 개를 다 펴면서 말했어.


“나, 쟤랑 키쓰했거등?”


그 때, 아마 살짝 얼굴도 빗금모양으로 붉혔을 지도 몰라. 거울이 없었으니 모르지만. 훗.
 
그와 동시에 내 수도가 바로 옆에 있던 놈을 턱부터 쳐날려 공중으로 올렸어. 정확하게는 내 무기들을 다 울러 매고 있던 그 바보 한 놈을. 내가 항상 멀리 떨어져 두지 않으려고 오만가지 힘든 척 연기를 하면서 간격을 유지하는 줄도 모르고 있던 그 멍청한 한 놈을. 

그 놈이 3미터쯤 올라가면서 후두두둑 내 무기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역시 제일 무거운 바렛 저격총이 먼저 감사하게도 떨어져 주시더군. 

슬로우 모션처럼, 총을 든 뒤의 무리와, 내 앞의 무리들이 움직이는 모습, 프란데르트가 내가 말한 의미를 알아채고 미처 변신도 하지 못한 채 몸을 피하려는 모습, 그리고 다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들을 유유자적하게 살펴보면서.

난 바렛 저격총을 잡아서 봉술 하듯 돌려서 주변의 놈들을 전부 쳐날린 후, 기계를 조준했어. 

내가 날린 12.7mm 탄환 두 발이 정확히 그 기계 중심부를 강타. 부품들을 흩날리면서 기계가 개박살이 나버렸지. 


여기까진 그럴싸했지. 이모님, 부모님, 수영이가 단번에 눈을 떴고, 그 중에서도 역시 아버님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셨어. 

묶여있는 상황을 본 즉시 아버님이 힘을 한 번 쓰자 족쇄들이 조각조각 깨어져서 흩어졌지. 아버님은 어머님과 이모님도 풀어드렸고. 드라켄 야거의 말단부하들이 그제서야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어.

하지만 전부 소용없었어. 어르신들은 보는 눈들이 많아서인지, 용으로 변신하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전투모드가 되어서 접근전을 펼치고 계셨지. 

아버님께서 손 하나 휘두르실 때마다 그놈들 머리 하나씩 사라지는 광경도, 어머님이 수줍은 포즈로 싸대기를 날리자 머리가 돌벽 안에 묻혀버리듯 쳐박히는 광경도, 이모님의 검은 손아귀가 한 놈을 들어서 두 조각으로 찢어버리는 광경도 보였고. 

(얘기해놓고 보니까, 그다지 남의 눈을 의식하셨던 건 아니구만. 킁킁.)

나는 급히 감옥 쪽으로 달려가서 자물쇠를 박살냈어. 회사 사람들이 꾀죄죄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보고 있더군. 하기사, 다 헤진 전투복을 입고 있는 내 꼴이라고 뭐 더 나은 건 아니었지만. 

“자, 여러분! 빨리 대피해야 합니다!”

그 때 내 앞으로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지후씨, 김지후씨 맞죠?”

이런 젠장맞을. 얘는 도대체 왜 잡아 온 거야. 입이 저렴한 윤미선이는. 

“저 사람들은 뭐에요? 우린 왜 잡혀 온 거에요? 지후씨는 또 그 행색이 뭐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에요? 난 누구? 여긴 어디? 말해주세요! 네? 네?”

날파리도 이만큼 귀찮지는 않겠다 싶었는데,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서, 나는 바로 그녀의 귀에다 대고 낮게 말했지. 

“윤미선씨.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요.”

“네!”

“자세한 내용은 기밀이지만, 지금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파견되어 미국 CIA 협조로 극비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지금 여기 상황도 기밀인 거죠. 윤미선 씨는 요주의 인물로 명단에도 올라가 있어요. 그러니까 만약 미선씨가 본 걸 입 밖에 내면.....”

“내....내면요?”

“쥐도 새도 모르게 사지가 찢겨져서 죽임을 당할 겁니다. 제 손에 말이죠.”

으흠. 너무 심했나. 애가 주저앉아서 머릴 감싸 쥐고 막 와들와들 떨더라고. 하지만 속으론 꼬습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트러블 일으키면서도 나 잘났다고 사람들 괴롭히던 인간이 그러는 꼴을 보니 연민의 정 따위가 들 틈 따위는 전혀 없었지. 

뭐 어쨌든 그 짧은 와중에도 한 건 처리.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과 희한함과 혹은 격려의 눈빛으로 날 보는 시선들을 맞받아보면서, 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챙겨서 입구 쪽으로 피신시켰어.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해안가에 모두 집결해 있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이제 남은 사람은 정윤아 부장뿐. 

(음, 이름을 처음 말해주는 것 같군. 그래도 지금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부장이 묶여있는 곳이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구하기는 해야 했어. 상황을 보니까 신나게 싸우고는 있는데, 프란데르트 녀석이 보이지 않았어. 또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걸까 싶어서 불안해지는 속에서도 묶여있던 부장을 급하게 풀어주는데, 부장도 슬슬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거야. 

“지....지후씨?”

주변의 비현실적인 전투광경을 보면서 접수가 머릿속에서 잘 안 되는 것 같은 눈치길래, 두말 할 것 없이 그냥 일단 공주님 들기 모양새로 들어올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뒤돌아선 순간, 또 마주치기 싫은 인간이랑 마주쳐버렸네. 

“어딜 가려고 하시나.”

총을 들고 있는 국정원장 놈이었어. 

안경 알은 금이 가있고, 옷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서. 내가 쳐날린 놈에 부딪혀서 바닥에 한 번 된통 굴렀던 모양이려니 했지. 

“약골인 척 연기까지 할 줄은 몰랐군 그래. 연기력 뛰어나다는 것 하나는 인정하지.”

