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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치근덕대는 사람. 두 번째, 철벽치는 사람. 그리고 세 번째, 김종인. 바로 뜬금포 쩌는 사람이다.

 

 

2015년, 카디찬

 

 

도경수, 나랑 사귀자. 그러니까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이 말은 지금 내 앞에서 당당하게 무표정으로 말하는 사람이 뱉은 것이다. 아니, 어? 나랑 사귀자고. 하……. 정말 골 때리는 새끼다. 사실 난 얘를 모른다. 정말 도경수 인생 23년 중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다. 대학 생활 3년 째 조용히 잘 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나님…. 나는 정말 그냥 평범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얼굴도 평범, 몸도 평범, 옷도 평범, 성적도 평범, 성격도 평범, 취향도 평범. 여기서 얼굴이란 원빈, 장동건, 강동원 이런 분들 빼면 전부 평범한 것이다. 저 사람들은 그냥 신이고 잘생겼다 정도는 이정재, 정우성 이런 분들? 그런 축에서 난 그냥 평범 그 자체란 것이다. 여긴 전부 나만큼 생긴 애들이 깔렸고, 물론 내 앞에 있는 이 새끼도 그렇고…. 근데 이 새끼 취향은 아닌 것 같다. 난 평범하게 그냥 여자를 좋아하는데 이 새끼는 뭐지?

 

“ 미안한데, 난 여자 좋아해. ”

“ 상관없어. 그러니까 사귀자고. ”

“ 아, 씨발……. ”

“ 욕 하는 것도 섹시하네, 사귀자, ”

 

얼굴은 얼음만 존나 처먹을 것처럼 생겨놓고선 뱉는 것들은 아주 소름이 돋다 못해 닭털이 날 것 같다. 어떻게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하지? 존나 무서운 새끼다. 저 말을 듣자마자 난 결심했다. 존나 뛰어서 이 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빠져 나가야겠다고. 어떻게 빠져나가지 핑곗거리를 만드는 중이었는데 저기서 박찬열이 보였다. 저 새끼도 피곤하긴 한데 그래도 이 새끼보단 아니니까 저 새끼를 써먹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 야, 박찬열! ”

“ 어, 경수야! 아직 안 갔네? 같이 밥 먹을래? ”

 

저 새끼랑 밥 먹는 건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만 같이 먹는 걸로. 어, 그래. 뭐 먹을래? 하며 박찬열에게로 가려는데 이 새끼가 갑자기 내 앞을 가로 막는다. 뭐야, 이 씨발… 존나 키만 커서는. 왜 내 앞을 가로 막아? 저기서 김치찌개 먹을래? 아니다, 고기 사줄까? 하던 박찬열의 소리가 끊겼다. 곧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박찬열이 이 새끼 앞에 섰다. 물론 박찬열은 이 새끼보다 키가 더 큰 덕분에 얼굴은 감췄지만 박찬열은 이 새끼보다 어깨가 좁았다. 아, 존나 쓸모없는 새끼. 곧 이 새끼가 옆으로 빠지더니 날 보고는 뒤 돌아 그냥 가버린다. 뭐야, 저 새끼는 진짜 정체가 뭐지? 저 새끼를 의아해 하면서 보는데 박찬열이 내 손을 잡더니 뭐 먹으러 갈 거냐고 물어본다. 음……, 점심엔 역시 낮술이지!

 

-

 

솔직히 한 두잔만 마시려 했다. 그런데 그 새끼를 생각하면 할수록 술이 들어가서 결국 한 병을 마셨다. 앞에선 박찬열이 경수야, 낮인데? 경수야! 라며 말렸지만 내 귀엔 이미 커튼이 쳐져있어, 인마. 안 들려. 그래서 결국 난 낮 2시에 술에 취해 꼴아버렸다.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계속 그 새끼 때문에 그 새끼…, 그 새끼…. 거렸고 박찬열은 그 새끼? 지드래곤? 라더니 갑자기 그 새끼보다 내가 못한 게 뭐냐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죽겠다.

 

“ 그 새끼보다 내가 못한 게 뭐야! ”

“ 으……. 좀 닥쳐, 시끄러워…. ”

“ 김종인보다 내가 못한 게 뭐냐고! ”

 

김종인? 그 새끼는 또 누군데.

