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은 완결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시점입니다 )
강남 사는 도부자
: 결혼할까요?
졸업이 가까워지자 내게 고민이 생겼다. 엊그제 도경수 씨하고 꽁냥질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사회로의 진출에 대한 압박이 느껴져오기 시작했다. 오세훈은 학업 때려치고 연예인한다고 하고 박찬열은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천사 누나인지 뭔지하는 언니와의 사내연애를 꿈꾸며 리터소프트 취업이라는 한 우물만 파고있고 안나는 해외로 유학을 간다며 유학 준비를 하고,
나는?
나는???????????????
나는 뭐하지??????????????????????
진심 멘붕이다. 남친이 잘나가는 강남 부자에 기업 후계자면 뭐하랴, 내가 그지꼴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도경수 씨가 ' 나는 초라한 여친 두기 싫어요. 갑부인 제 체면도 있잖아요 ' 하고 날 뻥 까버리는 건 시간 문제일 것 같다. 다들 아무리 헛되고 너무 높은 목표라도 이루기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나 혼자 이 모양 이 꼴이다.
진짜 어쩌면 좋냐... 강의를 듣고 때마침 학교에 도착한 박찬열과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위해 구내식당에 마주앉아 한숨을 푹푹 쉬며 제육볶음을 뒤적거렸다.
밥맛 떨어지지? 그러니까 내가 왜 이러는지 물어봐줘, 네가 눈치가 없지만 이것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겠지. 흘끔흘끔 열심히 밥을 먹는 박찬열을 보자 젓가락으로 김치를 찢다말고 아, 하며 고개를 든다.
" 야 맞아 이번에 리터소프트에서 인턴쉽 프로그램 하는데 존나 쩌는 거 같아 "
그러며 옆 의자에 두었던 가방을 뒤적거려 파일 하나를 꺼내든다. 평소 과제도 가방에 아무렇게나 넣어서 맨날 구겨진 상태로 내던 박찬열인데 얼마나 소중한 종이길래 파일에다 소중히 보관해두었을까. 박찬열이 내미는 파일을 받아들어보니 투명하게 글자가 비쳐올라오는 종이에는 크게 리터소프트 사무·행정 인턴쉽 프로그램에 대해 쓰여져있었다.
" 뭔데, 이걸 나한테 왜 줘 "
" 주는게 아니라 보라고, 내가 할거니까 "
" 너 2학년이잖아, 2학년주제에 어딜, 인턴쉽은 3,4학년한테 넘겨 "
" 근데 이미 기간 끝나서 하고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걸, 나는 이미 신청했지롱 "
... 그래서 이걸 준 목적이 뭐라고? 나 인턴한다? 나는 미래가 정해져있다? 자랑하려고??????
" 내가 컴퓨터를 잘못하긴하는데 사무 보조니까 괜찮겠지? "
" 내가 어떻게 알아 "
" 커피타고 복사만 시켜도되니까 진짜 제발제발제발 뽑혔으면 좋겠다 "
" 조용히 하고 그거 얼른 집어넣어라 "
찢어버리고 싶으니까... 아.. 나는 왜 쓸 때없는 정보에만 빠르고 정작 저런 내 미래가 달린 정보에는 한발짝 느린걸까.. 학교에서 맨날 붙어있어봤자 내 마음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몰라주는 박찬열이 괘씸해져 아무 말 없이 제육볶음을 흡입했다. SKY 나온 사람들도 취업이 힘들다고 하는데 엄청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은 넘쳐나고.. 노량진에가서 공무원 시험 준비라도 해야하나, 해도 요즘 공무원이 말은 공무원이지 합격만해도 동네 경사인데. 답이 없다. 도경수 씨.. 제가 이런 못난 여자라서 ㅁl안ㅎH요... ☆
" 왜 이렇게 찬바람 불어, 혹시 ○○○ 너.. "
" 뭐, 물 줄꺼면 빨리 줘 "
내가 절망에 빠져있을동안 밥을 다먹고 물 두 컵을 떠온 박찬열이 물을 달라고 쭉 뻗은 내 손을 무시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경수형이랑 싸웠냐??? "
...
" 안싸웠어!!! 싸우기는 개뿔, 요즘 아주 그냥 서로 좋아죽겠다!! "
" 아하 그래 "
원하는 대답을 들었는지 그제서야 물을 주는 박찬열. 답답한 마음에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자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 그럼 왜 그러는데, 말을 해야알지 "
꼴에 남자라고 눈치는 드럽게도 없다. 김종인 씨 같았다면 아무거나 툭툭 내뱉으면서 진작에 맞췄을텐데, 남은 밥 한숟가락까지 입 안에 꾸역꾸역 넣고 묵묵히 있자 기다리겠다는듯 컵을 놓고 턱을 괴보인다. 기계적으로 턱을 움직이다가 한 번에 꿀꺽 삼킨 뒤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이렇게 내 이야기 들어줄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 아니.. 벌써 하반기 공채 끝나고 다들 내년 상반기 공채 준비하고있는데 나 혼자 이러고있는게 너무 한심한거 있지? "
" 너가 그런 고민도 하냐, 다 알아서 준비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
나도 사람인데... 힘없이 중얼거리자 박찬열이 끌끌 혀를 찬다.
" 아 진짜 짜증나.. 졸업하고도 취업 준비하면서 카페 알바나 계속 할까봐 "
" 오 그거 괜찮은데 "
그냥 툭 던져본 소린데... 괜찮다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 정말 괜찮...나? 조금 표정을 풀고 눈동자를 흘기자 몸을 테이블쪽으로 기울여 나보다 오히려 눈을 더 번뜩이는 박찬열
" 요즘 취준생기간 보통 다 1년쯤은 있다고 하잖아,카페 알바하면 그 사이에 돈도 벌고 취업 준비도 하고 개이득아냐? "
" ... "
" 방학 때처럼 카페에서 경수형 매일 볼 수 있겠네, 집에만 틀어박혀서 취업준비하기 좀 눈치보이지않냐, 말이 취준생이지 백수잖아 "
ㅂ..백수... 아직 졸업도 안했는데 백수라는 말이 왜 이렇게 찔리는지.. 차마 입 안 가득 물고있는 물을 넘길 수가 없다. 제 코 밑을 긁적거리던 박찬열은 몸을 뒤로 빼 다시 옆에 고이 모셔두었던 파일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가방이 꽤나 묵직해보이는게, 한다면 하는 박찬열이니, 리터소프트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을 생각보다 굳게 먹고있는듯하다.
