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연애중 18 쥐도 새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다음날 조금 늦은 아침이 되서야 눈을 떴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다가 갑자기 드는 민윤기 생각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황급하게 찾은 시계는 9시를 향해 바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그래, 이 시간이면 민윤기가 아직 집에 있겠지. 더는 망설이지 않겠다는 어젯밤 내 다짐대로 나는 민윤기를 만날 준비를 하였다. 그대로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다가 그래도 내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데 부시시한 머리, 눈꼽 낀 얼굴, 후줄근한 옷차림일수는 없었기에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옷장을 열었다. 어떤 옷이 좋을까. 이 옷은 너무 신경 쓴거 같고, 그렇다고 이 옷은 너무 내추럴한데... 결국 고민 끝에 꺼낸 옷은 이도저도 아닌 옷이었다. 그래도 평범하게 예뻤으므로 나름 만족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는 거울 앞에 앉아 분주하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맨날 하는 화장인데도 긴장이 되고 화장 하나하나에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화장을 다 하고 거울을 보며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거울에 비친 살짝 굳어있는 내 얼굴을 살짝 웃어 미소를 띈 표정으로 바꾸었다. 거울을 보며 웃다가 그 속에 비친 시계가 9시가 훌쩍 넘었음을 알게해주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지. 당황한 나는 다급히 일어나 집을 뛰쳐나갔다. 뛰쳐나가 바로 옆 건물인 민윤기의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 민윤기의 집 앞에 섰다. 막상 초인종을 누르려고 하자 긴장감에 입술이 말랐다. 손도 다리도 아니 온몸이 떨렸다. 초조함과 긴장감이 밀려 들어와 설레임과 뒤섞여 내 몸을 지배해버렸다. 혀로 입술을 한번 축이고 큼큼 헛기침을 하여 목도 가다듬고 떨리는 두 손도 마주 잡아 진정한 후에 손을 뻗어 초인종을 눌렀다. 몇 번이고 초인종을 눌러보고 문도 두드리며 민윤기를 불러봤지만 집 안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기에 결국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뛰어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걸어내려오는 계단의 수가 꽤 많았다.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와 한숨을 내쉬었다. 넘치던 의욕이 한순간에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하긴, 만약 오늘 오전 수업이 있다면 이미 학교에 있고도 남을 시간이다. 확인도 안하고 무작정 달려온 내 실수였다. 민윤기가 아침부터 돌아다니며 놀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가 학교에 있다고 생각한 나는 조금은 들뜨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어딨니 민윤기. 제발 좀 나타나라. 정말 싸돌아 다녔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학교를 돌아다니며 민윤기를 찾았다. 아직은 더운 날씨에도 이곳 저곳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닌 내 노력이 무색할만큼 난 그 어느 곳에서도 민윤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참 멍청하게도 이제야 내 가방 속의 핸드폰이 생각났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는 수고 대신 화면을 몇 번 누르기만 하면 되는 내 최신 스마트폰과는 달리 아직 내 지적수준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듯 싶었다. 이제는 민윤기를 볼 수 있을까싶어 핸드폰을 꺼내어 떨리는 마음으로 민윤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 듣기 좋은 민윤기의 목소리 대신에 내가 정말 듣기 싫어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꺼져있지. 종료 버튼을 누르고 습관적으로 다시 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전히 같았다. 신경질적으로 종료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머리보다 몸을 써야하는 운명인것 같다. 이 학교에 있다면 만날 수 있겠지. 반드시 찾는다 민윤기. 계속되는 헛걸음에 지쳐갈 때쯤, 익숙한 뒷모습이 저 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김태형이랑 비슷하네. 