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 재연
9년째 연애중 16 [ 띵동- 띵동- ] 오랜만에 만끽하고 있던 달콤한 늦잠을 깨운건 아침부터 요란스럽게 울려대던 초인종 소리였다. 그 소리에 깨서 눈을 떳음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가만 누워있었다. 기다리면 멈추겠지. 하지만 멈추지 않고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 누구세요? " " 아직까지 잤어? " 문을 열었을 때 내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아닌 민윤기였다. 한 손으로 문을 잡은채 품에 택배 상자쯤으로 보이는 큰 상자를 들고 서 있는 민윤기의 표정은 즐거워보이지는 않았다. " 응. 간만에 달콤한 늦잠 좀 자겠다는데 왜 방해하고 난리야. " " 누가? 내가 방해를? 난리? " " 어! " " 하, 이거나 봐. 내가 누구 때문에 잠이 깼는데! " 민윤기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내게 들고 있던 택배 상자를 건넸다. 얼떨결에 상자를 건네 받은 나는 그 무게가 꽤나 무거웠기에 뒤로 비틀거렸다. 그리고는 의아한 시선으로 민윤기를 바라보자 민윤기는 입을 열었다. " 이거 택배 너꺼지? " " 어? " " 우리집으로 왔어. 너 또 무심결에 주소 우리집으로 쓴거 아냐? " 그 말에 허둥지둥 박스를 둘러보았다. 내가 얼마 전에 산 홈쇼핑 로고가 찍혀 있었고 수신인에는 선명하게 내 이름 세글자가 적혀있었다. 세상에마상에. 민윤기네 집을 전부터 하도 많이 드나들다보니 예전에도 주소를 잘못 적어 민윤기네 집으로 택배가 간 적이 있었다. 당황스러움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민윤기를 바라보았다. " 하하, 그러게. 이게 왜 거기있지, 하하하. " " 어휴. 정신 안 차리고 다닐래. " " 미안. 미안해. 잘못했어. 이제 다시 가서 자. 응? " " 해 뜬지가 언제인데 자긴 뭘 자. 이제 일어나야지. 넌 나 가면 또 자려고 했지? " " 아니야. 나도 일어날거야! 일어났어! " " 그래, 알았어. 특별히 믿어준다. 갈게. " 민윤기는 그렇게 뒤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민윤기가 안겨준 택배 상자를 품에 안은채 걸어가는 민윤기의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윤기가 복도를 다 지났을 때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서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불러세웠다. " 야. " " 어? " " 오늘 뭐해? " " ...응? " " 특별히 약속 없으면... 나랑 밥 먹을래? " 누가봐도 멍청해보이리만큼 벙쪄버렸다. 게다가 하마터면 들고 있던 상자를 놓칠뻔했다. 예상치 못했던 말에 당황하여 눈에 초점이 풀인채로 입을 벌리고 있는 내 모습은 웃기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이성을 찾은 후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 응! " " 전에 사준다고 했던거 먹으러 가자. 이따가 문자할게. " ' 알았어- ' 입가에 헤벌쭉 미소를 띄운채로 대답했다. 문자를 남긴다던 민윤기가 돌아가고 끓어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해 한바퀴를 빙글 돈 후 집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택배 상자를 내려놓고는 뭘 해야할지 몰라서 의미없이 집안을 왔다갔다했다. 그래, 일단 씻어야지. 정신을 차리고 씻기 위해 들어간 화장실에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떡진 머리, 부어서 말이 아닌 얼굴, 게다가 후줄근한 옷차림까지... 나 아침부터 이 상태로 민윤기를 본거야...? 내가 봐도 흉한 내 몰골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비틀거렸다. 정말 어떡하니, 나... 평소보다 몇 배는 공을 들여 화장을 했다. 다행히도 민윤기와의 약속 시간까지 멀었기에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다. 잘 입지 않던 옷들까지 모조리 꺼내 침대에 늘어놓은 후 한참이나 선택을 망설였다. 평소에는 잘 입던 옷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쉽사리 입을 수가 없었다. 어려운 선택의 시간 끝에 골라입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난 아까의 나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무리 둔한 민윤기라도 내가 신경썼다는게 티날만큼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까 그런 몰골을 보이고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약간 창피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다. 뭐 어떡해. 잘 보이고 싶은데. 오고가는 말한마디 없었다. 그렇다고 어색한 것은 아니었다. 집 밖으로 나갔을 때, 이미 민윤기는 나와 있었고 가자라는 짧은 말 후에는 이어지는 말 없이 쭉 걷고 있었다. 나역시도 아직까지 아침의 창피함이 가시지 않아 특별한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그냥 애꿎은 머리카락을 만지며 민윤기 옆에서 걸을 뿐이었다. "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 응? "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민윤기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앞뒤가 다 잘린 뜬금없는 말이었다. 내 머리로는 해석도 이해도 되지 않은 말에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윤기를 쳐다보았다. " 아침에 본 사람 맞나? " " 어? " " 아까 저랑 만나신 분 맞으세요? 내가 아는 분이랑 너무 다르신데? "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껏 능청을 떠는 민윤기 덕에 그제야 알아챘다. 