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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한달 전체글ll조회 465l

 

 

- 이틀, 관계의 시작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내 발걸음이 조심스러웠고 떨렸다.
단상 위에 선 나의 손이 덜덜떨렸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이러고 서있는거지.

 

"오, 너희 둘이 좀 잘 어울린다. 남자가 먼저 해야지. 진영이 먼저 인사해라."

"제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헉, 급격하게 싸해진 분위기. 저렇게 앞에서 저래버리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저러는거지.

 

"하지만 어쨌든 이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두 믿고 잘 따라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하하, 짜식. 자 그럼 다음 00(이)가 앞으로 이쪽으로 와서 인사해."

 

헐, 벌써 나야? 말도 안돼. 이자식 때문에 내가 더 떨린다고. 뭔가.. 엄청 차갑게 생겼네. 힘들겠어..

 

"아..안녕하세요.. 어.. 뽑아주셨으니까. 한 번.. 여..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자, 둘은 들어가고. 그럼 이제 수강신청 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앞에 빔을 잘 봐."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도 모두의 눈길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 부담스러움. 느끼고 싶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다.
모두 나를 평가하고 있겠지. 자기가 살아온 방식, 자신의 잣대로 나를 평가할 것이다.
일단 겉모습부터 시작하겠지. 그리고는 내 말투나 시선처리, 행동까지도 바라볼 것이다. 그것들이 모여 사람들이 바라본 내가 되겠지.

 

"하.."

"너 생각보다 더 소심하고 자신이 없구나 너한테?"

"어..? 아.. 이렇게 관심받고 누군가의 앞에 서는게.. 좀 그래. 별로 달갑지도 않고.."

"그래도 이미 된거 한 번 잘 해봐, 과대!"

"쉿.. 다들 쳐다보잖아. 모두들 이제 나를 관찰하기 시작할꺼야. 과대니까 제일 눈이 띌테고.."

"그게 그렇게 걱정이야? 아무리 흙속에 파묻히고 다른 광물들이 더렵혀도 결국 다이아는 드러나게 되어있어. 난 너가 그 다이아라고 생각해."

"어..? 정말?"

"응, 난 너가 과대하면서 그런 점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때문에라도."

"아..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줘서. 나도 너랑.. 친해졌으면 좋겠어.."

 

웃는 모습이 예쁜 아이. 남자애가 이렇게 예쁘게 웃는걸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여자인 나보다도 훨씬 예쁘잖아.
성격까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성격인 것 같고 좋겠다. 부러워. 내가 이런 아이와 친구가 되도 되는걸까?

 

"자, 설명은 끝났고 우리과에 전산실로 가서 다같이 이제 수강신청을 할꺼야. 당황하지말고 번호만 잘쓰면 되니까. 자, 이동하자!"

 

"아, 여기 앉아. 내가 너 옆에 앉을게."

"응. 고마워. 나 이렇게 챙겨줘서.. 친구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는데."

"친구가 없긴. 너 이제 과대인데 얼마나 친구도 많고 아는 선배들도 많아질텐데."

"아, 그런가.. 하.. 걱정이다."

"괜찮아. 다 그렇게 성격도 바뀌고 그런거지. 조금만 힘내! 옆에서 도와줄게."

"고마워, 백현아. 진짜, 정말로."

"자, 이제 1분 뒤면 10시다. 10시에 맞춰서 수강신청 클릭하고 자기가 적은 숫자 6자리와 분반 번호를 적으면 된다. 5,4,3,2,1 땡! 시작!"

 

타다닥- 탁-

 

"헐, 언니 어떡해요. 저 못했어요."

"아, 형. 이거 저장 어디에 있어요?"

"애들아! 당황하지말고 천천히해. 어차피 1학년 1학기라 다들 손이 느릴꺼야."


"휴.. 백현아 했.. 왜그래? 무슨 일이야?"

"자..잘못해서 창이 꺼져버렸어. 어쩌지.."

"어..얼른 켜야지! 여기 나 로그인 풀었어 얼른 들어가서 하자."

"응!"

 

생각보다 훨씬 허술한 아이인것 같기도.. 작은일 하나에 크게 당황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귀엽네.
자..잠깐만. 이건 너무 가깝잖아... 그런데.. 남자애가 뭐가 이렇게 피부가 좋아.. 뽀얗고 잡티가 하나 없잖아. 여러모로 여자인 나보다 낫네.

 

"다했다! 고마워"

"아! 응.. 그럼 이제 너 자리로.."

"아, 풉. 그래. 가까이서 나 보니까 어때? 나 피부 완전 좋지?"

"어? 어.. 하하. 부럽다. 하하."

"너희들은 잘 했니? 엇, 너희 벌써 커플의 조짐이 보이는데?"

"네..? 아.. 아니에요..."

"그런가요? 하하하."

"야아.."

"하하하 짜식들. 아, 과대. 있다가 과대끼리 좀 모이자. 알겠지?"

"아, 네."

 

*


"자, 이제 수강신청도 끝났고. 우리과는 공대이고 생각보다 공부도 훨씬 힘들꺼야. 너희들이 싫든 좋든 수학, 물리, 화학을 배우게 될거고. 힘들어도 취업도 괜찮고 좋은 학과니까. 다들 행복한 한해가 되길 바란다. 3~4월은 할 일도 많고 바쁠꺼야. 과대들한테 얘기해서 일정은 다 전달할테니까. 다들 이만 집에 잘 가고."

"네!"

