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를 보내드렸어요. 번외에서 백현이와 루한에게 숨겨진 비밀이 하나 더 나오는데요. 메일링 원하시는 분은 암호닉을 신청해주세요. 오늘까지 신청받은 분들에 한해
번외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급히 아르페의 가장 윗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한 루한이 종인을 호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선 종인이 빠르게 다가왔다.
"언제쯤이지. 복사 흔적이."
"두시간 전. 근데 일부러 흔적을 남긴것 같아."
일부러 흔적을 남겼다라..이건 경고다. 빨리 타오를 구하라는 준면의 경고.
"어차피 터질 일이었다. 조금 빨라진것 뿐. 이제 곧 경찰에서도 월강에서도 내 존재를 알아차리겠지. 아니 이미 아는지도."
"아버지께선 언제 돌아오시지?"
"아버지...아버지께선..."
"......"
"돌아오지 않는다."
보스가 물러나 그자리를 루한이 곧 이어받을거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라니. 종인이 루한을 응시했다.
"무슨 뜻이지."
"말그대로야. 아버지께선 이제 소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까지 소접의 보스는 아버지셔. 당장 내일 물러나신다해도."
"아, 그렇지. 하지만 그건 조직을 움직일 수 있을때 이야기 아닌가."
"뭐?"
"아버지께서도 약을 드셨지."
종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제가 알고 루한이 아는 약이란 그것뿐이다. 제가 구해온 홍콩에서만 밀매되는 약. 백현에게 먹인 그것.
"...루...한..."
"아, 변절은 아니지. 아버지를 죽인건 아니니까."
".....너.."
"어제 연락을 받았지. 많이 늙으셨어. 그런걸 의심도 않고 드시는걸 보면. 판단력이 흐려진거지."
"......"
"이제 남은건 월강인가."
"......"
"경찰쪽이야 이미 넘어온것같고."
말을 잇지 못하던 종인은 생각했다. 민석, 김민석 때문이다. 그런 종인을 보며 루한이 한숨을 쉬듯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선 언제나 반대하셨어. 월강과의 적당히 타협된 관계를 유지하고 경찰이 눈을 감아 줄 수 있는 선까지만 활동하길 원하셨지."
"....그리고 김민석을 주시하셨지."
"........"
"니가 오래도록 가까이하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아닌가?"
"..그래 맞아, 내가 손을 뻗는 순간 아버지가 민석일 어떻게 할지 알고있었으니까 웅크려 때를 기다렸지."
"..너 미쳤어."
"알아, 난 미쳤지. 멈출 생각은 없어. 이제 월강만 무너진다면 날 거스를건 아무것도 없어."
".........."
"민석이를 감히 넘볼 것도 이젠 아무것도 없어."
"........."
"민석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
"......."
"이제 그건 나야. 김종인"
말을 마친 루한이 곧 레이게게 전화를 걸어 본부로 올 것을 지시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종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조직원 모두가 언젠가부터
루한을 실제적 보스로 따르고 있었기에 이번일로 인한 파동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가 곧 올거야. 그러면 내가 일전에 말해둔대로 3차로 나누어 월강의 가장 바깥쪽부터 시작한다."
".......너는."
"민석이가 혼자 있어. 아픈데 내가 있어야되."
"...지금이 그럴때야?"
"나한테 김민석 이상으로 중요한건 없어. "
이렇게 한곳에 미쳐 너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게 살피지 않는 모습은 원하지 않는다. 한국에 네가 처음 왔을때부터 난 너를 봐왔다. 그리고 한국에
오자마자 계기도 모를 너의 김민석에 대한 사랑을 지켜봐왔다. 소접이 한낱 조직에 머물지 않고 아르페라는 거대 기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누구도 감히
건달조직이라 얕볼 수 없게 만든것도 너고, 그것 또한 김민석을 위해 이뤄왔던 일이라는걸 안다.
이제껏 김민석 하나만을 보며 달려온걸 누구보다 잘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제발 너 자신을 좀 살피면 안되는건가.
"김준면은. 지금 어딨지."
"..찾고 있어. 멀리 가진 못했을거야."
"찾을 필요 없어."
"뭐?"
"아니, 찾아서 데려올 필요가 없다고."
"......"
"집나간 개는 붙잡아 오지 않아."
"......."
"발견 즉시,그자리에서 죽인다."
"..그래."
소파에 앉았던 몸을 일으킨 루한이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첸."
"..루한, 첸은"
"첸도 마찬가지야."
"......"
"배신의 댓가치고는 너무 터무니없지만,"
"......"
"어쩌겠어, 때가 때인만큼 죽이는것에 끝나는걸 감사하라고 전해."
곧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향한 루한이 방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종인은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응답해오자 종인이 말을 이었다.
"....아직 안늦었다. 김준면."
"너 하나정도는 내가 어떻게 해볼테니까..."
"파일가지고 본부로 돌아와"
곧 전화기 너머로 즐거운 듯 웃어대는 준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근데 어쩌지.
"........"
-이미 전송했어. 크리스한테.
"김준면!!!!!"
-그리고 월강에도 전했다.
"...너....너 설마..."
-루한이 진짜 후계자다. 타오를 풀어준다면 그의 약점을 알려주겠다.
"미친새끼야, 너 돌았어? 돌았냐고!!!!"
-우리 조직은 이게 문제야. 안그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 모르게 했어.
"그새끼들이 그런다고 정말 타오를 내보내줄거 같애?"
-이미 말했어. 김민석의 존재를.아마 타오를 죽이진 않을거야.살짝 도발만 하라고 했으니까.
"...어디까지 일을 벌려놓은거야 너."