무심결에 넘겨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후 돌아봤을 때 그 뒷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닌가. 내가 너무 찾아다녀서 잘못봤나.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졌기에 제대로 본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다급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부름에 멈춰서 뒤돌아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 응? 왜? " " 누가 너 찾더라. " " 어? 누가? " " 몰라, 아까 과실에 있었는데 왔었어. " " 누구지... " " 잘생긴 남자던데? 너한테 민윤기말고 그런 훈훈한 친구가 있었어? " 김태형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까 본 그 뒷모습, 그러니까 아마 김태형일지도 모를 그 사람이 생각났다. 김태형이 다시 나타나 나를 찾았을 것이다. 아니 그런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헐레벌떡 과실로 달려갔다. 순식간데 도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김태형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김태형이 아닌가 의아해하다 갑자기 드는 생각에 발걸음을 김태형의 과실로 돌렸다. 조심스럽게 들어가 열었던 김태형의 서랍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넣어놓은 초코바와 쪽지가 사라져있었다. 김태형이 이 근처에 있다. 반가운 마음 반, 또 염치없는 마음 반을 가지고 문을 열고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여전히 김태형은 없었다. 김태형이 근처에 있다해도 정확한 위치를 몰랐기에 답답해하던 중 전에 김태형이 나를 데려갔던 그 쉼터가 생각났다. 정말 그 곳에는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늘의 장난인지, 계속 엇갈리는건지 아니면 정말 내 착각이었던 것인지 쉼터에도 김태형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정말 지칠데로 지쳐버려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민윤기도 김태형도 찾지 못하고 하루종일 허탕만 친 허탈함에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몸을 쭈그린채 한참을 그러고 있었는데 내 위를 쨍쨍하게 비추던 햇빛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는 내 위로 길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의아함에 살짝 고개를 들었을 때 발견한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태형이었다. 나도 모르게 놀라 김태형!하고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안녕. " " ... " " 오랜만이야. " 김태형을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동안 어딨었냐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고 따지려던 나는 웃는 그 모습에 미안해져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게 김태형은 쪽지와 초코바를 내밀었다. " 이거 니가 준거지? " " ...응." " 나 이 초코바 짱 좋아하는데. " " ... " " 물론 쪽지에 적어준 멘트도 좋아. 이 초코바가 다 녹기 전에 다시 나타나주라, 태형아. " " ... " " 다행이다. 아직 다 안 녹았어. " 자랑스럽다는 듯이 내게 초코바를 보여주며 웃는 김태형에게 처음으로 힘겹게 입을 뗐다. " 어디갔었어. 일주일씩이나... " " ... " "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 걱정했어. " 내 말에 김태형은 나를 다시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옆에 앉으라는 내 권유에도 김태형은 꿋꿋하게 그 자세를 유지했다. " 나 여행 다녀왔어. " " ...여행? " " 응. 그동안 너랑 가고 싶었던 곳 전부 갔다가 왔어. " " ... " " 그런데 너랑 가고 싶었던 데가 많았거든.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 " " ... " " 근데 너랑 못 한게 진짜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되게 서운하고 아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아니었어. " " ... " " 너랑 연극도 보고 닭갈비도 먹고 내 소원이던 마트에서 장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했더라. " " ... " " 좋은 데서 바람 쐬면서 그렇게 생각하니까 머리랑 마음이 맑아졌어. " ' 나 봐봐. ' 미안함에 김태형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내게 김태형이 말했다. 그 말에 서서히 고개를 들어 김태형과 눈을 마주했다. " 너 섭섭할 수도 있겠는데 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 빨리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 " ... " " 물론 나 일주일동안 되게 힘들었다. 