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라."
분내가 코 끝을 찔렀다.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강한 향이였다. 높은 웃음소리들이 정신없이 들려왔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두 팔을 내 저으니 손 끝에 부드러운 끄나풀이 닿아왔다.
어느새 손엔 얇은 천조각들이 한가득 들려있었다. 네 피부만큼이나 고운 비단결을 매만지다 문득 눈 앞이 축축하다는 것을 알았다. 신경질 적으로 눈앞의 안대를 풀었다. 웃음 소리가 멎었다. 금새 가라앉은 분위기에 서로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충 나가라는 손 짓을 하니 바삐 걸음을 놀렸다.
철푸덕 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이곳 저곳에 널부러진 꽃잎들과 분가루, 계집들의 속곳이 눈 앞을 어지럽혔다. 어린아이가 때를 쓰듯 두 다리를 들썩이며 한참을 목 놓아 소리 질렀다. 이미 등 뒤로 빠른 발걸음 소리와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단지, 지금 당장 네가 보고싶었다. 숨이 넘어 갈 듯 했다.
"우지호! 지호는 어디갔느냐, 어?! 지호는,"
결국 오늘도 너를 찾았다. 다짐을 하고 또 해봐도 결국 결말은 같았다. 매일의 반복이였다. 숨을 쉬는 것, 밥을 먹는 것, 잠을 자는 것 만큼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탓에 누굴 탓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내 시간은 흐르지 않는 듯 무뎌지지 않았다. 여전히 피가 철철 흐르는 탓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매일 날 찾아왔다.
"나.. 나으리 진정하심이..."
"닥쳐라, 닥쳐! 모두 다 나가거라! 여기가 어디라고 그 더러운 발을 들이는 것이냐!"
머리가 울릴 정도로 한참 동안이나 소리를 지른 뒤 주위를 둘러보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이 느껴졌다. 흐느낌마저 공허한 공기에 압도 된 듯 난 숨을 죽였다. 비틀 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역한 분내는 결국 코 끝을 마비 시킨 듯 했다. 순간 겁이 났다. 이 분내에 혹 지호의 향이 가려지진 않았을 까, 급히 병풍 뒤를 뒤졌다. 모든 것이 그대로 였다. 네가 쓰던 침구, 의복,그리고 속곳까지. 미친사람처럼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셨다.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네 향이. 그 어떤 계집의 분내로도 가릴 수 없었던 네 짙은 향내는 주인을 잃자 거짓말 처럼 옅어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가."
"예 나으리."
"어찌 이리 어여쁘냐."
"…"
"어? 고개 들어보거라."
"…"
짧게 시선이 마주쳤다. 나비가 날개짓을 하듯 살풋 내려 앉은 네 속눈썹에 난 다시한번 감탄했다.
"유난히 겨울이 길구나."
"그러게말입니다."
"아마 네 아름다움을 시기해 꽃들이 고개를 들지 않는 것 같다."
"무슨…."
"이것 보아라. 웃으니 얼마나 예쁘냐."
"…"
"어허. 또."
슬쩍 접히는 눈꼬리엔 어느덧 또 다시 굵은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왜. 왜그러느냐. 왜. 네 눈물은 투명했지만, 세상 그 어떤 색보다 짙게 내 눈에 띄였다. 십리 밖에서도 보일 듯 한 기분이 들어 거칠게 눈물을 쓸어올리니 이내 놀란 듯 몸을 들썩이는 네 모습이 보였다.
"나으리…"
"…."
"돌아가고싶습니다…."
"…."
"돌아가고싶습…."
할 수 있는 건 내 입으로 네 입을 틀어막는 것 그뿐이였다. 숨을 삼키는 소리가 몇번, 넌 미동도 없이 내 모든 행동을 받아들였다. 일말의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아니, 들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 내가 온전히 널 소유 할 수 있다. 넌 내것이다. 내것이여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