" 박찬열, 너 좋은 정보 있으면 나한테 공유도 좀 해주고 그래라. 내가 겨울방학 알바자리까지 구해줬더니 배은망덕하게.. "
" 에이 나는 네가 다 챙겨먹는줄 알았다니까? 알았어, 내가 선배들이랑 교수님들 꽉 잡고있는 거 알지? 나만 믿어 "
" 뭘 또 너만 믿어야 "
툭툭 자신의 가슴팍을 지며 자신만 믿으라는 박찬열에 빵 웃음을 터뜨리자 장난스레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녀석.
" 이 형이 어떻게 든 정보 따올게, 너는 기다리고만 있어 "
" 이야~ 진짜 믿음직스럽네~ 박찬열 저엉~말 믿음직스럽다 "
비꼬듯이 낄낄거리며 받아쳐주자 박찬열은 짜증을 내려다 이내 시계를 보고 바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적한 식당 안 홀로 우뚝 서있는 박찬열은 정말 전봇대가 따로 없었다.
" 나 이제 곧 교양 시작해서 가야겠다 "
" 웬 교양 "
" 영어 "
" 아~ 맞아, 그래 빨리 뛰어 가고 내일 봐 "
박찬열은 내일 보자는 내 인사를 받는둥마는둥 하고 재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가버렸다. 나도 다먹었겠다 더이상 식당에 있을 필요가 없어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백팩을 대강 한쪽 어깨에 걸쳤다. 학점 관리의 늪에 쩔어있는 나로선 가방이 돌덩어리마냥 버거울 뿐이다. 오른쪽 눈을 비비며 싹 비워버린 쟁반을 정리하기 위해 발을 옮기는데 밖이 조금 시끌벅쩍한게 성가신 느낌이다.
그리고 항상 불안한 예감은 틀린적이 없지
" 어! 도경수 거! 안녕하세요!! "
비교적 아담하지만 그래도 나름 돌아다니다보면 넓은 캠퍼스에서 미친 존재감을 뽐내고다니는 동아리 후배 변백현이다. 특유의 친화력때문인지 항상 주변에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분위기를 방방 띄워주는 장점도 있긴 있지만 쟤가 나타났다하면 어디든 죄다 시끄럽다. 적막했던 식당도 백현이가 등장하자마자 한순간에 시장통이 된 기분이다.
무튼 도경수 거! 안녕하세요!! 라니 이런게 바로 다른 애들이 죽고못사는 연하의 반존댓말인가? 이딴 건방진 말투를 좋아하다니
" 야이씨, 이게 어디서 도경수 거래. 누나라고 불러 "
" 도경수 거, 이렇게 본 기념으로 밥 같이 먹어드릴테니 한 끼만 사주세요! "
" 건방진게, 저리 꺼져 "
너 하나 사주면 니 주변에 있는 두 명도 사줘야 되잖아
" 아이~ 그러지말고~ 혹시 도경수라는 사람한테도 이렇게 무심해요? "
" 저리가! "
내 튼실한 팔뚝에 매달리는 백현이가 자꾸 도경수, 도경수 거리자 도경수 씨를 모르는 다른 남자애들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하필 그 때 박찬열이 내 등짝에 붙였던 포스트잇을 이 놈한테 걸릴게 뭐람... 남자애들은 수근수근 백현이에게 도경수가 누구냐고 물었고 백현이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 이 누나 남친! "
하고 외쳤다.
" 아 맞다. 도경수 거, 혹시 저번에 찬열이 형이랑 세훈이 형이랑 주차장으로 걸어갈 때, 한 명 더있던데 그 사람이 도경수에요? "
도대체 얘는 학교와서 들으라는 강의는 안듣고 그냥 돌아다니기만 하는걸까? 별걸 다봐
" 그 눈이 동글동글하니 이목구비 또렷하고 코트 안에 정장 입고 회사원같ㅇ.. "
" 밥 사줄테니까 우리 조용히하고있자 백현아 "
" 넴 "
빼도박도 못하게 도경수 씨 인상착의까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백현이. 그렇게 순식간에 12000원이 추가로 털려버렸다. 이제 변백현의 강냉이를 털어주고ㅅ.. 아니다. 얼빠진년마냥 포스트 잇 붙이고 다니고, 밥 빨리 먹고 튀어나가지 못한 내 잘못이지...^^
손에 대기번호표를 꽉 쥐고 자리를 잡는 애들까지 보고나서 다시 식당을 나가려하는데 또 나를 붙잡는 백현이의 목소리
" 어디가요! "
" 밥까지 사줬겠다. 양심이 있으면 날 그냥 조용히 보내줘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그게 아니라, 밥까지 사줬는데 왜 그냥 가냐구요 "
그럼 너네들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밥값으로 스트립쇼 하는거 보고갈까 이 새ㄲ.. 놈 들아. 아랫입술을 꽉 물고 백현이를 흘겨보자 비어있는 자신의 앞자리를 톡톡 친다.
" 누나 할 거 없잖아요. 저희랑 노가리나 까요 "
들킴ㅎ. 모르는 남자 아이들이 있어서 조금은 불편하긴하지만 그래도 백현이의 미친친화력이 있으면 문제 될 건 없어 조용히 가서 착석했다. 지금 이 꼴을 아마 도경수 씨가 봤더라면 질투에 눈이 멀어 레이져를 발사했을테지.
음..