하긴,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내가 신경썼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여기서 부끄러워하면 괜히 나혼자 의식한 것이 더 티날까봐 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민윤기처럼 능청을 떨었다. " 그쪽이 아는 사람 맞는데요? " " 정말? " " 왜? 너무 예뻐? 그래서 못 알아보겠어? " " 와, 세상에. 뻔뻔한 것 좀 봐. " 민윤기는 내 말에 흠칫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내게서 고개를 돌려 앞으로 빠르게 걸어나갔다. 순식간에 빠르게 지나간 민윤기를 따라잡기 위해서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걸음을 옮겨야했다. 민윤기를 따라잡아 아까를 이어서 더 놀려주기 위해 한껏 능청을 떨었다. 그 덕에 나는 민윤기에게 착 달라붙어 있었다. " 내가 어디가 다른데? " " ... " " 어디가 그렇게 예뻐졌어? " " ... " " 대답 좀 해봐. 왜 못 쳐다봐? " " ... " " 쑥쓰러워서? " 대답은 없었지만 민윤기의 얼굴이 정말 미세하게 붉어진 것을 보았기에 나는 웃음이 났다. 실컷 놀려줬기 때문에 이정도면 되었다 생각해 짖궃은 장난은 그만두었다. 입가에 피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감추려고 노력하며 그냥 민윤기의 옆에서 얌전하게 걷고 있었다. 그렇게 얼굴을 신경쓰느라 다른 신경들을 한곳에 쏟으며 한참을 걷고 있었는데 민윤기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 진짜 신경 쓰여서 안되겠네. " " 응? 뭐가? " " 네 손 말이야, 손. " " 손? " " 자꾸 닿잖아. " 그제야 시선을 옮겨 아래를 쳐다보니 민윤기의 손과 내 손이 미세하게 스쳐져 있었다. 거리가 가깝다보니 손이 계속해서 스친 모양이었다. 표정 관리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기에 미쳐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아, 멍청하게 소리를 낸 후 팔을 구부려 어색하게 머리를 넘겼다. " 그... " " 어? " " 골라봐. 1개부터 5개까지. " " 뭘? " " 손가락 말이야. 몇 개 잡을래. " 민윤기는 손가락을 쫙 핀 손을 내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바로 앞의 민윤기의 손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옮겨 민윤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시선에 다시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 1개는 싫고, 5개는 너무 노골적인 것 같고, 그리고 3개는 너무 애매한데. 속으로 끊임없는 내적갈등을 겪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민윤기를 쳐다보지도 못한채 중얼거렸다. " ...4개. " " 알았어. 그럼 엄지만 빼고. " 작았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알아들은 민윤기는 바로 내 손을 잡았다. 4개라는 내 말을 아주 잘 들은 민윤기는 정말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4개의 손가락을 잡고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어정쩡하게 엄지손가락을 뗀 상태로 민윤기의 손가락 4개를 잡았다. 그 상태로 몇 분을 걸었다. 혼자 소외되어 튀어나와 있는 엄지손가락이 애잔해질 때쯤 민윤기가 갑자기 내 모든 손가락을, 그니까 엄지손가락까지 함께 움켜 쥐었다. 내가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자 민윤기는 입을 열었다. " 너는 어쩜 골라도 4를 고르냐. 센스없게. 진짜 불편하네. " " ... " " 그냥 5개로 하자. 너는 5개 싫은거 아는데, 내가 불편해서 그래. " " ... " " 너도 불편하지? " 민윤기의 질문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싫은 거 아닌데. 네가 부담스러워할까봐 그런건데. " 5개 다 잡는다? 이거 우리 둘 다 불편해서 그런거야. 알았지? " " ...응. " 내 손을 고쳐잡아 다섯손가락을 모두 잡은 민윤기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 옆을 얼굴에 열이 가득 쏠린 내가 쫄래쫄래 따라가고 있었다. 혹시나 민윤기가 내 두 볼을 볼까봐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를 숙이자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꼭 마주 잡아진 우리의 두 손이었다. 빈틈 없이 두 손은 꽉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걸어나가는 나와 민윤기의 발이 보여졌다. 너무나도 잘 맞아 나아가는 발걸음을 배경 삼아 보여진 꽉 마주 잡은 우리의 두 손을 보며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나는 한참이나 고생을 해야 했다. " 여기 진짜 맛있다. " " 그치. " " 응. 네가 사준다고 해서 더 맛있는 거 같기도 하고. " 나는 음식을 먹는 속도가 느렸다. 그렇게 많은 양을 먹는 것도 아니었지만 원체 먹는 속도가 느렸기에 나는 밥을 먹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건 민윤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밥을 먹을 때 늘 내가 다 먹을때쯤 민윤기도 식사를 마쳤기에 나와 먹는 속도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민윤기의 식판에 여전히 남아 있는 많은 음식들이 의아했지만 그냥 나와 같은 체질이겠거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전에 나간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민윤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다 먹지도 못했다. 