속이 많이 상하는데도 너가 보고싶고 그러다가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했어. 정리하는거 진짜 오래 걸릴거 같았거든. " " ... " " 그래서 너한테 부담주기 싫어서 다 잊을 때까지, 그 때까지 안 나타나려고 했는데, " " ... " "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미련하게 굴다가 내 소중한 친구까지 잃어버리면 어떡해. 나 그러기 싫어. " " ... " " 정말로 이제 진짜 친구 할 수 있을 것 같아. " " ... " " 앞으로도 너랑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보는 그런 사이 하고 싶어. " " ... " " 나 너랑 계속 친구 해도 돼? "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 하는 것을 겨우 참아 내었다. 어떻게 마지막까지 오로지 나만을 배려할 수 있는지 정말 순수한 의미로 김태형이 놀라웠다. 정작 그렇게 물어야할 사람, 그런 부탁을 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띄우며 김태형에게 대답했다. " 당연하지. 너가 아니면 그런 친구 누가 해줘. " 내 대답에 김태형은 정말 환하게 웃었다. 여태까지 보았던 그 어떤 웃음보다 환한 웃음이였다. 그런 김태형을 따라서 웃는 내게 김태형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 나랑 친구하자. " 몇 개월전 그날과 똑같이 김태형은 내게 물었고 나는 그때보다 몇배 아니 몇천배는 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김태형의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손이 떨어지고 김태형은 내 핸드폰을 가져가 화면을 꾹꾹 누르더니 다시 내게 돌려주고는 약속이 있다며 먼저 걸어갔다. 멍청하게 핸드폰을 들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울리는 진동에 반사적으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 김태형에게 진짜 친구 생긴 날! ] 짧은 문자였다. 간단하지만 무엇보다도 김태형과 나를 편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이어주는 내용이었다. 나는 문자를 보며 미소 지었고 그 문자의 발신자의 이름은 어느새 앞에 꼭 남자를 붙이겠다던 친구 김태형에서 남자 말고도 하나를 더 붙인 ' 남자사람친구 김태형 ' 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동안을 의자에 앉아 있다보니 어느새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다가 익숙한 무리가 눈에 보였다. 나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법한 건축학과 사람들이었지만 건축학과인 민윤기 덕분에 자주 얼굴을 보았기에 대부분의 얼굴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따라가 인사라도 건넬까하다가 민윤기도 없는데 오바하는것 같아 관두었다. 아, 과실을 안 가봤구나. 왜 그랬지.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는 민윤기가 제일 있을 법한 곳인데 아직까지 안 가본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문득 드는 생각에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곳에서 역시 민윤기를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불까지 꺼져 있었기에 아무도 만나지 못한 나는 결국 다시 문을 닫았다. " 어? " " 어? 안녕하세요! " 문을 닫고 뒤돌았을 때 만난 사람은 다행히도 꽤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민윤기 때문에도 몇 번 만났고 친구의 남자친구였기에 서로 인사 정도는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 " 맞다. 윤기 찾으러 왔는데 없네요. " " 아, 그러시구나." " 근데 오늘 과에 무슨 일 있어요? 아까 다들 나가던데. " " 저희 과 오늘 미팅이 있어서요. 간만에 미팅이라고 얼마나 좋아라하던지. " " 미팅이요? " 순간 괜한 불길함이 밀려왔다. 괜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찝찝했기에 결국 나는 궁금증을 입 밖으로 내놓았다. " 혹시 거기에 민윤기도 나갔나요? " " 네? 아 저는 잘 모르는데... " 하긴, 이 분 여자친구도 있는데 미팅 얘기에 안 끼워줬겠지. 알리가 있나. " 근데 인원수 모자라다고 아까 민윤기한테 연락하는 것 같긴 했는데. " " ... " " 나갔는지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내 머릿 속에, 마음 속에 혼란만 증가시킨 사람은 짧은 목인사를 끝으로 멀어져갔다. 그저 멍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몇 마디 말로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니까, 지금 민윤기가 미팅에 나갔을지도 모른다 이거지? 나말고 다른 여자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거지? 