자꾸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도경수 씨의 얼굴에 바람 피우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쿡쿡 쑤신다. 역시 내게 일말의 양심정도는 남아있었나보다. 지금 열심히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도경수 씨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결정적으로 도경수 씨가 나 모르는 사이에 직장 동료 여직원들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지 열불이 난다.
안되겠어
" 생각해보니 내가 노가리 깔 시간이 없다. 이만 가볼게? "
옆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아이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마주앉아있던 백현이가 왜요~ 하며 아쉬운 소리를 낸다.
" 됐고 맛점해 맛점! "
더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주며 점차 멀어져가니 결국엔 같이 손을 흔들어주며 잘먹겠다고 인사를 해주는 아이들.
터덜터덜 도서관이나 갈까, 학생회관에서 빠져나와 걷는데 자꾸 도경수 씨가 하하호호 웃으며 여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게 상상이 된다. 물론 도경수 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고 저번 뽀로로 밴드도 김종인 씨 거라고는 하지만... 한번 이런 생각이 드니까 영 불안한게...
... 도경수 씨.. 아니죠?
*
" 도경수 씨 그거 들었어? "
칼점심을 위해 지하 식당입구에서 만난 종인은 경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거 들었냐며 호들갑을 떨기시작했다. 그거라니 대체 그게 뭡니까. 하고 물어볼 법도 했지만 경수는 종인이 알아서 이야기 하겠거니하며 조용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 우리 팀 한대리님 결혼하잖아 "
한대리라면 인사 이동 전에 같은 팀에서 몸 부대끼며 일 했기때문에 경수의 기억 속에도 똑똑히 남아있다. 영 유머감각도 없고 비호감을 사는 행동으로 뒷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결혼을..? 종인은 점심으로 나온 돈까스를 받아들고 혹시 주변에 한대리가 있을까 목소리를 낮추었다.
" 나는 진짜 예전에 같이 밥먹으면서 그 인간이 결혼 할 수는 있을까 했어.. "
" 저는 한대리님하고 같이 밥을 먹어본적이 없어서, 어떻길래 그렇습니까 "
" 쉿쉿, 와나 진짜, 그 인간 은근히 사람 속을 벅벅 긁는데, 자기가 재무2팀에 보내야될걸 총무부로 잘못 보낸걸 나때문이라고 하질 않나. 계급장 때고 한 판 붙을 수 있었으면 진작에 붙었어. 도대체가 저딴 인간 좋아해주는 여자가 궁금하다니까!!!!? "
...
울분을 토해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 종인은 순간 몰린 주변의 시선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시 목소리를 작게 낮추고 종알종알거리기 시작했다.
" 오늘 청첩장 받았는데 진짜 축의금 5만원, 그거 내고말지 꼭 가보려고, 대체 어떤 여자랑 결혼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
" ...잘 갔다오세요 "
감정없이 종인의 말을 받아주며 밥을 받고 길다란 테이블이 이어붙어져있는 자리 중 커다란 창문과 붙어있는 맨 끝자리를 차지한 경수는 서둘러 젓가락을 들었다. 리터소프트 구내식당 메뉴 중 돈까스는 호평이 자자하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진짜 한대리님 부인이 너무 궁금하다며 떠드는 종인을 무시하고 돈까스를 집어드는데 바로 옆에 딱붙어앉은 여사원과 때마침 팔꿈치를 부딪힌 경수. 딱히 왼손잡이 같아보이지는 않는데 자꾸만 부딪히는 팔꿈치에 힐끔 눈치를 주자 여사원은 그저 호호 눈웃음을 치며 죄송해요~ 자꾸 팔이 부딪히네요~ 할 뿐이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도 없는 노릇, 경수는 작게 고개만 끄덕여주고 밥 위로 떨어뜨린 돈까스를 집어들었다.
그 둘의 사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종인은 여사원 얼굴을 전체적으로 스캔해본 후 아무도 모르게 쿡쿡 웃었다. 자타공인 눈치 100단인 종인의 눈에는 여사원의 고의성이 충분히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부딪히는 팔에 돈까스를 떨어뜨리던 경수또한 고의임을 눈치챘지만 대놓고 뭐라고 할 성격은 못돼 참다가참다가 결국 젓가락을 왼손에 쥐고 돈까스를 소리내어 찍었다. 고의인거 티나니까 그만하라는 암묵의 경고였지만 여사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맞은편에 앉은 동료와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이제 왼손으로 먹으니까 더이상 부딪힐 일 없겠지. 라는 경수의 생각은 큰 오해였다. 팔이 안부딪히니 깔깔 웃으며 역동적으로 몸을 경수에게 기울이는 여사원. 도대체 왜 이러는건지... 미간을 찌푸리며 종인에게만 오만상을 다써보이니 그를 다지켜보고있던 종인은 크게 웃을 수도 없고 속으로 끅끅 웃음만 삼켰다. 그러다가 이내 웃음을 꾹꾹 누른 종인이 큼큼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 요새 ○○씨는 좀 어때? 찬열이한테 ○○씨 주변에 남자 못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며 "
" 아... 부탁은 아니고 찬열군이 자청한겁니다 "
" 무튼 수락했으니까 그거나 그거나, ○○씨 개강하고 나서도 꾸준히 만나기는 해? "
" 저번 주말에도 같이 영화봤고 오늘도 회사 끝나고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
" 진짜 대단하네, 안피곤해? 허구한 날 얼굴만 봐도 좋은가봐 "
그녀 생각에 경수는 멋대로 지어진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귓동냥으로 깨가 쏟아지는 경수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듣던 여사원은 한동안 먼산만 바라보다가 돈까스를 반쯤 남겨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서야 겨우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잡을 수 있게된 경수.
