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나
"안돼"
-아, 왜에
"오늘 그냥 집에서 쉴거라니까?"
-아 진짜 너무한다 김탄
"아 몰라몰라 김태형, 나 끊는다?"
-..진짜...됐어 끊어
가라앉은 태형이의 목소리를
애써 지워내며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정돈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못생겼어.
아, 어제 일찍 잘 걸.
뾰루지 날 것 같은데,
속상해 진짜.
애써 옆머리로 뾰루지를 가리다
되지 않자 머리를
막 헝그러트리고 있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어, 아저씨!!"
-왜 안와
"네?"
-아직 탄 것도 없는데
아저씨 벌써 지쳤어
"헐, 안돼요!"
진짜 지친 듯한 아저씨의 목소리에
헝크러진 머리를 재빠르게 매만진 후
손을 씻고 후다닥 달려나가자
풍선 하나를 든 채
핸드폰을 내려다 보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아저씨!!"
내 목소리에 전화를 끊은 아저씨가
손에 들고 있던
풍선을 건네주며
그와 동시에 또 머리를 콩 때린다.
"이게 노인공경이 없어"
인상을 찡그린 아저씨에도
기분이 좋아 베시시 웃자
결국 아저씨도 웃어버린다.
"나 놀이공원 진짜 오랜만이에요!"
"그래?"
"네!완전 신나요!"
"좋아?"
"네!!완전!아저씨는요?"
"그럼 나도 좋아"
환히 웃는 아저씨의 모습에
괜히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자
아저씨가 또 푸스스 웃는다.
"..어?!"
커플들이 끼고 있는 머리띠에
요리조리 둘러보자
한 가게에서 팔고있는 머리띠가 눈에띈다.
놀이공원 하면 머리띠지..ㅎ
저거 아저씨가 끼면 좋을 것 같은데..ㅎ
아저씨를 한 번 머리띠를 한 번
번갈아 보며 애절한 시선을 보내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저씨가
내 팔을 잡아끈다.
"..저런 거 지지"
"아니, 예쁜데요..?"
"지지야 지지"
"아- 아저씨 한 번만 껴줘요!!네?!"
"..혼난다?"
아 왜요-
아저씨 팔을 잡고 징징거리자
두손에 얼굴을 묻은 아저씨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아저씨가 저거 껴주면
나도 아저씨 소원 하나 들어줄게요!"
"..소원?"
"네!!오늘 한해서 뭐든 들어줄게요!"
"...아 진짜.."
"아저씨이.."
"...사 와"
아싸!!
아저씨의 말에 쪼르르 달려가
토끼 머리띠 두 개를 사오자
아저씨의 표정이 점점 굳는다.
왜 하필이면 토낀데..?
라는 표정의 아저씨에
껴줄까요?
하고 웃어보이자
한숨을 내쉰 아저씨가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가져다 댄다.
"껴 줘"
어저씨의 머리에 조심스레
머리띠를 끼워 넣자
고개를 푹 숙인 아저씨가
내 머리에도 재빠르게 머리띠를 끼워 넣더니
빨리 가자며 팔목을 잡아 끈다.
"아저씨 완전 귀여워요,
네? 아저씨!"
"..."
"완전 잘 어울린다니까요??"
"됐어.."
인상을 찡그린 아저씨가 왠지
토끼 머리디와 잘 어울려
베시시 웃자
지금 웃어?
라며 머리를 콩 때린다.
"아-아저씨!!"
"왜"
"왜 자꾸 머리 때려요!!"
"..."
"아저씨이!"
"..탄아"
갑작스레 불려진 이름에 흠칫 멈춰서자
내 어깨를 잡은 아저씨가
나를 내려다 본다
"탄아"
"..에..네..네?"
"오빠라고 불러"
"....에엑?"
"그게 오늘 내 소원"
*
"오빠!!!오빠!!!!!"
어느새 입에 붙어 버린 말로
아저씨를 부르자
아저씨의 귀가 또 빨개진다.
뭐, 저런 반응이 재미있어서
부르는 것도 있고...
"오빠!!우리 귀신의집 가요!!"
"..어..어..그래"
답지 않게 당황한 아저씨에
신이나서 팔을 잡아 끌었다.
귀신의 집에 들어서자
으스스한 주변과
어두운 주변에 아저씨의 팔에
붙어서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아저씨가
흠칫 멈춰선다.
"뭐..뭐야"
"네?"
"여기 뭔데?"
"..네?귀신의집이요!"
"...나가.."
"...에?"
"나가자"
사색이 된 아저씨가
재빠르게 내 팔을 잡고
돌아서지만,
이미 들어온 이상 나갈 수가 없는지라..
절망한 아저씨가 마른세수를 했다.
"흐흐, 혹시 무서워요?"
"...아닌데?"
"근데 왜 떨어요?"
"..추워서 그래"
춥다며 내 팔을 꼭 붙든 아저씨가
내 뒤에 서서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걸 무서워 할 줄이야..
진짜 오예다.
크나큰 오예였어.