깔끔하게 정리된 생각이 끝난 후에는 몸이 먼저 학교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정신 없이 뛰쳐나왔어도 나는 다음 행동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팅의 위치도, 장소도, 시간도 아무 것도 몰랐다. 그랬기에 나는 그저 길거리에 서서 주위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아까 자세히 물어나 볼걸. 어리석게도 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민윤기의 미팅이 짜증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 또한 짜증이 났다. 미팅에 나갔을 민윤기가 미웠고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내가 미웠다. 터져나오는 한숨만 푹푹 내쉬면서 그렇게 상황을, 민윤기를, 나를 원망하며 걸으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려다 역시나 불이 꺼져있는 민윤기의 집 창문을 보고 마음을 돌려 그 입구 앞 계단에 쭈그려 앉았다. 마음이 정말 속상했지만 다행히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길거리에 쭈그려 앉아 울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오지 않는 민윤기를 기다렸다. 전화를 해보았지만 핸드폰이 꺼져있었기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민윤기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아니 하고싶지 않았다. 혹시 만난 여자가 마음에 들어 데이트라도 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애써 지우려고 노력했다. 민윤기가 나를 기다릴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림자도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실망하고 그러다가 또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실망하고. 들려오는 발소리에 기대했다가도 끝은 실망이었지만 포기하고 돌아설 수 없는 단 한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민윤기가 보고싶었다. " 뭐해? " 쭈그려 앉아 고개를 파묻은 내 위로 그토록 기다려왔던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민윤기의 얼굴이 보였다. " 너 왜 이 시간에 여기서 이러고 있어? " " ... " " 뭐해, 여기서? " 민윤기의 물음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 손을 내밀어주는 민윤기 때문에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을 더 참아내는 것은 내 몫이었다. " 응? 뭐하냐니까? " " ...민윤기. " " 어? " " 윤기야, 너 미팅 했어? " " ... " " 너네 과오늘 미팅한다던데... 너 거기 갔다 온거야? 그래서 연락도 안 되고 그랬던거야? " 내 말에 그저 두 눈을 더 동그랗게 뜨던 민윤기는 이내 뭔가 알았다는 듯이 작게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아니. 나 미팅 안 했어. " " ... " " 나 집에 갔다왔어. 엄마가 도대체 언제 올거냐고, 한 번 오라고 그렇게 독촉해서. 정신없이 가느라 배터리도 안 가져갔더라. 그래서 핸드폰 꺼놨어. " " ... " "근데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거야. 나 찾았어? 왜? " " ... " " ...아, 나 미팅했을까봐? " " ... " " 안 했어. 고작 그거 물어보려고 미련하게 왜 이러고 있어. " " ... " " 물어봤으니까 이제 들어가. 다리 아프겠다. 날도 이제 제법 쌀쌀한데. " 쭈그리고 있었던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나를 집으로 보내고 들어가려는 민윤기를 불렀다. 다행히도 한 번에 멈춰선 민윤기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 윤기야, 미팅 하지마. " " ...안 한다니까? " " 내일도 하지말고 일주일 후에도 하지말고 앞으로도 하지마. " " ... " " 나 네가 다른 사람 만나는거 싫어. " 더는 늦을 수 없었다. 오래도 걸렸고 힘들어 울기도 했지만 돌아왔으니 되었다. 이제는 그런 의미 없는 방황을, 헤메임을 멈출 때였다. " 나 너 좋아해, 윤기야. " " ... " " 미안해. 내가 몰랐어. 내 마음도 몰랐고, 너도 몰랐고 아무것도 몰랐어." " ... " "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미안해. 널 오해하고서 나 혼자 판단해서 미안해. 너보다 내가 더 아프다고 생각해서 미안해. 그래서 너한테 상처준 것도 미안해. " " .... " " 이제서야 알아서 그리고 또 이렇게 내 마음대로 말해버려서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윤기야. " " ... " "이미 늦은거 아는데도, 그래도 더는 늦고 싶지 않았어. 