그래놓고는 다 먹었다며 손을 씻고 오겠다고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평소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적게 밥을 먹은 민윤기가 어디가 아픈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민윤기의 뒷모습을 쫓고 있을 때쯤 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 민윤기는 아직도 초스피드네. " " 어?" " 쟤 맨날 밥 제일 일찍 먹었잖아. 뭔 밥 먹는 속도가 그렇게 빠른지, 체하지도 않나? " " 맞아. 나도 밥 먹는 속도 빠른데 내가 민윤기보다 빨리 먹은 적이 없다. " 그대로 얼어버렸다. 내가 알던 민윤기는 진짜 민윤기의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의 민윤기는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의 내가 봐왔던 민윤기와 지금 들은 민윤기를 조합하자면 결론은 그랬다. 민윤기는 밥 먹는 속도가 누구보다 빠르면서도 느린 나에게 맞춰주었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민윤기는 날 너무 멍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 다 먹었어? " " 응. 너는? " " 나도 방금. " 방금은 무슨. 거짓말이었다. 한참전부터 민윤기는 젓가락으로 이 음식, 저 음식 방황한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이미 식사를 마쳤음에도 민윤기는 그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몰랐지. 수백번은 넘게 같이 밥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야 알았다. 그런 민윤기를 알아주지 못한 나에게 따라오는 후회는 당연한 순서였다. " 이제 가자. " 특별할 것은 없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 추억을 남기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단지 같이 밥을 먹고 길을 걷다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소박한 얘기를 하는게 다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저녁까지 같이 먹자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왜 이러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민윤기와 사귈 때도 모든 결정은 내가 하는 편이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던 민윤기 때문에 우리의 약속의 절반이상이 내 의지로 이루어졌다. 그랬기에 민윤기의 의사를 먼저 묻기보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래서 민윤기가 안된다고 하면 취소하고 그뿐이었다. 그렇게나 추진력 있고 당당하던 나였는데 요새 자꾸만 민윤기를 신경쓰고 있다. 민윤기가 좋아하는 것을 관심있게 보고, 혹시나 민윤기가 싫어하지는 않을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속상하고 약간은 자존심도 상했지만 인정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민윤기를 좋아하고 있었고, 내 모든 행동은 민윤기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내 짝사랑의 불안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벌써 가을이네. " 어느새 느껴지는 한기에 두 팔을 가볍게 쓸며 말했다. 따스했던 낮과는 달리 날이 어두워지자 불어오는 바람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다. 원체 추위를 잘 타는 편이기도 했다. 내 말에 민윤기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자신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고 나를 멈춰 세워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이런 상황을 기대하고 말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아니, 나 괜찮은데... " " 그냥 입어. " " ... " " 너무 얇게 입고 다니지마. 추위도 잘 타면서. " " ...알았어. "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깨에 둘러진 가디건에서는 민윤기 특유의 냄새가 났다. 가디건 소매 끝자락을 만지작거렸다. 감촉이 부드러워 기분이 좋았다. 자꾸만 바보처럼 실실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라 하늘엔 별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릴 때, 민윤기와 걸으며 처음으로 같이 별을 보며 이야기했었던 그 날의 나처럼 나는 지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여전히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와중에 가방에서 진동이 울렸다. 서둘러 꺼낸 핸드폰 액정에는 내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이 떠있었다. [ 친구 김태형 ] 전화를 받을까말까 고민하다가 슬쩍 민윤기를 보았다. 그러자 언제부터 나를 보고있던건지 민윤기와 제대로 눈이 마주쳤다. 표정을 보니 누구의 전화인지 다 본 모양이었다. 하긴, 멀리 떨어져있던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었으니 다 보고도 충분했을 것이다. 애매하게 마주친 시선을 바라보고 있자 민윤기가 말을 걸었다. " 왜. " " ...어? " " 전화 안 받아? " " ... " " 전화 받고와. 나 먼저 갈게. " 민윤기는 입고리를 당겨 슬쩍 웃더니 이내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냥 가는거야?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보다가 입을 열어 소리쳤다. " 민윤기! " " ...