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천사가 아닐지도 몰라. 벌써 일주일이 흘렀어. 정국이 앞에서 몇번이나 망신을 겪고 난 후, 나랑 정국이는 조금 더 친한 사이가 된 것 같아. 내 생각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내 의도하지 않은 몸개그와, 매일 매일 쉼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두 다리에게 박수를. 아무튼, 요 근래 일주일 동안 내가 정국이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일단 정국이는 하루종일 이어폰을 꼽고 다닐만큼 노래를 좋아하고, 나와는 다르게 친구도 많은 것 같고, 게임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는데 아프고 난 뒤부턴 잘 못했대. 또, 병이 다 나으면 시혁 고등학교에 다닐 예정이고... 아! 다행히도 정국이는 마지막 항암치료만 남았대. 정말 다행이야...으응... 병이 다 나아서도 나를 만나줄지가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리고 뭔가 머쓱할때마다 머리를 만지작 거리는 것 같아. 또 무지무지 단호박이고, 장난끼도 많아. 생긴건 덩치 커다란 토끼같이 생겨가지고 하는 짓은, 완전 비글이라니까? 대형견! "야." 아, 그리고 한가지 더있다. "야 김여주." 얘는 너무.... "김여주. 이것 좀 봐봐. 진짜 웃기다니까? 아 배아파-." 뭐랄까 좀.... "너 지금 내 말 무시해? 제발, 생각 좀 그만하고 이거 보라고. 응? 김여주? 여주야?" 말이 많아. 그것도 엄청. 처음에 벤치에서 만났을 땐 완전 무서운 앤 줄만 알았는데, 친해지고 나니까 첫인상은 첫인상일 뿐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해줬지. 내가 계속 말을 무시하니까, 심통이 난건지 내 이름을 계속 불러대던 정국이는 내 볼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어. 아, 아파 이자식아! "아 쫌! 왜 자꾸 부르는...!" "....." 휙-. 한껏 짜증난 표정으로 휙 돌아간 내 얼굴이 정국이의 얼굴와 엄청나게 가깝다는건, 예상치 못한 변수였어. "....." 쿵,쿵,쿵. 서로 눈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채로 그렇게 한참동안 마주보고만 있었던 것 같아.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고, 체온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 나만큼이나 놀란 것 같은 정국이의 커다란 눈동자도 보였고, 예전날 밤에 봤던 오똑한 코도 보였고, 환자같지 않게 빨간 입술도..... 엄마야. 나 이제 어떡하지? 점점 달아오르는게 느껴지는 두 볼이 원망스러웠어. 아이씨, 촌스럽게 왜이래! 그 순간, 정국이의 입가가 약간 들썩이다가 저만치 나에게서 멀어졌어. 나는 멀어진 체온이 가지고 온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어. 멀어져버린 정국이는 앞머리를 탁탁, 한 번 털어내더니 짐짓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어. "아 왜 못생긴 얼굴을 그렇게 들이대는데, 휴-. 나 완전 심장 떨어지는 줄." ...이 미친놈이- "허, 니,니가 먼저 볼 찌른거잖아!" 난 너무 억울했어. 뭐? 못생긴 얼굴? 아까 느꼈던 잠깐의 설렘은 온데간데 없고, 밀려드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팔을 뻗어 주먹을 쥐고 붕붕 휘둘렀어. 그래, 나 못생겼다! 어쩔건데! 내 처절한 발악에 쿡쿡, 웃던 정국이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팔목을 턱, 잡았어. 그리고 허리를 살짝 숙이더니,