내 마음을 너가 오해하게 하고싶지 않았어. " 민윤기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것인지 떨리는 것인지 민윤기의 눈이 담담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내 눈도 현재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네가 친구라고 할 때마다 나는 네가 너무 미웠어. 처음에는 내가 먼저 그래놓고 왜 화가 나는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너무 잘 알아. 왜 네가 친구라고 할 때마다 화가 났는지. " " ... " " 좋아해서, 널 좋아해서 그래. " " ... " " 좋아해, 윤기야. 정말로. " " ... " " 전에 물었지. 친구 말고 뭐 하고 싶냐고. " " ..." "네 말이 맞아. 너랑 내가 어떻게 친구야. 민윤기, 나 너랑 친구하기 싫어. " " ... " " 이기적인거 아는데, 잘 아는데 그래도 너가 한번만 더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나 다시 네 여자친구 하고싶다고 할래. " 내 말이 끝나고 한참이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윤기는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온 민윤기는 멈춰서 한숨을 한번 내쉬고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며 말했다. " 널 진짜 어쩌면 좋냐. " 그 말을 끝으로 민윤기는 나를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내가 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민윤기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 그거 알아? 너 진짜 미워. " " ...알아. " " 그런데, 미운데도 또 진짜 좋아. " " ... " "진짜 좋아서, 너무 좋아서 네가 미워도 아무것도 못해. 화도 못 내고 싫어하지도 못해. 그래서 엄청 짜증났었는데, " " ... " " 네가 이렇게 안겨있으니까 하나도 안 짜증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해. 꿈이라면 깨고싶지 않을만큼 지금이 좋아. " " ... " " 나도 진짜 답이 없다. 그치? " " ... " " 그래도 네가 좋은걸 어떡해. " 내 등을 가볍게 쓸어내리던 민윤기가 품에서 떨어졌다. 살짝 벌어진 간격 사이로 민윤기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내 두 눈을 바라보며 살짝 흔들리던 민윤기의 눈빛이 어느새 나를 향해 고정되었고, 민윤기의 입에서 그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나 한번만 더 물어볼게. " " ... " " 너랑 친구하기 싫어. 너도 그렇지? " " 응. " " 그러면 우리 친구말고 다른거 하자. " " ... " " 나랑 친구말고, 넌 뭐하고 싶어? " " ...여자친구. " " ... " " 네 여자친구 하고 싶어, 윤기야. " 조금은 떨리고 긴장되는 목소리로 말하며 민윤기를 향해 웃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민윤기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나를 바라보던 민윤기가 나를 다시 꽉 안았다. 그러자 나도 팔에 힘을 줘 민윤기를 꽉 안았고 우리의 온기가 심장소리가 합쳐졌다. 숨이 막힐것 같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었다. " 돌아와줘서 고마워. " 결국 눈물이 터졌다. 슬퍼서기도 했지만 그보다 기뻐서 그런 이유가 더 컸다. 그동안의 맘고생이, 부담감이 씻겨져 나가는 기분에 마음 한 구석이 뒤숭숭했고 허전했다. 하지만 그 빈자리에 곧 민윤기가 들어왔고 다시 내 마음이 꽉 채워졌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온기의 민윤기에게 안겨 민윤기의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길을 받으며 나는 그렇게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지 민윤기는 알까. 수십번, 수백번을 후회했고 또 망설였다. 짧다면 짧다 할 수도 있는 기간이었지만 용기 내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변할 수 없었다. 어리석고 멍청했던 나에서 솔직해질 수 있는 나로 달라졌다. 그렇게 달라진 나는 다시 민윤기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 집 앞. ] 울리는 문자 소리에 아침에 비몽사몽 눈을 떴을 땐 다른 날처럼 뒹굴뒹굴 거리지 못했다. 단지 두 글자만 적혀 있는 민윤기의 문자에 스프링처럼 침대에서 튀어올랐다. 지금 집 앞이라는 거야? 난 지금 일어나서 준비도 못했는데? 창문 밖으로 빼꼼 내다보니 정말 민윤기가 서있었다. 아 진짜, 어제 밤에 내일 수업 있냐고 물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눈치도 없게 그냥 응!이라고만 하고. 같이 가자고 할 줄은 몰랐지. 결국 민윤기에게 5분, 아니 10분만 기다려달라는 문자를 보내고 정신없이 씻고 나갈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10분만에 할 수 있는건 많지 않았다. 겨우 머리를 감고 말리지도 못한채 정말 기본적인 화장만 했다. 옷도 그냥 보이는 거 아무거나 꺼내 입었기에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그마저도 10분을 넘어버린지는 오래였다. 