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chsia
01.
입안이 바짝 말랐다. 피맛이 입안에 감도는 거 같기도 하고.
솔직하게 정확한 이유도 모르고 맞고 있는 한 두 번이 아닌 이 상황이 귀찮았다 나는.
"와 시발 개독하네 울지도 않아"
"서현아, 종인이랑 친하다고 그래도 되는 거야?"
"오세훈이랑도 요즘 말하더니 세상 재밌어? 그래?"
세상에 재미를 느낀다라.. 언제 느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세상의 재미 같은 소리하고 있네 좆같게 진짜
"언제까지 때릴 건데"
"뭐?"
"알바가야하거든 다 때렸으면 가고"
어이없어하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그냥 길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보이는 오세훈.
"세훈아"
봤지 오세훈. 내가 니새끼 하나 때문에 모든 게 꼬였어. 안 그래도 좆같던 인생 더 좆같아졌어 세훈아.
"세훈아, 세상이 재밌어 보인다. 너는"
* * * *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하는 전학은 내게 있어서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통보였다.
아빠의 사업이니, 엄마의 건강이니 뭐니 여러 가지 변명으로 하는 전학은...
꽤나 좆같았다.
"한서현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사정상 3학년 때 전학 오게 되었어요. 모르는 게 많으니 잘 부탁합니다."
짧막한 인사가 끝이나고 자리를 창문가 뒷자리로 배정받았다.
내 기분과는 반대로 오늘 날씨는 좋았다.
한강 가고 싶다.
"서현이는 학교에 대해서 잘 모를 테니까 반장인 세훈이한테 부탁하면 세훈이가 잘 도와줄 거야. 이상 조례 끝."
담임이 조례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내게로 와 안녕 서현아? 이름 예쁘다 어디서 왔어? 왜 고삼 때 전학 온 거야? 등 쏟아지는 질문 세례들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고삼이면 공부에 매진해야 하지 않나.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미소와 적당한 대답을 해주고 있다 보니 결국 분위기는 소란스러워졌고 공부에 예민한 아이들에게 한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세훈이란 애가 누구지. 반장이 반에 없으면 쓰나
아이들이 자리로 돌아갔을 때 문이 세게 열리며 큰 소리가 들렸다.
"한서현!!!!!!!"
"...김종인?"
"야 너 뭐야!!!!!!"
아 망할.. 김종인이 이 학교라니.... 벌써부터 시끄럽다...
"야 너 전학 온다는 거 진짜였어? 난 또 우리 엄마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 야 김종인!!!!!!"
"우리 서현이 오느라 고생했어"
그렇게 됐다며 말이 끝나자마자 머리를 쓰담으며 덥석 안아오는 김종인. 아 진짜...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저 수십 개의 눈들 어쩔 거냐고...
그런데 그때 앞문으로 들어오는 날카롭게 생긴 남자아이. 누구지 쟤는 또....
"김종인? 교실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나 했더니.. 넌 또 왜 우리 반에 와 있어"
"오세훈~ 오늘 전학 온 우리 서현이 잘 부탁해"
김종인이 뜬금없이 나를 오세훈이라는 아이에게 잘 부탁한다고 소개한다.
오세훈? 아 쟤가 반장이구나. 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아 니가 오늘 전학 왔다던 그 전학생이구나. 한서현? 이름 예쁘네 잘 부탁해"
라며 웃으며 내게 손을 내민다.
분명 웃고 있는데 눈빛이 날카롭다.
가만 쳐다보다가 나 역시 오세훈이 내민 손을 마주 잡으며 잘 부탁한다 대답을 했다.
좋은 예감은 들지 않는다.
*
그 후로 김종인은 갔지만 매일같이 쉬는 시간마다 김종인이 찾아오는 바람에 친구를 사귈 여력은 없었다. 사귈 마음도 딱히 없기는 했다만.
김종인이 쉬는 시간마다 나를 매점이며 어디며 데리고 다니다 보니 학교는 금방 내게 익숙해졌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역시나 김종인이 나를 급식소로 끌고 갔다.
귀찮은데.
"오늘 급식 맛있는 거다. 우리 서현이 많이 먹어"
얜 나를 오구오구해서 부담스러워...
그때 큰소리가 들려와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오세훈과 남자아이가 부딪혀버리는 바람에 오세훈 교복에는 음식물이 더럽게 튀어 있었다.
남자아이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오세훈에게 말을 걸었다. 오세훈의 표정은... 꽤나 굳어 있었던 거 같다.
"세훈아 괜찮아? 아니 그게.. 미안해..."
오세훈은 아무 말도 없다가 이내 씩 웃으며 말을 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다음부터 조심해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오세훈에게 괜찮으냐는 말들. 오세훈은 웃으며 괜찮다고 하며 씻으러 가는 건지 급식소 밖으로 나갔다.
오세훈이 급식소 밖으로 나가자 오세훈과 부딪힌 남자아이는 비난들을 받았다.
니가뭔데 세훈이랑 부딪히냐부터 세훈이 교복 봤냐, 니가 새로 사낼거냐는 둥 남녀 가릴 거 없이 오세훈을 편 드는 아이들 밖에 없었다.
오세훈은 학교에서 이미지가 좋았다.
*
청소시간 쓰레기 담당을 맡게 된 나는 쓰레기를 버리러 소각장으로 갔다.
쓰레기통을 뒤집어 흔들며 쓰레기를 버리고 뒤돌아 가려는데 발에 무언가가 밟혔다. 라이터였다.
뭔가 싶어 보니 고개를 숙여 보니 옆에는 불에 타있는 남자 교복이 있었다.
나와 동급생이란 걸 뜻하는 같은 색 명찰 하얀색이었고 반쯤 남아있는 명찰에는 ㅔ훈이라 적혀있었다.
아까 급식소에서 부딪혀 더러워진 오세훈의 교복이었다.
thanks |
여나 푸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