"근데 얼굴은 왜 빨개지냐." "....." "귀엽게." 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어. 02-1.위로 받고 싶어서. 쓱쓱-.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너무 어색하게만 느껴져서, 다시 얼굴이 달아오를 것 같았어. 그래서 '앗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먼저 간다!' 라는 누가봐도, 나 지금 엄청나게 의식하고 있어요. 라는 티를 팍팍 풍기며 쉼터를 빠져나왔어. 어휴, 아빠도 안 하는 쓰담쓰담을 왜 지가 한대? 어이없어, 완전-. 괜히 툴툴대며 병원 복도를 걸어 갔어. 그래도 뭔가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한게...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큼, 복도를 지나가는 내내 올라가는 입꼬리를 신경쓰느냐고 혼났어. 헐. 김여주. 완전 빨리 왔네. 이러다가 신기록 세울 듯. 히히. 벌써 복도 끝에 있는 내 입원실 문이 보였고, 기분좋게 모퉁이를 돈 순간, "여보, 나 이번엔 정말 같이 못 있어 준다니까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 엄마는 한창 아빠와 통화중이셨어. 화장한 얼굴에, 단정한 머리에, 오피스 룩까지. 막 일을 끝내고 돌아 오신 것처럼 보였어. ...피곤하시겠다-. 거의 이주일 만에 보는 엄마였지만, 화난 듯한 목소리 때문에 선뜻, 다가가지 못했어. "여보, 나도 이번 프로젝트 정말 중요해. 이번 건만 잘 성사 시키면, 나도 회사에서 당당히 내 입지 굳힐 수 있어! 이렇게 바쁜시기에 여주를 보라고? 아니, 난 못해요. 여주도 이제 다 컸어. 12살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에요. 난 그렇겐 못하니까, 정 그러면 당신이 와서 애 손이라도 잡아줘요. 당신은 벌써 1달째 출장중이면서, 나한테 너무하단 생각은 안들어요?" 아, 또 나 때문이구나...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을 꽉 쥐었어. 내가 아프기 전부터, 항상 일 때문에 바쁘시던 우리 부모님은, 날 종종 병실에 혼자 남겨두고 일 하러 가시곤 했어. 그리고 내 앞에서는 티를 내시지는 않지만, 내가 없을땐 종종 저렇게 말다툼을 하시곤 하셨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벌벌 떨며 몸부림 칠때나, 곧 겪을 크고 작은 수술이 무서울 때에도, 옆 병실에 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서 누군가의 온기가 미치도록 필요했을 때조차, 내 곁에 부모님이 계셨던 적은 단한번도 없었어. 그래도 그때마다, 애써 나를 다독이곤 밝은 척을 했어.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잘 견뎌내면, 더 밝아지면, 엄마 아빠가 예쁘다고 한번 칭찬해 주시지 않을까. 잘 하고 있다고 웃어 주시지 않을까. 이런 바보같은 생각 때문에 말이야. 전화를 끊으신 어머니는, 핸드백을 챙기곤 반대쪽 복도를 향해 걸어가셨어. 그래도 얼굴 한 번 보고 가지... 가슴 저편에서 고개를 치켜드는 서운한 마음에, 많이 바쁘신가보지. 내가 얼굴 봤으니까 괜찮아! 라고 마음을 애써 다잡았어. 고개를 한번 크게 도리질 치고서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복도를 거닐고 싶은 마음에 그냥 스르륵- 문을 닫았어. 그리고 천천히 링겔 줄을 끌고 걸었어. 드르륵, 드르륵, 내 발걸음에 맞춰 들리는 링겔 헹거 소리를 들으면서, 멍하니 걸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어느새, 쉼터 입구에 도착해 있었어. "...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어. 내가 여길 왜 온거지?? "너무 자주 와서 익숙해졌나봐.. 가야겠다." 여기 있어봤자, 혼자 지지리 궁상만 떨 것 같고, 돌아가자. 이렇게 생각하곤 다시 발을 떼려는데, "김여주? 왜 또 왔어?"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정국이가 보였어. 그리고 깨달았어. 아, 위로가 받고 싶었던거구나, 나는. 이 글에서 여주는 백혈병으로 나오는데, 생각보다 밝은 여주에 성격에 여태까지 이상함을 느끼시지 않으셨나요? 비밀은 바로 부모님에게 있었네요. 여주도 알고보면 상처가 많은 아이에요. 우리 같이 보듬어 줍시다. 일단은 정국이가 먼저 보듬어 주는걸로~?ㅋㅋㅋㅋㅋ 처음 써보는 소설이고, 아무생각없이 즉흥적으로 써질러놓은 글이라서 이렇게 올리는게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재밌게 읽어주셨다는 댓글에 기분이 좋아서 바로 또 다음편을 쓰고 그러네요. 허허. 적은 분이시지만, 댓글 달아주시고 재밌다고 해주셔서ㅜㅜㅜㅜ 감격 또 감격!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해요!♡ (아 그리도 다음화 완전 러브러브할 예정.소근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