" 역시 도경수 씨는 나 없으면 안돼 "
" 불편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대체 왜 저럽니까? "
" 이게 다 신데렐라 드라마의 폐해야. 그런거 있잖아 드라마에서 여주가 회사 복도에서 바쁘게 뛰어가다가 어떤 사람하고 어깨를 딱! 부딪혀서 넘어져보니 상대가 회장 아들!!! 그래가지고 재수없는 회장아들이 여주보고 당신 나 넘어뜨려서 망가진 정장값 물어내! 당신의 사랑으로!! 해서 막 서로 사랑하고!! 어!!? 여주 한순간에 신분상승하고 막 그런거!! "
... 뭐 그런 드라마가...뒷목을 긁적거리던 경수가 남은 돈까스 세조각 중 한조각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자 들고있던 젓가락으로 허공을 콕콕 찌르며 말하는 종인
" 근데 중요한건 그것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게되었지 "
" ..무슨말이십니까 "
" ○○씨말이야. 따지고보면 신데렐라 아니야? 물론 어깨 부딪혀서 도경수 씨가 ○○씨더러 정장값 물어내라는 말은 안했지만 다 타이밍인거지, 때마침 ○○씨 이모님이 우리 회사 근처에 카페를! 그리고 방학이라 알바를! 그때 딱 도경수 씨가! 거기다 내가 딱! 도경수 씨 직장 동료! "
듣다보니 다 타이밍이라는 말은 맞지만...
" 제가 ○○씨를 신데렐라로 만들어줄만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경수의 말에 종인은 헛웃음을 치며 작은 그릇에 담겨진 된장국을 그릇 채로 들이켰다.
" 도경수 씨 "
" 네 "
" 겸손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과하면 재수가 없어 "
... 차마 반박을 하지 못한 경수는 말없이 야채샐러드를 뒤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 그래도 신데렐라 스토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
" .. 뭐 그렇지, 다 그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니까 "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니, 결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무심코 크고짧게 튀어나온 경수의 코웃음에 종인은 눈을 번뜩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웠다.
" 왜, 결혼 생각하니까 좋아? "
" ..아니 뭐.. 그냥.. "
" 하긴 요즘에는 삼개월만 사귀고도 마음만 맞는다싶으면 결혼 들어가는 커플도 많으니까, 도경수 씨 커플은 더 됐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지. 아무렴 "
" 그게 아니라 "
" 한대리님 결혼식 갔다오면 이제 도경수 씨 청첩장 받을 수 있는건가? "
짖궃은 농담에 진땀을 빼던 경수는 종인의 입만 막기에 급급할 뿐 다른 사람들의 귀는 열려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도경수 씨 청첩장, 이라는 말에 종인의 뒤에 있던 개발부원들이 작게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너무 작게 말해서 제대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수는 굳이 들으려고 하지않아도 왠지 뭐라고 말하는지는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방면으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종인이지만 차마 미워할 수가 없는 나머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남은 돈까스 한조각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 농담이야, 아직 결혼은 좀 이르지, 이제 스물 여덟인데 "
" ...이른건가요? "
" 이른건가요라니, 요즘 다들 서른 넘어서도 결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는데, 스물 여덟이면.. "
" ... "
"아이씨 도대체가 요즘 결혼하는 나이들이 느린건지 옛날이 빠른건지 모르겠다 "
자신이 생각해도 알송달송한 결혼 적령기에 종인은 젓가락을 소리내어 접시 위로 던지며 말했다.
" 그냥 결혼해라 결혼해! 좋으면 결혼해! 고등학생도 아니고 다큰 남녀둘인데 "
" 근데 결혼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지않습니까, 저 혼자 좋다는 마음 하나로 가능한 문제입니까 "
경수가 난데없이 심각한 질문을 던지자 종인도 더러 진지해졌다.
" 하긴.. 양가 허락도 있어야하고 서로 능력하고 경제적인 부분이 맞아야하는데 도경수 씨한테 당장 후자는 필요 없을 것 같다 "
" 필요없다뇨 "
" 그럼 필요있어? ○○씨 자격증 따고 스펙 쌓고 해서 대기업 들어가서 도경수 씨한테 경제적으로 안 꿀릴려면 몇 년 더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
" .. 필요없겠네요 "
머리에 힘을 빼고 하나둘 식당을 뜨는 사원들만 바라보던 경수는 이내 조용히 눈을 꿈뻑거리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종인을 따라 의자를 뒤로 뺐다.
얼마남지않은 점심시간, 입가심을 위해 회사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로 가기싫어하는 경수와 그를 꾸역꾸역 끌고간 종인은 버글거리는 카페 안 가장 구석 자리를 선점했다. 웬만해서 이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도통 모습을 안드러내는 둘이라 같은 회사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에 받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안마시겠다고 하는 경수를 뒤로하고 카푸치노를 주문한 종인은 진동벨을 가지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점심을 먹으면서 했던 결혼 이야기를 이어갔다.
" 혹시 지금부터 ○○씨하고 결혼 생각하는거야 도경수씨? "
" 그래야지 ○○씨 졸업하면 바로.. "
" ??? 그동안 ○○씨 졸업하면 바로 데려갈거라는 말이 결혼한다는 말이었어?????? 나는 또 부모님한테 데려간다고.. "
이번에도 종인의 외침에 주변 시선이 모두 경수에게로 몰렸다. 마치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 같고... 스타가 된 기분..
" 이미 부모님은 뵀습니다. ○○씨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구요. 제가 걱정하는건 ○○씨 생각입니다 "
" ○○씨 생각이 왜, 결혼하기 싫대? "
" 그건..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결혼 빨리해서 구속받는 걸 싫어한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
" 에이 그거 다 케바케야 "
" 케바케요? "
이모티콘도 알려줘서 겨우 쓰게된 경수인데, 그래.. 완벽한 신세대인 종인이 배려해주는 수 밖에 없었다.