"3월 2일날 학교에서 보자."

"네!"


"백현아, 잘 가."

"아, 나 너 번호 좀 알려주라."

"응? 번호?"

"응. 우리 친구인데 번호 정도는 알아야 하잖아."

"그래. 여기"

"내가 연락할게. 나 몰라보면 서운해한다. 잘 가."

"응. 2일날 보자."


"자, 너희 둘이 이제 과대잖아. 너희가 단톡방에 이 사항들을 잘 알려주도록해. 일단 2일날이 개학일이야. 이때 일주일 동안은 오티 대신 학교에서
여러가지 행사를 진행할거야. 학교 적응도 좀 하고. 이게 그때 일정표니까 찍어서 단톡방에 올려주도록하고. 5일은 개강파티가 있고 27~29일은 엠티.
일단은 이정도가 3월의 큰 행사야. 잘 따라와 주길 바라고. 너희들이 앞장서서 우리한테 정보 잘 얻고 알려주도록하고. 좀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잘 해.
너희도 적응하느라 힘들텐데 부탁한다."

"네"

"네.."

"진영아, 00(아)야. 많이 힘들꺼야. 그래도 너희 둘이 잘 의지하고 서로 돕고 그러면서 잘해. 그리고 둘이 제일 먼저 친해지고 그래야해.
많이 연락하고 알겠지?"

 

힐끔-

'뭐야, 사람을 왜 힐끔거려. 그것도 위에서.. 눈빛.. 진짜 차갑다."

 

"둘이 전화 번호좀 알려줘. 둘도 교환하고."

"아, 네. 여기요."

"네.. 적었어요."

"둘이 교환해."

째릿-

'왜, 뭐. 내가 뭘 잘못..했나보다..'

"아.. 이거 보고.. 여..연락할게."

"응"

"자, 수고했어. 한 학년동안 잘 부탁한다. 그럼. 잘 가."

"네, 동우 선배님. 안녕히계세요."

"에이, 선배님 하지마라. 그냥 형이라고 불러. 우리 과는 선배라고 하는거 다들 싫어하니까."

"네.. 오빠 안녕히계세요."

"응, 그래. 잘 가라."

 

후.. 숨막히는 놈. 불편해서 어디 같이 과대하겠어..? 그냥 혼자 알아서 잘 해야겠다. 할 마음도 없어보이고 나도 마음에 안 드나보네.
정말.. 말도 한 마디 안 해봐 놓고는 왜 혼자 알아서 사람을 판단하고 지멋대로 까칠하게 구는거야? 어이가 없어서.

 

"야, 내 말 안들려?"

"어?"

 

갑작스럽게 내 팔을 잡고 나를 자신에게로 휙 돌려버리는 진영이라는 애. 다시 봐도 엄청 차갑게 생겼다.
생각 그대로 까칠하고 성질 더럽게 생겼는데. 치.. 칠건가.

 

"미.. 미안. 못들었어. 이.. 이거 놓고.."

"잘.. 해보자고. 그리고 내가 남자고 너가 여자라고 막 레이디 퍼스트 뭐 그런거 바라거나. 내가 힘든일을 다 한다거나. 넌 쉰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정도 상식은 있지?"

"아, 당연하지. 날 뭘로보고.. 내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서 잘 할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해줘. 잘.. 해보자.."

"간다."

"아야.."

 

남자라 그런가. 꽤나 손아귀힘이 쎄잖아. 아파.. 아니, 못들을 수도 있지. 그렇게 박력넘치게 저러냐.
내가 뭐 일부로 씹은 것도 아니고. 이상한 애야 정말.

 

"어? 백현이?"

"이제 오네? 집은 어디야?"

"아, 나는 버스타고 가야해. 여기에서 살아."

"아, 그래? 나도 버스타고 다녀. 같이 가자."

 

우리 과에 백현이 같은 친구만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그 정진영인지 뭔지. 완전 삐뚤어졌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초면에 그럴 수가 있어.
앞으로가 걱정이다. 앞으로가. 동우 오빠는 우리 둘이 서로 친해지고 의지하라고 했지만... 생각만해도 어렵다.. 하..

 

"표정이 왜그래? 무슨 일있었어? 선배가 뭐라고 해?"

"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과대인게 어렵다."

"에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마. 그냥 남들보다 빨리 정보를 얻고 준비하고 그런거지. 별 다른건 없잖아. 화이팅!"

"화이팅!"

 


"어? 백현이 너도 여기서 내려?"

"어? 응. 여기서 내려야 집에서 조금 더.. 가까워."

"그래? 우와 신기하다. 아침에는 못 본것 같은데.. 사람이 많아서 그랬나?"

"그랬나? 하하. 아니면 뭐 다른 시간 버스를 탔겠지."

"그런가보다. 우와, 신기해."

"그러게 우리 운명인가?"

"ㅇ..응?"

"뭘 그렇게 당황해 친구될 운명말이야."

"아.. 응. 그런가보다. 아, 난 여기가 집이야. 데려다줘서 고마워."

"아니야. 나도 가는 길인데. 잘 가고 들어가. 연락할게."

"응, 잘 가."

"하, 집에 다시 언제 가지. 완전 반대 방향이잖아. 풉, 귀여워. 좋은 친구 됐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어제 연재 못해서 오늘 두 편을 쓸 예정입니다.

좋은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드디어 여주는 두 명을 모두 만나 보았네요.

재밌게 보세요! 댓글 주시면 더 힘이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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