어? " 걸어가던 민윤기가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민윤기에게 눈을 맞추었다. 왠지 모르게 그 눈을 보니 용기가 났다. 이상하리만큼 슬퍼 보이는 그 눈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 나 지금 이 전화 받아? " " ...그럼. 전화가 왔는데 받아야지. " " 이 전화 김태형이야. " " ... " " 나 김태형 전화 받아도 돼? " " ... " " 정말 그래? " 한참을 망설이던 민윤기는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울컥했다. 속상했다. 여러가지가 섞여 치밀어오르는 알수없는 감정에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민윤기를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한번 꾹 깨물었다. 힘없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민윤기에게 여전히 시선을 고정한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 아무렇지도 않아? " " ... " " 지금 이 시간에 김태형한테 전화가 왔는데, 내가 그 전화를 받겠다는데, " " ... " " 넌 아무렇지도 않아? " 민윤기는 대답 대신에 맞추고 있던 시선을 회피했다. 눈을 맞추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민윤기는 시선을 맞추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민윤기와 하도 눈을 맞추다보니 나조차도 그것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런 민윤기가 시선을 피한다는 것은 대답하기 곤란할 때만 나오는 민윤기의 일종의 습관이었다. 치밀어오르던 감정이 내 온몸을 뒤덮었다. 감정에게 지배당한 내 이성은 아무 힘을 쓰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감정에 충실해졌고 솔직해졌다.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는 민윤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내 행동에 놀랐는지 민윤기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앞에 선 나는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어 민윤기에게 보여주며 목소리를 높였다. "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어? " " ... " " 화가 안나? 내가 이 전화를 받고 김태형을 만나러 갈 수도 있는데 넌 왜 이렇게 담담해? 왜 늘 이렇게 멀쩡해? 응? " " ... " " 내가 김태형이랑 전화하고 김태형을 만나도 왜 넌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 " ... " " 넌 어떻게 그래? "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마음 속 말을 내뱉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던 민윤기는 자신의 얼굴 앞에 내밀어진 내 핸드폰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화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었다. 부지런히 울리던 진동이 멈추고 짧은 정적이 맴돌았다. " 안 멀쩡해. 담담하지도 않아. " " ... " " 누가 그래. 내가 그렇다고. " " ... " " 멀쩡하지도 않고 화도 나. 김태형이라는 그 남자가 네 옆에 있는거 나도 짜증나고 싫어. " " ...그런데 왜, " " 그래도, " " ... " " 친구라며. " " ... " " 네가 김태형인가 뭔가하는 그 남자, 친구라며. 너한테 친구라며. " " ... " " 나도 화도 나고 짜증도 나는데도, " " ... " " 그래도 나는 너 믿어. " 나는 너 믿어. 나를 믿는다는 그 짧은 문장이 내 마음을 쿵-하고 가라앉게 만들었다. 어느새 오로지 나를 향해 고정된 그 시선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두 볼에 열이 오르고 심장이 간지러웠다. 미친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행여나 민윤기에게 들릴세라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던 중, 민윤기의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울렸다. 민윤기. 나 지금 물어봐도 될 것 같아. 너한테 용기 내서 한번쯤 물어봐도 될 것 같아.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려던 순간, 나보다 빠른 민윤기의 말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 그리고, " " ... " " 나도 너 친구잖아. " " ... " " 네가 다른 친구 만난다는데, " " ... " " 친구가, 내가 뭘 어떻게 해. " 입꼬리를 슬쩍 당겨 웃은 민윤기는 손을 뻗어 내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고 내 머리를 살짝 헝클여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민윤기를 보고 서 있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고, 그대로 뛰어가 민윤기의 팔을 붙잡았다. 당황한 듯한 민윤기가 날 바라보았다. 민윤기의 팔을 꽉 붙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 우리가 친구야? " " ... " " 민윤기. 너한테는 우리가, 너랑 내가 친구야? " " ... " " 말해봐. " 이어진 내 말에 놀란 얼굴로 동공까지 흔들리며 나를 바라보던 민윤기가 오랫동안의 침묵 후에 내게 건넨 말은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웠다. " ...그럼 뭔데? 나랑 뭐하고 싶은데? " " ...