" 케이스 바이 케이스, 다 다르다고. 내 동기중에서는 진짜 대학 졸업하고 딱 결혼한 애도 있고, 교등학교 동창, 어떤 여자애는 뭐 스물 하나인가? 사고쳐서 결혼한 케이ㅅ.. 아니다, 말이 잘못나왔네. 무튼 도경수 씨가 빨리 결혼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빨리 결혼해버리는 여자들도 많아 "
빨리 결혼해버리는 여자들도 많아, 그 말은 곧 경수에게 희망이었다. 과연 그녀는... 진동벨이 울리고 종인이 커피를 가지고 올 동안 홀로 앉아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경수. 다른 리터소프트 사원들이 보기에는 마치 회사의 미래에 대해 심히 걱정하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머릿 속에 온통 그녀의 얼굴만이 가득 차있을 뿐이었다. 빠르게 커피를 가져온 종인은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경수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 도경수 씨 표정 지금 엄청 웃긴 거 알아? "
" 아.. 그렇습니까 "
종인의 말에 표정을 풀고 무섭게 허공을 노려보고 있는 경수의 얼굴은 더 웃겼다.
" ㅋㅋㅋㅋㅋㅋ 그러지말고 그냥 나한테 털어놔, 웃겨서 못봐주겠네. 연애컨설턴트는 끝났지만 고민이 있을 때 털어놓는게 친구 아니겠어? 좋은 친구? "
오랜만에 듣는 좋은 친구 소리에 경수는 좋아라하며 입을 열었다.
" 제가 너무 서두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아직 만난지 1년 안됐잖아, ○○씨 대학교 졸업할 때는 1년됐겠다 "
" ... "
아무생각없이 카푸치노를 마시던 종인은 급격히 시무룩해진 경수의 표정을 보고 내심 당황했다. 사실을 말해준건데
" 아이, 그래도! 너무 오래 연애만 하면 결혼 못한다고, 몇년 사귀다가 헤어진 연인들도 있고, 한달만에 상견례하고 혼인신고 한 부부도 있는데 도경수 씨 커플은 후자라고 생각하자. 그런 말이 있잖아, 만난 횟수 상관없이 딱 이 사람이다! 싶으면 결혼하라고, ○○씨한테 그런거 느낀적있어? "
" ...김종인 씨랑 저랑 세훈군이랑 찬열군, 다같이 술 마시고 정신 없었는데 ○○씨가 한 명 한 명 다 챙겨서 집으로 데리고 갔을 때...? " (15화참고)
꼭 그 때 뿐만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다! 하고 느낄 수 있었던 적은 많았다. 상견례 때 고분고분 웃으며 대답 잘 해줄 때도, 질투때문에 애같이 굴어도 화 풀어주려고 사근사근 말해줄 때도, 김종인 씨가 붙여준 뽀로로 밴드 보고 질투할 때도, 검은색을 좋아한다고하자 커플티 맞추면서 원하는 분홍색 티를 포기하려고 할 때도 하나하나 그녀는 경수의 사람이었다.
" 인정, 그 때 나도 취해서 챙기기 쉽지 않았을텐데 "
" 그래서 결론적으로, 김종인 씨는 제가 ○○씨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청혼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러며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는 경수에 종인은 마른 침만 삼기다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 좋지!! ㅎ..해..!!! 결혼 해!! 참,○○씨 졸업하면 25살에 29살! 나이도 딱 좋고 궁합도 안본다는 네살차이네!! 딱 좋네!! 결혼 해!! "
사실 종인은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보고 비교해본다음 좋은 사람 찾아서 결혼하자는 주의지만 이미 그녀에게 빠지고도 흠뻑 빠져 헤어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수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 둘이 안어울리면 모를까 어울리기는 더럽게 잘 어울리니까
원하는 대답을 들은 경수는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에 입술을 꾹꾹 물며 핸드폰 홀드 버튼을 눌러 배경화면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시간 날 때마다 만나고, 찍은 사진도 생각 날 때마다 보고 심지어 회사 컴퓨터 바탕화면 정중앙에 [ ○○○씨♥ ] 폴더가 떡하니 자리 잡고있을 정도니
그래 딱 이사람이다.
*
" 예흥, 알바 안힘들어? "
" 안힘드로 "
" 그래 "
학교에서부터 도경수 씨를 만나러 카페까지 와 새로운 알바생 예흥이와 짧지만 뜻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짧은 대화로 알게된건 예흥이가 K대 어학당에 다닌다는 것과 나와 동갑이라는 것 그리고 한국에 온지 2년이 다되어간다는 것. 내가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짧은 대답만 받는게 다지만 말투가 귀여워서 자꾸만 말을 걸게되는 매직..!
" 예흥, 너 커피ㅃ "
" 예흥이 그만 불러 기지배야, 대답 해주는 것도 힘들겠다 "
때마침 작업실에서 나와 내 말을 끊는 이모. 박찬열 있을 때는 우리 찬열이 찬열이 하다가 결국 나중엔 농노 부리듯이 했으면서 이제는 예흥이가 이모의 타겟이 되었다. 이거 원 도망치라고 말해줄 수도 없고... 중국에서 돈이 많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어학당도 다니고 하는 거겠지? 사람이 없는 카페 가만히 앉아 도경수 씨를 기다리는데 괜히 예흥이가 부러워진다. 커피를 쪽쪽 빨면서 이모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고 다시 예흥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 예흥, 너 여친있어? "
" 요자칭구? "
" 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 요자칭구 "
" 업쏘, 너는 "
없다고 대답하며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거리는 예흥이. 이젠 나한테 되려 질문도 다하고 만난지 두 시간정도 밖에 안됐는데 나름 친해진 것 같다.
" 있어, 이제 곧 여기로 올거야, 소개시켜줄게, 도경수 씨라고 자알 생긴 사람 있어 "
그리고 예흥이는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정적이 흘러 예흥, 하고 부르려던 순간 딸랑- 카페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아직까지 사람없이 한적한 카페라 아무런 기대 없이 고개를 돌려보니 살짝 거친 숨을 내뱉으며 멍하니 서서 나를 바라보는 도경수 씨와 눈이 마주쳤다.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그거 거리 얼마나 된다고 뛰어왔나보다.