집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초라한 내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다시 사귀기로 하고 처음 만나는 건데...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머리도 별로 화장도 별로 옷도 별로라니... 불쑥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민윤기가 원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 빨리도 나온다. " 집을 나가자마자 민윤기는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나를 타박했다. 쳐다보니 지는 이미 말끔하게 옷도 다 갖춰입고 있다. 누구는 아침부터 극한체험이었는데 아주 여유롭구만? 그 모습에 토라져 괜한 심술을 부렸다. " 야, 적어도 나오기 10분전에는 문자를 줘야지.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줄 알아? " " ... " " 진짜 아침부터 정신없이... 나름 첫 데이트인데 화장도 제대로 못하고 옷도 별로라고! " " 새삼스럽게 왜 그래. 그런 모습 한두번 보냐. " " 뭐? 아 진짜, 내가 누구 때문에 아침부터 난리난리 그랬는데... " 장난스럽게 말해오는 민윤기때문에 두 볼에 열이 오른 나는 그를 한번 노려보고 당찬 발걸음으로 민윤기를 지나쳐갔다.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민윤기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나를 가뿐히 지나쳤고 이내 내 어깨를 붙잡아 나를 제자리에 멈춰 세웠다. 여전히 토라진 눈길로 쳐다보는 내게 민윤기가 말했다. " 아무것도 안해도 예뻐. " " ... " " 화장 안해도 예쁘고 옷도 아무거나 입어도 예뻐. " " ... " " 어제도 예뻤고 오늘도 예쁘고 내일도 예쁠거야. " " ... " " 그러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빨리 나 보러오기나해. "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민윤기때문에 정말 한순간에 다 풀려버렸다. 낮은 목소리와 설레는 눈빛으로 인해서 설탕처럼 녹아내려가는 나를 어쩔 수가 없었다. 또 나를 향해 눈을 고정한채로 한번 설레게 씩 웃은 민윤기는 자세를 바꿔 내 손을 잡고는 나를 이끌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진짜 언제부터 이렇게 민윤기에게 빠져버리게 되었는지는 나조차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렇게 많이 삐진 것도 아니었지만 민윤기의 달콤한 그 말 몇마디에 나는 스르르 다 풀려버렸다. 단번에 마음이 풀렸고 심지어 기분마저 좋아져 버렸다. 지금도 민윤기의 옆에서 꽉 잡은 두 손을 바라보며 좋다고 실실 웃고 있으니까 말이다. 연애는 밀당이라는데, 시작부터 망했다. 나는 민윤기에게서 밀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민윤기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데 내가 어떻게 민윤기를 상대로 밀당을 할 수가 있겠어. 한편으론 절망스러우면서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설레는 우리의 두번째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독자님들과 함께 사이다를 들고 건배를 한다)(마신다) 드디어 합니다ㅠㅠㅠㅠㅠㅠ연애ㅠㅠㅠㅠㅠ이 미련퉁이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다려주셨던 분들 감사해요ㅠㅠㅠ 질질 끌었는데도 포기하지 않아주신 여러분들이 진정한 승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달달한 걸 써야겠죠..? 달달과는 1도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 걱정이 앞서지만 노력할게요..!!! 브금을 뭘 해야할지 엄청 고민하다가 그냥 요즘 제가 좋아하는 노래로 골랐습니당(이기적) 좋죠..? 저만 좋은거 아니죠...?ㅎ 늘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해요♡ [암호닉]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 / 꾸탱 / 슙슙 / 넠넠 / 반딥 / 두둥 / 슈나무 / 윤여 / 깜냥 / 단미 / 남준시 / 콩 / 자몽 / 계피 / 딸기 / 워킹 / 하이쭈 / 메로나 / 소녀 / 짝꿍 / 청춘 / 후니 / 강강수월래 / 나도 / 예지앞사헕 / 은하수 / 융기융기 / 아카시아 / 슙쓰 / 화양연화 / 아가야 / 태태 / 깇 / 0530 / 누텔라 / 전국정국 / 미융 / 푸랑푸 / 쵸니 / 소금 / 월하 / 윤기나는윤기 / 짱구 / 김성규 / 민빠답없 / 윤기야 / 탄뚱탄뚱 / 오만원 / 쿠키 / 토마토마 / 손가락 / 알비노포비 / 작가님사랑해요 / 원 / 민트 / 민빠답없 / 현지 / 금붕어 / 리베 / 앵무새 / ☆요다☆ / 슙끼슙끼 / 민슈가 / 들레 / 연꽃 / 플로 / 태굴태굴 / #두근 / 음향 / 데빌 / 39 / 미늉이 / 김망고 / 홈매트 / 린슈가 / 토끼시러 / 끄앙 / 망망이 / 딱풀 / 츄파춥스 / 사말어는윤기 / 됴종이 (신청은 공지글에서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