어? " " 너랑 내가 친구가 아니라면 뭐하고 싶어? "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역으로 돌아오는 질문에 나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민윤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려던 순간, 먼저 입을 연 민윤기가 또다시 내 말을 가로막았다. " 친구, 아니지. " " ... " " 나한테 너 그냥 친구 아니야. " " ... " "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데. 우리가 어떻게 친구일수가 있어. " " ... " " 너랑 내가 어떻게 친구야. " 기다렸던 대답이었다.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제야 조금이나마 민윤기를 확인한 것 같았다. 간질거리는 마음에서 피어난 용기를 가지고 다시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나 너 좋아해, 윤기야. 너는 어때? 길지 않았던 시간을 머뭇거리고 가볍게 속으로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려고 하였다. " 그런데, " " ... " " 네가 그러자며. " " ... " " 우리 친구하자고, 네가 그랬잖아. " 민윤기의 말을 마지막으로 입 안 가득 맴도는 말을 또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민윤기의 말에 무슨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랬기에 울컥,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막기 위해 입술을 짓이겨야 했다. 민윤기를 붙잡기 위해, 민윤기에게 한발더 다가가기 위해서 민윤기의 팔을 잡고 있던 손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힘이 풀리고 민윤기는 더이상 내게 잡히지 않았다. 그랬다. 내가 그랬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입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내렸던 성급했고 어리석었던 내 선택은 어느새 부메랑이 되어 내게 더 큰 상처로 돌아왔다. " 네가 그렇다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 " " ... " " 그러니까, " " ... " " 우린 친구야.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게 쓴 웃음을 보여준 민윤기는 등을 돌려 내게서 다시 멀어져갔다. 벌써 멀어져가던 민윤기를 두번이나 붙잡았었다. 나는 세번은 하지 못했다. 오늘만큼은 익숙해진 일이었는데도 이번에는 그럴수 없었다. 마지막 민윤기의 그 얼굴에 누구보다 씁쓸한 미소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친구라는 단어가 새삼 가깝고도 먼 단어라는 것이 실감났다. 늘 가까이에 있지만 그렇기에 쉽사리 다가갈수가 없었다. 민윤기가 만들어버린 친구라는 벽 앞에서 나는 좌절했다. 넘어갈수 없었기에 나는 그 앞에 무릎 꿇어야했다. 문뜩 김태형이 떠올랐다. 그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데 김태형은 내 앞에서 몇번이고 그 단어를 자신의 입으로 내뱉었다. 날 안심시키기 위해, 내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김태형은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게도 내가 줬던건, 줄 수 있는건 상처뿐이었다. 민윤기에게도, 김태형에게도 그랬다. 내가 이별을 고하던 순간 민윤기에게 남긴 것은 상처였으며 앞으로 김태형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주어야할 것도 상처였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장나버린 부분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고칠 수가 없었다. 결국 눈물이 터져나왔다. 울지 않기 위해서 몇번이나 짓이겼던 입술이 소용이 없던 모양이었다. 속상함과 미안함, 자책이 뒤섞여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하늘에 별 하나 보이지않는 시간이었다. ' 하늘마저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 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겹쳐 들어서 모든 것이 서러워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나를 가장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상처뿐이라는 마주하게된 불편한 진실에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울 수밖에 없었다. 태꿍입니다! 얘넨 도대체 언제쯤....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다) 곧... 곧 합니다.. 행쇼.... 나만 빼고 다 사랑에 빠져.... 날씨가 너무 좋아요!!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그리고 오늘은 브금을 한번 넣어보았어요!!! 샤이니의 재연이라는 곡입니다! 가사가 글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넣어봤어요~ 좋은 노래니까 가사를 한번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늘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얼마전에 저 제 글 보고 윤기가 최애가 되었다는 댓글 보고 감격해서 울뻔ㅠㅠㅠㅠㅠ 모두들 신나고 즐거운 토요일 밤 보내세요~ [암호닉]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 / 꾸탱 / 슙슙 / 넠넠 / 반딥 / 두둥 /슈나무 / 윤여 / 깜냥 / 단미 / 남준시 / 콩 / 자몽 / 계피 / 딸기 / 워킹 / 하이쭈 / 메로나 / 소녀 / 짝꿍 / 청춘 / 후니 / 강강수월래 / 나도 / 예지앞사헕 / 은하수 / 융기융기 / 아카시아 / 슙쓰 / 화양연화 / 아가야 / 태태 / 깇 / 0530 (신청은 받지 않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