" 도경수 씨!! "
" 많이 기다렸어요? 업무 끝나고 빨리 온다고 오긴했는데 "
" 저도 온지 얼마 안됐어요. 와서 예흥이랑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
예흥이, 하며 카운터에서 멀뚱히 서있는 예흥이를 가리키자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는 도경수 씨. 예흥이도 똑같이 고개를 숙이며 안뇽하세요. 하고 인사를 받았다.
" 도경수 입니다 "
둘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 궁금해 기대하는 눈빛으로 도경수 씨를 바라보자 먼저 손을 건내 악수를 청한다.
" 장예흥 임미다 "
" 도경수 씨 전에도 한 번 봤죠? 우리 카페 새로운 알바생! 중국인 유학생인데 한국 온지는 2년 됐고 지금 대학교 어학당 다닌대요 "
어색한 둘 사이를 풀어주기위해 조잘조잘 떠드는데 도경수 씨가 먼저 서둘러 잡은 손을 푸르곤 자리에 가서 앉는다. 낯가림 있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도경수 씨! 부르며 그의 곁으로 달려가 왜 그래요?하고 묻자 앉으라는 뜻인지 나 한 번, 맞은편에 놓여진 의자 한 번, 번갈아 쳐다본다. 쭈뼛쭈뼛 의자에 앉아 앞에 놓여진 커피를 들어 빨대를 무는데 흘깃 카운터에 앉아 조용히 독서를 하는 예흥이의 눈치를 보고 말을 하는 그
" 제가 한가지만 물어볼게요 "
" 두가지 물어봐도 되는데 "
" .. 고마워요. 어.. 그니까 "
제가 물어보려던건... 하며 말꼬리를 길게 늘리는 도경수 씨
" ○○씨 학교에서도 주변에 남자친구 많아요? "
" 남자친구? 남자사람친구요? "
" 네, 그, 남자사람친구요 "
그러며 남자친구는 저니까... 하고 중얼거린다. 내가 남사친가 많은건가? 하고 생각해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다른 여자애들은 매끼니 복학생 선배들한테 밥 얻어먹고 같은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꼭 어떻게 과를 뛰어넘어 인맥을 곧잘 만들어내는데에 비해 나는 나 밥 사주는 거라곤 기껏해봤자 전봇대 브라더스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마저도 기브앤 테이크지만 말이야. 그 외에 조금 친한 남자사람들이라곤 백현이정도? 홍빈이나 시완선배는 만나면 인사나 몇마디밖에 안하는 사이니까..
" 에이 저한테 친한 남사친이래봤자 전봇대들 밖에 더있겠어요? 그냥 다들 인사만 하고 지내요 "
" .. 그래요.. "
하지만 여전히 도경수 씨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내가 남자가 많게 생겼나...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건 도경수 씨밖에 없다고 또박또박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한순간 뻘쭘해진 분위기에 오늘 하루 취업준비 때문에 서러워진 마음을 풀어놓기 위해 입을 열었다.
" 저 요즘 취업 준비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요.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스터디도 만들고, 할만한거 닥치는대로 다 했는데도 부족한 것 같아요.. "
"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스터디를 만들었다구요? "
....
다같이 모여서 스터디 만든게 죄인가 싶을 정도로 화들짝 놀라는 그에 나는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냥 단순히 서로 정보 주고받고 하는 그런 스터디 맞죠..? "
" 네, 뭐.. 간간히 모여서 취업 정보 주고받고 그런 스터디 맞아요 "
" 혹시 그 스터디에 남ㅈ.. "
도경수 씨는 하던 말을 끊고 아냐,아냐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대체 뭐가 아닌데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자근자근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어..하고 다시 말을 하는 그
" ○○씨는... 그.. "
오늘따라 말을 매끄럽지 이어나가지 못하는 도경수 씨의 모습에 나까지 당황한 나머지 ㄴ..네? 하고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는 스읍, 하고 숨을 들이키더니 말하기 뭐가 그리 힘든지 미간을 살풋 찌푸리다가 겨우겨우 한글자,한글자 조근조근 말하기 시작했다.
"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요 아니면 늦게 하고 싶어요? "
" 네? "
갑자기 웬 결혼 이야기... 똑똑히 들었음에도 네? 하고 되묻자 또 다시 말하는 것도 고역인 듯 머쓱히 코를 한 번 문지르고는 다시 작게 입을 연다.
" 그니까 이게, 말이 좀.. 이상하죠? "
" 아아 아니에요, 알아들었어요. 저보고 결혼을 빨리 하고싶은지, 늦게 하고 싶은지 말했던거 맞죠? "
" 네, 그거에요 "
... 갑자기 왠 결혼? ㅍ..프로포즈인가..!
" 저는 딱히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좋은 사람있으면 얼른 시집 가야죠! "
내 대답에 굳어있었던 도경수 씨의 입꼬리가 슬금 올라갔다. 아마도 이게 원하는 대답인듯하다.
" 좋은 사람이요? "
" 당연히 시집을 가려면 좋은 사람한테 가야죠 "
"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요? "
그렇게 물으며 가라앉았던 눈을 반짝인다. 도경수 씨 그렇게 안봤는데 완전 답정너야 답정너. 귀여운 도경수 씨의 모습에 큽, 웃음을 참으며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며 음... 하고 시간을 끌었다.
"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
" ... "
" 도경수 씨 같은 사람? "
크으!! 내가 생각해도 백점 짜리 정답이다 백점!!!!!!!!!!!!!!!! 내가 말해놓고도 쑥스러워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도경수 씨의 눈치를 보았다. 아마 이 자리에 전봇대 브라더스나 김종인 씨가 있었다면 짜증난다고 투정을 부렸을테지,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조용히 독서에 몰두하고 있는 예흥이밖에 날 아는 사람이 없으니 상관없이 마음껏 염장을 지를 수 있다는 사실ㅎㅎ
도경수 씨 같은 사람? 이라는 말에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이쁘게 입가에 가득 담고는 대놓고 좋아라 하는 그
" 저같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에요? "
" 완전 좋은 사람~ "
콧소리는 없지만 평소에 없던 애교를 부려주니 도경수 씨는 그저 좋다며 실없이 웃었다. 역시 나란 사람의 순발력이란.. 나 자신의 순발력에 감탄하고 있는데 큼, 하고 목을 가다듬던 그가 말했다.