저 뒤쪽에서 마구 전투가 벌어지는 광경을 흘낏 보던 놈은 나를 돌아보면서 예의 미소를 다시 지었어. 

“참 재밌군. 나름대로 각오했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는 공무원이라는 것도 재밌고.”

내 말에 그 놈도 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데. 

“대통령? 그 자식이 대통령이라고? 웃기지 말게. 내 눈에는 그저 무지랭이 하나가 간판도 없이 올라와서 설레발이치는 것뿐이야. 사상 자체가 의심스러운 놈일 뿐이지!”

금이 간 안경을 추스르면서 그놈이 말했어. 

“난 낭비를 싫어하지. 비현실적인 것도 싫어하고. 그런데 그 둘 다 존재하고 있더군. 대통령이란 새끼가 용이란 놈들을 도와주는 것도 그렇고, 용이란 존재 자체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 꼴을 옆에서 보고 있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자넨 모를 테지.”

국정원장의 나머지 한 팔이 누군가를 찬양하는 모습처럼 치켜 올려졌어. 

“그런데 드라켄 야거가 온 거야. 내게는 구원이나 마찬가지였지. 이따위 대통령 밑에서 굴러먹지 않아도 되고, 더 큰 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끌렸고, 무엇보다도 이 불가해한 존재들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기뻤다고. 자네가 그런 내 맘을 알기는 아나? 응?”

안겨있던 부장님이 정신을 차렸는지, 국정원장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더군. 이래저래 길게 끌면 안 될 상황.

“그래서, 마지막 할 말은 그게 전부?”

“뭐?”

그가 실소를 터뜨렸어. 

“푸하하핫! 이보라고.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 거야? 내가 총을 들고 있고, 자넨 겨눠지고 있어. 자넨 여자를 안고 있고, 나에게 어떤 짓도 할 수가 없다고.”

“그럴까?”

나는 속으로 부장님 죄송합니다 하고 외치면서 부장님을 단박에 공중으로 던져버렸어. 그 짧은 순간, 국정원장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총을 쥔 손에 힘이 가해지려는 찰나, 내 부무장이 먼저 불을 뿜었어. 아예 홀더에서 다 꺼내지도 않고 어느 정도 걸친 상태에서, 바로 방아쇠만 당긴 거야. 

불을 뿜으면서 베레타 M93R이 3점사로 탄환을 흩뿌렸고, 놈의 두 다리 관절에 탄환이 전부 적중했어. 아마 나이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물렁뼈까지 전부 터져 나갔을 테고, 고통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 

“아아아아악!”

놈이 총을 완전히 놓치면서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나는 떨어져 내려오는 부장을 두 손으로 받았어. 
놀라움을 두 눈동자에 가득 채운 부장이 나를 보면서 말하더군. 

“지.....지후씨......이게 지금 대체?”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가시죠.”


겨우 그렇게 수습해놓고 나니까, 하아아아아.....

산넘어 산이라등가. 이번엔 또 수영이가 앞에 턱 서네.

“오빠, 그 여자 누구야?”

지금 생각해보면 앞뒤 모양새가 참으로 얼척 없기 그지 없지만, 그 때의 수영이는 꽤 진지했어. 처음으로 얼굴에 질투가 가득한 수영이의 얼굴을 처음 본 게 그 때였으니까. 

“누군데 그렇게 안아줘?”

“아니, 저기..... 그냥 걸을 수가 없다고 해서.”

난 또 왜 우물쭈물했던 건지. 그 때 부장님이 내려달라고 하더니, 찢어진 옷매무새를 조금 정리하고는, 냅다 거만한 포즈를 취하면서 말하네?

“정윤아라고 해요. 초면은 아니죠?”

“그렇네요. 사무실에서 뵈었죠.”

여자들끼리야 직감적으로 뭔가 깨닫는 게 있다고들 하는지, 하여간 으르렁대고들 있는데, 나만 안달복달하고 있는거야. 도대체 이 여자들이 뭣들 하고 있는 것이삼. 뒤에서는 총알이 날라다니고 뭐가 터지고 있고 피가 튀기고 하여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데!

“크크크크크크크크.......”

쓰러진 국정원장 놈이 웃고 있었어.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화풀이겸 해서 어떻게든 화제라도 돌려보려고 눈을 부라렸는데, 그 놈이 바닥에 대짜로 뻗어서는 아주 ㅤㅅㅞㅅ더뻑한 말을 들려주더라고. 물론 화제를 돌리는 데도 아주 일등공신 짓을 하고 있었고. 

“네놈이 부순 그 기계, 크크크크크크크.....”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그거 동력원이 뭔지는 아는가?”

“뭔데?”

“작은 크기의 핵융합로.”


허허헐러헐? 


“주파수를 내기 위해서 그 정도의 동력원까지 필요할 줄은 몰랐지만, 하여간 내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서 여기까지 들여오게 해준 거니 확실하지. 그것의 컨트롤을 하는 기계까지 네놈이 박살을 내준 거야. 핵융합로는 곧 폭주해서 붕괴할 것이고, 여기 있는 자들은 모두 죽게 될 걸세.”

제기랄. 

“이제,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미련도 없군 그래. 이딴 개같은 나라 따위. 그럼, 마음껏 남은 인생 즐기라고. 거기 두 아가씨들과 함께. 크크크크크크크크!!!!!!” 

어떻게 이런 정신병자 새끼가 국정원장을 하고 있었지. 아니, 뒤집어보면 오히려 이런 정신병자 새끼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자리라는 걸까. 

어쨌건 그걸로 둘이서 질투하던 상황은 한 방에 날아가 버렸어. 정부장도 수영이도 정신이 휘떡 든거지. 아니, 단순히 그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어. 

우린 지금 핵폭탄 속에서 이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었던 거니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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