-지금쯤이면 김민석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네.
종인은 제 귀를 의심했다. 준면을 불쌍히 여겨왔다. 소접에서 그나마 인간다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던 그였기에 타오를 향한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의 처절함을 알기에 이제 월강에 잠입해 타오를 구해낼테니 그만 속죄하라 말을 전하려 했다. 루한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준면은 종인, 제집에 있었다.
헌데, 그가 민석을 건드렸다. 이제 걷잡을 수가 없다.
"김준면."
-그래, 여기 총이 많이 있네. 서재 뒷편에.
".....잘들어"
-어딜 쏴야 한방에 가더라.
"...만일..김민석이 잘못된다면"
-이거 안에 총알은 들었나?
"....니가 지키려던것도 다 무너져"
-이거 많이 아프냐?
"....그냥 세상이 뒤집어 질거야"
-.........잘있어라 김준면. 니 방에 피튀기는거 미안하다. 총을 잡아봤어야 알지.
탕-!!
곧 수화기 너머로 큰 총성이 울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전화기가 땅에 떨어진듯했다. 이 멍청한 새끼야.
"...그리고......타오도 무사하진 못할거다..아마..."
전화기를 내려 종인이 눈을 감고 손을 얹었다. 그러는 사이 레이가 황급히 들어섰다. 곧 지시를 기다리는 레이에게 일단 3부대만 챙겨 월강 근처에
대기시키라는 말을 꺼냈다. 곧 고개를 한번 끄덕여 대답한 레이가 다시 뛰어나갔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제발 이폭풍이 지나간 다음 순간에 모두가
존재해있길 바랄뿐이다. 루한, 너 역시.
호텔을 빠져나와 첸의 손을 붙잡은채 급하게 차를 몰던 크리스는 곧 한 아파트앞에 내던지듯 차를 주차하더니 황급히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무슨일인가
파악도 하기 전에 달려나온 크리스의 품에는 조그마한 여자아이 하나가 안겨있었다. 대여섯살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크리스의 무심한 얼굴을 쏙 빼닮은
아이였다. 첸은 알 수 있었다. 아, 너가 아저씨 딸이구나. 아이를 뒷자석에 급히 태우고 크리스는 다시 차를 몰았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크리스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기다릴 참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고속도로를 지날때쯤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내 딸이야.이름은 쉬 라인데 그냥 한국에서 시내라고 불러."
"..........시내.."
"애가 어른스럽고 눈치도 빨라. 너보다 더."
".............."
"지금 내 개인 사유지로 갈거야."
"............."
"중국에서 허가를 받아야지만 접근이 가능한 곳이고, 따로 군사배치도 되어있어. 당분간은 안전할거야."
"..............."
"시내랑 거기서 잠시만 있어."
"아저씨는요..?"
"금방 데리러 갈게"
"아저씨 가면 죽,"
말을 이으려다 뒤에서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눈동자에 말을 삼킨 첸이 곧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아저씨 죽고싶어요?
"어차피 한번을 겪어야 할 일이야."
"그래도!"
"한국 경찰은 이미 넘어갔어. 나라도 나서야 중국쪽에서 지원이 올가야."
"........"
"이대로 도망이라도 가면야 편하겠지만"
"............"
"앞으로 너랑 시내랑 살아갈 세상인데 할 수 있는데까진 바꿔봐야지."
그렇게 말하고선 다시 운전에 집중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첸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왜 아저씨가 말하는 세상에 아저씨 자신은 없냐고..묻지 못했다.
곧 넓은 평야를 달려 도착한 곳은 여러개의 검문을 지나서야 안쪽으로 진입이 가능했다. 중국어로 빠르게 말을 잇던 크리스가 곧 다가와 말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좀 쉬어. 금방 연락할게."
"아저씨"
"불편함없이 해줄거야. 이래뵈도 중국에서 꽤 잘나가거든"
장난스레 웃는 크리스에게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있는데 그가 곧 무릎을 낮춰 자산의 딸을 바라봤다.
"시내야."
"응."
"짜식이, 내딸 아니랄까봐 애교없긴."
"애교를 부릴만큼 자주 봤어야지 우리가."
"...그래, 근데 당분간 또 못보게 생겼네..미안해 우리딸"
"괜찮아. 한두번도 아니고. 다치지만 말고 와."
"다컸네. 아빠걱정도 다하고."
"아빠걱정은 옛날부터 했어."
"..그래, 여기 있는,"
"여기있는 오빠 말 잘 듣고 저기 있는 아저씨들 말도 잘듣고 아프지 말고 밥도 잘먹고?"
"...그래."
크리스는 잠시 말없이 자신의 딸을 껴안았다. 겨우 말을 떼기 시작할때부터 한국에 와 중국어보단 한국말에 더 능숙한 아이. 아직 한참 부모품에서 재롱만
부릴 나이지만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더 자주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기만 하다. 투정 한번 부려보지 않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새끼.
더 오래 시간을 끌수록 미련만 커질까 크리스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첸에게 다정한 말한마디 , 포옹 한번도 나누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오늘 아침, 그에게서 가장 달콤한 말을 들었으니까.
널 사랑한단 뜻이야.
멀어지는 그의 등이 다시 말해주는듯 했다.
조금은 급하게 빌라안으로 들어서던 루한은 지문을 인식하려던 손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미묘한 공기가 달라졌다. 황급히 안으로 들어선 루한이 거칠게
자켓을 벗어 집어던졌다. 집안은 어떠한 흐트러짐도 없이 깨끗했다.
다만, 구둣발로 거실을 밟은 검은 발자국이 그대로 민석이 누워있던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민석이 사라졌다.
감히 누군가 내 세상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