" 그럼, 아까 좋은 사람 있으면 얼른 시집 간다고 했잖아요 "
살짝 오른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며 얼굴을 가까이하고 테이크아웃 컵을 쥐고있는 내 양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어온다.
" 그럼 얼른 저한테 시집 올래요? "
#
그 때부터 였을까...? 도경수 씨가 시도때도없이 내게 얼른 시집오라고 재촉하기 시작한게...
취업 준비 때문에 힘들다고 찡얼거리는 날에도
" 저한테 시집 오면 취업 준비 걱정 안해도 되는데 "
가끔 만나는 주말에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을 해도
" 저한테 시집 오면 매일 먹게 해줄게요 "
데이트하다가 지나가던 애기가 이뻐서 어머 애기 너무 이쁘다! 하고 말을 해도
" 저한테 시집오면 이쁜 애ㄱ "
" 도경수 씨 스탑 "
" 네, 알았어요 "
도대체 시집 융단 폭격기도 아니고, 우리 엄마도 시집 가라는 소리를 안하는데 도경수 씨는 왜 자꾸 자신에게 시집오라고 재촉을 하는걸까? 물론..! 싫지는 않다. 속초에 다같이 놀러갔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도경수 씨 얼굴 보는 것도 좋고 이미 한 번 술도 진창 먹여 술주정하는 모습도 보고 결혼해서 태도가 싹 바뀔 것 같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걸리는건.. 내가..
내가 너무 꿀린다고!!!!!!!
대한민국 IT기업의 다크호스의 후계자와 평범한 여대딩의 만남이라니, 시작부터 언밸런스한데 아니 직장에서 만났으면 몰라 취업도 못하고 골골거리는 여자가 뭐가 좋다고... 드라마로 보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좋지만 막상 내게 닥치니 마냥 좋지만은 않다. 아무래도 현실이다보니까, 주변 시선도 있고 아무리 서로 마음이 통해도 한 쪽이 우월하게 능력이 좋다보면 돈보고 만난다는 구설수는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경수 씨와 결혼을 안할거라고 못박은 건 아닌데...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맨날 학교가서 취업 걱정만 하다가도 주말엔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데이트를 하고 돌아와 집 근처에 세워진 벤츠 속 나와 도경수 씨
차에서 내릴 생각 없이 라디오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어둑어둑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하늘만 바라보는데 아까 전 데이트를 할 때,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부 한 쌍을 보며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 옛날에는 부부나 아기들 보면 별 생각 없었는데, 요즘에는, 조금 부럽네요 "
" 왜요? "
" 그동안 저는 항상 속해있기만 했는데 부부는 스스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든거잖아요 "
" ... "
"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부부라고 불리는게 제일 부러워요 "
정적이 가라앉은 차 안과 라디오의 정적인 노래는 생각에 빠지기 딱 좋았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귓가에 그가 했던 말이 스쳐지나간다. 부부를 보며 정말 부러움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던 도경수 씨 또한 뇌리에 단단히 틀어박혔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게 시집 오라고 했던 그의 말이 장난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도경수 씨 "
" 네, 이제 집까지 데려다줄까요? "
" 아뇨, 제가 한가지만 물어볼게요 "
" 두가지 물어봐도 되는데 "
..대체 도경수 씨는 언제적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거야
" 고마워요, 제가 물어볼건 "
" 물어볼건? "
" 도경수 씨는, 한 번이라도 저하고 결혼한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어요? "
" ... "
" 자꾸 시집 오라고 하면 저 진짜 갈건데, 책임 질 수 있어서 자꾸 그러는거에요? "
도경수 씨하고 결혼한 모습을 상상해본 적, 나는 사실 조금 많은데, 같이 밥먹다가도 괜히 결혼까지 생각해보고, 자기 전에도, 시간이 나서 얼굴을 볼 때마다, 문뜩문뜩 생각이 드는데,
불안하게 대답이 없던 도경수 씨는 이내 낮게 소리를 내어 웃으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 그럼 제가 아무런 생각 없이 자꾸 시집오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
" ... "
" 다 정말 진심인데, 그동안 너무 장난같이 느껴졌나봐요 "
" 그건 아닌데.. 그냥.. 직장도 언제 구할지 모르고 모아놓은 돈도 하나 없고, 그런데 .. 결혼이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
그러자 꾸물꾸물 무릎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내 손을 꽉 잡는 그
" ...음, 왠지 ○○씨 말 들으니까 왠지 기분 좋은데요? "
" ... "
" 제가 한 말을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해줬다는 말이잖아요 "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다. 그동안 결혼에 대해 아무 생각 없었던 것 같았는데 막상 따지고보면 도경수 씨와의 결혼에 대해 가장 현실적으로 생각을 많이 한 건 나였으니 말이다. 내 손등을 가만가만 엄지손가락으로 쓸어주던 그가 말을 이어갔다.
" 저하고 있을 때, 현실적인 문제는 잠깐 내려놓는 것도 좋아요. ○○씨도 괴롭고 저도 그런 ○○씨 모습 보는거 힘드니까 "
" ... "
" 더욱이나 결혼에 대해서 현실적인 문제는 저한테 떠넘겨주면 굉장히 좋구요. 책임질 수 있으니까 자꾸 시집오라고 그러는 거에요 "
도경수 씨의 말에 울음이 터질 뻔했다. 슬픔,서운 그런 감정이 아닌 감동의 눈물이. 미쳤어.. 도경수 씨... 뜨겁게 상기된 얼굴을 식히려 손등을 뺨에 가져다대려하는데 그가 왼손을 꼭 잡고 놔줄 생각을 안한다.