"오빠 여기 앞에 뭐 있는 것 같아요"
"오빠 여기 조심!"
"앞에 봐봐요 오빠!"
"아 아저씨!!!"
내 옷자락을 꽉 붙들고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는 아저씨에
결국 소리지르자
머쓱해진 아저씨가
내 옷을 놓고 똑바로 선다.
"..아저씨가 심장이 약해"
"헐.."
머리를 글쩍이는 아저씨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노려보는데
'쾅-!'
"으악!!"
아까부터 졸졸 따라오던 귀신이
뒤에서 아저씨를 툭 밀치고
놀란 아저씨가 주저앉아
심장을 부여잡는다.
"아..진짜 깜짝이야.."
"와...진짜 아저씨 실망"
"..어?"
"이렇게 겁이 많을 줄이야.."
피식피식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며
괜히 툴툴대자
충격을 받은 듯한 아저씨가
결심을 했는지
내 팔목을 잡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고,
중간중간 아저씨가 많이 주저앉긴 했지만
겨우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
"아저씨 오늘 진짜 재미있었어요!!"
"아직 오늘 안지났는데 왜 아저씨래"
"아 맞다! 오빠오빠! 됐죠?ㅎ"
내 말에 못말린다며 웃은 아저씨가
왼손으로 핸들을 매만졌다.
"머리띠 낀 것도 좋았고,
놀이공원 간 것도 좋았고,
같이 있었던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오빠 놀란 거 볼 때 완전 재미있었어요!!"
내 말에 혼날래? 라며 인상을 찡그린 아저씨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그런 건 기억에서 지워.
라며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아, 벌써 다와가네.."
익숙한 골목이 보이자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랑 있으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가는지.
수업시간은 그렇게 늦게 가더니...
"아, 저 내일은 못 만날 것 같아요.
갑자기 특강이 잡혀서.."
"...음, 알겠어.
그럼 그 다음날 보지 뭐"
"그래서 그런데
오빠 번호 좀 주세요!"
"어?"
"우리 만난지 오래 됐는데
번호 교환도 안했더라구요?
아니..,막 갑자기 일정 바뀌거나 그러면
연락해야 되니까..네?
알려주세요!!"
핸드폰을 달라며 손을 내미는 아저씨에
신이나서 핸드폰을 꺼내들자
문자와 전화가 수십통이 와 있다.
핸드폰 안주냐는 아저씨에
잠시만요 라며 기록을 보자
전부 태형이에게서 와 있다.
"헐, 뭐야"
확인 중 온 전화를 받아들자
김태형이다.
-너 어디야
"..나?그러니까.."
-나 3시간 전부터 너네 집 앞이니까
거짓말 할 생각 하지마
"태형아"
-김탄 너 진짜..
갑자기 왜 이러는데?
태형이의 말에 당황해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데
벌써 집에 다 도착했는지
집 앞에 서 있는 태형이가 보인다.
헤드라이트에 눈이 부신지
인상을 찡그린 태형이가
가까이 다가오다 멈춰선다.
-너 옆에 누구야..?
"태형아, 그러니까..
내가 다 설명할게 응?
잠깐만 기다려..!"
나와 같이 당황한 아저씨에게
내 번호라며 재빠르게 번호를 찍어줬다.
"미안해요 진짜 아저씨.
오늘 꼭 연락해요?응?"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잘 풀고 조금 있다 전화할게."
"네!진짜 미안해요!"
"됐어, 친구 잘 풀어주고"
웃어주는 아저씨에
안심이 된 것 같아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차에서 내리자
멀리 서 있던 태형이가 다가오고
아저씨의 차가 멀어진다.
"아저씨?누군데?
너 요즘 계속 만나던게 저 사람이야?"
"오늘 거짓말 한 건 진짜 미안,
네가 걱정할까봐 그랬어.응?
미안 태형아"
"저 사람 만나냐고 물어봤잖아 내가"
"..그러니까.."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우물쭈물대자 한숨을 내쉰 태형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저 사람 좋아해 혹시?"
"..응?"
"야자는 빠지지도 않던 게
일주일에 서너번은 기본으로 빠지고,
글 쓴다고 맨날 노트북 잡고 있던 게
요즘은 노트북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 저 사람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저 사람 좋아해 너?"
축 쳐진 태형이의 말에 왠지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끄적 거리자
한숨을 내쉰 태형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까지,
김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는데"
"..."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태형아"
"..원조교제 그런 걸로 생각안해.
너 그런 애 아닌거 잘 아니까.
근데 왜 네가 나한테 거짓말 했는지는
진짜 모르겠어.
나를 못 믿었던건지 아님 딴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생각이 좀 필요할 것 같아"
"...김태형"
"..친구로서 걱정돼서 그러는 거니까
그런 표정 짓지말고"
"..."
"내일 보자"
내 어깨를 놓은 태형이
자신의 머리를 헝크리더니
앞서 걸어가고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행복했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저씨가 필요했다.
핸드폰을 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저씨가 무척이나 보고싶었다.