 

“ 김종인? ”

“ 아, 그래! 오늘 네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던 새끼! ”

 

아……, 걔가 김종인이야? ……뭐? 그러니까 씨발 무용과에서 존나 핫바디로 뜨고 있는 그 모델과에서 존나 탐낸다는 그 김종인? 요즘 우리 학교에서 거의 몸이 이정재 급이라면서 여자 애들이 꺅꺅 거린다는 그 김종인이 걔라고? 난 적어도 나랑 존나 비슷하게 생겼길래 나같은 애인 줄 알았더니 김종인이라고, 걔가? 하, 정말 웃음밖에 안 나왔다. 정말 드디어 무용과에서 춤만 추더니 돈건가. 몸을 그렇게 쓰니까 머리가 돌지, 진짜. 고개가 저절로 좌우로 움직여졌다. 옆에서 박찬열이 뭐라고 하든 말든 그 새끼, 아니, 김종인을 생각하면 저절로 이가 바득 갈아졌다. 이제 그 새끼가 아니고 김종인 새끼로 호칭을 바꿔야겠다. 김종인 새끼…, 종이 같아 가지곤. 아, 그러기엔 너무 피부가……. 술에 꼴았더니 이런 저런 생각이 다 든다. 정말 술을 많이 마시긴 마셨구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으니 박찬열이 날 잡아주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 야, 김종대. 어, 야, 와서 도경수 좀 데리고 가라. 짜식아, 시끄러워. 여기가 어디냐면……. ”

“ 아, 김종대 시끄러워…. ”

“ 아, 그럼 부르지 말까? 알았어. 야, 너 오지 마. 끊어. ”

 

박찬열은 쓸데없는 것에서 되게 간섭이 많다. 물론 자기 딴에는 챙겨준답시고 하는 짓이고 나도 챙김 받는답시고 구는 건데 어쩔 땐 좀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얘가 정말 날 친구로만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물론 내가 술에 꼴아서 헛소리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박찬열은 오티갔을 때 친해져서 3년 내내 친해진 케이스다. 처음에 박찬열이 우리 과에 왔을 때는 전혀 음악 안 하게 생겨서 왜 여기 있나 싶었는데 박찬열의 낮은 목소리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낮은 목소리로 높은 음만 고집해 온 나와는 달랐다. 그리고 박찬열의 친화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평소에 말주변이 없던 나는 그냥 짜져있었고, 박찬열은 한 명씩 한 명씩 모두에게 한 번씩은 말을 붙였고, 난 그게 싫어서 괜히 까칠하게 굴었더니 그게 화근이었다. 그 후로 박찬열은 내게 치근덕댔고, 나는 꼴보기가 싫어서 계속 철벽을 쳤다.

 

“ 그냥 혼자 가게 둬……. 으, 속 쓰려. ”

“ 안돼. 내가 못 가니까 다른 애라도 불러서, ”

“ 됐어, 혼자 갈 거니까 누구 부르지 마. ”

 

박찬열의 웃긴 점은 평소엔 내가 무표정을 해도 계속 치근덕대지만 가끔 가다 한 번씩 내 기분을 눈치 채고 알아서 쭈구린다는 것이다. 사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정말 얘가 나랑 잘 맞는 애인 건지, 날 잘 아는 건지. 아, 모르겠다. 얘를 알아서 내가 어디다가 써. 세상이 빙빙 돈다. 나는 결국 얼마 못 가고 전봇대를 붙잡고 주저 앉았다. 정말 쪽팔리는 순간이다. 오늘 김종인 새끼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모든 게 김종인 때문인 것만 같아서 김종인을 증오하고 싶어졌다. 김종인이 나한테 그런 거지같은 말만 안 했어도 난 술을 안 마셨을 거고 기분이 안 구릴 테고 지금 전봇대를 붙잡고 앉아있지도 않을 텐데……. 아오 씨발! 입에서 모든 욕이 다 튀어나왔다. ‘ 욕하는 것도 섹시하네, 사귀자. ’

 

“ 아, 씨발. 김종인 새끼! ”

“ 왜? ”

 

……씨발. 오늘 하루는 완전히 망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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