" 차를 팔아서라도 책임 꼭 질게요 "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하며 손톱으로 톡톡 왼손 약지에 낀 커플링을 건드린다.
" ○○씨 대학교만 졸업하면, 제가 마술 하나 보여줄게요 "
감동에 쩔어 입만 비죽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마술타령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맞대 깍지를 껴온다.
" 이 커플링이, 다이아몬드 링이 되는 마술을 "
프로포즈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한 말을 하며 진하게 눈을 맞춰오는 그에 작게 입을 벌린 채로 가만히 있으니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또박또박 말을 하는 도경수 씨
" 그러니까 "
" ... "
" 우리 결혼할까요? "
*
사담
하이 여러분 리히터예요!
하하 모두 바쁜 삼월 잘 보내고 계시나요?..^^ (영혼탈곡)
외전 첫 스타트부터 병크를 터뜨리네염 결혼할까요 라니, 도경수 답정너네요 답정너!!!!!!!!!!!!!!!!!!!!!!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바쁘게 텀 너무 길게 두지 않으려고 쓰긴썼는데 하앜ㅋㅋㅋㅋㅋㅋ 눙물...☆ 못난 제탓이에요..
무튼 완결편에서 여러분들의 댓글은 모두 하나하나 잘 읽어보았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감덩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흐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완전 사랑해여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하나같이 저보고 수고했다눈 이쁜 말씀들뿐...♥ 엔제르독자님들 하트하트하트하트
대표적으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차기작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구 합니당
도부자 외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후에 따로 휴식기를 갖지않고 바로 단편 세작품 들어갈거구요 각 에피소드마다 3-5화정도로 구성된 단편들을 쓰면서 장편 차기작을 계획할 예정입니다. 단편들의 주인공들과 메인 스토리는 이미 정해졌는데 장편은 아직 등장인물도 못정했네요...^^ 흡..
그리고 도부자 외전에 대해
완결에서 언급했다시피 불마크,결혼,육아 들어가구요. 따로 찬열과 천사누나 에피소드 추가에, 결혼이라는 하나의 주제에서 여러 편수가 나올 예정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결혼할까요? 화는 결혼이라는 주제에서 나온 편이죠!
아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이번 화는 도부자 완결로부터 꽤나 시간이 지난 시점입니다. 초반 부분 다들 하반기 공채가 끝났다는 말로 눈치채신 분도 있으실거라 생각합니다. 가을로 넘어가는 때이려나요..ㅎ ..무튼 다음 도부자 에피도 사랑해주시구 우리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너구리걸님/면하트님/우비님/망고님/카페알바생님/아메리카노님/정수정수연님/바닐라라떼님/굔듀님/뽑뽀님
됴됴륵님/종순이님/몽구님/복숭아님/핫초코님/첸스님/모나리자님/쀼님/2평님/맴매맹님
꽯뚧쐛뢟님/이웃집여자님/제인님/베이비파우더님/데후니님/안녕님/안열님/랭거스님/6002님/사랑둥이님
부릉부릉님/전봇대님/딸기님/설렘사님/소녀님/제이너님/경수하트워더님/민속만두님/시카고걸님/모카님
찬효세한님/마름달님/세시님/로운님/스누피님/언어영역님/모찌님/블리님/도즈님/SH님
메리미님/쉬림프님/박력탬님/드보봅님/프라이빗님/타오네엄마님/씽씽카님/됴로롱/됴숭됴숭님/거뉴경님
카푸치노님/으니님/고구마님/툐툐님/세젤빛님/율스루님/뽀로로님/시나몬님/청담동앨리스님/우럭우럭님
꾸르렁님/똥잠님/하트입술님/개구리님/슈웹스님/퐁당스님/그린티프랍님/포카칩님/빠밤빠밤님/초코에몽님
솔라씨님/스티치님/유레베님/시나문님/갭주네님/자이스토리님/요맘떼님/독영수님/추천요정님/뾰롱웬디님
멍뉴님/메론방구님/슬리퍼님/초코아몬드님/스윙칩님/까만원두님/( ͡° ͜ʖ ͡°)님/뿌링클님/색연필님/칭칭님
아디다스님/눈누님/가락님/시우버섯님/스노우윙님/에베베님/결혼할과님/헤이호옹님/슈슈님/밤밤이님
이엘님/오궁이님/제이크님/자이스토리님/시동님/쿠몬쿠몬님/핫뚜님/밤이죠아님/라엘님/겟또겟또님
수능특강님/아탕님/미니미니님/빨강큥님/별빛님/민트초코님/브릴리언트님/현복님/하트굥수님/퐁당스님
밀크티님/똥백현님/우리니니님/꽃순이님/아카님/라즈베리님/기린뿡뿡이님/얍얍님/무민님/세젤냬님
땅콩빵님/허니님/초코나무숲님/두유님/Believer님/아퀼라님/츄파츕스님/티슈님/까꿍님/잼잼님
찰떡님/0227님/파파이스님/됴아됴아님/니나노님/으하힝님/공듀님/꽃돼지님/피타츄님/메추리알님
된장찌개님/고고싱님/부릉님/버들님/스무디님/세로고님/강남김송이님/붕붕이님/종인씨는제게와요님/에베베님
젤리냠냠큥님/피클님/연어덕후님/공공칠빵님/낑깡님/반시님/요다댥님/두부님/꼬르륵님/리잰님
아쿠님/혹시몰라경고하는니니님/백허그님/윤아얌님/Joboo님/레몬사탕님/타앙슈욱님/종인미인님/자몽님/테라피님
쭈꾸미님/콩이님/얼음팩님/도른도른님/Mercy한양갱님/언더더씨님/징니님/쯔덩님/워니님/찌통님
졸업사진님/후니발렌님/슈스엠님/치즈케이크님/섭씨님/됴블리즈님/뭉이님/진달래꽃님/모미님/세니다니님
방부제님/투투붓님/망고주스님/현화님/애국경영합격님/같이의가치님/메리메리님/기린그린님/고로지님/꽃무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